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바라는 꿈 하나 ‘늘 푸른 대초원’

[기후변화 현장르포3] 사막화 북서진 차단 ‘나무만리장성’ 가꾸기 5년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13/09/17 [23:53]

몽골, 바라는 꿈 하나 ‘늘 푸른 대초원’

[기후변화 현장르포3] 사막화 북서진 차단 ‘나무만리장성’ 가꾸기 5년

최방식 기자 | 입력 : 2013/09/17 [23:53]

기후변화 저지 국제환경단체인 (사)푸른아시아(사무총장 오기출)와 고양시 후원으로 지난 19일부터 엿새간 몽골의 울란바타르와 돈드고비․바양노르에서 사막화저지 숲가꾸기 현장을 돌아보고 현지 관계자를 취재했습니다. 다섯 차례 나눠 싣습니다. /기자주

말 위에서 태어나 말 위에서 죽는다는 몽골인들. 유라시아를 호령했던 옛 영화는 사라지고 대륙의 한 귀퉁이로 밀려난 칭기즈칸의 후예. 풀과 물을 찾아 가축을 몰고 다니는 삶이 곧 자연이니, 초원을 떠난 적이 없는 유목민들. 지구촌의 대재앙 기후변화로 위기에 봉착한 그들이 간절히 바라는 꿈이 하나 있습니다.

말라가는 대지를 초원으로 되돌리는 꿈. ‘풀이 많은 초원에 가축이 살지 않는다’며 탐욕을 경계해온 유목민들. 뜯길 풀이 사라지면 가축을 몰아 다른 초지로 이동, 풀이 자랄 시간을 주면 그만이었던 이들. 애써 초원이나 숲을 가꿔야 할 이유를 갖지 않던 그들이 생각을 바꿨습니다. 모래바람을 숲으로 막겠다고. ‘유목민 대답은 곧 맹세’라니 고대해봐야지요.
 
▲ 풀과 물을 찾아 가축을 몰고 다니는 초원을 떠난 적이 없는 유목민들. 지구촌의 대재앙 기후변화로 위기에 봉착한 그들이 간절히 바라는 꿈이 하나 있습니다.     © 최방식

▲ 여행자들은 그냥 ‘17차선’이라 불렀습니다. 초원 아무데로나 달리면 길입니다. 흔적이 셀 수 없을 정도지요.     ©최방식


초원엔 길이 따로 없습니다. 흔적을 따르자면, 없진 않지만요. 달리는 자가 곧 길입니다. 여행자들은 그냥 ‘17차선’이라 불렀습니다. 초원 아무데로나 달리는데, 그 흔적이 셀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길은 로마로’라는데, 여기선 ‘길은 울란바타르로’. 세상의 중심 ‘붉은 영웅’에서 동서남북으로 뻗은 포장길 빼면, 그냥 달리는 게 길이지요.

동서남북 길은 울란바타르에서

돈드고비를 오가는 길도 그랬습니다. 갈 때, 올 때가 다릅니다. 내비게이션이 있어도 무용지물. 초원을 수없이 달려본 자 말고는 지름길을 찾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갈 때 9시간이 걸렸는데. 웬걸, 오는 길은 5시간밖에 안 걸린 겁니다. 베테랑 몽골 운전자도 헛갈린다네요.

끝없는 초원을 가다 보면 어쩌다 만나는 ‘푸르공’. 초원과 사막을 여행하는, 이 구형 소련제 승합차. 차체가 높아 초원에 최적화한 성능을 가졌죠. 그리곤 말 탄 목동. 이젠 오토바이 탄 목동이 더 흔합니다. 말이 더 멋지다고 여기는데, 유목민들 생각은 다른 모양입니다. 남미 혁명가 ‘체’ 삶을 그린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포데로사’를 떠울렸습니다.

포장된 길을 달리면 탑승자가 모두 잠이 듭니다. 비포장 길을 가면 그리 할 수가 없죠. 천정에 머리를 찧기 일쑤여서요. 그 덕에 서른 쯤 돼 보이는 통역자 게를레(여)와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죠. 그 중 몽골귀신 이야기가 압권. 상상 속 이미지여서 그런지 형상이 우리와 유사하다네요. 무서워하는 것도 같고.

