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타는 만달레이, 숲훼손이 부른 사막화

[버마여행⑤] 9시간을 달려 도착한 북서부 고지대 멕웨구 옌난지엉

최방식 | 기사입력 2013/05/07 [01:39]

목타는 만달레이, 숲훼손이 부른 사막화

[버마여행⑤] 9시간을 달려 도착한 북서부 고지대 멕웨구 옌난지엉

최방식 | 입력 : 2013/05/07 [01:39]
버마의 남쪽 저지대 에야와디 삼각주 탐방을 마친 여행자들. 중북부 고지대 사막화 현장으로 향합니다. 불교의 도시 만달레이는 애초 사원이 들어선 언덕의 이름. 그 언덕은 강우량이 적어 오래전부터 사막화지역으로 알려진 곳. 만달레이에서 200여킬로미터 남서쪽에 자리한 옌난지엉. 여행자들이 찾아 나선 사막화 조사지역입니다.

출발을 앞두고 말썽이 생겼습니다. 에야와디에서 밤늦게 양곤으로 오는데, 여행사로부터 승합차 대여료를 올려야겠다는 이야기가 전해진 것. “기름 값이 더 든다”는 게 이유. 유류대를 더 내겠다고 약속했는데, 그게 아닙니다. 대여료를 두 배 가까이 올려달라는 것이죠.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는데, 말썽입니다. 호텔 측에 사정을 얘기하고 차를 빌려보려 했지만, 여의치 않습니다. 시중가 보단 싸게 빌려주겠지만... 말을 흐릴 뿐.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는데, 큰일입니다. 여행사도 호텔측도 가격을 올리려고 신경전이니. 한데, 마웅 마웅 소가 반가운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이틀간 여행자를 실어 나른 마웅 또가 ‘운전자 몫’을 포기하고 가잔답니다. 10시나 돼 출발했습니다.

▲ 탁발하는 소녀. 원시불교 전통을 가진 버마. 밑바닥의 삶, 걸식으로 탐욕을 버리고 깨달음을 구하는 석가모니의 ‘하심’(下心)을 실천하는 수행입니다.     © 최방식


규격을 갖춘 유일한 고속도로. 양곤에서 네피도(행정수도)를 거쳐 만달레이까지 이어지는 길. 콘크리트로 포장해 승차감은 그리 좋지 않습니다. 운전자에게 물으니 8시간을 달려야 한다네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고속도로 이용자는 별로 없습니다.

만달레이, 옆에두고 못가는 신세

만달레이는 인연이 없는 모양. 2007년 ‘샤프란혁명’ 때 떠오른 저항의 도시. 가사를 걸친 스님들이 바리때 하나씩 손에 들고 민주주의를 위해 떨쳐 일어선 곳. 스님의 60% 이상이 이곳에 거주한다니 가보고 싶었는데. 목적지는 서쪽으로 150km나 떨어진 곳이니. 포기해야죠.

3시간여 달렸을까요. 역시 유일한 고속도로 휴게소. 꽤 붐빕니다. 음식 맛이 좋다는 식당. 이웃은 한가한데, 이집만 북적이네요. 인건비가 싸 그런지 직원이 많습니다. 말 좀 보태자면 직원 반, 고객 반. 차에 앉아만 있는데도, 배가 고픈 모양. 맛이 좋았던지. 접시를 깨끗이 비웁니다.

네피도까지 도로주변 산들을 보니 조림사업이 한창. 우리도 군부정권 시절 ‘산림 자원화’를 기치로 ‘국민 식수’를 했듯이요. 전래 숲은 모두 파괴 중입니다. 불태워서. 버마 군부는 기존 숲 생태계가 효용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인가요?
 
▲ 버마 중부 지역 산이 대부분 불타고 있습니다. 생계난에 큰 나무들은 ‘숯 만들기’로 사라지고, 관목과 대나무뿐인 산들. 산림청이 태워버리고 다른 나무를 심는 중.     © 최방식


열대 우림까지는 아니어도 꽤 숲이 우거졌던 곳. 오랜 생계난에 주민들이 나무를 베어 숯을 만들어 팔다보니 굵은 나무는 대부분 잘려나갔다고. 대나무 군락과 관목들만 남은 거죠. 숲 가치가 떨어졌다고 판단한 듯, 대나무 굵은 것만 베 내고 다 태워버립니다.

