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드고비 거친 사막에 영그는 ‘푸른 꿈’

[기후변화 현장르포1] 사막화 북서진 차단 ‘나무만리장성’ 가꾸기 5년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13/09/04 [09:26]

돈드고비 거친 사막에 영그는 ‘푸른 꿈’

[기후변화 현장르포1] 사막화 북서진 차단 ‘나무만리장성’ 가꾸기 5년

최방식 기자 | 입력 : 2013/09/04 [09:26]
기후변화 저지 국제환경단체인 (사)푸른아시아(사무총장 오기출)와 고양시(시장 최성) 후원으로 지난 19일부터 엿새간 몽골의 울란바타르와 돈드고비․바양노르에서 사막화저지 숲가꾸기 현장을 돌아보고 현지 관계자를 취재했습니다. 다섯 차례 나눠 싣습니다. /기자주

울란바타르에서 남쪽으로 300킬로미터 거리에 자리한 만달고비. 우리 땅 14배 규모의 고비사막, 그 길고 넓은 황무지에 자리한 사막화 최전선. 남부 사막의 북서진을 막는 3천킬로미터의 그린벨트 한 가운데 자리한 작은 도시. 기후변화 저지에, 주민들 먹을거리까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이들을 찾아 떠납니다.

고비 사막으로 가는 대초원 한가운데서 맞은 석양. ‘신선이 사는 곳에 진 노을’을 ‘자하’(紫霞)라 한다는데, 딱 그 겁니다. 12시간 열기를 뿜으며 세상을 밝힌 태양. 그 덕에 초원을 달 려온 행성 지구 여행자들. 곤한 몸을 누이며 내일의 꿈을 꿔야 하는 시간. 게으른 이들에겐 언감생심. 드넓은 대지 얼마나 더 달려야 목적지에 다다를지 알 수 없으니까요.
 
‘배부를 때 음식을 장만하고, 더울 때 옷을 챙긴다’는 몽골 속담이 있다지요. 자줏빛 노을을 즐기려면 서둘러 여정을 마쳐야 하는데. 양치기가 해 지기 전 염소와 양을 우리에 몰아넣듯이. 벼락치기로 공부하고, 밤늦도록 일하고, 것도 모자라 날밤 새우는 사람들에겐 그리 안 됩니다. 자하를 알 턱이 없고, 석양을 관조한 기억조차 없는 데.

▲ 툭신 자르갈 사잉차강솜 부솜장 겸 주민대표(사진 가운데). 조림사업을 처음엔 의심했는데, 이젠 가능성을 확인했고 국가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푸른아시아와 고양시에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 최방식

‘자하’ 드리운 고즈넉한 대초원

노을 진 대초원에 잠시 멈춰 섰습니다. 찬란해 마주하기 힘든 태양. 고된 여정을 마치고 열기가 식어 쳐다볼 수 있는 찰나. 다시 뜨겁게 불타 떠오를 테지만, 잠시나마 그 노고에, 거룩함에 경의를 표하려고요. 드넓은 초원, 바람에 실려 오는 대지의 속삭임도 들어 보고요.

더 이상은 못 참을 ‘생리현상’도 해소해야 합니다. 사방천지 어디에도 가릴 게 없는 대초원. 남자야 그럭저럭 해결한다지만, ‘도시 여자’들에겐 참 민망한 곳입니다. 아는 이들은 우산을 가져온다는데, 준비한 이 없으니. 어둑어둑 해질녘 해결하는 게 그나마 나은 선택이지요.

‘좌우로 가르자’고 했습니다. 차가 멈춰 선 자리를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으로 갈리는 것이죠. 여성이 한 곳을 선택하면 나머지를 남자가 차지하고, 몽골인들 말마따나 ‘말 보러’ 가는 것이지요. 하찮은 일이지만 여러 차례 그리했지요. 민망하게도. 살아있음이니, 어쩌리까.

