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 미얀마인들 "잠 못 이루고 일 손에 안 잡혀 맘고생", 쿠데타 규탄

6일부터 매일 10~13시 집회시위, “구금자 석방, 총선결과 존중” 촉구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21/02/08 [11:05]

재한 미얀마인들 "잠 못 이루고 일 손에 안 잡혀 맘고생", 쿠데타 규탄

6일부터 매일 10~13시 집회시위, “구금자 석방, 총선결과 존중” 촉구

최방식 기자 | 입력 : 2021/02/08 [11:05]

7일 오전 10시 미얀마 대사관 무관부 건물 인근 독서당로. 남쪽 한강 방향으로 한림말3길이 시작되는 곳. 주한 미얀마인들의 목소리가 힘차게 울려퍼진다. “군사 쿠데타를 반대한다”, “윈 민 대통령과 아웅산 수지 고문을 포함한 구금자를 즉각 석방하라”, “총선결과를 존중하라”, “민 아웅 흘라잉 군부 독재자 물러가라.”

 

‘재한 미얀마인들’(이하 미얀마인들)이 주최한 ‘미얀마 군부 쿠데타 반대와 민간 정부 정권이양 촉구’ 집회 현장. 시위를 준비하는 20여명과 미얀마 대사관 부속 무관부 건물을 경비하는 경찰 몇이 서성인다. 10명 이하로 집회 인원을 제한한 방역지침에 9명이 거리를 유지한 채 시위를 시작한다.

 

미얀마인들은 이날 현장에서 배포한 성명에서 “군부가 아웅산 수지 고문과 윈 민 대통령 등 정부 지도자와 시민사회 인사를 불법 구금하고 1일 비상사태를 선포한 뒤 1년간 직접 통치를 선언하는 쿠데타를 저질렀다”며 “총선 유권자 명단이 문제가 있다는 건 구실일 뿐 실제로는 불법 권력찬탈”이라고 주장했다.

 

“유권자명부 구실, 흘라잉 군부 불법 권력찬탈”

 

이날 시위 현장에서 맨 먼저 마이크를 잡았던 시투언(33세·남)은 무겁게 입을 뗐다. “미얀마 고향에 아내와 아들이 있는데, 1일부터 잠을 못 이루고 직장 일도 손에 안 잡힐 정도로 맘고생이 크다”며 “동료들과 함께 군부 쿠데타 규탄 투쟁에 함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2년 비자로 입국해 수도권 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 재한 미얀마인들이 7일 오전 10시 옥수동에 있는 미얀마대사관 무관부 인근에서 ‘군부 쿠데타 규탄’ 집회를 열었다.  © 최방식


미얀마인들이 군부 쿠데타 규탄 집회시위를 공식으로 시작한 건 6일. 한 달 간 매일 오전 10시부터 3시간 동안 미얀마 대사관 부속 무관부 건물 인근에서 개최키로 했다. 주한 미얀마 대사(대사관 한남동 위치)는 수지 고문이 임명한 이여서 쿠데타 세력이 파견한 무관 근무 건물을 집회 장소로 택했다.

 

이들의 집회시위는 NLD한국지부(회장 얀타이툰)가 주관하고 있다. 8888항쟁(1988년 8월 8일, 네윈 군부정권에 항쟁하다 수천명(비공식) 사망) 뒤 창립된 민족민주동맹(NLD, 아웅산 수지 주도) 활동을 하다 군부에 찍혀 한국으로 온 망명객들 단체. 회원이 수지 집권 뒤 줄어 현재는 10명이다.

 

한국에 거주하는 미얀마인은 3만여명. 1일 쿠데타 소식에 교민 대표들이 모여 성명서를 작성하고 집회시위 계획을 짰다. 쿠데타 직후부터 거주자가 많은 부천, 부평, 포천, 부산 등 각지에서 1인시위가 이어져 왔다. 그러다 6일부터 공식 집회시위를 시작한 것이다.

