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딛고 고철작품 재개, ‘꼬리칸의 반란’ 꿈꿔” 정경수 정크아트

여주양평 문화예술인들이 삶(2)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22/05/25 [10:36]

“우울증 딛고 고철작품 재개, ‘꼬리칸의 반란’ 꿈꿔” 정경수 정크아트

여주양평 문화예술인들이 삶(2)

최방식 기자 | 입력 : 2022/05/25 [10:36]

기후변화와 핵발전의 위험을 아무리 경고해도 대량소비와 탐욕에 거침없는 현대사회. ‘반문명’ 예술은 그래서 시작됐을까. 종말을 향해 질주하는 ‘설국열차’는 어찌 멈출까. ‘정크 아트’로 ‘꼬리 칸의 반란’을 꿈꾸는 조형예술가가 여기 있다.

 

폐기물을 활용해 작품을 만드는 ‘정크 아트’.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철을 녹이고 붙여 조형물을 만드는 ‘고철조각’. 또는 ‘용접예술’. 대량소비와 환경파괴에 경고장을 내민 조금 생소한 예술을 하는 정경수씨가 그 주인공. 예순다섯의 허연 꽁지머리 주인공을 고철더미 한가득 양평 ‘우사’(애초 소 키우는 축사) 작업장에서 지난 23일 만났다.

 

“내 생활의 70%는 중고품을 씁니다. 옷을 포함해 신발·전등·가구 등 각종 생활용품, 그리고 예술 재료까지 남들이 쓰고 버리는 중고를 사용하지요. 인생도 중고이고. 신상 찾을 이유가 없는 거죠. 멀쩡한 게 버려지는 세상에 ‘그만 좀 하라’ 외치고 싶었죠. ‘정크아트’를 시작한 까닭이죠.”

 

폐기물로 예술작품, 우사 작업장서 만나다

 

‘정크아트’ 이야기를 시작하며 그는 좀 어두운 표정을 짓는다. 말 뜻 그대로 ‘쓰레기예술’로 혹평이나 오해를 사고 있어 그렇단다. 20여년전 세간의 주목을 끌었던 정크아트. 돈벌이에 눈먼 이들이 앞 다퉈 뛰어들다보니 상업화로 오염돼 그렇다고 한다. 예술가들이 표현을 바꾸자고 했을 정도란다.

 

▲ 12지 중 돼지와 개 고철작품 앞에 앉은 정경수 정크아티스트.   © 최방식


“정크아트는 포스트모던의 한 분야죠. 서구에선 60여년 넘은 역사를 가졌고요. 팝아트의 영향을 받은 설치미술의 한 가지죠. 국내선 2000년대 초 사용됐어요. 인식이 좋아 너도 나도 돈벌이 수단으로 활용했죠. 예술이 제품산업 수준으로 전락했고요. 지자체 축제엔 수입제품까지 동원됐지요. 예술품이 아니잖아요. 이런 제품들은 다시 고물상으로 버려지고요.”

 

그의 정크아트는 명료했다. 대량으로 찍어 거래하는 건 그저 상품일 뿐 예술작품이 아니란다. 창의성에 근거하고 예술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 미술의 기본 소질 정도는 갖추고 조형미가 무엇인지는 아는 이가 하는 예술이어야 한다고 했다.

 

전통 예술사회 역시 정크아트를 불편해 했다. 왜, 하필 쓰레기로 예술을 하느냐고. 포스트모던 시대 언급된 광기다. 권력자의 탐욕에 복무하는 지식과 도덕. 그들을 찬양하고 예찬하는 역사와 예술. 푸코가 말한 전도된 지식과 도덕·역사·예술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는 셈.

 

불가리아 태생 설치미술 랩핑(어스워크 또는 랜드아트로도 불림) 작가 크리스토. 그가 죽고 1년 뒤인 지난해 파리 개선문을 보자기로 감싸 16일간 전시했다. 1961년 기획·제안했는데 60년만에 성사됐다. 센트럴파크(뉴욕)에 문 7500개를 설치하고 독일의사당·퐁네프다리를 포장한 작품에 “이게 무슨 예술이냐” 논란이 일었고, 행정당국은 수십 년간 작품을 불허했다.