양곤에서 5시간여. 행정수도 네피도를 지나더니 차가 고속도로를 빠져나옵니다. 계속 가면 만달레이까지 이어지죠. 목적지는 네피도 북서로 150여 킬로미터 거리의 작은 도시. 끝없이 거친 산길입니다. 마주치는 차는 어쩌다 한 대. 갓길 우마차가 더 자주 눈에 띕니다.

네피도는 ‘왕국의 도읍’이란 뜻의 행정도시. 탄쉐 정권이 2006년 느닷없이 옮겨온 수도입니다. 애초 마을 이름은 핀나마. 2차대전 때 ‘버마 독립군’의 근거지였다죠. 항일 투쟁을 승리한 곳. 그래서 군인들은 그 땅을 좋아했을까요. 1885년 영국이 식민지 수도를 양곤으로 이전한 뒤 120여년만이죠.

‘군부정권의 수도’ 네피도를 지나

수도이전 이유는 지금까지도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군부독재 맘이죠. 전언에 따르면, 미군의 공격을 피할 의도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네피도를 요새처럼 만들었고. 다른 추정은 독재자 탄쉐가 점을 좋아했는데, 점괘 때문이라고. 양곤에 있으면 권력을 잃을 수 있다는 소리에. ‘국토 중앙’을 찾아갔다는 설도 있고요.

▲ 도로포장이 한창입니다. 1백여명의 여성이 자갈을 바구니에 이어 날라 길 위에 쏟지요. 뒤로 건장한 남자들이 깡통을 굴리고 다니며 아스콘을 깔고요. 손으로 하는 데도 노면이 괜찮습니다.     © 최방식


가는 곳마다 도로포장이 한창입니다. 다 사람이 합니다. 기계는 지반을 다지는 롤러가 유일. 1백여명의 여성이 자갈을 바구니에 이어 날라 길 위에 쏟지요. 롤러가 다집니다. 뒤로 건장한 남자들이 깡통을 굴리고 다니며 아스콘을 깔고요. 손으로 하는 데도 노면이 괜찮습니다.

버마를 여행하다보면 두 종류의 사람을 자주 마주칩니다. 한 부류는 10분여 마다 나타나는 바리케이트 지킴이들. 도로 통행료를 받는 이들이죠. 포장하느라 돈이 들어 그런가요? 네피도에서 옌난지엉까지 4시간여 달리는 데 스무 번도 넘게 그랬습니다.

또 한 부류는 탁발하는 꼬마들. 차가 다가가면 대여섯명의 꼬마(남여)들이 발우를 들고 뛰쳐나옵니다. 스님은 길가 움막에서 염불하고. 교통사고 위험도 없지 않습니다. 탁발문화를 잘 모르는 이들 ‘앵벌이’ 같다고도 하죠. 여행자들은 보시를 한 번도 못해 미안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사라져버린 탁발. 가장 밑바닥의 삶, 걸식으로 탐욕을 버리고 깨달음을 구하는 불교인들에게 탁발은 큰 수행. ‘칠가식’을 했다는 석가모니의 ‘하심’(下心)을 실천하는 것이죠. 스님은 염불을 보시하고, 재가자는 재물을 보시하는. 중생구제의 만남이자 인연이죠.

초기불교의 전통을 잇는 버마 불교인들. 종주국다운 문화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90% 이상이 불교도인 버마. 상가(僧家)는 남자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과정. 어려서 한 번 승려수업을 받고, 성인될 때 또 한 번 받는다네요. 아들이 여럿이면 하나는 꼭 승려를 시키고.

▲ 강바닥이 말라있습니다. 광활한 사막 같지요. 건기에다 기후변화로 강수량이 줄어 그렇다고 합니다.     © 최방식


‘쓰러진 여행자’ 뒤로 “살아있네”

기자도 ‘위빠사나’(Vipassana, 분리해 객관으로 깨달음)에 관심을 가지고 있죠. 몸을, 느낌을, 생각을, 그리고 법(法)을 알아차리는 수행. 그 뒤 얻는 ‘반야’(지혜, panna). 그리고 깨닫는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 갈애(渴愛)와 집착(執着)에서 벗어나 마침내 ‘평온’과 ‘열반’(니르바나).