낯선 게르를 찾아들길 두 번. 유목민 젠드를 만나 마유주를 대접받고 수다를 떨다 그만 여행길이 야심해지고 말았습니다. 울란바타르에서 남쪽으로 6시간여를 달렸는데, 얼마나 더 달려야 할지 아는 이가 없습니다. 내비게이션 수치로도 가늠할 길이 없는 곳. 어둠이 내립니다.
 
▲ 푸른아시아와 고양시가 5년째 가꾸는 숲. 일산 호수공원 절반에 해당하는 50ha 사막에 20만그루의 나무를 가꿔 이젠 ‘숲’ 티가 납니다.     © 최방식


몽골 남서에서 북동쪽으로, 그리고 내몽골자치구까지 동서로 1천6백km, 남북 8백km에 이르는 거대한 땅 고비사막. 남한 땅의 14배 가까운 황무지. 몽골 남부 아이막(도, 광역행정구역) 7개를 모래와 자갈로 덮은 땅. 북의 알타이산맥과 스텝, 남의 티베 트고원, 동의 화북평원으로 둘러싸인 곳.

이 거대한 고비사막에서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솟아오르는 황사. 1백만톤의 흙먼지가 편서풍을 타고 황해를 넘어 한반도와 일본, 멀리는 태평양을 넘어 북아메리카 서부까지 뒤덮습니다. ‘노란 공포’는 한반도에만 8만톤(15톤트럭 5천대분)의 미세먼지를 뿌리지요.

‘좌우로 갈라’, 말보러 가다

2002년 기록을 보면 그 가공할 피해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14일간 한반도를 덮쳤는데, GDP의 1%에 가까운 피해를 끼쳤죠. 1인당 피해액이 12만원에 이를 정도. 건강·교육 피해뿐 아라, 반도체 등 정밀기기 불량률이 치솟고, 조선소 페인트·용접 공사를 불가능케 하며, 휴대폰 중계기가 말썽을 일으키고, 비행기가 고장나거나 결항되는 사태까지.

몽골은 이 거대한 고비사막의 북서진을 막으려고 남서에서 북동으로 3천7백킬로미터에 이르는 ‘만리 나무장성’을 쌓고 있습니다. 그 그린벨트 중간에 있는 곳이 바로 여행자들이 찾아 나선 만달고비 사잉차강솜. 남부 3개 고비(사막) 중 가운데 자리한 돈드고비의 아이막(도) 청사가 있는 곳이 만달고비(시)입니다.

한국의 국제환경단체인 (사)푸른아시아가 고양시 등 국내 자치단체 또는 기업의 후원을 받아 조림사업을 하는 곳. 1990년만 해도 사막화가 국토의 46%에 불과했던 몽골. 이젠 90%를 넘어섰으니 발등에 불. 다급해진 몽골 정부가 사막화 저지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는데, 그 전선 한가운데 제법 멋진 숲이 조성됐다고 해 찾은 겁니다.

▲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오랑 비릴크씨. 3년간 조림장에서 일해 온 아이 셋을 둔 여성 가장. 사막화저지에 생계걱정까지 해결해 보람차다고 합니다.     © 최방식


바람을 가르고 초원을 가로질러 당도한 만달고비. 5년째 조림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한승재 박사(푸른아시아 팀장)와 단원이 일행을 맞이합니다. 밤이 늦어 걱정했는데, 다행히 식당이 문을 닫지 않았네요. 하르호름(흑맥주 이름, 13세기 몽골수도 이름)과 아틍고비(라이트맥주)를 시켜놓고 늦은 사막의 밤을 맞습니다.

조림지 투어에 앞서 사잉차강솜(군, 행정관청)을 찾았습니다. 솜장은 휴가를 떠났고, 툭신 자르갈 부솜장(26·남) 겸 주민대표(솜의회 의장)가 맞이합니다. 푸른아시아, 고양시 등 만달고비 숲 가꾸기에 참여해온 모든 분들께 감사인사를 건네고, 현황을 들려주네요.

