[영화] 15일 개봉 '노매드랜드', 집 살기 위한 곳? 아님 돈벌이 수단?

이경헌 기자 | 기사입력 2021/04/05 [10:39]

[영화] 15일 개봉 '노매드랜드', 집 살기 위한 곳? 아님 돈벌이 수단?

이경헌 기자 | 입력 : 2021/04/05 [10:39]

집은 살기 위한 곳? 사기 위한 것?

영화 <노매드랜드>

최근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업무상 알게 된 정보를 이용해 집이나 땅을 사서 몇 배의 수익을 냈다고 한다. 심지어 LH 직원 중에는 15채나 되는 집을 청약을 통해 사들인 이도 있다고 한다.

사실 집이란 살기 위한 곳에 불과한데, 우리나라에선 그나마 수익률이 가장 좋은 재테크 수단이 부동산 밖에 없다는 인식에 너도나도 집이나 땅을 사고 싶어 한다.

실제로 서울이나 수도권 아파트는 사두면 어지간해서 구입 가격보다 떨어지는 경우는 적다. 대게는 충분히 차익을 실현할 수 있을 정도로 가격이 오른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는 ‘반값 아파트’를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평당 1,000만원 짜리 아파트를 내놓겠다고 한다. 평당 1,000만원이 ‘반값’이라면 집값이 많이 비싼 것은 사실이다.

과거 누구나 못 살던 시대엔 열심히 일해서 10년, 20년 동안 모은 돈으로 내 집을 살 수 있었으나, 청년실업이 극심한데다 하루가 다르게 집값이 치솟는 지금은 20~30대 청년들이 악착같이 열심히 돈 모아 내 집을 사겠다는 꿈을 꾸기도 힘들다.

연봉 5천만원이 적은 돈이 아닐진대, 그 돈을 한푼도 안 쓰고 20년을 모아야 10억원이다. 아마 20년 후에는 10억원으로 20평짜리 아파트도 사지 못할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청년, 신혼부부, 취약계층 등을 대상으로 여러 형태의 저렴한 주택을 선보이고 있으나 대부분 임대형태여서, 집만한 재테크 수단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외면 받는 게 현실이다.

영화 <노매드랜드>는 ‘사기 위한 집’이 아닌 ‘살기 위한 집’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다.

미국 네바다주 엠파이어에 위치한 US석고가 2011년 1월 31일 경영난으로 문을 닫는다. 설립 88년만이다.

지역경제를 책임지던 기업이 문을 닫자 여기서 일하던 이들의 삶도 힘들어 진다. 사별한 채 이곳에서 일하던 펀(프란시스 맥도맨드 분)이라는 중년여성 역시 타격을 받는다.

그녀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일손이 많이 필요해진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에서 포장 아르바이트를 한다.

아마존에서 사용료를 내 주는 까닭에 오토캠핑장에 ‘선구자’라고 명명한 자신의 밴을 끌고 가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하지만 아마존 단기 알바가 끝나자, 캠핑장 사용료 대납도 종료된다. 한 푼이 아쉬운 펀은 os을 끌고 또 다시 어디론가 떠난다.

그녀는 RTR(고무바퀴 유랑자 모임)이라는 모임에 합류해 자신처럼 차 한 대만 끌고 이곳저곳 다니며 사는 ‘유목민’을 만난다.

그들은 서로 필요한 물건을 교환하기도 하고, 차량 관리 기술을 알려주기도 하면서 같이 어울린다.

그러다 어느 날, 또 각자 혹은 삼삼오오 어디론가 떠난다.

펀에게 차는 단순한 차의 의미를 넘어 집이다. 때문에 차가 고장 나서 수리비가 중고차로 팔 때 시세의 절반에 달해도 팔 수 없다.

모임에서 알게 된 데이브(데이빗 스트라탄 분)라는 노신사가 며느리의 출산을 앞두고 아들 집으로 돌아가더니, 얼마 후 펀을 집으로 초대한다.

그는 펀에게 좋은 사람 같다며 여기서 자신과 같이 살자고 제안한다.

프러포즈를 승낙한 것은 아니지만, 다들 따뜻하게 대해줘 며칠 신세를 지게 된 펀. 하지만, 그녀는 어느 시점이 되자 안락한 침대가 아닌 자신의 밴에서 잠을 청한다.

이후 그녀는 다시 예전에 자신이 살던 집으로 돌아오지만, 한 번 둘러본 후 다시 밴을 타고 어디론가 떠나며 영화는 끝난다.

영화 <노매드랜드>는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영화는 계속해서 펀의 여정을 따라간다. 그 과정에서 과연 우리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게 한다.

사실 펀에겐 집이 없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 동네에서 먹고 살 일자리가 없어져서 수 십 년을 살던 동네를 떠난 것이다.

밴을 타고 이곳저곳 떠돌며 사람들과 교류하고, 일도 하던 그녀에게 이제 밴은 집이나 마찬가지다.

밴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고, 그곳에서 일도 하고, 사람도 사귄다.

나에게 안락한 잠자리도 제공하고, 어디서든 돈도 벌 수 있게 해 주고, 사람들과 교류도 할 수 있게 해 주니 집이나 다름없다. 꼭 집이라는 것이 으리으리하거나 어딘가에 붙박이로 있을 필요는 없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미나리>에서도 딸 가족이 트레일러에 사는 모습을 본 순자(윤여정 분)는 “바퀴달린 집이 어떠냐?”며 창피해 하는 딸에게 집의 형태는 신경 쓸 것 없다고 말한다.

드라마 <펜트하우스>에 나오는 헤라펠리스에 살더라도 가족 간에도 서로 미워하고, 죽이기까지 한다면 그런 집에선 살 수가 없다.

비록 ‘바퀴달린 집’이지만 가족들이 모여서 행복하게 산다면, 세상 어느 집보다 가장 포근하고 그래서 살고 싶은 집이 된다.

제이콥(스티븐 연 분)과 모니카(한예리 분)가 도시의 화려하고 비싼 아파트에 살았더라면 더 행복했을까? 아마 그곳에 순자가 없었더라면, 그들 가족은 화목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비록 트레일러에 살더라도 자신들을 위해 한국에서부터 기꺼이 와 준 친정엄마 순자가 있었기에 그들은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순자 덕분에 꼬마 데이빗(앨런 김 분)은 나중에 장성해서 자신의 어린 시절 자전적 이야기를 그린 영화 <미나리>로 세계적인 감독 ‘정이삭’으로 발돋움 할 수 있었으리라.

‘사는 곳’이 중요하고, 집은 반드시 ‘사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영화 <노매드랜드>를 추천한다. 오는 15일 개봉.

/디컬쳐 이경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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