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계혈전 날 아침은 왜 또 그리 맑고 청명한지...

[연재소설] '홍매지숙명(紅梅之宿命) 피다' 작은 세상의 비망록(7-1)

이슬비 | 기사입력 2017/05/07 [11:59]

후계혈전 날 아침은 왜 또 그리 맑고 청명한지...

[연재소설] '홍매지숙명(紅梅之宿命) 피다' 작은 세상의 비망록(7-1)

이슬비 | 입력 : 2017/05/07 [11:59]

제7장 작은 세상의 비망록(2)

 

여신이 사라진 세상에 빛이 사라지고 어둠만이 남았을 때, 샤쿠샤인은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어둠을 두려워했으되, 지금의 어둠 뒤에 나타날 또다른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지금의 어둠 뒤에 나타날 또다른 어둠이 가져올 빛이 밝은 빛임을 알았고, 그로 인해 지금의 어둠 뒤에 궁극적으로 나타날 빛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리 할 수 없었다. 샤쿠샤인과 달리, 그녀는 빛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니 정옥과의 후계 혈전에서 패배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언니에게 빼앗기고, 그녀 자신마저 언니의 정치적 도구로 떨어진 그때, 그녀의 세상에는 빛이 사라지고 어둠만이 남았다.


그리고 그것은 샤쿠샤인이 여신이 사라진 세상에서 본 것과 같은 종류의 어둠이었고, 그녀 또한 샤쿠샤인처럼 어둠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그녀가 본 것은 지금의 어둠 뒤에 나타날 또다른 어둠이 가져올 어두운 빛이었고, 그로 인해 그녀는 지금의 어둠 뒤에 궁극적으로 나타날 빛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어둠 뒤에 다가올 빛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그녀의 두려움으로 인해 그녀의 세상에는 더 이상 빛이 다가올 수 없었다.
 
더 이상 빛이 다가올 수 없는 세상에서 그녀는 서서히 자신을 어둠 속에 가둬버렸고, 자신이 어둠에 삼켜지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리고 마침내 어둠이 자신을 서서히 삼켜버리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미쳐버렸다.
 
한씨가 36대 가주 하윤의 셋째 딸 유란, 그녀는 그렇게 미쳐버리고 말았다.
 

 
후계 혈전이 시작되던 날 아침이 왜 그리도 맑고 청명했는지. 한씨가 가주의 친딸 둘과 양녀 한 명을 대전시켜 하나만이 살아남아야 하는 피비린내 어린 여정이 시작되던 아침이, 어제까지 자매였으나 오늘부터는 서로를 적으로 마주보게 된 세 여인의 가슴에 피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던 그날이 왜 그리도 맑고 청명했는지 유흔은 이해할 수 없었다.
 
후계 혈전에 임할 세 사람의 이름이 사당 앞에서 호명되고, 후계 혈전을 관전할 한씨가의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 좌정하자, 세 사람은 그들의 앞에 일제히 무릎을 꿇고, 제각기 각오를 다졌다.
 
한씨가의 제1후계 정옥, 키야트 아이누의 후손으로서, 또 무녀 훌란의 후손으로서 맹세하오니, 언젠가는 아이누의 깃발이, 키야트 아이누의 깃발이, 한씨가의 깃발이 전국을 뒤덮을 것입니다!”

한씨가의 제2후계 유란, 키야트아이누의 후손으로서 한씨가를 전국일통의 반석 위에 올려놓을 것을 맹세하는 바입니다!”

한씨가의 제3후계 하연, 한씨가의 후계로서 언제나 한씨가만을 위해 살 것임을 약조 드리는 바입니다!”
 
후계들의 맹세가 끝나고, 그녀들이 후계 혈전 동안 지낼 전각으로 들어서자마자 밖에서 문이 봉쇄되었다. 이제 그녀들은 외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진행과정과 결과에 따라 서로가 서로를 향해 칼을 겨누어야 할 것이었다.
 
후계 혈전의 결과는 정옥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후계 혈전의 첫날부터 삼백족의 옷을 입고 나타난 유란에게 가문 내의 사람들은 싸늘한 시선을 보냈고, 그에 맞추어 오와손 아이누와 오도이 아이누의 모든 가문들은 한씨가에 사절단을 보내어 자신들은 정옥을 지지하며, 정옥이 한씨가의 가주로 재임하는 기간 동안, 가유의 영토를 침범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서한을 전달했다.
 
그렇게 후계 혈전이 진행되면 될수록 유란과 하연은 점점 불리한 위치에 처해졌고, 본래 죽어야할 운명이었던 하연은 끝내 정옥의 칼에 스러졌다.
 
하연 언니!”
 
눈앞에서 하연이 꽃처럼 붉은 피를 흘리며 스러져가는 모습을 본 유란은 큰언니에게 저항하면 자신의 목숨 또한 그리 될 것임을 알았다. 유란은 즉시,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짚으며 바닥에 엎드렸다.
 