 

‘환경예술 인식’ 앞 다퉈 돈벌이 수단화

 

크리스토는 물질로서 예술을 반대하는 작가였다. 자연과 유대를 상실한 현대사회를 비판하는 미니멀아티스트. 소유하지 않고 머무르지 않는 반문명 예술. 전시 뒤 사라지기에 소비할 수 없고 상업화할 수 없는 작품. 원상태로 복구하고 사용한 보자기는 재활용하는 친환경적인 예술. 그는 그 어떤 비판에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백남준이 논란 속에 폐모니터를 활용해 ‘비디오아트’를 개척했듯이.

 

작가는 지금 개, 소, 뱀, 양, 말, 닭, 호랑이 등 12지(支) 상(像)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토끼와 쥐만 빼고 10개 상을 만들거나 작업 중이란다. 5년째 이 작업을 하고 있는데, 완성되면 양평군립미술관서 전시를 할 예정이라고. 일부는 몇 번 전시했다. 모든 사람들이 자기 띠를 가지고 있어 관심이 클 거로 여겨 기획했다.

 

작가는 어쩌다 이 생소한 예술에 빠져들었을까. 그는 원래 서양화가였다. 동양미술학과에 다니다 중퇴한 그는 서양화로 동아미술제, 중앙미술제, 대한민국미술대전 등에 수차례 입상했다. 생계 때문에 건축토목 디자인 사무실을 운영(고교 때 건축 공부)했지만 IMF 등으로 2000년 폐업했다. 이어 자동차 튜닝업을 시작했는데, 정크아트 길로 들어선 계기다.

 

▲ 양평 우사작업실 밖에 세워놓은 12지 중 닭, 양, 소, 호랑이, 용 고철작품.  © 최방식

 

“자동차튜닝 기본은 용접이에요. 인근 카센터에서 버리는 고철이 많아 가져다 용접실험을 하며 몇 개의 작품을 만들어봤죠. 고철 수거하는 이들이 보고 놀라며 계속하라는 거예요. 그 뒤 나도 모르게 빠져든 거죠. 고철은 널렸으니 물감을 사야하는 그림보다 돈도 덜 들 거라 생각했죠. 1년 6개월만에 튜닝업도 접고 양평에 작업장을 마련해 들어왔죠.”

 

돈이 없어 폐 우사(소 축사)를 구했다. 한동안 푹 빠져 작품활동에 열중했고, 블로그에 그의 작품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정크아트 1세대 초기 작가가 탄생한 것이다. 그와 같은 작가들의 활동이 알려지며 돈벌이를 노린 사업자들이 정크아트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자동차튜닝 하다 고철용접 예술에 풍덩

 

“정크아트는 폐기물(고철)로 작품을 만드는 거죠. 환경을 파괴하며 편의를 좇는 현대 인류의 맹목을 꾸짖으면서요. 이를 도용해 돈벌이하며 환경파괴를 부추기는 건 어불성설이죠. 태국에서 수입한 고철조형물(제품)을 제 작품이라고 자랑하는 이들까지 있어요. 정크아트 이름으로.”

 

가끔 그의 작품을 사려고 오는 이들이 있다고 했다. 어떤 의사는 2만평의 조각공원을 만들겠다며 작품을 팔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거절했다. 한 정크아트 판매자에게 구입한 제품과 함께 전시하겠다는 소리를 듣고. 정크아트의 오염을 경계해서다.

 

그런 그에게도 ‘목구멍이 포도청’. 작품으로 생계를 꾸릴 수 없어 용접 부업을 했다. 아는 이의 작업장을 다니며 일했다. 아내가 작업실 운영비로 월 30만원씩 보내는 이른바 ‘마누라연금’(고마움 표시)도 큰 도움. 디자인사무실 운영할 때 같이 일했던 아내는 생계를 위해 병원에 취업했다.

