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여 노동자·전몰자 원혼 품은 웃비 갠 화천호, 희망의 대붕 울음"

일제 파로호 축조 희생자와 화천전투 사망자 진혼굿 21일 현지서 개최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21/05/24 [11:19]

"2만여 노동자·전몰자 원혼 품은 웃비 갠 화천호, 희망의 대붕 울음"

일제 파로호 축조 희생자와 화천전투 사망자 진혼굿 21일 현지서 개최

최방식 기자 | 입력 : 2021/05/24 [11:19]

모차르트의 레퀴엠이었습니다. 어느 주검을 위로하려고 작곡을 시작했지만 끝내지 못하고 제 죽음을 맞이한 음악인이의 운명 같은 장송곡, 라크리모사. 구슬픈 바이올린 여운 속 화천 가는 길. 여우비가 오락가락 했죠. 춘천역에서 동행자 둘을 태우고 도착한 화천댐 전망대. 맑은 하늘에 짙푸른 대붕호(파로호 또는 화천호). 눈물을 머금었습니다. 통한의 넋 구만리 울음소리 애달프게요.

 

일제강점기 식민지배를 강화하고 대륙침략의 발판을 마련할 취지로 1938년부터 6년간 축조된 화천댐. 강제 동원된 1천여명 조선인 죽음은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 댐과 함께 조성된 화천호에서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5월 26~28일 중공군 1만7천여명이 사망(수장 포함)한 건 잘 알려져 있죠. 화천전투인데, 이승만 정권이 입이 닳도록 자랑을 했기 때문. 이승만은 호수 이름까지 중공군을 물리쳤다는 의미의 ‘파로호(破虜湖)’로 바꿔버렸습니다.

 

그 땅에서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하고 평화를 염원하는 진혼굿이 21일 열렸습니다. 2013년 결성된 ‘평화의 품-화천평화상추진위원회’(아시아평화시민네트워크 주도)가 매년 5월 하순 개최하는 행사죠. 올해는 코로나19 상황이 엄중해 활동가 10여명만 ‘파로호 전망대’에 모여 추모제를 가졌습니다.

 

아시아시민네트워크 대표 이대수 목사와 서울을 탈출해 춘천역에 도착한 건 21일 오후 3시. 중국측 대표로 참여하는 장경률 연변일보 편집위원과 백운심 연길시 전 관원을 태우고 북한강을 따라 5번 국도를 달리는 데 보슬비가 오락가락합니다. 오후 비가 갠다는 기상청 예보, 이런 때는 믿고 싶죠. 도착하니 비 그친 대붕호(파로호)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대붕호 원혼들, 평화의 새로 부활하소서”

 

이틀 연속 내리다 그치고 오락가락하는 ‘웃비’ 갠 대붕호는 청초합니다. 위로하려고 달려오는 이들을 반기는 것이죠. 구만리(대붕이 한 번 날갯짓에 난다는, 동리이름) 골 짙푸른 생명을 껴안은 호수. 70~80년 지나도 아물지 않은 생채기. 그 아픔과 서러움에 흐느낌조차 없는 대붕, 말이 없습니다.

 

▲ 일제강점기 화천호(파로호) 축조 때 강제 동원됐다 희생된 조선노동자와 한국전쟁 때 전사한 중공군과 한국군 병사 2만위 넋을 위로하는 추모제가 21일 파로호 전망대에서 열렸다.

 

제수품과 전시작품이 놓이고 웅성거림이 이어지더니 제단이 차려졌습니다. 베짱이 신세 미안해 상차림을 돕던 기자 그만 제수품을 흘리고 말았네요. “떨어진 건 올리지 마”, 임락경 목사 외쳤지만, 못 알아들은 기자. 주워 올리다 망신을 당했고요. 제사를 지내봤어야 알죠. 가만히 있는 게 돕는 거란 생각이 그제야 들었습니다.

 

집례 임락경 목사가 제 시작을 알립니다. “하늘과 땅의 기가 만나 사람이 탄생하죠. 1백여년 살다 죽으면 기가 다시 하늘과 땅으로 돌아가죠. 그런데 명대로 못살고 일찍 죽으면 하늘의 기는 오르는 데 땅의 기가 못 내려와 혼이 배회하는 것이죠. 위령·진혼굿을 하는 까닭이죠.”

