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붉은 치맛자락이 꽃잎처럼 펼쳐졌다"

[연재소설] '홍매지숙명(紅梅之宿命) 피다' 맹호은림(猛虎隱林)(5-1)

이슬비 | 기사입력 2017/04/01 [09:18]

"여자의 붉은 치맛자락이 꽃잎처럼 펼쳐졌다"

[연재소설] '홍매지숙명(紅梅之宿命) 피다' 맹호은림(猛虎隱林)(5-1)

이슬비 | 입력 : 2017/04/01 [09:18]

제5장 맹호은림(猛虎隱林)

 

후우. 달빛 아래 토해내지는 낮은 한숨은 마치 하얀 달이 이지러지며 토해내는 깊은 한숨과도 같았다. 오늘은 그믐. 한가득 차올랐다 차츰차츰 이지러져가는 달의 운명을 슬퍼하기라도 하듯, 왕은 그믐을 무척 사랑했다. 사월 그믐의 오늘, 왕은 기어코 야연(夜 宴)을 열었다.


오늘 야연장에 초대된 대소신료들과 귀족들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왕은 자신이 가장 아끼는 소수의 대소신료들과 함께 그믐을 슬퍼하기를 원했고, 그런 왕의 뜻에 따라 오늘의 야연장에 모인 무희들의 수도 극소수였다. 그리고 여자는 그 무희들 중 한 사람이었다.
 
여자는 야연장의 한가운데로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레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여자가 입고 있는 붉은 치맛자락이 펼쳐졌다, 휘감겼다를 반복하며, 야연장에 모인 이들의 모든 눈길이 그녀의 발걸음에 와 닿게 하였다.
 
여자는 눈을 내리감고 고개를 숙였다. 이곳은 왕의 앞. 왕의 앞에서는 그 누구도 명이 있기 전까지 고개를 들거나 눈을 뜰 수 없었다.
 
눈을 떠 짐을 보아라.”
 
왕이 묵직한 목소리를 내어 명을 내렸다. 여자는 고개를 들고 왕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하얀 얼굴에 조각과도 같은 이목구비가 오목조목 박혀 있는 것이, 한 눈에 보기에도 썩 잘생긴 얼굴이었다.


여자는 오른손이 위로 가게 두 손을 포개어 이마에 대고,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 일배, 이배, 삼배. 예법에 어긋나지 않게 손가락의 동작 하나하나까지 신경을 쓰며 왕에게 세 번의 큰절을 올리는 동안, 여자의 붉은 치맛자락이 꽃잎처럼 사르르 펼쳐졌다.
 
백척간두. 자신이 서 있는 지금 이곳을 한 마디로 표현하기에 그보다 더 적절한 말은 찾을 수 없을 것이었다. 이곳에 한 번 발을 들인 이상, 살아서 돌아가는 것은 포기했다 하여도 수많은 눈들과 칼날들이 자신을 겨누고 있는 이 상황에서 아찔함을 느끼지 않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여자는 눈을 감는 대신, 가느다란 눈꼬리를 휘어 웃으며, 자신과 왕의 앞에 놓인 푸른 어둠과 하얀 달빛을 노려보았다.
 
사비가 서울이지만
작은 서울을 사랑하지만
임과 이별할 바에는
길쌈하던 베를 버리고서라도
내 임을 따르리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끈이야 끊기랴
천 년을 외로이 살아간들
믿음이야 끊기랴
 
백강이 넓은 줄을 몰라
배를 대어놓았느냐 사공아
네 아내가 음탕한 짓을 하는 줄 모르고
떠나는 배에 몸을 실었느냐 사공아
아아 내 임은
백강 건너편 꽃을
배를 타면 꺾을 것이리
 
가희(歌 戱)들이 지어 부르는 노래는 사랑하는 임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지 않고 함께 떠나려다 거절당한 어느 여인의 독백과도 같은 노래였다. 오늘과 같은 분위기에는 걸맞을지 모르는 노래이지만,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아아, 하는 탄식을 내뱉었다.
 
여자는 검을 빼들었다. 검집에서 부드럽게 밀려나온 검이 지잉, 하는 소리를 내며 길게 울음을 토해냈다. 여자는 두 발을 어깨 너비로 벌리고, 검을 어깨에 비스듬하게 가져다 대었다. 한 걸음. 그와 함께 여자는 왕의 앞으로 한 걸음을 내디뎠다.


여자는 오른발을 바닥에 스치듯이 들며, 왼발을 축으로 긴 원을 그렸다. 여자의 검이 오른쪽으로 돌며 둥글게 원을 그리며 휘잇, 하는 바람소리를 냈다. 그와 함께 여자의 붉은 치맛자락이 넓게 펼쳐지며 황홀경을 자아냈다.
 
여자의 하얀 저고리가 푸른 어둠 속에서 하얀 달빛을 만나 반짝였다. 그와 대조를 이루듯 핏빛 붉은 치마는 마치 꽃잎처럼 펼쳐졌다, 다시 휘감기며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다. 여자는 오른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왕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나 이 순간, 검을 머리 위로 들어올려, 배꼽까지 수평으로 내리치는 여자의 어깨는 검법(劍 法)의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여자가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다가올 때마다 왕의 눈은 황홀경에 젖어 빛나고 있었다. 어느덧 왕은 여자의 검무가 아닌, 하얀 띠로 꼭 조인 가느다란 허리와 풍만한 가슴에 눈길을 두고 있었다. 사라락. 여자의 붉은 치맛자락이 또다시 꽃잎처럼 펼쳐졌다.