“푸른아시아가 모래사막에 나무를 심는다기에 참 궁금했죠. 심는 거야 우리도 할 수 있는데, 그 뒤가 관건이었거든요. 5년만에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솜장 지시로 나무 수와 종류, 성장도 등을 조사할 겁니다. 한 박사 도움을 받아 공무원들에게 조림행정을 교육시키고 숲을 확장하려고요.”

황사 1백만톤 흩뿌리는 재앙의 땅

사잉차강솜은 이제 조림모델을 인정받아 아이막 주민의회에서 녹색개발지구로 선정된 상태. 행정․재정적 지원을 받을 할 수 있게 됐답니다. 돈드고비 아이막에 15개 솜이 있는데, 나머지 14개 솜도 조림사업을 하겠다고 선언한 상태. 델그르초트솜 등 2개 솜은 이미 시작했고요.

그는 특히 생계용 일거리가 없는 지역에서 숲가꾸기로 일자리(먹을거리)를 만드니 주민들이 좋아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여름 3개월 2백~3백명의 고용효과를 내고 있다면서요. 주민들이 사업에 적극적이라고 합니다. ‘행정도 만족, 주민도 만족’, 일거양득인 셈이네요.

▲ 아이 셋을 키우며 남편과 함께 이곳에서 일하는 낫승바트씨. 자라는 나무가 꼭 친자식 같다는 그녀. 황량한 사막에 숲이 우거진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는 2․3조림장 조장.     © 최방식


솜 중심을 조금 벗어나니 황량한 사막. 멀리 거대한 초록의 물결이 다가옵니다. 1년에 10ha씩 5년간 땀 흘려 일군 숲. 모두 50ha이니 일산 호수공원 절반 크기의 사막에 나무가 크고 있는 겁니다. ‘고양의 숲’ 팻말 뒤로 가장 먼저 조성된 5살 조림지. 제법 ‘숲 티’가 나네요.

여남은이가 양동이로 물을 퍼 날라 나무뿌리에 붓고 있습니다. 주민 한분을 붙들었습니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오랑 비릴크(46). 3년간 4~10월 조림장에서 일해 온 아이 셋을 둔 여성 가장입니다. 솜청 알선으로 이곳에 왔는데, 전에는 생계비 마련을 못해 정부보조금만으로 근근이 버텨왔다고 했습니다.

“여름철 땡볕에서 일하는 게 좀 힘들긴 하죠. 하지만 가족 생계에 큰 도움을 주니 고맙죠. 이렇게 내가 물을 준 나무가 무럭무럭 자라는 걸 보면 흡족하지요. 사막화 방지와 내고향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더 보람차고요.”

이웃 조림장에서 역시 물주기를 하는 이를 한명 더 만났습니다. 아이 셋을 키우는 낫승바트(45)씨. 남편과 함께 3년전부터 일하고 있는 여인. 타지로 이주했다, 2010년 다시 들어왔는데, 시어머니가 정보를 줘 들어오게 됐다고 했습니다. 15명의 일꾼을 관리하는 2·3조림장 조장. 여름만이 아닌 1년 내내 일하는 분이었습니다.

행정도 만족, 주민도 만족

“저희들이 심고 가꾸는 나무가 자라는 걸 지켜보노라면 꼭 친자식 같아요. 이 황량한 사막에 나무가 자라고 숲이 우거진다는 게 저희도 믿기지 않아요. 이 나무와 숲이 모래 이동을 막고 사막화를 저지한다니 자부심을 느끼며 일하죠.”

생계수단이 궁금해 한승재 박사에게 물으니, 대략 이렇습니다. 여기서 일하고 법정 생계비 수준의 노임을 받는답니다. ‘차차르간’이라는 유실수에서 얻는 과일은 부수입이고요. 여름에만 일하니 일없는 철엔 정부 생계보조금을 받는다 네요. 양묘(묘목 재배) 부수입도 곧 생길 것이라네요.