오랜 사회주의 정권, 몽골에선 전통문화와 샤먼들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종교억압 정책 때문. 음악·춤 등 전통 예술가와 샤먼들이 항가이나 헨티 산맥 깊숙이 숨어들고, 대가 끊길 위기를 겪었다고 합니다. 90년대 개방정치가 시작된 뒤에야 전통문화가 다시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네요.

게를레가 들려준 또 하나 흥미로운 이야기. 몽골에선 남녀(주로 부부)가 싸우면 여자가 이긴답니다. 남자들이 여자에게 완력을 사용하지 않아 그렇다네요. 남자가 가축을 키우는 동안(때론 며칠씩 걸릴 때도) 집안을 살피고 식구를 공양할 아내이니 귀하게 대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여자는 고향이 없다’, ‘말 타고 떠난다’(시집간다)는 말도 그런 배경에서 나왔고.
 
▲ ‘오토바이 탄 목동’이 이젠 더 흔합니다. 유목민들 생각이 많이 달라진 것이지요. 남미 혁명가 ‘체’ 삶을 그린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포데로사’를 떠울렸습니다.     ©최방식
▲ 화력발전소(사진 오른쪽 끝)가 희뿌연 연기를 뿜어냅니다.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울란바타르 혹한을 이기는 에너지원. 전기를 만들고 도시 전체를 덥히는 중앙난방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 최방식


울란바타르 외곽. 남쪽에서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은 하나. 도시를 북동에서 남서로 에둘러 흐르는 톨강 앞에서야 둘로 갈라져 도심으로 진입하는데, 역시 우회로가 없습니다. 남부 ‘칭기즈칸공항’ 연결도로이니 더 막힙니다. 한창 도로확장공사를 하고 있어 더욱 그렇다네요.

고향 없는 여자, 말타고 떠난다

화력발전소가 희뿌연 연기를 뿜어냅니다. 몽골인 3백만 중 절반이 모여 사는 울란바타르.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혹한을 이기는 에너지원. 4개 화력발전소로 전기를 만들고 여기서 나오는 더운 물로 도시 전체를 중앙난방 하는 시스템. 1기를 더 건설 중이랍니다. 여기저기 아파트 신축공사가 한창이고. 스모그도 심각합니다.

저녁은 맛좋기로 소문난 한식집에 들렀습니다. 청국장․김치찌개․돼지불고기에 김치까지. 막걸리도 한 병 주문했는데, 아쉽게도 없다네요. 신선한 몽골맥주로 대리만족하죠, 뭐. 한국에서 손님 온 걸 눈치 챈 쥔장, “늦어서 미안하다”며 야채와 반찬 등을 듬뿍 더 내옵니다.

저녁 일정은 몽골 청년들을 만나는 것입니다. (사)푸른아시아가 한국과 몽골 대학생을 선발해 기후변화 저지 지도자 양성교육을 하고 있는데, 올해로 5기인 ‘푸른아시아지킴이’(GAK) 몇 명과 인터뷰가 잡혔거든요. 20일 만달고비 출발에 앞서 GAK 대원 30여명을 대상으로 강연하는 바트볼트(51·남) 환경녹색개발부 국제협력국장도 만났죠.

몽골국립대학 주변 커피숍에서 만난 바트볼트 국장은 87년 환경부 창립 때부터 쭉 일해 온 환경전문 공무원. 호주 유학을 마치고 2009년 복귀한 그는 나라 안팎의 여러 요인으로 전국토가 사막화해가는 사실을 몽골정부도 잘 알고 여러 중장기 정책을 실행중이지만 재원부족으로 쉽지가 않다며 국제사회의 지원이 간절하다고 호소했습니다.

