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여유로운 하루가 시작되었다. 보통 오전 7~8시부터 하루를 시작해 오후 4~5시면 일을 정리하곤 하는데, 업무시간이 딱 정해졌다기보다는 그날그날 할 일에 따라 더 일찍 시작할 때도 있고, 늦게까지 일할 때도 있다.
식사시간도 정해진 것은 없고, 배고프면 그때가 밥 때이다. 하루 일감은 보통 1~2가지인데, 서두름 없이 중간 중간 쉬어가며, 웃어가며, 하루 시간을 그렇게 조절한다. 수면 아래서 열심히 발을 저으나 수면 위로는 유유자적한 백조처럼... 그들이 속으로는 얼마나 공사다망한 지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말이 안 통해 그저 바라만 보는 내게는, 그저 놀라울 만큼 평화롭고 여유롭게 보일 뿐이다. 누군가는 이런 모습을 ‘게으르다’고 표현할 진 몰라도... 헐~ “유유자적 백조처럼 그렇게...” 덩과 누이는 어제부터 대문 앞마당에 있는 나무들을 뽑아 한쪽으로 치우더니, 오늘은 아침 일찍부터 마당 안쪽에 있던 산파폼(힌두교 영향에 따른 집 지켜주는 신)사당을 옮기기 위한 터다지기를 하고 있다. 사당이 있던 자리에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만들 예정이라고. 외진 골목 끝에 있는 이곳까지 누가 물건을 사러올까 싶지만, 말이 안 통해 왜 구멍가게를 마당에다 만드는 지 알 수가 없다. 그저 지켜보다 보면, 언젠가 그 이유를 알 수 있겠지... 헐~
주민조직에서도, 다른 단체에서도 일을 도와주러 와서 점심때쯤 일이 마무리가 되었다. 더위에 인상이 굳어질 만한데도, 작업 내내 사람들 속에 웃음과 여유가 있다. 오후나절을 편히 쉰 덩과 누이는 저녁때 담당 지역 노숙자센터에 갔다. “사바이, 사눅, 사두억.”(편안하게, 즐겁게, 쉽게.)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일을 편안한 분위기로 즐기며 하자라는 태국 사람들의 생활 가치인데, 요즘 도시생활에서는 많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한국 등 동북아시아 지역의 문화에 비하면, 태국은(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포함) 아직도 생활 곳곳에서 이런 모습들이 남아 있는 것 같다. 짜증나거나 힘든 경우에도 항상 미소 짓는 친구들에게 물으니, 미소를 지으면 그걸 보는 상대편도 웃으며 편하게 일할 수 있지 않느냐며 답한다. 편하지도, 즐겁지도 않으면 누가 일하겠느냐며 오히려 나에게 묻는다. 남들 앞에서 좀처럼 언성을 높여 화내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태국 사람들이 이제야 조금 이해될 것 같다. “편안하고 즐겁게 웃으며...” 태국에서 25년을 살았던 미국의 한 인류학자가 태국사람들의 미소가 가진 의미를 12가지(행복, 친절, 존경, 건성, 악의, 놀림, 포기, 슬픔, 미안, 반대, 승리, 억지. 출처 박동빈의 태국문화칼럼, www.bangkokm.com)로 정리했을 정도로 ‘미소’는 그들에게 모든 감정표현의 수단인 것이다. 물론, 이런 문화가 때로는 오히려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겠지만, 불교의 윤회사상 영향으로 거리의 개들까지도 거두어 먹이는(유기견이 약 10만 마리에 달해 거리에 넘쳐나도 죽이는 경우는 없단다) 태국 사람들의 보시 문화를 보면, 그렇게 큰 스트레스가 될 것 같진 않다. 어쨌든, 굳은 표정보다야 ‘미소’가 사회생활 하는데 훨씬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니. 헐~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주말 동안 2세대 주민조직 리더를 양성하기 위한 전국빈민연대(Four Regions Slum Network)의 워크숍이 있었다. 7개 하부 네트워크에서 20여 명의 참가자가 참여한 이번 워크숍은 우리가 사는 사회구조에 대한 이해, 전국빈민연대의 조직화 과정과 활동, 남미의 빈곤문제와 사회운동을 통해 본 세계적인 빈민운동 흐름 이해, 주민조직화 방법 및 실제, 개인별 조직화운동 과제 세우기 등으로 구성되었다.
일방적인 강의는 거의 없고, 질의응답 형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흥미로웠다. 프로그램 중간 중간 진행되는 다양한 친목게임 또한 사람들의 긴장되고 어색한 분위기를 이완시켜 참가자들이 지루함을 없애주었다. 아마도 사바이, 사눅, 사두억의 원리가 적용된 듯. 헐~ 언제나 능력 이상의 것을 요구받아 끊임없이 자신을 쥐어짜는데(잘 알든 모르든) 여념이 없는데다 행여나 능력 없다는 소리를 들을까 노심초사 전전긍긍하는 한국사회가 떠오른다. 일면 자기개발성이 높고 부지런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것이 요즘에는 긍정적이라기보다 부정적인 측면이 더 크게 느껴진다. “노심초사 쥐어짜는 우린 불행” 한국사회가 ‘미소’, ‘웃음’에 인색하고 (정신적인) 여유가 없다는, 한국에서 오랫동안 머물렀던 내 외국인 친구들과 외국 여행자들의 이야기(출처 론리플래닛, www.lonlyplanet.com)가 생각난다. 내 주변 사람들 중에 일을 편안하게 즐기며 하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언젠가 친구들과 사회생활의 고달픔에 대해 수다를 떨다가 한 친구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인생이 놀이동산도 아니고, 어떻게 항상 편안하고, 즐거울 수 있겠어. 포기할 건 포기해야지. 쩝.’이라고 말해 모두들 침울해 한 적이 있다. 헐~ 인생이 놀이동산처럼 항상 웃을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때론 자신을 들볶고 치열해야겠지만, 무엇을 위해 내가 치열해야 하는 지,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가 정작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을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동남아여행 190일 째, 나는 그들에게서 치열하면서 편안하고 즐겁고 유쾌하게 사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저작권자 ⓒ 인터넷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대초원에서 유라시아 환경보고서를 띄우던 경효.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캄보디아로 1년여 장도의 동남아시아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기행문을 써온 제가 이번엔 영국 쉐필드에 왔습니다. 쉐필드대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려고요. 이젠 유학일기로 관심을 좀 끌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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