여자는 고혹적인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뒷발을 당기고, 오른발을 축으로 원을 그리며 돌았다. 원을 그리며 도는 동안, 여자는 왼 무릎을 직각이 되게 뒤로 세우고, 오른쪽 어깨에 검을 비스듬히 가져다 대었다.
 
오늘 밤, 짐의 시중은 저 아이로.”
 
왕이 곁에 선 내관을 손짓으로 불러, 귓속말로 무언가를 지시했다. 여자는 왕의 입모양만으로도 왕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오랫동안 왕을 모셔온 몸이었기에 이런 식으로 지시를 받는 일에 익숙해져 있는 까닭이었다.
 
폐하.’
 
여자는 속으로 자신의 주군인 왕을 불러보았다. 자신의 주군인 왕은 지금, 눈앞에 있는 저 백제의 왕이 아니었다. 여자의 주군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뿐인 신라의 왕, 법운이었다.
 
그러나 여자는 끝까지 미소를 지어보였다. 가느다란 눈꼬리를 더 휘어 고혹적이고 관능적이게, 여자는 끝까지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느새 왕의 눈이 가늘어지기 시작하는 것이 여자의 눈에 들어왔다. 지금쯤이면 아마 왕의 아랫도리가 불뚝 섰으리라. 여자는 더욱더 고혹적인 미소를 지어보였다.
 
왕의 눈이 애수로 젖어들기 시작하는 것을 여자는 놓치지 않았다. 여자는 검을 하늘로 높이 던져 올렸다, 내려앉는 검을 다시 손으로 받아 들었다. 그녀의 춤이 전하는 황홀경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그녀의 몸동작이 자아내는 관능에 도취되어 색욕에 빠진 것인지 모를 왕의 시선이 그녀의 검을 따라 하늘로 올랐다 떨어져 내렸다.


여자는 자신의 손 안에 들어온 검을 몇 번 휙휙, 소리가 나게 돌렸다. 왕을 비롯한 모두의 눈이 여자의 손 안에서 노니는 검을 따라 몇 번이고 돌았다. 여자는 검을 쥔 손에 더욱 더 다부지게 힘을 주고, 뒷발을 당기고, 오른발을 축으로 하여, 원을 그리며 몇 바퀴 돌았다.
 
야연장에는 그 누구의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어느새 금()을 타고, ()을 불고, ()를 치던 악사들마저도 저마다 악기를 손에 든 채 여자의 춤사위에 도취되어 있기만 할 뿐, ()을 연주하지는 않고 있었다.


여자는 또다시 검을 하늘로 높이 던져 올렸다, 손으로 받아드는 동시에 뒷발을 당기고, 오른발을 축으로 하여, 원을 그리며 돌았다. 그와 함께 여자는 오른발을 앞으로 내며, 왼발로 몸을 밀었다. 그리고 그 순간, 여자의 오른발이 땅을 굴렀다.
 
지금이다!’
 
여자는 땅을 박차고 허공으로 날아오르며, 칼날을 앞으로 향하고 왕을 향해 짓쳐 들어갔다. 여자가 왕의 목을 향해 칼날을 쇄도해 들어가는 순간이었다.
 
! 칼끝이 칼등에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여자는 중심을 잃고 땅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수십 개의 눈들과, 수십 개의 칼날이 여자를 겨누었다.
 

 
며칠 동안, 유흔은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는 항상, 하얀 저고리에 붉은 치마를 입은 여자가 나왔다. 여자가 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환두대도를 들고 춤을 추는 동안 붉은 치맛자락이 마치 꽃잎처럼 펼쳐졌다, 휘감겼다를 반복했고, 그럴 때마다 여자의 눈에는 결의라고 볼 수 있는 감정이 더해져 가고 있었다.
 
유흔은 여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여자가 왜 왕을 죽이려 칼날을 세우고 짓쳐 들어가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유흔이 알 수 있는 것은 여자는 지금 이 아닌 무공, ‘검무가 아닌 검법을 선보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서란이 소학의 마지막 장을 익히는 며칠 동안, 유흔은 검법서를 들여다보며 서란이 익힐 본국검법을 새로 정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자신에게 소학을 들이밀며 이 부분이 이해가 잘 안 된다 묻는 서란을 무릎에 누이고 다시 설명을 해주는 동안에도, 유흔의 손은 검법서의 동작들을 그림으로 그리며 가림토 문자로 정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림과 가림토 문자로 본국검법을 정리한다 해도, 그것이 서란이 쉽게 검법을 익힐 방법을, 그리고 유흔 자신이 서란에게 쉽게 검법을 가르칠 방법이 될 수는 없었다. 결국, 서란은 아직 검을 잡아보지 않은 어린아이에 불과했고, 유흔 자신 또한 본국검법을 익히지 않은 전형적인 부상국의 무인(武 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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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슬비 2017/04/01 [15:51] 수정 | 삭제
    • 대신 '무엇보다.......' 뒤에 있는 것들을 지우면 될 것 같아요
    • 이슬비 2017/04/01 [12:27] 수정 | 삭제
    • 끝부분은 소설 원고에도 표기된 부분입니다 잘린 게 아니니 수정할 필요 없어요
    • 운영자 2017/04/01 [09:04] 수정 | 삭제
    • 이슬비 작가님, 끝부분 이상한데 댓글로 올려주세요. 수정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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