 

군부 쿠데타는 지난해 11월 총선 직후 징후가 드러났다. NLD가 단독정부 구성요건인 322석(전체 664석 중 투표를 안 한 22개 선거구를 제외한 642석의 과반. 총선은 전체 의석 75%만 선출하고 25%는 군부가 지명)을 차지하자 흘라잉 군사령관이 “수지 정부는 용납할 수 없는 실수를 했다”, “조심해야 한다”고 불복을 시사했다.

 

“조국 비보에 일 손에 안 잡히고 잠도 못 이뤄”

 

선거결과 군부가 지원하는 통합단결발전당(USDP, 2010년 총선을 앞두고 창립)이 33석을 얻는 데 그쳤다. 군부 지명의석 166석(25%)을 합쳐도 집권엔 어림없다. 올해 7월 65세를 맞는 흘라잉 총사령관은 결국 총선에 압승한 NLD 주도 의회 개회를 몇 시간 앞두고 쿠데타를 감행한 것. 그들이 밝힌 근거는 헌법에 명시된 ‘군부의 비상사태 선포권’.

 

이에 대해 얀타이툰 NLD한국지부 회장은 “흘라잉은 2016년 60세로 총사령관을 그만둬야 하는데도 5년 늘려 연임하더니 이젠 퇴임(올 7월)할 나이가 다가오자 쿠데타를 일으켜 영구 집권을 시도했다”며 “어쩌면 그는 2009년 총사령관을 전임자 탄쉐에게서 넘겨받을 때부터 집권욕을 불태워 왔는지 모른다”고 언급했다.

 

알자지라의 2일자 보도에 따르면, “법률상 7월 은퇴해야 하는 흘라잉은 오랫동안 대권 야망을 품어왔으며, 지난해 11월 USDP의 굴욕적 패배 뒤 권력을 찬탈하려고 법을 위반했다”며 “1년 뒤 재선거로 USDP 의석을 늘려(군부지정 166석과 더해) 집권하려 할 것”이라는 한 호주 교수의 말을 전했다. 언론은 특히 “군부 가 아닌 흘라잉 쿠데타”라는 영국에서 활동하는 한 미얀마 단체 대표의 말을 덧붙였다.

 

▲ 미얀마대사관 무관부 건물 앞에서 1인시위를 벌이는 NLD한국지부 회원.  © 최방식


7일 옥수동 시위에서 만난 뮤멘툰 NLD한국지부 회원도 “2015년에 이어 2020년 총선에서 NLD가 압승을 하자 군부가 집권이 어렵다고 판단해 무력을 동원한 게 아닌가 싶다”며 “애초 군부가 정권을 민간에게 넘겨줄 생각이 없었던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20년 넘게 난민 지위로 한국에 거주중이며 김포의 한 회사에 7년간 근무 중이다.

 

미얀마에서 터져 나온 군부 쿠데타에 한국 뿐 아니라 국제사회는 충격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민정이양 잘 돼 가는 줄 알던 이 나라에서 왜 쿠데타가 재발했는지, 지난 5년간 수지를 고문으로 한 미얀마 정부(NLD 집권)는 뭘 하고 있었는지 궁금증을 드러내고 있다.

 

군부지원 USDP 굴욕적 패배에 ‘흘라잉 쿠데타’

 

게다가 2015년 총선 압승으로 집권한 수지 정부가 군부의 소수인종(무슬림) 로힝야 탄압을 정당하다고 감싸 국제사회의 분노를 산 게 쿠데타 규탄 국제연대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수지 노벨평화상을 회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5·18기념재단도 2004년 수지에게 수여한 광주인권상을 2018년 취소했다.

 

유종순 전 버마민주화를 지원하는 모임 대표는 “수지가 군부를 앝잡아 보는 게 아닌지 너무 타협적인 건 아닌지, 그러다 팽당하면 어떡하나 늘 걱정이었다”며 “한국의 신군부 쿠데타, 3당야합 등 과거 독재정권의 행태를 되짚어보며 집권 NLD측에 충고를 해왔다”고 회고했다.

