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연재] 홍매지숙명-하망연(何茫然)(42-2) "쥐구멍에 연기를 피워"제42장 하망연(何茫然)(3)-2<지난 글에 이어서> 적연을 이별하고 돌아온 가라고루성의 거리는 떠나기 전과 다를 것이 없었다. 오늘도 여전히 성 내의 곳곳을 순찰하는 군사들이 열을 지어 이동하고 있었고, 시전과 난전의 상인들은 저마다 좌판에 물건을 펼치고 손님을 끄느라 여념이 없었다.
서란은 머리부터 뒤집어쓰고 있던 검은 피풍의를 젖히고 가라고루성의 풍경을 눈으로 한 번 둘러보고 공기를 코로 들이마셨다. 카이성과도 제선성과도 다른 가라고루성 특유의 냄새에 서란은 하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정옥을 설득하러 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랜만이네.”
가라고루성의 거리를 걷는 서란 일행에게 효가 다가와 아는 채를 했다. 서란은 효의 손을 잡아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고 여러 번 세차게 흔들었다.
“유흔은?”
“벌써 도착했지. 따라와. 유흔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안내해줄게.”
서란 일행이 효의 뒤를 따라 도착한 곳은 뒷골목에 있는 허름한 객잔이었다. 반반객잔이라는 현판이 떨어질 듯 위태롭게 붙어 있는 객잔의 주위로는 나무로 만든 격자창살이 처진 방들이 늘어서 있었다.
“아직 낮이라 그런가.”
서란은 격자창살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한씨가의 3대 가주인 단영 대까지만 해도 한씨가는 영지 내에서 이루어지는 성매매를 철저히 단속했고, 성매매를 알선하는 자나 성(性)을 판매하는 자, 그리고 성을 사는 자를 모두 엄히 처벌했다. 그러나 성이 무엇이던가. 인간 본연의 욕망이며 인간의 본질 그 자체가 아니던가. 그렇다 보니 성매매는 점점 음지로 숨어들 수밖에 없었고, 상황이 그러하다 보니 더 이상은 한씨가가 영지 내의 성매매에 관여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고 말았다. 결국, 성매매에 대한 단속은 점차 완화되다가 끝내는 양소막부에서 목협막부로 교체되던 한씨가의 련 – 단야 – 정화 교체기에 완전히 폐지되고 말았다. 그러나 성매매를 불법으로, 그리고 여성의 존엄에 대한 심각한 모독으로 받아들이는 한씨가의 기조는 변하지 않았고, 그렇기에 한씨가의 모든 아이들은 성매매를 혐오하도록 교육을 받고 자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한씨가의 후계인 서란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도 그랬잖아. 그러면 나는 적연이라는 한 인간의 존엄을 모독한 건가.’
그러나 서란은 곧 고개를 털어내며 생각을 바꿨다. 어찌 되었든 적연은 자신과 함께 있으면서 정말 행복해하지 않았는가. 만약 누군가가 적연처럼 성을 사고팔며 행복을 느낀다면 그래도 성매매가 여성의 존엄에 대한, 인간의 존엄에 대한 심각한 모독일까. 서란은 문득, 격자창 안에 앉아 있는 창기들을 바라보았다. 창기들은 남자와 여자가 섞여 외모와 인기의 순서로 앞줄부터 도열해 있었다.
‘그래, 성매매가 여성의 존엄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라면 남성 창기들은 대체 무엇이겠어. 성매매를 존엄의 문제로 보자면 여창뿐만 아니라 남창에 대해서도 같이 이야기해야겠지.’
서란은 격자창에서 눈을 돌려 객잔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 객잔 안에는 유흔이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유흔!”
서란은 유흔의 품에 안겨 얼굴을 묻었다. 유흔은 그런 서란을 안아주며 어깨며 등을 토닥여주었고, 서란은 점점 유흔의 품에 깊이 얼굴을 파묻으며 어리광을 부렸다.
“우에엥. 유흔. 우에엥.”
