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그림움에 눈물떨구었을 망향봉이여

[한도훈의 울릉천국여행5] 백팔계단 오르며 번뇌 내려놓고...

한도훈 | 기사입력 2015/09/21 [10:17]

고향 그림움에 눈물떨구었을 망향봉이여

[한도훈의 울릉천국여행5] 백팔계단 오르며 번뇌 내려놓고...

한도훈 | 입력 : 2015/09/21 [10:17]
도동항에서 마주보이는 가파른 절벽의 봉우리가 있다. 바로 망향봉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희망봉이 있다면 울릉도에는 망향봉이 있다. 삶의 희망을 주는 산봉우리다. 정상의 높이는 316m. 울릉도 도동항 서편에서 사동까지 아우르는 제법 큰 봉우리다.

사동쪽엔 보루산이 있다. 보루산(堡壘山)은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돌이나 콘크리트 따위로 튼튼하게 쌓은 구축물을 가리키는데, 산꼭대기에 해군기지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보리수 열매가 많아 가을이면 아이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보리수 열매를 가리켜 울릉도에선 '뽈두'라 한다. 전라도에선 '포리똥', 경상도에선 '뽈똥'이라고 부른다. 전라도 개척민들의 언어는 사라지고 빈번하게 오가는 경상도 언어로 바뀌었음을 보여준다.

▲ 망향봉 줄기.     © 한도훈


관광객들은 케이블카를 타고 망향봉에 오른다. 케이블카가 설치되기 전에는 걸어서 올라갔다. 지금도 더러 걸어서 오르느 이들이 있다. 걸어가다 보면 기상대를 만나고 그 뒤 산등성이를 돌아 망향봉 꼭대기에 도달하게 된다. 산에 오르며 성인봉 쪽을 바라보면 깍깨등이 늠름하게 반겨준다. 멀리 공군기지가 있는 말잔등이 보이고, 잘 보이지 않지만 더 깊숙이엔 성인봉이 버티고 섰다. 
 
깍깨등 말잔등 사이로 아스라히 성인봉...

망향봉 오르는 길에 넓은 쉼터가 있는데 독도전망대이다. 망원경으로 독도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날씨가 좋으면 희미하게 독도가 보이기도 한다. 일년에 50일쯤 그런 행운을 잡을 수 있다. 나머지 날은 독도를 볼 수가 없다. 사면이 바다라 해무가 끼어 그렇다. ‘독도 방향, 독도와의 거리 87.4㎞’라 적힌 팻말이 보인다. 독도까지 200리가 넘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독도까지 끝도 없이 펼쳐진 망망대해에 잠시 멍해져 있다가 다시 계단을 타고 길을 떠나야 한다. 무려 백팔 개의 계단을 밟고 동쪽으로 난 산길을 걸어야 한다. 백팔번뇌(百八煩惱)를 모두 물리치라고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조금 지친다싶으면 ‘삭도전망대’가 나온다. 삭도는 케이블카를 가리키는데 여기에서 이름을 딴 거다. 그냥 ‘망향봉전망대’가 더 좋아 보인다.
 
1999년도에 만들어 졌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도동항이 전부 보인다.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 까지는 보이지 않지만 도동항에서 깍깨등까지 길게 이어진 건물들이 전부 보인다. 더구나 건너편 행남봉의 모습이 시원하게 한 눈에 들어온다. 가을이면 울긋불긋 단풍든 모습이 아름다워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다.

▲ 가을 망향봉.     © 한도훈


은은한 산안개에 휩싸인 성인봉과 발아래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보이는 독도박물관을 감상하고 나면 햇볕이 머리를 따갑게 한다. 그 때쯤 백팔계단을 밟고 내려와 해안쪽 작은 길을 걷다보면 정자 하나가 보인다. 2007년도에 만들어진 해상전망대이다.
 
아침 일찍 이곳에 올라 독도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 그 아름다움에 기가 막힌다. 왠지 가슴이 떨려 말조차 나오지 않는다. 독도가 우리땅이라는 두근거림이 둥근 해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해상전망대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출을 볼 수 있는 때는 12월과 1월이다. 추운 겨울 푹푹 빠지는 눈보라를 이기고 올라와야 한다.
 