얼마나 달렸을까요? 산이 쩍쩍 갈라진 곳입니다. 코코넛 나무 몇 그루 뿐. 노란 흙 밭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나무 없는 세상. 초록이 보이지 않습니다. 건기라 바짝 마른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건조지역이라네요. 어쩐지, 개울 어디에도 습기를 찾을 길이 없습니다. 목적지에 온 것입니다. 20여분만 더 가면 된다네요.

꽤 큰 농촌도시. 도심엔 관광마차가 즐비합니다. 길을 몰라 조금 헤맸나요. 엔진소리가 멎습니다. 옌난지엉 레이 따곤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 것입니다. 풍광에 입이 쩍 벌어집니다. 석양녘이 붉게 물들어 여행자를 설레게 하네요.

대평원 한 가운데 우뚝 솟은 2백여미터 구릉. 절벽 위에 자리한 숙소. 대부호, 아님 식민지시절 지역관리자가 살았을까요. 저 멀리, 끝없이 이어지는 논밭의 평원. 그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상류 이라와디 강. 석양의 평온이 대지 위에 내려앉습니다.

▲ 상가(僧家)는 남자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과정. 어려서 한 번 승려수업을 받고, 성인될 때 또 한 번 받는다네요. 그 의례 행렬입니다.     © 최방식

 
넋을 잃었나요. 지역 활동가 둘이 모터사이클을 타고 나타났는데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혹시...’하고 나설 때야, 알았죠. 짐을 풀고 간담회장(식당)으로 가려는데, 사고가 터졌습니다. 오기출 푸른아시아 사무총장이 장염 증세로 쓰러진 겁니다.

부랴부랴 동네 의원을 찾았습니다. 여행자들은 밖에서 기다리고. 그런데 웬일이래요. 그냥 나오네요. 괜찮다고, 가라 했다며. 약 좀 지어주고서. 물(동네마다 나그네에게 먹으라고 떠놓는) 아님 파파야가 말썽이었다는 자가진단. 약을 가장 많이 싸온 이가 바로 그랍니다, 참.

이라와디강가 대평원 우뚝 솟은...

의원이 저녁 9시까지 문을 열어 다행. 오전 8~10시, 오후 5~9시 개원한다고. 의사들 인기 좋은 건 우리와 같다고 하네요. 저녁만 거르면 될 거라고 했다니, 여행자들 안심. 식당으로 가면서 환자가 농도 하네요. “내가 아프다면, 우리 직원들 당장 데리러 올 겁니다.”

그러자 유종순 선배 한마디. “살아있네.” 유 선배의 이 말은 8일 여행 동안 계속됐습니다. 안내자 마웅 마웅 소가 “형, 그게 무슨 뜻이야”라고 물었죠. 영화 ‘범죄와의 전쟁’에서 조폭들이 다방에서 일하는 여인을 놀린(가슴을 가리키며 성추행) 말인데, 회자된다고. 그 뒤엔 그 소리를 하는 이가 한명 더 늘었습니다. 

▲ 코코넛 나무가 밭 사이를 가릅니다. 저 광활한 대지에 농사를 짓는데 강수량이 줄고 있어 큰일이라고 했습니다.     © 최방식


간담회에 나온 지역활동가는 태국 푸미폰 국왕의 어머니 이름을 따 만든 ‘매파루앙’(Mae Fah Luang, 하늘에서 온 어머니) 재단의 현지 관리자 둘. 필드오피서 운터(31·남)와 필드매니저 묘 라잉 우(34·남). 빈곤과 마약에 찌든 고산지대 도이뚱(Doi Tung)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려고 세운 재단에서 이웃 버마에도 사랑의 손길을 펼친 것이지요.

태국·버마·라오스 3국이 맞대고 있는 골든트라이앵글(황금의 삼각지대). 악명 높은 마약왕 쿤사의 본거지이자 최고의 양귀비(몰핀) 재배지. 가난과 무지의 악순환이 대를 잇고 마약중독에 시달리는 주민들을 구제할 취지로 설립된 재단. 이젠 마약 아닌 ‘도이뚱커피’로 명성을 날리죠.