그는 특히 유목의 땅 몽골에서 나무를 심는 전통이 없다보니 숲(그린벨트)을 조성해 사막화를 저지하는 정책 실현에 어려움이 많다며 의식 변화가 시급하다고 했습니다. 앞서 공무원 인식부터 바꿔야 하고. 환경보전의 중요성을 담은 사회개발 전략이 절실하다는 것.

이런 인식이 주효했는지, 작년 환경부를 환경녹색개발부로 확대 재편했다고 합니다. 경제개발 이슈를 환경보전 토대 위 검토하도록 국가정책 전략노선을 수정한 것. 매년 봄·가을 두 번 ‘나무 심는 날’도 지정했다네요. 자치단체나 학교, 그리고 기업이 나무(숲)를 가꾸는 모습이 이젠 흔하다고.

▲ 도로확장와 아파트 건설 등 도시개발이 한창인 울란바타르 도심.     © 최방식

▲ 몽골국립대학 주변 커피숍에서 만난 바트볼트 국장(오른쪽). 87년 환경부 창립 때부터 쭉 자리를 지켜온 환경전문 공무원. 사막화저지 중장기 정책을 실행중이지만 재원이 부족하다며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했습니다.     © 최방식

“녹색이 희망, 인식 바뀌고 있죠”

이런 변화의 한 가운데 (사)푸른아시아의 숲 가꾸기 캠페인과 조림모델 성공이 자리하고 있다고 바트볼트는 말합니다. ‘숲가꾸기’ 개념에 주민생계를 해결하는 복지개념이 있어 몽골 정부나 국민이 그 진정성을 이해했다며 사업의 확대를 고대하고 있다고. 외국의 정부나 NGO 누구든 상생의 사업이라면 적극 협력하겠다고 했습니다.

남부 고비사막에 아시아 국가들이 협력해 거대한 태양열발전시설을 할 의사가 있으며 실행방안을 연구검토 중이랍니다. 재정문제만 해결되면 곧 시작할 수 있다고. 그는 또 몽골에 460여종의 조류가 있는데, 한국·몽골 어린이들이 공동으로 ‘새 보호캠페인’을 벌이는 것도 좋겠다고 제안했죠.

일주일 일정으로 울란바타르에서 활동중인 GAK 단원(대학생)들은 21일 밤 국립몽골대 기숙사에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올해로 5년째인 GAK교육은 6개월 과정. 한국과 몽골에서 각 15명씩 선발해 자국에서 각종 세미나·캠페인 등의 활동을 하고, 일주일 사막화 현장에서 교류행사를 하는 ‘녹색 홍보대사’ 양성프로그램.

앳된 모습의 너밍(17·여·대학1)은 “한국 학생들이 기후변화·사막화 저지 활동을 하는 걸 보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며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타국인이 우리 문제에 더 열심인 걸 보고 관심을 갖게 됐으며 이젠 열심히 뛰어야겠다고 다짐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특히 자신부터 시작해 가족이 일회용품을 안 쓰도록 솔선수범 실천하고 사회변화를 이끄는 노력을 하겠다고 덧붙였죠.

아스탕 툴크르(18·남·대학2)는 “사막화 등 자연재해를 뉴스로만 들어왔는데, 한국학생들과 GAK활동을 하면서 내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며 “먼 이웃나라 학생들이 이렇게 열심인데 몽골인으로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랍니다. 이어 “깨달은 게 많아 학우들에게 알려야 겠다”며 “총학에 제안해 숲가꾸기·환경교육 등 대학생 캠페인을 주도할 생각”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번 여행에서는 좀 특별한 인연의 몽골 환경공무원을 만났습니다. 2008년 5월 사막화 현지에 취재 왔을 때 인터뷰를 했던 아비르메드 환경부 그린벨트국장의 딸 채필(32·여)씨. 그는 대(1년전 심장마비로 타계한 아버지)를 이어 환경부 자연자원환경 분야에서 기후변화 관련 대기오염 담당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몽골국립대 생태학과 1회 졸업에 한국의 한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재원. 모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고.

