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은 세상을 이해하는 본질”

김계유의 주역읽기③ 세상의 진리 담은 변역·불역·간역 원리...

김계유 | 기사입력 2007/12/16 [09:25]

“주역은 세상을 이해하는 본질”

김계유의 주역읽기③ 세상의 진리 담은 변역·불역·간역 원리...

김계유 | 입력 : 2007/12/16 [09:25]
앞서 밝혔듯이 역(易)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우선 떠올리는 것이 점치는 기능이다. 우리의 앞날을 꿰뚫어 보고 거기에 대한 길흉을 판단해 내는 역할, 일종의 점서적인 성격이다.

틀린 생각도 아니다. 공자나 그 정신의 계승자들에 의해서 강조된 삶의 의리적인 측면은 어쩌면 별개의 관점에 지나지 않는다.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대체로 점치는 책으로서의 이미지를 주역에서 떠올리는 것이 더 일반적이다.

반면 다른 한쪽의 목소리는 색깔이 이와 전혀 다르다. 즉 그들은 역이야 말로 이제까지 인간이 구축해온 그 어떤 학문보다 가장 우수하며 인간의 사유체계를 보여주는 것들 중에서 가장 수준 높은 철학적 세계의 결정물이라는 주장이다. 

역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이와 같이 극과 극을 달린다. 때문에 역에 대한 접근을 시도하고자 할 때, 먼저 역이 무엇일까를 설명하기보다는 우리 문화 전반에 어떤 식으로 역의 이치가 자리를 차지하고 들어앉아 있는지를 먼저 살피는 것이 순리다.

 “易인식 극에서 극으로”

 우리의 전통 문화유산으로 한때 국민들 사이에 논란의 대상이었던 국보 1호 남대문을 먼저 생각해보자. 남대문은 본래의 명칭이 예를 숭상한다는 숭례문(崇禮門)이다. 숭례문은 동쪽의 흥인문(興仁門), 서쪽의 돈의문(敦義門), 북쪽의 숙정문(肅靜門)과 함께 우리의 수도 서울의 중심부를 에워싸고 있던 4대문의 하나였다. 그런데 왜 이들 수도의 사대문을 이와 같은 명칭으로 정해 부르게 되었을까?

그것은 옛 우리 조상들의 정치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나라의 정치가 소수의 위정자를 위하는 데 있지 않고 항상 국민들을 위하고 세상을 위하는 것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흥인문(興仁門)은 주역에서 말하는 봄의 덕(元德)이다. 돈의문(敦義門)은 하늘의 마땅한 이치를 돈독하게 한다는 가을의 덕(利德)이다. 숭례문(崇禮門)은 하늘의 법도를 숭상하고자 하는 여름의 형통한 덕(亨德)을 반영하고 있다. 숙정문(肅靜門)은 겨울에 찾아볼 수 있는 물의 지혜로움을 상징하는 용어(貞德)다.

모두가 역에서 말하는 ‘원형이정(元亨利貞)’의 덕을 상징한다. 만물을 선하게 하고 형통하게 하며 만물을 이롭게 하고 바르게 하는 덕을 나타내는 역의 이치가 우리의 정치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글자로 인정되는 한글도 마찬가지다. 한글 모음은 역에서 말하는 음과 양의 이치를 ㅡ와 ㅣ로 본떴으며 아야어여, 오요우유는 태양(太陽), 소음(少陰), 태음(太陰)의 사상(四象)에 해당한다.

자음에서는 더욱 구체적이다. ㄱ ㅋ은 목(木)에 해당한다. ㄴ ㄷ ㄹ ㅌ은 오행상 화(火)다. ㅁ ㅂ ㅍ은 오행상 토(土)다. ㅅ ㅈ ㅊ은 금(金)이다. ㅇ과 아래 ㅇ은 오행상 수(水)다. 모두가 역의 이치다.

 “4대문·한글 모두 易이치...”

 목성에 속하는 ㄱ을 예로 들어보자. 목성은 소리의 성질이 꼿꼿하고 물건이 땅에 닿아 나올 때 까끄라기를 머리에 이고 있는 듯 한 느낌을 풍긴다. 오성으로 말하면 각(角)에 속한다. 각은 아래로 변궁을 발생케 하고 위로 변치를 상생(上生)한다. 이하의 모든 자음이 대체로 이와 같다. 그 순서는 하나의 오행이 다음의 오행을 살리면서 전개된다. (木生火, 火生土, 土生金, 金生水, 水生木의 순서)

그뿐일까? 나라를 상징하는 태극기를 주목해 보라. 그도 바로 역이다. 그밖에 한의, 생활 속의 도깨비 설화 등 어느 것 하나 역의 이치를 떠나 따로 생각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역의 이치는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나는 그 대답에 앞서 먼저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은 세상을 어떤 눈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까뮈의 시지포스 신화에 보면 끝없이 산 위로 돌멩이를 밀어 올리는 사내의 이야기가 나온다. 밀어 올리다 보면 밑으로 굴러 떨어지고 밀어 올리다보면 다시 굴러 떨어진다. 우리의 삶이 시지포스의 신화와 조금도 다를 게 없다. 주역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시지포스의 신화를 생각해보면 된다.

즉 이것은 역경의 관점에 대한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나의 삶도 시지포스의 삶을 닮지 않았는가? 그래서 우리는 그 질문 끝에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 되물어야 한다.

나는 세상의 이치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그것은 역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첫 번째 질문이다. 그런데 거기에 대한 대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역에서는 세상의 온갖 만물은 변하고 바뀌는 이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이른바 바뀐다는 의미의 변역(變易)이 곧 역(易)이다.

모든 사물은 끊임없이 변하고 바뀐다. 봄이 왔는가 하면 여름이고 여름은 다시 가을을 거쳐 겨울로 바뀐다. 시간은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은 세상의 이치를 역은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세상의 참 이치이자 뜻...

 이를 하나의 부호로써 바꾸면 음과 양이고 수로써 표시하면 9와 6이 된다. 그래서 다른 말로 나타내면 음양학 혹은 9 ․ 6학이 된다. 9는 1부터 10까지의 수 가운데 다 자란 양을 나타내는 수, 6은 1부터 10까지의 수 가운데 다 자란 음을 나타내는 수이다.

다만 세상은 수시로 변하고 바뀐다는 이치는 결코 변하는 법이 없다. 또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며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어머니는 어머니다워야 하는 이치 이것은 불변이다. 그래서 역에는 변하지 않는다는 불변의 개념인 불역(不易)이 포함되어 있다.

셋째 간역(簡易 혹은 易簡)이다. 세상의 진리는 쉽고 간단하다. 봄이 오면 양이 활동하고 가을이 되면 음이 점점 성해지기 시작하는 이치, 하늘이 주장하고 땅이 받아들여 세상의 만물을 전개하는 이치, 그것은 어떤 계산 아래 복잡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봄의 따뜻한 기운이 들녘의 꽃 한 송이를 키우는 데 학습을 필요로 하는가? 이것은 세상의 진리는 쉽고 간단하다는 역의 세 번째 의미다. 변역(變易), 불역(不易), 간역(簡易) 이 세가지 이치는 세상의 근본 이치이기도 하고 역의 참된 뜻이다. <다음 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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