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때 거꾸로 든 승려와 사프란혁명

데스크칼럼 "불교 나라에서 승려를 죽이고 패며 독재를 유지?"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7/10/05 [15:21]

바리때 거꾸로 든 승려와 사프란혁명

데스크칼럼 "불교 나라에서 승려를 죽이고 패며 독재를 유지?"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7/10/05 [15:21]
무소유로 깨달음을 좇는 승려들이 후학이나 제자들에게 남기는 게 두 가지가 있답니다. 하나는 깨달음이고 또 하나는 의발(衣鉢)이죠. 가르침이야 누구든 깨닫는 자가 받을 겁니다. 하지만 옷과 바리때는 좀 다릅니다. 하나뿐이어서 아무에게나 줄 수가 없으니까요. 법통을 잇는 사람에게만 전할 수 있겠죠. 한데, 버마의 승려들이 이 바리때를 거꾸로 들고 길거리에 나서 세계인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사프란으로 물들인 진노랑 가사를 입고서요.

버마는 국민 90% 이상이 독실한 불교신자인 국가입니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2500년 믿고 따라온 나라죠. 공식 승려 수만 40만이 넘는 다고 그럽니다. 남자는 공식 승려가 되겠다는 사람이 아니라도 짧게는 몇 달에서 길게는 몇 년간 승려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두가 승려이고 누구든 승려를 존경하죠. 한데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들이 그토록 분노한 것일까요?

겉으로는 이렇습니다. 지난 8월 15일이었습니다. 군부가 유가의 정부보조를 없애자 디젤, 석유 등 기름 값이 2~4배로 뛰었습니다. 대중교통비가 천정부지로 올랐고, 서민은 월급 받아 차비 대기도 힘든 지경이 돼 버렸죠. 결국 나흘 뒤 양곤에서 민주화운동 지도자와 야당 지도자 등 5백여명이 물가상승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더러운 보시 안 받겠다”
 
군부는 시위를 주도한 민주화운동가 13명을 현장에서 체포했죠. 그러자 ‘88세대’(1988년 민주화투쟁을 주도했던 학생지도자)들이 며칠 사이 소규모로 거듭 시위를 벌였고 그 때마다 군부는 주동자를 붙잡아 들였죠. 정작 사고는 9월 5일 터졌습니다. 버마 중부의 불교도시인 파코쿠에서 승려들이 작은 시위를 벌였는데 진압경찰이 구타·폭행하고 공포탄을 쏜 겁니다.

▲ 사프란혁명의 주역인 버마의 승려들. 군부독재의 탄압에 바리때를 거꾸로 들고 길거리로 나섰다.     © 인터넷저널


버마 사회에는 두 지배계층이 있습니다. 하나는 정신적으로 지배하는 승려죠. 또 하나는 물리적 힘을 가진 군부입니다. 그 수나 빈민층 출신인 게 비슷합니다. 대부분이 젊다는 것도요. 군부는 승려의 지지에 힘입어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군부가 승려를 공개적으로 구타했으니 이 얼마나 큰 모욕이었겠습니까? 승려를 신뢰하는 국민의 분노는 또 얼마나 컸겠습니까?

승려들이 길거리에 나선 겁니다. 겉으로는 존경한다고 하면서 자신들을 능멸한 군인을 용서할 수 없었던 거죠. 그들의 보시를 더 이상 받지 않겠다고 한 겁니다. 한쪽은 보시를 하고 한쪽은 축복을 하는 상호신뢰의 끈을 끊은 것이지요. 10여일간 승려들은 양곤과 만달레이에서 항의행진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군부는 더 잔혹하게 나왔습니다. 때리고, 체포하고, 사원을 부수고, 심지어 총까지 쏘아댄 겁니다.

겉으로야 단순해보이지만 속을 살펴보면 좀 더 복잡합니다.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는 정통성이 없어 그간 승려 지도부를 매수해왔다고 합니다. 그 결정판은 1999년. 버마에서 가장 성스러운 사원인 쉐다곤 파고다를 황금으로 치장한 것. 원추형 종탑과 왕관 장식에 황금 53톤과 다이아몬드 4천341개를 들였답니다.

버마에서 불탑을 정비하는 건 왕과 적법한 지도자에게만 허용되는 대불사. 따라서 군부는 이 장식에 돈을 쏟아 붓고 숨죽여 기다렸답니다. 정통성이 없는 자가 이런 일을 하면 번개, 천둥, 홍수가 난다고 불가에 전해지고 있었으니까요. 설상가상인지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고, 군부는 불교계 지도부를 매수하는 데 성공했답니다.
 
“‘쉐다곤’ 천둥치고 있네요”
 
군부는 불교계의 환심을 산 뒤 이들을 앞세워 각종 국가기관에서 자신들의 부족한 정통성을 보완하는 데 활용했습니다. 사원 축조에 앞장서고, 사원의 재정을 세금으로 후원하고, 각종 불교관련 법을 제·개정을 해주면서요. 그래서 젊은 승려들이 일어난 겁니다.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승려를 정통성 없는 권력유지의 수단으로 악용하는 군부와 이를 눈감아주는 부패한 원로 승려에 대항하려는 것이었지요.

군부가 쉐다곤 파고다를 치장하면서 하늘의 분노를 사지 않아 안도했다고 했죠? 하지만 과연 그랬을까요? 버마의 불교는 식민지 영국이나 군부독재에 대한 저항에도 앞장서왔습니다. 실제 1929년은 버마 불교 역사에 가장 위대한 순교자 승려가 탄생한 해였습니다. ‘유 위사라’라는 분이죠. 영국식민지에 저항해 감옥에서 166일동안 단식투쟁을 하다 사망했습니다.

그 분 동상이 바로 쉐다곤 파고다에 있습니다. 군부독재에 저항하는 승려들의 거센 시위가 시작된 곳도 쉐다곤 파고다입니다. 군부 독재자 탄쉐가 이끄는 군부의 유혈진압이 시작된 곳도 바로 그 곳이고요. 쉐다곤 파고다가 천둥을 치고 있는 거 아닙니까? 정통성 없는 버마의 군부독재자들에게요.

군부는 필사적으로 승려(국민)를 찍어 누르고 있습니다. 그나마 하나 있던 지지축이 무너졌으니 더 악랄해져야 할 테지요. 하지만 어디 그게 되겠습니까? 승려에게 총을 쏘고 매질을 한 것도 모자라 사원 황금부처까지 도둑질 한 군인들에게 누가 또 속겠습니까? 국민 90%가 불자인 나라에서 승려를 패고 죽이는 막나니 군부를 누가 지지한단 말입니까? 사프란혁명은 당연히 이기는 싸움 아니겠습니까?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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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행자 2007/10/08 [19:24] 수정 | 삭제
  • 스님들 힘내세요. 군부독재를 꼭 무너뜨릴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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