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흔은 시종일관 약과 독의 도리를 강조했다"

[연재소설] 홍매지숙명(紅梅之宿命) 피다, 14장 임의침묵(14-2)

이슬비 | 기사입력 2017/12/19 [10:18]

"유흔은 시종일관 약과 독의 도리를 강조했다"

[연재소설] 홍매지숙명(紅梅之宿命) 피다, 14장 임의침묵(14-2)

이슬비 | 입력 : 2017/12/19 [10:18]

제14장 임의 침묵(2)

<지난 글에 이어> 
운한의 양자가 되어 금족령에서 풀려나지 않는다면, 서란이 금족령에서 풀려날 방법은 한씨가의 제2후계가 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서란이 제2후계가 되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의 제2후계인 윤희가 죽는 것이었다

우리 화야, 지금 누구보다 무섭구나.’
 
지금 서란은 누구보다 무서울 것이었다. 서란은 이제 겨우 열 살이었다. 열 살 어린아이가 사람을 죽이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윤희를 죽이는 일은 서란이 무섭다하여 피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서란은 한씨가의 후계였다. 서란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무서워한다면, 서란은 절대 한씨가 가주의 자리에 오를 수 없었다.
 
그날부터 유흔은 서란에게 사람을 죽이는 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유흔은 가유에 와 있는 구하의 무역상들과 은밀히 접촉해, 구하의 의서를 구해 서란에게 본초학(本 草 學)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약이 되는 식물을 독으로 만드는 법과, 독이 되는 식물을 약으로 만드는 법을 가르치는 내내 유흔은 시종일관, 약과 독의 신묘한 도리를 강조했다.


아무리 약이 되는 식물이라도 적당한 양을 넘겨 복용하면 독이 되고, 또 아무리 독이 되는 식물이라도 적당한 양을 복용하면 약이 된다.


또한 약이 되는 식물을 어떻게 법제(法 製)하느냐에 따라 독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는 식물을 어떻게 법제하느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세상에 이보다 더 신묘한 도리가 어디 있을까.
 
유흔이 약과 독의 신묘한 도리를 거듭 강조하는 동안, 서란은 내내 굳은 얼굴을 하고, 자신도 모르게 덜덜 떨리는 손가락을 애써 꽉 말아 쥐고 있었다.


서란은 의서를 한 장 한 장 넘겨갈 때마다 두려움이 가득 담긴 눈으로 유흔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유흔은 그런 서란을 애써 외면하며, 보현이 구해온 식물들을 서란의 손에 쥐어주었다.
 
, 화야, 조금 전에 어디까지 설명했지?”


…….”

 

조금 전에 자리공에 대해서 설명했지?”


…….”


, 화야, 자리공이 뭐라 그랬지? 뿌리를 살충제로 쓸 만큼 독성이 강한 식물이라고 그랬지? 하지만 그 뿌리를 말려서 약으로 쓸 수 있다고 그랬지? , 어디에 약으로 쓴다 그랬더라?”


소변이 잘 나오지 않을 때, 복수(腹 水)가 차거나 헛배가 부를 때, 각기병이나, 인후염에. 그리고 가루로 만들어 기름에 개서 붙이거나 생잎을 짓찧어서 붙이면, 피부에 수포가 생길 때와, 악성종기에 좋다 그랬어.”


그래, 맞아. , 그러면 자리공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 볼까?”
 
유흔은 탁자 밑에서 바구니를 꺼내어 올려놓았다. 탁자 위에 놓인 바구니 안에는 산머루처럼 생긴 열매를 주렁주렁 매단 긴 뿌리와, 꽃받침이 달걀처럼 생긴 회색 꽃이 들어 있었다. 유흔은 그것들을 마키리로 잘라 나눈 다음, 부분별로 설명을 시작했다.
 
, 이게 자리공 잎이야. 이렇게 잎이 서로 어긋나 있고, 피침(鈹 鍼)처럼 생겼어. 보다시피 양끝이 좁고, 길이는 한 촌() 도 안 돼. 간혹 가다, 한 뼘 정도가 되는 것들도 있지만. 가장자리는 이렇게 밋밋하고.”
 
자리공의 잎과, 줄기, 뿌리와, 꽃과, 열매까지 설명을 마친 유흔은 서란과 함께 우물가로 나갔다. 우물가에는 보현이 미리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 화야, 이제 자리공을 직접 씻어서 말려볼 거야. 자리공을 어떻게 하면 약으로 쓸 수 있는지, 또 어떻게 하면 독으로 쓸 수 있는지 직접 법제하면서 알아보자.”
 
그러나 서란은 자리공을 집어 들지 않았다. 보현이 두레박으로 길어 올린 물을 동이에 담고, 열매를 노란 종이봉투에 넣어 품 속에 숨겼다. 서란은 그런 보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곧 입을 열어 원망을 표했다.
 
나 보현이 미워지려고 해.”


…….”


나를 위해서 무엇이든 하라 했잖아. 그런데 왜 유흔의 말대로만 해? 나 이런 거…….”


무섭다고요?”
 
보현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노예경매시장에서 만난 이후로 처음 보는 보현의 모습에, 서란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렇다면, 아가씨께서는 어떻게 금족령에서 풀려나실 거예요?”


…….”


운한 마님의 양녀가 되는 것도 싫다 하셨잖아요. 대신, 아가씨를 금족령에서 풀려나게 해줄 사람으로 저와 공자님을 선택하셨잖아요.”


…….”


그때부터 이미 각오하신 일 아니었어요? 윤희 공주님의 숨을 거두고, 그 자리를 차지하시기 위해, 저와 공자님 앞에서 파르바티와 샤르한의 이야기를 꺼내신 것 아니었어요?”
 
서란은 마지못해 자리공 뿌리를 집어 들었다. 자리공 뿌리를 깨끗이 씻고, 돗자리에 널어 말리는 내내 서란의 표정은 눈에 띄게 굳어 있었다. 서란은 자리공 줄기와, 잎과, 꽃을 마저 씻어 돗자리에 널고, 산머루처럼 생긴 열매를 바라보았다.
 
깊은 산속에서만 자라는 산삼과 달리, 자리공은 어디에서든 볼 수 있는 식물이라, 사람들이 도라지나 더덕으로 착각하고 먹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도라지나 더덕처럼 생으로 먹고, 나물로 만들어 무쳐 먹고, 볶아 먹고, 구워 먹다, 심한 복통과 설사, 구토와 경련 등의 증상을 일으키고, 끝내는 죽음에 이르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자리공은 그 뿌리와 줄기, 잎만 놓고 보자면 생김새가 도라지나 더덕, 산삼 같은 삼() 종류와 흡사했다.
 
무엇보다, 자리공의 열매는 그 생김새가 산머루와 비슷했는데, 이를 잘 모르는 아이들이 열매를 간식 삼아 따 먹다, 심한 복통과 설사, 구토와 경련 등의 증상을 일으키고, 끝내는 죽음에 이르는 일 또한 허다했다.
 
서란은 자리공 열매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만약, 독으로 윤희를 죽인다면, 자리공 열매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을 터였다. 일 년의 절반이 넘는 시간이 겨울일 정도로, 차갑고 혹독한 기후를 가진 가유에서는 산머루를 흔히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윤희는 산머루를 무척 좋아했다

<다음 글에서 계속>

알바노동자, 여성, 정신장애인, 성소수자. 노동자와 다중소수자라는 정체성 속에서 길어올린 이야기. 해방세상이 와도 탄압받을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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