 

이대수 목사가 제주. 분향을 하고 모삿그릇에 술을 나눠붓더니 절을 합니다. 아헌은 중국에서 온 두 조선족 대표, 종헌은 미국인(한국계) 청년이 맡았고요. “유세차... 전쟁폭력에 희생돼 대붕호에 잠긴 영혼들을 건저 올려 여기 모십니다. 평화의 새로 부활하소서. 상향.”

 

김봉준 신화미술관(원주) 대표가 전시작품 설명에 나섭니다. 세월호 침몰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상(像), 화천댐 건설에 강제 동원된 조선 노동자상과 뼛조각, 장준하 선생 두개골상, 미얀마 평화 세손가락상, 대붕신화를 담은 붕닭상, 목 잘린 중공군 두상, 평화의 품 어머니상과 걸개그림. “2만여 주검을 두고 큰 전과라며 뻐기는 당국의 위령행사는 야만”이라며 “원혼을 달래고 전쟁 참혹함을 알리며 평화를 전파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장벽은 무너기고 강물은 흘러” 구슬픈 축가

 

김 대표는 이어 평화의 품 어머니상을 번쩍 들어 가슴에 앉고 힘주어 말합니다. “엄마 품에 안긴 두 아이가 젖을 하나씩 물고 허기를 달래려고 젖다툼을 벌이다 배가 불러 잠든 형상이죠. 형제와 이웃이 총부리를 겨눈 참혹한 전쟁의 폭력성을 고발하고 사랑을 회복하고 평화시대를 열자는 취지. 상(像)을 화천댐에서 시작해 전국 여러 곳에 설치할 생각입니다. 대붕이 알을 낳고 부화해 평화의 새로 힘차게 날아오르게요.”

 

▲ 추모제에 전시된 김봉준 작가의 작품들. 목 잘린 중공군, 세월호 피해자 엄마, 미얀마 민주화 다짐 세손가락 등을 형상화한 조형물이 설치됐다.  © 최방식



집례자가 음복을 권합니다. 목을 축이려고 한 모금 들이키니 향기가 입속 가득 퍼지네요. 임 목사가 손수 빚은 이양주랍니다. 집례자는 몽달귀신(결혼 못해 제상을 못 받는)이나 주변 짐승과 제수음식을 나눠는 고수레도 잊지 않습니다. 지켜보던 누군가 “사람 짐승이 먹어도 되냐”는 이바구엔 “니 맘대로”.

 

뒤 이은 축가가 구슬프네요. “장벽은 무너지고 강물은 풀려/ 어둡고 괴로웠든 세월도 흘러/ 끝없는 대지 위에 꽃이 피었네/ 아~ 꿈에도 잊지못할 그립던 내 사랑아/ 한 많고 설움 많은 과거를 묻지 마세요.” 나애심 노랜데 장사익이 불러 감동을 줬던 노래. ‘또랑광대’ 정대호 풍류마을협동조합 상임이사의 가락이 애닲습니다.

 

추모제를 마친 일행은 대중음식점으로 이동했습니다. 허기진 배를 채우려고요. 화천어죽탕, 유명한 집이라네요. 강아지 먼저 달려와 반기는 곳. 설치미술품과 조각 가득한 술맛 날성 싶은 집. 잔부터 집어 드는데, 운전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21년 경력의 턱수염을 기른지 1주일밖에 안됐다는 이종만 사장. “반갑다”며 “술값은 안 받는다”고 했는데, 이게 무슨 변고람. 반주 없는 명품요리라니.

 

술시가 다 돼 임 목사 댁에 도착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말썽을 부려 헛걸음을 꽤 한 뒤죠. 목적지로 좌회전(삼거리 길 생기며)해야 하는데 차선을 그리 표기하지 않아(디지털 교통정보상 중앙선을 넘지 못하도록 돼 있어) 2km 더 갔다 돌아오도록 한 것이었죠. 다른 두 차량도 같이 헤맸다니 안도(?)의 한숨.

 

“한국인 힘 어디서 나오는 줄 알아? 굿이야”

 

‘시골교회’ 강연실에 모여 앉으니 임 목사 ‘할배개그’가 시작됩니다.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가 우스갯소린지 가늠하기 어려운 경지. “며칠전 코로나19 백신 주사를 맞았어. 간호사가 당분간 일하지 말라는 거야. 0.5는 해도 되냐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이며 웃더라고.”