“한국학생들 활동, 감동 받았죠”

가문이 환경전문가들로 꽉 차 있습니다. 어머니는 조림엔지니어링연구소 연구원, 남동생은 조림 전문기업 엔지니어. 남편 역시 산림학 박사. 그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온 식구가 자연과 나무를 사랑하는 일을 하고 있다”며 “아마, 아홉 살의 아들도 같은 일을 하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 얘기를 하니 그리움이 한 가득 얼굴에 묻어납니다. “같이 살 때는 존재의 소중함을 못 느끼죠. 빈자리를 보면서 뒤늦게 깨닫고...” 이거 웬일입니까. 통역을 맡은 나야(22·여, 푸른아시아 몽골지부 간사로 이틀 전 취업)가 우느라 말을 못하네요. “부모와 떨어져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는데, 작년 돌아가셨거든요.”
 
▲ 몽골국립대 기숙사에서 만난 한·몽 ‘푸른아시아지킴이’(대학생)들. (사)푸른아시아가 올해로 5년째 운영 중인 6개월 과정의 ‘기후변화 저지 녹색 홍보대사’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양국 대학생들. 오른쪽 둘이 너밍(여)과 아스탕.     © 최방식
▲ 아비르메트 환경부 그린벨트국장의 대를 이어 환경 공무원을 하는 딸 채필씨(사진 오른쪽). 5년전 인터뷰를 했던 부친. 이젠 볼 수 없는 아버지를 떠올리며 그리움을 전하는 딸.     © 최방식


나야의 소동으로 잠시 중단. 채필씨 다시 말을 잇습니다. “아버진 누군가를 늘 돕고 살았습니다. 환경보전 정책도 늘 이웃을 돕는 자세로 온몸을 바쳤죠. 특히 푸른아시아 등 기후변화 국제협력의 길을 튼 역할을 하셨는데, 이젠 제가 해야 할 일이죠. 아버지가 못 다한 자랑스런 몽골을 딸이 만들어야죠.” 

그는 다만 최근 정치가 바뀌면서 환경이나 노동분야 전문성이 떨어지고 있고, 환경관련 정책도 부친 사망 뒤 주춤한 상태라고 우려를 드러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역할이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며 대기(석탄스모그)·토지(하수·생활쓰레기)오염 예방정책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특히 석탄사용과 광산산업(수출)으로 대기가 오염되고 식물 열매가 잘 안 열리는 심각한 문제를 노출하고 있다며 국가재정에 광산업이 기여하는 바가 커 이를 어찌할 수야 없지만, 폐광 녹색복원 등 친환경개발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해 시행할 예정이라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한국과 몽골. 애증의 역사를 가지고 있죠. 30년 전쟁과 1백년의 지배간섭. 이젠 중원대륙에서 밀리고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 초원을 지켜온 지 수백년젮. 차례 이데올로륙에생채기를 넘고. 이젠 과거를 잊고 친구가 된 이웃. 탐욕과 재앙, 그 끝에서 다시 맺은 인연. 서두르지 않는죠. 번 좋다고 말지배 배신하지 않는 그 의연함을 간직하길 바라면서 여행지 피로를 달랩니다.

진심으로, 천사의 품안에 안겨...

인터뷰를 마치며 채필씨에게 한국을 좋아하는 이유를 물으니, “진심을 가지고 있어서”라 했습니다. 조용히 들려오는 음악소리. 5년 전 몽골여행을 시작할 때 공항버스에서 들었던 그 노래. 96년 히로인 과다복용으로 숨진 조나단 멜보인 소식을 듣고 그를 추모하려고 만든 곡. 98년 영화 ‘시티오브엔젤’ OST로 사용된 사라 맥라클렌의 ‘천사’입니다.

“두 번째 기회, 상황을 반전시킬 기회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내는 당신/ ...이 어둡고 찬 호텔방에서 멀리 떨어진 당신/ ...고요한 난파선, 그리고 깨져버린 행복의 잔해 속에서 구출돼/ 천사의 품에 안긴 당신/ 오늘밤 평화를 찾을 겁니다/ ...평안을 찾기 바랄게요.”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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