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마 서란, 어둠으로부터 빛이 오나니..."

[연재소설] '홍매지숙명(紅梅之宿命) 피다' 작은 세상의 비망록(6-1)

이슬비 | 기사입력 2017/04/16 [11:00]

“잊지 마 서란, 어둠으로부터 빛이 오나니..."

[연재소설] '홍매지숙명(紅梅之宿命) 피다' 작은 세상의 비망록(6-1)

이슬비 | 입력 : 2017/04/16 [11:00]

제6장 작은 세상의 비망록(1)

 

어둠으로부터 빛이 오고, 빛으로부터 어둠이 오나니.’

 

이 말을 남기고 여신은 사라졌다. 그리고 여신이 사라진 세상에는 암흑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태어나 처음, 어둠을 맞이한 카무이신은 무척 두려웠을 것이다. 아무리 들여다보려 해도 심연의 한 자락, 아니, 심연의 시작조차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들여다보며 저 어둠이 곧 나를 집어삼키지는 않을까두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어둠은 카무이신을 집어삼키지 않았고, 어둠에 삼켜지지 않은 카무이신에게는 또 다른 어둠이 찾아왔을 것이다.

 

안 돼. 이대로 눈을 감으면 안 돼.’

 

카무이신은 자꾸만 감기려는 눈꺼풀을 애써 밀어 올리며 어둠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어둠에 삼켜지지 않기 위해, 아니, 정확히는 어둠에 삼켜지지 않기 위해 두려움을 이기려 어둠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렇게 어둠을 바라본지 얼마 만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카무이 신은 어둠이 자신을 삼킬 수 없고, 자신은 어둠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어둠이 계속 존재하는 이상, 자신은 어둠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는 것 또한 깨달았을 것이다.

 

결국, 카무이신은 어둠과 싸우는 길을 선택하고, 자신의 두 눈을 뽑아 어둠 속을 향해 던졌다. 그렇게 카무이신의 두 눈은 해와 달이 되어 빛을 밝혔고, 어둠은 빛에 패해 달아났다.

 

이것이 최초로 어둠을 바라본 자, 그리하여 어둠을 이겨내고, 세상을 지배하는 우주의 주신이 된 자, 카무이신의 이야기였다.

 

 

타레주의 시험. 제화족의 무녀들은 후임 무녀를 만드는 시험의 첫 단계를 이렇게 불렀다. 제화족의 무녀가 되기 위해서는 세 살에서 일곱 살까지의 아주 어린 나이에 부모와 가족과 헤어져, 신여(神 輿)를 타고 소도의 홍살문을 들어서야 했다.

 

이때, 아이의 부모는 빚을 내서라도 반드시 가장 화려한 색과 문양이 들어간 비단으로 옷을 지어 입히고, 아름다운 장신구를 달아줘야만 했다.

 

화려한 비단옷과 아름다운 장신구로 치장한 채, 신여를 타고 소도에 들어온 아이는 그 즉시, 입고 온 옷과 장신구가 벗겨지고, 속옷과 신이 벗겨진 채 얼음물에 목욕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목욕이 끝나면 아이가 입고 온 속옷과 겉옷, 신은 모두 불태워지고, 아이에게는 무녀의 옷이 지급되었다.

 

그렇게 아기무녀라는 신분으로 보낸 삼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 아이는 무녀로서의 자격을 시험받게 되는데, 그 시험의 첫 단계가 바로 타레주의 시험이라고 불리는, 어둠을 견뎌내는 시험이었다.

 

그러나…….

 

서란은 무녀가 아니다.’

 

방 안에 쥐와 뱀을 풀어 넣는 동안에도 유흔의 머릿속에서는 이 사실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서란은 무녀가 아니었다. 무녀가 되기 위해 어린 나이에 소도로 들어가, 삼 년이라는 세월을 보낸 아기무녀가 아니었다. 서란은, 서란은…….

 

아직,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서란은 고작 일곱 살 어린아이에 불과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서란은 한씨가의 후계였다. 그렇다. 한씨가의 후계, 하지만 이름뿐인 후계, 그리고 언젠가는 죽어야할 후계. 그것이 바로 서란이었다.

 

유흔은 객잔의 주인이 귀엽다고 안겨준 장난감 공을 돌로 된 마당에 튕기며 노는 서란을 바라보았다. 서란은 유흔이 늘 부르는 노래를 부르며 공을 돌바닥에 튕기고 있었다.