 

▲ 추모제를 마친 일행이 화천댐과 화천호(파로호)를 배경으로 모여섰다.  © 최방식

 

터져 나오는 ‘구라’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찰나 장구잽이 한 분이 등장합니다. 임 목사 딸 달래씨. 설장고 전문. ‘굿 전문가 올 테니 솜씨 좀 자랑해보라’는 아버지 주문에 준비하고 기다렸다네요. 전라 우도 판굿에서 시작됐다는데 설장고. 익산 기능보유자를 스승삼아 대학조차 포기하고 따라다니며 배웠다고 합니다.

 

덩더궁이 굿거리장단(사실 아는 게 이 뿐임) 등 흥겨운 가락이 이어졌습니다. “안정적이다”, “멋지다”는 칭찬과 박수가 거듭됐고요. 또랑광대 정대호 선생이 쇠를 가져오고 시골교회 목사 사모께서 장고채를 들면서 3명의 공연이 시작됐습니다. 즉석에서 성주굿(지신밟기)판이 벌어진 겁니다. 씻김굿이나 해원굿도 이 굿으로 시작한다니 분위기 딱인 거죠.

 

“북한강물 땡기고 남한강물 땡기고...”로 시작된 우물굿. “장꽝 밑에 쥐 들어간다 거기 있거라”의 ‘철륭굿(장독굿). “아궁이야 뜨끈 뜨끈, 각시야 각시야~” 정지굿(조앙굿). “에라 만수, 에라 대신이야, 절세가인이~” 성주풀이까지. 쇠와 장고소리에 뛰는 가슴. 불콰하던 취기가 싹 날아가는 순간입니다.

 

춘천에서 연극을 한다는 김민성씨. 벌떡 일어서더니 신명나게 춤을 춥니다. “원혼을 기리는 추모제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산자들이 모여 죽은자를 위로하고 평화정신으로 이어가는 게 아름답다고 느꼈어요. 굿판에 감동해 저도 모르게 춤을 췄네요.” 함께 온 친구 김빛나씨도 거듭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굿판에 데려가려고 했는데 일부러 안 갔어요. 후회하고 있죠. 이렇게 가슴이 뛰는데, 이제는 놓치지 않으려고요.” 한국계 미국인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아티스트로 활동중이라네요.

 

‘생태호수마을’ 동촌리, 평화의품과 동행 약속

 

시골교회 목사 사모 김보순씨. ‘주모’ 외치면 술을 그침 없이 내옵니다. 제주로 빚은 이양주와 인삼을 발효한 흑삼주. 정대호 선생도 도토리주 한 병을 슬그머니 꺼냅니다. “이건 술 깨는 술이에요.” 주변에서 일제히 한마디. “에이, 술인데. 그런 게 어딨어요.” 그러면서도 앞다퉈 빈 술잔을 내밉니다.

 

▲ 추모제 뒤풀이 때 성주굿을 하는 일행.     ©최방식

 

취기가 올랐나요. 도토리술에 깼을까요. 야심한 때 사업 논의가 시작됐습니다. 더 이상한 건 시비가 없다는 거죠. 기자만 볼멘소리. “아니, 술 먹다 말고 이 무슨 일이래요.” 취중(기자만)이지만 잘 마무리됐고요. ‘평화의 품’ 상(像) 세우기 운동을 대붕호(동촌마을)에서 시작에 전국으로 확산해가기로 결의했답니다.

 

끈긴 술 이으려는 데 김봉준 대표 ‘신화 구라’가 다시 시작됩니다. “농악이라면 시골 노인들 못 알아들어요. ‘뭐 농약’이라 되물어. 일제강점기 때 나온 말이거든. 사물놀이도 놀이패들이 70년대말 쓰기 시작한 말이고요. 풍장굿, 별신굿에 심지어 난리굿, 의병굿이라 했어. 제도 굿이고, 공동체를 지키는 싸움도 굿이라 한 거죠. 구한말 일본인들이 ‘한국인 힘이 어디서 나오는 지’ 조사한 게 있어. 굿이었어요. 그래서 굿을 말살한 거죠.”