 

그렇게 해서 딸 둘을 키웠다. 큰 딸은 웹툰(만화)과 타투를 생업으로 하고 모터사이클 취미 활동 등에 열중이다. 돈을 더 벌면 거주중인 서울 낙성대 옆 단독주택을 크게 개축하겠다는 포부도 가지고 있다고. 작은 딸은 결혼을 약속한 남자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로 돈벌이가 여의치 않아 ‘마누라연금’ 덕을 톡톡히 보고 있죠. 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소품(작품)을 좀 더 만들어 생계를 도와야죠. 그간 뜸했던 작품활동에 더 열심을 내고요. 이제는 의미 있고 꼭 하고 싶은 작품을 만들려고 해요. 즐겁고 후련한 마음으로요.”

 

그의 작업실(폐우사) 가득 들어찬 고철. 도대체 뭐가 있을까. 저 많은 고철들 속에서 원하는 걸 쉽게 찾을 수나 있을까. 그 많은 고철들을 어디서 가져왔을까. 그가 작업 중인 12지상을 가만히 살펴보니 가위, 망치, 못, 숟가락, 수동드릴 등 수많은 고철제품들이 눈에 들어온다.

 

코로나에 생계 막막, ‘마누라연금’ 덕 톡톡

 

“혼돈이라고 생각하죠. 제 나름 잘 정리해 놓은 거예요. 어디에 뭐가 있는 지 다 알고 있고요. 나름 질서가 있다고요 고물을 가져올 때도 어디에 사용할지 구상하며 필요한 거만 고르고요. 동네사람들도 이제 제 일을 알아 고철 버리려면 연락하고, 제가 없을 때 집 앞에 두고 간답니다.”

 

▲ 그의 작업실 밖에 설치한 정크아트 작품 중 하나.  © 최방식


작업실에서 인터뷰에 응하던 그가 ‘이제 많이 했다’며 밖으로 나가잔다. 고물 수거할 때 가져온 중고 벤치로 꾸며놓은 야외 응접실에 앉으니 잠시 기다리란다. 그렇게 차를 몰고 나갔고 10여분 뒤 족발과 막걸리, 그리고 자신이 마실 소주를 사왔다.

 

뒤풀이 야외 테이블 곁엔 고양이 서너 마리가 지켜보거나 어슬렁거린다. 도도, 미미, 초롱이, 빠빠두이 이름을 가졌다고. 작업실 주변 생명을 지키는 일도 그의 일상 중 하나. 그래서 이들에게 먹을거리를 주고 잠자리도 만들어준다고 했다.

 

작년부터 무기력증과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다고 했다. 이석증까지. ‘인생 이렇게 끝나는 구나’ 싶었을 정도로. 작품 활동이 중단됐고, 돈벌이도 한동안 못했다고 했다. 동생이 생활비를 보내줘 근근해 버틸 수 있었다고. 테오도르에게 의존해야 했던 빈센트 반 고흐처럼.

 

“이렇게 찾아와 줘 고맙습니다. 내게 치고 나갈 용기를 주네요. 내 시대는 끝났다고 신세타령만 했는데, 다시 일어서겠습니다. 제 작품은 가급적 팔지 않으려고요. 그 가치를 알기에. 남들에겐 모르겠으나 제겐 소중하니까요. 내 평생이고, 직업이고, 철학이니까요. 포기했던 우사미술관도 다시 고민해보고요.”

 

생명예술 향기와 탁배기에 불콰한 하루

 

그와 함께한 밤이 깊어간다. ‘종의 울림’ 작곡법으로 유명한 아르보 패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 선율이 들려오는 듯하다. 영화 ‘그래비티’와 ‘어바웃타임’에 삽입됐던 그 떨림 음악. 산소도 소리도 생명도 없는 우주에서 살아 돌아오는 순간을 재현하는 소리. 표현을 최소화하고 수단의 반복으로 울림을 주는 미니멀아트(음악)와 정씨의 작품이 왠지 닮은 듯 하다.

 

고철로 만들어놓은 황소. 그 눈에선 금세 닭똥만한 눈물이 흘러내릴 듯하다. 아르보 패르트가 들었으면 분명 좋아했을 워낭소리가 금방이라도 들릴 듯. 거울에 비친 작가는 분명 희망이었다. 그의 작업실을 나서는 데 밤 11시가 됐다. 생명예술 향기에 탁배기에 취해 불콰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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