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노트 미CIA 음모론’ 축소보도 논란

국내언론, 독일 일간 FAZ 기획보도 1보만 전한 뒤 뒷걸음질

서문원 객원기자 | 기사입력 2007/02/02 [16:13]

‘슈퍼노트 미CIA 음모론’ 축소보도 논란

국내언론, 독일 일간 FAZ 기획보도 1보만 전한 뒤 뒷걸음질

서문원 객원기자 | 입력 : 2007/02/02 [16:13]
북한이 제작해 말썽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슈퍼노트’가 실은 미CIA가 공작차원에서 만들어 배포한 위조지폐라는 독일의 한 유력 일간지 보도는 국내 언론에게 초미의 관심사였다. 헌데 미행정부와 의회의 지원을 받는 자유아시아라디오방송(RFA)이 반박보도를 한 이후 한국 언론은 모두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어찌된 일일까?

독일의 유력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넨지(FAZ)는 지난 1월 6일 주말판에 “<슈퍼노트> 위폐 북한산 아닌 미CIA 제조”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위폐 전문기자인 클라우스 벤더는 자신이 저술한 ‘돈 만드는 사람들’(Geld Macher)이라는 책 내용을 인용하며, 미CIA가 워싱턴 북부 인근에 슈퍼노트 위폐제조 공장을 갖고 있으며, 분쟁지역 공작금으로 사용하기 위해 가동해왔다고 보도했다.

 FAZ, “슈퍼노트는 CIA 작품”

FAZ는 이어 1월 8일 2신으로 ‘슈퍼노트 CIA음모설’(미정보국 위폐제조 경위)를 기사화하며, 미국 달러용 종이 및 인쇄기기와 전문 인력을 갖춘 나라는 독일 뷔르츠부르그에 있는 KBA인쇄기 제작사와 미국의 조폐국(BEP)뿐이라며 “북한은 이런 정밀 위조지폐를 찍어낼 능력조차 갖추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독일의 유력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넨지(FAZ)     © 인터넷저널

FAZ의 두 번에 걸친 보도가 나온 뒤, 국내 언론들은 1신 기사를 인용 보도했다. 9일 오후 들어 연합뉴스와 몇 개 일간지, 그리고 인터넷신문이 FAZ의 1신 기사를 인용했다. 이렇게 시작된 국내 ‘슈퍼노트 논란’은 다음 날인 10일 새벽까지 의혹이 증폭되며 이어졌다.

하지만 논란은 하루 만에 끝나고 말았다. 미 행정부와 의회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것으로 알려진 RFA가 9일 데이비드 어셔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미 국무부 전 자문관)과 라파엘 펄 미 의회 조사국 선임연구원의 반박 인터뷰를 싣고 부터다.

RFA 대담내용을 1월 10일 오후 5시 33분 맨 처음 보도한 내일신문 기사에 따르면, 미국의 전현직 행정부와 의회 관리는 방송에서 “북한이 위폐를 제조했다는 확실한 증거와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독일 언론이 무책임한 보도를 했다”며 노골적 불쾌감을 드러냈다.

이어 조선일보가 1월 11일 새벽 3시 35분 “CIA가 위조달러를 만들었다는 독일 언론의 보도는 엉터리”라는 제목으로 RFA 라디오보도를 재인용했다. 그리고 ‘슈퍼노트 미CIA 음모설’ 관련기사는 전 포털, 신문에서 사라졌다. 국내언론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뒷짐을 지고 말았다.

 1신 보도, 2신엔 뒷짐

더구나 지난 6일에 이어 8일 FAZ에 실린 “미CIA 위폐제조과정”이 상세히 설명된 2신은 국내 언론에 거의 보도조차 안됐다. ‘민중의소리’의 12일자 “‘미국의 북위폐 제조 주장’ 의혹 많다”, ‘인터넷저널’ 온라인판의 15일자 “독일 파츠, '슈퍼노트 CIA음모설' 2신보도”, 한겨레신문 섹션인 ‘18.0'c’의 19일자 “위조지폐 범인은 미국?” 기사가 전부다.

지난 9일부터 10일까지 한국 언론계를 뜨겁게 달궜던 “CIA 위폐제조” 논란이 RFA의 9일자 반박보도 하나로 사그라진 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그간 부시 행정부가 ‘슈퍼노트 북한 제작’ 주장을 해왔기 때문에 FAZ의 반박보도로 제기된 슈퍼노트 논란은 전직 행정부 관리와 미 의회 조사관 한 명의 일방적 주장으로 불식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승동 ‘섹션 18.0도’ 팀장은 “주간 섹션이어서 종합적으로 보도를 했을 뿐”이라며 “RFA보도 뒤 보든 언론이 침묵한 이유는 우리로서는 모르겠다”고 밝혔다. 조선일보의 한 관련자도 본지와 통화에서 “FAZ 보도를 내보내고 RFA가 반박 인터뷰를 한 내용을 접했다”며 “RFA가 사실이 아니라고 한 내용을 그대로 내 보냈을 뿐”이라고 말을 끊었다.

게다가 RFA는 미국의 행정부와 의회의 지원을 받는 공영방송으로 알려져 있다. 96년 천안문사태 이후 중국을 공략하기 위해 만들어진 방송이다. 베트남, 라오스, 티베트, 미얀마, 캄보디아, 북한 등 9개 중국 주변국을 대상으로 송출하고 있다. 특히 2004년 미국이 북인권법을 통과시키고 방송시간을 연장하고 북한쪽에 수신기를 대량보급하고 있다.

 “RFA가 아니라고 하던데...”

특히 RFA는 2005년 6월부터 북한 위조지폐 보도를 집중적으로 내보냈다. 그리고 3개월 뒤인 9월 16일 미 재무부는 애국법 제311조에 따라 북한 위폐 돈세탁 장소로 추정되는 마카오 중국계 방코델타 아시아은행과 미국계 은행 간의 거래를 중단시켰고, 베이징에서 열린 제4차 6자회담을 취소한 바 있다.

이처럼 RFA는 사실상 미행정부의 입장을 전달하는 기관지 성격의 라디오다. 비슷한 성격의 라디오 방송인 ‘미국의소리’(VOA)도 한국어방송을 하고 있지만 이 채널이 ‘국제뉴스’를 90%이상 다루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RFA는 90%이상을 북한관련 뉴스로 채우고 있다. 소위 대북붕괴 공작방송인 셈이다.

이런 미행정부(또는 의회) 기관지 성격의 라디오 뉴스를 인용해 독일의 유명 시사일간지가 구체적 사실을 들어가며 제기한 ‘슈퍼노트 미정보기관 음모론’을 “터무니없다”고 무시한 국내 언론의 보도태도를 어찌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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