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칼럼] '사랑, 우유, 그리고 치즈', 우유를 훔쳐야만 시작되는 것들

김진곤 영화감독 글

칼럼니스트 김진곤 | 기사입력 2026/04/03 [09:37]

[영화 칼럼] '사랑, 우유, 그리고 치즈', 우유를 훔쳐야만 시작되는 것들

김진곤 영화감독 글

칼럼니스트 김진곤 | 입력 : 2026/04/03 [09:37]

 

치즈를 만들어본 적이 있는가? 나는 없다. 아마 대부분 그럴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나는 토톤(클레망 파보 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를 처음 만들던 때가 생각이 났다. 처음 촬영을 하던 그때 얼마나 무모하고 얼마나 엉뚱했는지를. 

 

마치 토톤이 남의 젖소에서 우유를 훔치듯이. 레시피도, 자격증도 없었고, 솔직히 말하면 제대로 된 준비라는 것도 없었다. 그냥 시작했다.

 

Holy Cow!

 

영화의 영어 제목이다. 영어권에서 놀라움이나 당혹감을 표현할 때 쓰는 감탄사이기도 하다. 치즈를 만드는 소년의 이야기에, 영화를 처음 만드는 감독의 무모한 용기를 겹쳐 넣었다.

 

토톤이 살고 있는 프랑스 쥐라(Jura)는 알프스산맥 서쪽 기슭에 자리한 산골로, 이곳을 아는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싶다. 난 솔직히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몰랐다. 

 

우리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쥐라기(Jurassic)라는 단어가 이 지역 이름에서 왔다는 것도,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콩테 치즈가 프랑스인들에게 얼마나 자랑스러운 것인지도 처음 알게 됐다. 

 

그저 치즈는 마트 냉장 코너에 비닐 포장된 채 있는 것이었고, 칸 영화제 올라가는 영화는 특별한 이들이 만드는 것으로 알았었다. 영화는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흔들어 깨운다.

 

프랑스 쥐라의 작은 시골에 살던 토톤은 아버지를 잃는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였다. 이제 혼자 일곱 살 여동생을 돌봐야 한다. 목욕시키고, 밥을 먹여야 한다. 아르바이트라도 하러 나가야 하다면 혼자 둘 수 없는 동생을 깨워 데리고 나가야 한다. 

 

버틸 두 다리에 근육이 있기도 전에 짊어지게 된 삶. 토톤은 이제 열여덟 살이다. 며칠 전만 해도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싸우고 웃던, 아직은 실수해도 되는 나이였는데, 이제는 삶의 무게가 오롯이 그의 몫이 되었다. 

 

그런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다. 콩테 치즈 경연대회. 상금. 그것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치즈를 만들어본 적도 없는 소년은 전략이 필요했다. 치즈를 만들 친구들을 모은다. 

 

 

농가집 딸의 마음을 얻어 그녀 몰래 우유를 훔쳐낸다. 그리고 치즈를 빚기 시작한다. 그러나 실패한다. 다시 우유가 필요해진다. 그리고 또 실패한다. 

 

팔을 데고, 마음이 수차례 꺾여도 그는 멈추지 않는다. 그의 무모하고 엉뚱한 반복을 지켜보다 보면, 어느 순간 이 영화가 ‘치즈 만드는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다. 처음 무언가를 만들어보던 그때의 서툰 시간과 닮아있다.

 

마침내 치즈는 완성된다. 그러나 그는 대회에 참가하지 못한다. 원산지인증서가 없었기 때문이다. 

 

경연장에 접수하러 갔다가 알게 된 원산지인증서, 몇 년에 걸친 심사를 통과해야만 얻을 수 있다는 인증서라고 한다. 

 

그러니 대회 참가서조차 내지 못한다. 그 장면에서 헛웃음이 났다. 세상은 언제나 그렇다. 열심히 한 사람이 서류와 제도 앞에서 막힌다.

 

영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발길을 돌려 여동생과 함께 한 친구를 보러 간다. 함께 치즈를 만들다가 다투고 떠났던 친구였다. 그 친구는 모터스포츠 경기에 나섰다. 엔진 소리가 울리고 차들이 부딪히고 뒤집혔다가 일어나는 묘기를 부린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환호하며, 토톤은 관객석에서 친구의 경기 모습을 바라본다. 친구는 그날 우승을 했다. 

 

영화 <사랑, 우유, 그리고 치즈>는 프랑스 감독 루이즈 크루보아제의 첫 장편영화다. 그녀가 자란 곳이 바로 쥐라다. 영화의 배우들은 전원 비전문 배우로, 모터크로스 경기장과 농업 박람회에서 캐스팅됐다. 

 

주인공 클레망 파보는 실제 양계 농장에서 일하던 열여덟 살 청년이었다. 감독은 배우들의 말투와 몸짓에서 영감을 얻어 리허설 도중 장면을 다시 수정해가며 썼다고 한다. 

 

아무것도 갖추지 않은 채, 자신이 살던 땅과 그 땅에서 자란 사람들로 영화를 빚어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처음부터 토톤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감독 자신의 이야기인 셈이다. 

 

치즈를 만드는 소년과 영화를 만드는 감독. 둘 다 자격증이 없고, 레시피도 없고, 자본도 변변치 않았다. 있는 것이라고는 어쩔 수 없는 이유와 무모한 의지뿐이었다.

 

루이즈 크루보아제 감독은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서 유스상(젊은 관객이 선정한 작품상)을 받았다. 

 

비전문 배우들과, 자기 고향 땅에서, 자기 방식대로 만든 영화로 해냈다. 영화 안에서 토톤은 경연에 참가하지 못했지만, 감독은 칸에서 수상했다. 이 역설이 이 영화의 진짜 결말이 아닐까 싶다. 

 

영화 안의 패배와 영화 밖의 수상이 나란히 놓이는 순간, 비로소 감독이 하고 싶었던 말이 들린다. 자격이 없어도, 접수가 거부되어도 치즈는 완성된다. 그리고 그 과정 자체가, 이미 무언가다.

 

지금 무언가를 처음 시작하려 한다면, 혹은 시작했다가 제도나 서류 앞에서 막혀 멈춰 서 있다면, 이 영화가 당신에게 말을 걸 것이다. 레시피가 없어도 빚은 것들이 결국 어디에 닿는지를 말이다. 

 

자격 없이 시작된 치즈가, 칸의 스크린을 채웠다. 극장을 나오면서 당신은 아마 오래된 무언가를 떠올릴 것이다. 접수조차 못 한 채 서랍 안에 넣어둔, 당신만의 치즈. 그게 뭔지 아직 무엇인지 몰라도 좋다. 

 

알고 싶다면, 예전의 그 느낌을 느껴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찾아보시라.

 

/디컬쳐 칼럼니스트 김진곤(영화감독)


원본 기사 보기:디컬쳐(D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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