 

아침은 아욱죽. 해장국으로 엄지 척. ‘최 기사’ 노릇 아니었으면 해장 술 한잔 하고픈 마음 굴뚝같았습니다. 취중 논의결과에 따라 ‘평화의 품’ 활동에 호의적인 동촌마을 박세영 이장을 찾아가기로 합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일정. 당도해보니 신화 속 마을이네요.

 

박세영 이장은 97년 이 마을로 귀향했답니다. 쉰셋까지 다니던 도회지 직장을 그만두고요. 육로가 없어 배 타고 대붕호를 건너던 시절. 2백명이 넘던 학생이 줄어 초등학교 문을 닫을 정도로 마을이 쇠락했답니다. 2001년부터 박 이장의 활약이 빛을 발했다죠.

 

주민들 십시일반으로 폐교를 매입해 관광시설로 바꾸고, 군의 지원을 받아 육로도 개통했답니다. 1700만원을 모아 시작한 마을사업이 25억여원의 자산가치로 컸고요. 가구당 소득도 5천만원 이상. 환경을 지키려고 “제초제 안 쓰면 개인 돈으로라도 예초기 사주겠다”고 설득했다죠. 자연생태 우수마을, 유네스코 강원생태평화 화천군 생태권보전지역으로 선정돼 정부와 지자체 지원을 받고 있다네요.

 

‘달팽이뿔전쟁’ 어리석음 일깨우는 莊子의 외침

 

이장을 따라 ‘평화의 품’ 엄마상 설치 장소를 확인했습니다. 운치 있고 전망 좋은 산속호수마을 전망대 자리. 알고 보니 ‘평화의 품’이 몇 년 전 작품을 하나 설치했던 곳이었습니다. 오는 10월쯤 동촌리를 다시 방문해 사업논의를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 화천호(파로호) 주변 생태 및 평화 마을 가꾸기에 열성인 동촌리 박세영 이장.  © 최방식



시조시인 이태극 문학관도 들렀습니다. 호수와 산으로 둘러싸인 명당자리. 호수가 생기며 물에 잠긴 시인의 생가 터 가까운 곳. △군장병 치유캠프 △화천 문화사랑방 △월하문학 캠프 △걸으며 소통하기 사업을 벌이고 있답니다. 길나현 관장은 “여자학교 교수를 오래해 여복이 많은 분이라고들 하는데, 만약 남자학교 스승을 했다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해 시조시 장르도 더 번창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시인은 시조시인협회를 설립하고 ‘시조문학’을 창간한 분. ‘내 산하에 서다’ 등의 작품을 발표했죠.

 

10월 모임을 약속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대작’(2)을 떠올렸습니다. 전쟁의 아픔을 노래한 시죠. “달팽이 뿔 위에서 무얼 그리 다투나/ 부싯돌 불꽃처럼 짦은 인생/ 부를 좇든 가난하든 기쁘고 즐겁게 살아야지/ 그런데도 허허 웃을 줄 모른다면 그대는 바보.”

 

장자(莊子) 이야기를 시로 읊은 것입니다. 제(齊)와 전쟁을 준비하던 위(魏)나리 혜왕. 그 앞에 현자 한명이 나타났죠. 달팽이 왼쪽 뿔엔 촉(觸), 오른쪽 뿔엔 만(蠻)나라가 있는데 영토다툼으로 서로 수만명을 죽인 전쟁을 벌인 예를 들며, '우주 사방 끝이 없는 무한세상을 노닐던 이가 이런 전쟁을 보면 어리석하고 하지 않겠냐'고 묻고, ‘그렇다’는 혜왕의 답을 얻은 일화죠.

 

몇 해 전 추모제 때는 하얀 나비가 수십마리 날아오르기도 했다네요. 내가 나비인지 나비가 나인지 모르지만 아무렴 어쩠냐는 무위자연 사상, ‘호접몽’을 설파했던 장자. 그의 ‘어리석은 전쟁’ 교훈이 간절하게 다가옵니다. 엄마의 아늑하고 평화로운 품. 거기 안겨 포근히 잠든 두 아이의 고요한 숨소리. 대붕의 꿈을 실현하는 희망의 새소리로 들려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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