재단은 사람만들기와 나무심기를 병행. 주민을 교육한 뒤 생활비를 벌도록 나무(커피)를 심으며 이를 지키는 활동을 벌이는 것이죠. 버마에선 1988년 시작했는데 2015년까지 한다고. 샨주에도 양귀비 대신 커피나무 심기를 하고 있다네요. 인도네시아·아프가니스탄에서도 활동 중이고. 옌난지엉(만달레이)에서는 △생계비 확보(염소 등 동물키워) △동물 돌보기 지도(뱀 물릴 시 해독제 지급 등 동물병 예방) △마을 길 내기 △나무심기 등을 한답니다.

활동가들은 버마 사막화 수준(9.6%정도로 알려짐)을 정부 통계가 없어 확실하게 알 길이 없다고 했습니다. 만달레이주와 사카인주 상당부분이 건조지역으로 사막화가 진행 중이라고요. 증거는 지하수 고갈. 예전엔 19피트를 파면 지하수를 구했는데, 이젠 800피트까지 내려가야 물을 구할 수 있는 곳도 있을 정도라네요.

▲ 대평원 한 가운데 우뚝 솟은 2백여미터 구릉. 그 절벽 위에 자리한 숙소. 대부호, 아님 식민지시절 지역관리자가 살았을까요.     © 최방식


“얼마나 긴세월 흘려야, 자유얻나”

나무심기 수종으로 △물을 많이 필요로 하지 않고 △가지는 땔감으로 사용할 수 있고 △잎은 가축 먹이로 활용하며 △잘려도 다시 돋아나고 △토양피복을 위한 종류를 고른답니다. 바람은 세지 않으며, 황사는 없고요. 강우량은 평균 5피트(작년엔 1피트, 지역별로 비온 날이 5일미만인 곳도 있음). 갈수록 줄고 있어 걱정이랍니다.

사막화 이유를 묻자, 나무를 베고 환경을 파괴해 그렇다네요. 여름철(우기) 일 없을 때 숯을 만들어 팔다보니 그렇다고. 옌난지엉 인구가 12만명인데 8만여명만 농업을 하고 나머진 딴 일을 한합니다. 강수량이 줄며 농사가 잘 안되고 목축업 역시 퇴조해 그렇다고. 빚으로 사는 이가 8%정도. 갚지 못해 계속 빌리는 악순환이 거듭된다네요. 나무는 5~6월에 심으며, 종묘장에서 사다 쓴답니다.

이어 전해진 충격적인 소식. 80여 킬로미터 떨어진 도시 ‘메이크틸라’에서 무장폭동이 일어나 당국의 통제가 강화됐다네요. 불교도와 무슬림간 종교다툼으로 43명이 죽고 건물 1천3백여채가 불탄 소식. 외국인들 이동이 안 될 거라면서요. 이튿날 현지조사가 불가능하다며 농민들을 게스트 하우스로 불렀다고 합니다. 휴, 가슴을 쓸어내렸죠.

그렇게 이역만리에서 뜨거웠던 하루가 또 저뭅니다. 이라와디강가 어느 언덕 위 여행자의 집에 누워 맞이한 낯선 밤. 긴 여행에 몸은 지쳤지만, 머릿속은 또렷해져 갑니다. 새소리, 불경소리, 바람소리. 그 사이 들려오는 애달픈 강물의 노래까지.

▲ 저 멀리, 끝없이 이어지는 논밭의 평원. 그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상류 이라와디 강. 석양의 평온이 대지 위에 내려앉습니다.     © 최방식


“얼마나 먼 길을 헤매야/ 아이들은 어른 되나/ 얼마나 먼 바다 건너야/ 흰 비둘기는 쉴 수 있나/ 얼마나 긴 세월 전쟁을 해야/ 사람들은 자유 얻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외면해야 / 거짓은 사라질까/ 얼마나 더 올려다봐야/ 푸른 하늘을 볼 수 있나/ 얼마나 큰 소리로 외쳐야/ 사람들의 고통을 알 수 있나?/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 그 뜻을 아나/ 오, 내 친구여 묻지 말아라/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밥 딜런의 노래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중)

기후변화 국제활동단체인 ‘푸른아시아’(사무총장 오기출)가 3월 16일부터 8일간 버마 남부 에야와디 삼각주 일대와 중부 만달레이 인근에서 현지조사활동을 벌였습니다. 수행 취재한 내용을 7번에 걸쳐 싣습니다. /기자주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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