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안 갔어43] 오지도 않을 버스

백은선 여행작가 | 기사입력 2018/07/16 [09:11]

[학교를 안 갔어43] 오지도 않을 버스

백은선 여행작가 | 입력 : 2018/07/16 [09:11]

아들아,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끔은 오지랖도 필요하단다. ‘오지랖이 넓다’는 말이 있는데 물론 조금 부정적인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아빠는 긍정적인 측면에서 너희들에게 얘기하고 싶어.

 

▲ 크라쿠프의 비 오는 버스 정류장에서

 

‘오지랖’이란 원래는 옷의 앞자락을 의미하는 말이란다. 옷의 앞자락이 넓으면 몸이나 다른 옷을 넓게 겹으로 감싸게 되는데, 여기에서 나온 ‘오지랖이 넓다’는 말은 간섭할 필요도 없는 일에 주제넘게 간섭하는 사람을 비꼬아서 하는 말이 된 거지. 물론 의미 자체는 좋은 뜻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것이 지나쳐서 남에게 귀찮게 하는 결과만 가져오지 않는다면 아주 의미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해. 오히려 남을 배려하고 감싸는 마음이 넓은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단다.

 

요즘은 오지랖이 넓은 게 문제가 아니라 반대로 타인에게 매몰차거나 무관심한 세태가 되어서 조금 안타깝구나. 사실은 아빠도 예전과 다르게 말도 아끼게 되고 굳이 나서지 않으면서 살게 되긴 하지만, 그래도 너희는 모르는 타인의 아픔과 어려움을 잘 공감하고 가능하다면 행동으로 보여 주면서 살았으면 좋겠구나. 그러면 우리가 오늘 받은 폴란드 아줌마의 오지랖 때문에 행복해한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을 위기에서 구해 줄 수도 있고 짧은 순간이나마 마음 뿌듯하게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우리는 오늘 폴란드의 옛날 수도로 바르샤바 이전 500여 년간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인 크라쿠프에 있다. 폴란드는 사람들도 친절하고 외국인들에게도 호의적이고 물가도 싸서 가장 마음에 드는 유럽 나라 중에 하나가 되었단다. 세그웨이를 타고 중세 고성과 교회 등을 둘러볼까 했는데 예약이 마감되어 걸어서 돌아다니기로 했지.

 

유럽의 각 도시마다 있는 광장 중 가장 넓다는 시장광장을 시작으로 매시간 직접 나팔을 부는 성 마리아 대성당, 의류와 각종 기념품 가게가 엄청나게 많은 직물회관, 유대인 지구, 폴란드 왕들이 살았다는 바벨 성을 둘러보고 광장에 다시 돌아와서는 배낭여행객으로서는 사치일 수 있는 멋있는 말들이 이끄는 고급 마차 투어도 처음으로 했어. 마차와 마부 모두 기대 이상이고 내부 자리도 너무 편해서 정말 왕이 된 듯한 기분이었지. 마차는 내부도 고급스러울 뿐만 아니라, 이동 중에 비가 조금 내렸는데 자동차 오픈카처럼 지붕이 씌워지니 너희는 신기하다고 소리를 지르며 좋아했지.

 

▲ 유럽 광장 중 최대라고 하는 크라쿠프 구시가의 시장광장

 

이제는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갈 시간이라 여러 번 묻고 물어서 164번과 503번이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꽤 걸어서 갔단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503번 버스는 오지 않자, 너희는 힘들고 배고프다고 불평하기 시작했어. 그때 나이 드신 폴란드 아주머니가 조심스럽게 다가오시더니 이해 못하는 폴란드 말로 뭐라 하시는 거야!

 

“Weźmy na innym przystanku.”

 

“뭐라고요? 여기가 503번 버스 타는 곳이 맞는데요?”

 

“Nie ma autobusu tutaj sobota Chanat Kara Kitajów.”

 

”Pan nie ma 503 autobus dziś.”

 

“Autobusem po drugiej stronie drogi 164 razy.”

 

“죄송해요. 알아들을 수가 없네요.”

 

”Proszę wziąć autobus na innym przystanku!”

 

“예?”

 

그분은 한참 동안 폴란드 말로 뭐라 하시고, 아빠는 이해를 못해서 손짓 발짓해 가며 소통하지만 알 수가 없었어. 주변의 사람들도 답답해서 거들어 주는데, 그 뜻을 정확히는 알 수가 없었지. 분위기는 다른 정류장으로 가라는 것 같은데 정확히 알 수가 없으니 바로 움직이기도 애매한 상황이었어. 다행히 조금 지나니 영어를 조금 아시는 현지인이 와서 설명해 주셨지. 같은 버스라도 토요일에는 이곳에 정차하지 않으니 길 건너 다른 정류장에 가서 164번을 타라는 것이었어. 고마운 그분께 무어라도 해 드리고 싶은데 방법이 없어 말과 함께 보디랭귀지로 감사를 표시하고 서둘러 다른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했지.

 

언어가 통하지 않지만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우리는 무사히 캠핑장으로 돌아올 수 있었어. 그리고 처음으로 시도해 본 아빠표 아이스 바인(Eisbein, 족발과 유사한 독일전통음식)을 너희들은 아주 맛있게 먹고 하루를 마감했지. 폴란드 아주머니의 오지랖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맛있는 저녁도 먹지 못하고, 아마 시내에서 한참을 헤매다 결국 택시를 타고 간단한 빵으로 저녁을 해결했을 거야. 만약 그분도 많은 보통 사람처럼 외국인이 무얼 하든지 신경 쓰지 않고 내버려 두고 본인의 갈 길만 가셨다면, 우리는 비를 맞으며 아주 힘든 경험을 했겠지?

 

▲ 구시청 탑 아래의 바르텍의 문 조각 속의 눈이 된 두 아들

 

오늘의 경험을 발판으로 삼아 너희들도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배려로 하는 오지랖은 넓어도 좋으니, 관심을 가지고 필요할 때 적극적인 오지랖을 보여 주렴! 마음씨 좋은 아주머니의 영향도 있지만 이제까지 모든 나라 중에 아빠는 이곳 폴란드가 제일 좋구나! 기회가 된다면, 아니 만들어서라도 이 나라에서 한번 살아 보고 싶다.

 

아빠 조언: 가끔은 오지랖이 넓어도 좋다.

아들 생각: 언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해지네요.

 


원본 기사 보기:모르니까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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