▲ 17차선, 50차선, 그저 가는 곳이 길인 초원. 이런 길이 사막화를 부채질 한다고 합니다.     © 최방식


조림장을 돌다 땡볕에 지친 여행자들. 목이 마르고 시장기가 들 즈음 다시 호텔 식당에 둘러앉았습니다. 점심을 주문하라는데, 어제 밤 피로를 싹 날렸던 맥주부터 간절합니다. 밥은 익숙해진 ‘운득테호르크’. 계란볶음밥인데, 계란은 조금이고 양고기가 1/3을 차지하죠.

한 박사 점심을 먹다말고 투덜대기 시작합니다. “음식이 이래야 맛있는데, 세상에 낙타불고기라니.” 단원 김화준씨 이야깁니다. 5월에 만달고비에 와 10월까지 있기로 한 분. 요리를 즐기는 김씨가 퓨전요리를 시도하는 모양인데, 한 박사가 맛이 형편없다고 그런 겁니다. “그런 거 개나 주지.”

가만있을 김화준씨 아니죠. “아니, 갈수록 나아지고 있는데 왜 그래. 안하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않습니까. 삼겹살이나 불고기가 없으니 낙타나 양고기로라도 해먹어야지. 어찌하겠습니까.” 한 박사 한마디 더. “지난번 여기 야생풀을 뜯어 전을 부쳤는데, 몽골인들 줬더니 안먹었어요.” 김씨는 웃고 있습니다.

한 박사는 5년전 처음 왔을 때를 회고했다. 풀한 포기 안보이고, 비라고는 구경할 길이 없어 낙담했던 시절. 나무를 심고 물을 주면서도 맘속으로 ‘될까?’를 수없이 외쳤던 때. 흙속에 숨어있던 풀씨들이 다시 고개를 내밀고 초원이 되살아나는 보고 그는 “이제 됐다”고 쾌재를 불렀다고 했다.

나무바다 만들기, 사람을 심어라

“주민들 정말 회의적이었죠. 나무를 심고 주변에 풀이 자라기 시작하니 유목민들이 오더군요. 풀을 찾아서. 가축들은 풀이 무성한 울타리 안으로 넘어오려 하고요. 냉랭한 주민들의 시선을 얼마나 버텼을까요. 50ha 땅에 20만개가 넘는 나무가 자라고, 일하는 이가 서른을 넘겼는데, 이제야 차가움이 사라졌어요. 된다는 생각을 굳혔습니다.”
 
▲ 가축과 사람, 그리고 식물이 같이 사는 대초원. 누가 누구더러 길을 비키라고 하겠습니까? 그 땅의 주인에게.     © 최방식

2003년 푸른아시아가 처음 몽골에 와 나무를 심었을 때, 조림성공률 0%. 주민참여율 0%. 그 아픔을 딛고 이젠 5곳 조림장 모두 성공했다. 한 박사는 어릴 쩍 한국의 민둥산과 썩은 냄새가 코를 찌르던 중랑천을 기억한다고 했습니다. 푸르고 맑은 산하가 됐듯, 몽골 땅에도 그 희망을 심는다고요.
 
“몽골엔 바다가 없잖아요. 작은 강과 개천만 조금 있으니까요. 그러니 이들은 나무는 알지만 숲이 뭔지를 모릅니다. 그런 그들에게 ‘나무 바다’를 선물하는 것이죠. 숲이 생기면 사막화를 막고, 초지가 늘며, 일거리가 생긴다는 사실을 일깨우고요. 푸른아시아가 몽골에서 깨달은 건 딱하나. ‘나무 아닌 사람을 심어라’죠.”

햇볕에 검게 그을린 한 박사. 단짝 김화준 대원. 몽골 사막 한가운데서 사람과 희망을 심고 키우는 녹색전사들. 하룻밤새 정이 들었는지 아쉬워하는 그들을 뒤로 하고 여행자들은 다시, 길고 긴 롤러코스터 방석에 앉습니다. 초원길이 늘 평평하지만은 않아서요. 천정에 머리를 찧기 일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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