이곳 전망대에 서면 '독도까지 2백리' 
 
아침 해가 독도 뒤 편으로 힘차게 솟아오르는 일출을 보면 일년을 감격 속에서 살아갈 수가 있을 성 싶다. 그래서 이 곳의 다른 이름은 ‘독도해돋이전망대’다. 성인봉 능성이 넘어가는 일몰도 즐길 수 있고, 수많은 오징어배로 수놓은 ‘어화(漁火)’도 감상 할 수 있다. 그리하려면 한밤중에 올라와야 해 길이 위험하고 무섭다고 한다.

이렇게 망향봉은 아침해 맞으며 주변 경치와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뽐낸다. 사동쪽으로 바라보면 산등성이에 뾰쪽 솟아있는 바위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날카롭게 하늘로 솟아있는 칼바위인데 망부석이라 한다. 연오랑세오녀의 망부석 못지 않게 여기에도 슬픈 전설이 깃들어 있다. 그걸 새롭게 구성해 읽어보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찡해진다. 

▲ 망향봉 산자락 아래 해식동굴.     © 한도훈


개척민 시대에 깍깨등에서 외롭게 농사를 지으며 한 사람이 살았다. 전라도 고향을 떠나온 지 많은 세월이 흘러서 이 사람은 날마다 고향 생각에 젖어 살았다. 고향에 남아 계신 부모님이 살아 있는지 걱정이 되고, 이웃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 지 날마다 고향 생각에 젖어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초겨울 어느 날, 이 사람은 고향 생각에 너무 사무친 나머지 무작정 길을 나섰다. 해가 뜨는 쪽을 동, 해가 지는 쪽을 서쪽으로 가늠해 방위를 잡고 고향이 있는 남쪽으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망향봉 정상에 올라 가슴 속에 있는 한들을 토해내고 남쪽 해안을 향해 내려오기 시작했다. 고향에 한발자국이라도 더 가까이 가고 싶어서 그랬다.

울창한 나무숲을 헤치고 산등성이를 타고 정신없이 내려오다 그만 절벽을 만나 꼼짝 못하게 되었다. 해는 이미 저물어 주변엔 칠흑같은 어둠이 깔려서 사방을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엎친 대 덮친 격으로 날씨는 춥고 허기까지 겹쳐 깍깨등 자신의 집으로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거라 예견했다.
 
향수병 도지면 올라 고향하늘 바라보던...

그리곤 죽을 힘을 다해 절벽을 올라 네 손가락을 잘라 남쪽 고향을 가리키고 섰다. 이미 생사를 초월한 것이다. 지나가던 바람도 숨을 멈추고, 숲에서 지저귀던 새들도 울음을 그쳤다. 그렇게 한없이 서서 후손들이 천년만년 이어갈 천추만대(千秋萬代)의 고향을 바라보다 그만 뾰족한 바윗돌이 되고 말았다. 그게 바로 망부석이다. 

▲ 망부석.     © 한도훈


망향봉 아래로는 사동까지 ‘사동해안산책로’가 뚤렸다. 아슬아슬한 절벽을 깎아 길을 내고 다리를 놓아 만든 아름다운 산책로다. 그 중간에는 멋진 해안 해식 동굴이 반져준다. 옛날에는 아마도 강치가 독도를 오가다 동굴에서 나와 바위 위에 몸을 부비며 햇볕에 몸을 말렸을 것 같다.

“망향봉이여! 가난하고 가난해서 고향을 등지고 울릉도에 짐을 부렸지만 마음은 늘 고향에 가 있던 개척민들. 눈에 선한 마을 집들이며 졸졸 흐르는 개울 물소리가 미치도록 그리웠던 이들. 고향이 그리울 때면 주먹밥을 만들어 짊어지고 한걸음에 뛰어올라 한없는 그리움을 토해냈을 망향봉이여!”



시집 '코피의 향기'를 쓴 시인 한도훈입니다. 어린이소설로 '독도야 간밤에 잘 잤느냐'를 우리나라 최초로 집필했습니다. 부천시민신문, 미추홀신문, 잡지 사람과 사람들을 통해 언론인으로써 사명을 다하기도 했습니다. 현재는 콩나문신문에 '부천이야기'를 연재하고 있고, 울릉도, 서천, 군산, 제주도 등지의 여행기를 집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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