 

Kyrie, kyrie, kyrie, kyrie, eleision

kyrie, eleision, kyrie, eleision

kyrie, eleision, kyrie, eleision, eleision, christe, eleision

 

kyrie, elei, kyrie, kyrie, eleision

 

여기서부터는 유흔도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즐거움으로 높아져 있는 서란의 목소리와는 달리, 유흔의 목소리는 침잠함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kyrie, eleision, kyrie, eleision

kyrie, eleision, kyrie, eleision

kyrie, eleision

 

어느새 달빛이 하얗게 내려와, 공놀이를 하며 놀고 있는 서란과 그런 서란의 모습을 지켜보는 유흔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놀이가 끝나자마자 서란은 유흔의 손에 이끌려 객잔의 나무계단을 올라갔다. 유흔은 마치 쥐 죽은 듯이 조용한 복도를 들여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객잔 주인에게 금전(金 錢)을 주고 부탁해둔 터라, 다른 방들은 모두 비워져 있을 터였다.

 

화야.”

 

유흔이 조용히 서란의 이름을 불렀다. 서란은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유흔의 손을 깍지 끼워 잡고, 유흔을 올려다보았다.

 

.”

 

아이누말로 네 이름이 뭐지?”

 

알면서. 내 이름은 카무라 프리 샤르휘나잖아.”

 

그래, 카무라 프리 샤르휘나. 삼백족말로는 새벽의 광명. 새벽의 빛. 어둠 속의 빛.”

 

유흔……?”

 

잊지 마, 서란. 어둠으로부터 빛이 오고, 빛으로부터 어둠이 오나니. 무엇보다 너는……

 

……?”

 

너는…… 새벽의 광명, 카무라 프리 샤르휘나야.”

 

서란이 방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눈앞에 보이는 것은 심연을 들여다볼 수 없는 어둠이었다. 이윽고, 서란의 등 뒤에서 방문이 닫히고, 무언가가 다가와 찍찍, 하는 소리를 내며 서란의 발밑을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화야.”

 

유흔의 목소리에 이끌려 서란은 방문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서란은 어둠의 심연을 들여다볼 수 없음에도, 자신 또래의 아이들처럼 소리를 내어 울거나 열어달라고 외치며 방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쉿쉿.”

 

서란의 발목에 긴 줄이 스르르 감겼다. 할짝. 그와 함께 느껴지는 차가운 느낌에 서란은 자신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

 

서란은 손을 뻗어 뱀의 머리로 생각되는 곳을 찾았다. 곧 손가락 끝에 둥그런 형태를 가진 곳이 만져졌다. 서란은 조금 더 밑으로 손을 내렸다. 곧 뱀의 이빨이 서란의 손을 콱, 하고 물었다.

 

좀 아프네.”

 

서란은 뱀이 물고 있는 손을 빼내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이 손을 넣어 뱀의 이빨이 자신의 손을 놓지 못하게 했다.

 

서란은 다른 쪽 손을 뻗어 뱀의 목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있는 힘을 다해 뱀을 구석으로 던져버렸다.

 

찍찍.”

 

이번에는 쥐 여러 마리가 서란의 발밑을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서란은 자리에서 일어나 쥐들을 발로 여러 차례 밟고 또 밟았다.

 

유흔.”

 

서란은 어둠 속을 더듬어 탁자를 향해 다가갔다. 가는 도중에 뱀 여러 마리를 밟아 발목이며 다리를 물렸지만 절대 주저앉지 않고 앞으로 다가갔다.

 

서란은 탁자 위를 더듬어 부싯돌을 찾아 촛불을 밝혔다. 미약하게 타오르는 주황색 불꽃이 그나마 눈앞의 어둠을 밝혀주었다.

 

kyrie, kyrie, kyrie, kyrie, eleision

kyrie, eleision, kyrie, eleision

kyrie, eleision, kyrie, eleision, eleision, christe, eleision

 

서란은 유흔을 불렀다. 저 방문 뒤에 유흔이 있을 것을 알기에. 서란은 닫힌 방문을 바라보았다.

 

kyrie, elei, kyrie, kyrie, eleision

 

화야.”

 

방문 뒤에서 유흔이 서란을 불렀다. 서란을 부르는 유흔의 목소리가 방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서란은 초를 집어 들었다.

 

화륵. 서란이 움직일 때마다 촛불이 흔들렸다. 촛불이 흔들릴 때마다, 뜨거운 촛농이 서란의 손등 위로, 손가락 위로 똑똑,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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