“그래, 그래. 우리 화야, 정말 고생했어.”
“아참, 선물은?”
서란이 유흔의 품에서 빠져나와 손을 내밀었다. 유흔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환하게 웃으며 나무로 만든 함 하나를 건네주었다. 함 안에는 유구에서 나는 최상급 조후로 만든 붉은색 포와 구하의 명에서 나는 최상급 조하금으로 만든 진한 청색 포, 그리고 진주와 백금으로 만든 뒤꽂이가 들어 있었다.
“우와!”
서란은 함을 내려놓고 유흔의 목을 끌어안았다. 유흔이 그렇게 좋으냐며 서란의 등을 마주 끌어안았고, 서란은 자신도 보여줄 것이 있다며 뒷짐을 지고 헛기침을 했다.
“뭔데? 대체 뭐기에 우리 화야가 이렇게 뜸을 들일까?”
“흐음.”
서란은 김씨가와 신씨가에서 받은 각 가문의 사절의 임명장과 인수를 꺼내 보여주었다. 임명장에 찍힌 서인과 다희의 직인을 확인한 유흔이 서란의 허리를 끌어안고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었다.
“잘했어! 역시 우리 화야야!”
“헤헤.”
두 사람은 곧 자리에 마주 앉아 그동안 서로에게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유흔은 유구에서 만난 각국 상인들의 이야기를 해주었고, 서란은 서인이 자신을 시험했던 이야기며 백연을 만나고 다희가 자신을 위해 다회를 열어준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나 적연과의 일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좋은 친구를 하나 만났는데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며 적연이 선물한 비녀를 보여주었다.
“그 친구 혹시 남자야?”
“응.”
“그래…….”
유흔은 더 이상 서란이 만났다는 친구에 대해 묻지 않았고, 서란도 더 이상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 두 사람은 요리와 술을 시켜 먹고 마시며 앞으로 정옥을 설득할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동북지방을 점령하면 얻어지는 이익은 무척 매력적이지. 가주님이 아니라 훌란님이라 해도 포기하기 어려울 걸?”
“그건 그래. 그런데 가주님은 자여를 위해서는 동북을 포기할 수도 있어. 그리고 이번 기회에 너와 나를 적과 내통한 혐의로 잡아넣을 수도 있겠지.”
“흠…….”
“그러니 우리는 가내회의를 충분히 이용해야해. 가내회의에서 방계들이 모두 한 목소리로 김씨가와 신씨가와의 동맹과, 동북지방과의 전쟁을 주장한다면 가주님도 물리치기 어려울 거야.”
“그런데 방계들이 나서겠어? 그 쥐새끼 같은 인간들이?”
서란은 미심쩍다는 표정을 하고 고기를 젓가락으로 집어 입에 넣었다. 고기가 꽤 상등품인지 씹으면 씹을수록 육즙이 줄줄 흐르는 것이 마치 입 안에서 살살 녹는 것 같았다.
“화야, 세상에는 이런 말이 있어.”
“무슨 말?”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그런데?”
서란은 고기 한 점을 더 집어 입에 넣었다. 어디서 이런 고기를 가져오는지 주인장에게 한 번 물어봐야 하나 생각하며 서란은 유흔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 말을 우리의 경우에 비추어보자면 이렇게 비유할 수 있어.”
“어떻게?”
“쥐새끼들을 움직이려면 먹잇감을 줘서 쥐구멍에서 끌어내야 한다고. 아니면 쥐구멍에 연기를 피워 두려움을 줘서 끌어내거나.”
유흔의 말에 서란은 젓가락질을 멈추고 유흔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미 유흔은 서란 자신이 어떤 방법을 선택할지 알고 있을 것이었다. 서란은 젓가락으로 고기를 몇 번 찔렀다. 부상국의 식사예절에 크게 어긋나는 일이었지만 서란은 개의치 않고 고기를 찌르고 또 찌르며 말했다.
“그러면 두 번째로 하자. 나는 연기를 피워 두려움을 줘서 쥐새끼들을 끌어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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