 

더욱이 미얀마 군부의 선거결과 불복과 권력찬탈은 국제사회 이목이 트럼프의 선거결과 불복과 권력찬탈 시도(노력)에 쏠린 사이 터져나온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민주주의 선진국이라는 미국을 민주화가 늦은 미얀마가 따라한 모양새. 우연인지 모방인지 희대의 범죄인 건 사실.

 

2000년대 초부터 10여년 ‘버마 민주화를 위한 시민모임’, ‘버마를 사랑하는 작가모임’에 참여했던 기자도 뜬금없는 미얀마 군부 쿠데타 소식에 적잖게 당황했다. 로힝야 탄압을 감싸는 미얀마 정부에 실망감도 적잖았고, 민간정부가 들어선지 5년이 넘었으니 알아서 잘 가겠거니 생각했는데 깜짝 놀랐다.

 

▲ NLD한국지부 회원들이 5일 국회를 방문했다.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만나 한국 국회의 미얀마 군부 쿠데타 규탄 결의와 경제제재를 주문했다.  © 최방식



2005년 살라이 톤 탄 박사 귀국투쟁, 그리고 태국의 미얀마 국경 산악지대에 모여 사는 난민촌과 무장투쟁지역 순방, NLD한국지부의 군부독재 규탄 및 수지 석방 집회시위, 그리고 미얀마 내부에서 투쟁 중이던 NLD 본부 등 방문 취재를 해온 기자로 남은 의무감이랄까.

 

수지 ‘로힝야 탄압’ 옹호, 국제사회연대 걸림돌

 

여튼 미얀마 군부 쿠데타는 착착 진행됐다. 민 쉐 새 대통령을 앉혔고, 수지 고문을 불법 수입 워키토키(휴대용 무전기) 무허가 소지(수출입법 위반) 혐의로 3일 기소했다. 징역 3년형에 처할 수 있으니 1년 뒤 총선에서 손발을 묶을 근거. 반역죄로 기소(최소 20년~사형)하는 방안도 고려중이라는 DPA통신의 보도도 있다.

 

하지만 미얀마와 국제사회의 대응은 더디다. 코로나19로 전례 없는 고통을 받고 있고, 방역수칙 상 집회시위가 제한되다 보니 더욱 그렇다. 미얀마 안에서는 NLD가 규탄성명을 발표했고, 양곤과 만달레이에서 소규모(방역으로 제한) 집회시위를 벌이는 수준. 군부가 쓰임새가 활발한 페이스북을 차단한 것도 큰 걸림돌. 70곳 이상의 병원에서 쿠데타 규탄 파업을 한다는 소식은 고무적. NLD상징 빨간색 리본을 달고 태국 반정부 시위 상징인 '세 손가락 경례'를 하며 규탄투쟁을 한다고 알려지고 있다.

 

국제사회 움직임도 굼뜨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4일(현지) 군부 쿠데타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며 “구금된 이들의 즉각 석방을 촉구한다”는 맹탕 성명을 발표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미온적 태도를 보인 탓. 서방선진 7개국 외교장관도 공동 규탄 성명을 냈다. 미국은 행정명령과 제재를 고려중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 美상원도 쿠데타 철회 촉구 결의안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4일 박영순 의원(더불어민주당 대전 대덕, 한미얀마의원친선협회 부회장)이 대표발의하고 55명 의원이 참여한 ‘군부 쿠데타 규탄 및 민주회복·구금자석방 촉구 국회 결의안’이 추진된다. 인재근·우상호·홍영표 등 민주당 중진 의원들도 5일 NLD한국지부의 요청에 따라 관련 논의를 시작했다. 국제민주연대 YMCA 참여연대 등 국내 70개 시민사회단체도 2일 성명을 내고 △쿠데타 종료 △구금자 석방 △권력 이양을 촉구했다. 5일에는 세계시민선언 회원들이 미얀마 대사관까지 쿠데타 규탄 침묵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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