잘못했습니다, 언니.”
…….”
아무런 능력도, 가주의 자질도 갖추지 못한 제가 감히 언니께 맞서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
잘못했습니다, 언니.”
…….”
용서해주십시오.”
…….”
살려주십시오, 한씨가의 37대 가주님.”
 
다음날 아침, 봉쇄된 전각의 문이 열리고, 자신의 검을 높이 들어 올려, 후계 혈전의 승리자임을 과시하며 걸어 나오는 정옥의 뒤에는 유란이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앉아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한씨가의 37대 가주를 정하는 후계 혈전은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그 과정에 있어서 한 치의 어긋남도 없었으며, 그 어떤 불공정한 개입 또한 없었소. 그렇지 않소?”


그렇습니다, 가주님.”
 
한씨가의 36대 가주 하윤의 말에 시종들과 노예들을 포함한 한씨가의 사람들 모두가 입을 모아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윤은 한 손을 높이 들어 좌중을 침묵시키고는, 마키리를 뽑아 정옥의 앞에 던졌다.
 
한씨가의 37대 가주를 정하는 후계 혈전에서는 한 사람의 후계가 희생되었소. 한씨가의 제3후계였던 한하연. 그녀는 한씨가의 37대 제3후계로서 사당에 모셔질 것이오.”


…….”

 

또한 한씨가의 37대 가주를 정하는 후계 혈전에서는 두 사람의 후계가 살아남았소. 후계 혈전의 승리자인 한씨가의 제1후계 한정옥과, 패배자인 한씨가의 제2후계 한유란.”


…….”
 
하윤의 말이 이어질수록 가내의 사람들의 시선이 하나둘씩 정옥과 유란에게 향하고 있었다. 후계 혈전에서 승리한 후계가, 살아남은 또 한 사람의 후계의 목숨을 정하는 것은 후계 혈전의 당연한 절차였다. 그러니 유란을 죽이고 살리는 것은 오직 정옥의 의지뿐이었다.
 
한동안 고민하는 듯한 표정으로 땅바닥에 꽂힌 마키리를 내려다보던 정옥이 이윽고, 칼자루를 뽑아 들었다. 그와 동시에 하윤의 시선마저도 정옥의 손에 들린 마키리 끝에 향하고 있었다.
 
, 언니…….”
 
후웅! 그러나 다음 순간, 허공을 가르는 바람소리와 함께 베어진 것은 유란의 머리가 아닌, 그녀가 붙이고 있던 가짜 머리카락이었다.
 

 
다음날 아침, 사당의 문이 열리고 가주 하윤을 필두로, 위패를 두 손으로 받쳐 든 제1후계 정옥과, 손에 마키리와 어패를 든 무녀가 예복차림으로 홍살문을 들어섰고, 그 뒤를 따라 역시 예복을 차려입은 한씨가 방계의 인물들과, 시종들, 노예들이 제각기 손에 마키리를 든 채 홍살문을 들어섰다.


그러나 오늘의 행렬이 지나치게 이상한 것은 가내의 사람들 중 단 한 사람, 유란만이 빠져 있다는 것이었다. 유흔은 손에 든 마키리를 품 속으로 다시 집어넣으며 행렬에서 빠져나와 발걸음을 돌렸다.
 
광무 31026, 나 한씨가의 36대 가주 한하윤은 한씨가와 부상국 전체에 한씨가의 37대 가주를 공표하는 바이다. 한씨가의 37대 가주는, 나 한하윤의 첫째 딸이며, 37대 후계 혈전의 승리자인, 한씨가의 제1후계 한정옥임을 오늘로써 한씨가와 부상국 전체에 선포하니, 이제 한정옥의 명이 곧 나 한하윤의 명이요, 한정옥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나 한하윤의 말과 같음을 모두 명심할지어다.”
 
한씨가의 기록을 맡은 시종들이 가주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빈 서책에 받아 적었다. 시종들이 이제 막 붓을 내려놓으려는 찰나, 가주의 목소리가 그들의 머리 위로 내리꽂혔다.
 
이제 한씨가의 나머지 두 후계, 한유란과 한하연에 대한 처분을 발표하겠노라. 나 한하윤의 둘째딸이며, 37대 후계 혈전의 또 다른 생존자인, 한씨가의 제2후계 한유란의 후계 작위를 오늘부로 영구히 박탈하고, 방계로 내칠 것임을 한씨가와 부상국 전체에 공표하는 바이다. 한유란은 이제 더 이상 나의 딸이 아니며, 오직 한정옥 한 사람만을 위해 살아가는 도구와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


또한 한유란은 가문에서 정해주는 사내 이외에는 그 어떤 사내와도 동침할 수 없으며, 한유란이 낳은 딸은 한정옥의 딸로 입적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 한하윤의 양녀이며, 37대 후계 혈전에서 사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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