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30] 사막에서 길을 묻다

김경수 오지레이서 | 기사입력 2017/06/26 [10:12]

[오지30] 사막에서 길을 묻다

김경수 오지레이서 | 입력 : 2017/06/26 [10:12]

사막 한가운데서 밤을 지새우며 달릴 때 나는 북극성을 주로 본다. 북극성을 보고 길을 나서면 잠시 길을 벗어날 수 있어도 방향은 잃지 않는다. 그러니 길이 없는 사막에는 무수한 길이 있다.

 

 

남이 가지 않은 길이라도 내가 갈 방향을 잃지 않으면 더디 가거나 잠시 쉬어가도 괜찮다. 대자연에 몸을 맡기면 아등바등 살았던 일상의 나는 잠시 거인이 된다. 나를 관조하는 여유까지 얻을 수 있다. 멈추면 보이는 것이 훨씬 많다.

 

 

하지만 평온해 보이는 사막의 모래바닥을 조금 유심히 드려다 보면 문명사회만큼이나 냉혹한 약육강식의 세계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살기어린 전갈, 종족을 뜯어먹는 메뚜기 떼, 불개미 머리에 알을 낳아 자양분을 빨아먹고 머리를 잘라버리는 기생파리, 건기의 사막은 미물들의 생존을 더욱 위협한다. 거북 등짝을 드러낸 우물, 곳곳에 널브러진 동물 사체, 뿌리 채 드러낸 관목들. 하지만 그 속에도 생명은 태동한다. 그러니 생존의 기술을 터득한 생명체만이 살아남 수 있는 곳이 사막이고 오지다.

 

 

# 진정한 인내

사람이든 동물이든 고통이 심해지면 이상행동을 한다. 눈에는 헛것이 보이고 발걸음은 천근만근이 된다. 2003년 4월, 난생 처음 찾아가 맞닥뜨린 사하라사막은 설렘과 두려움 그 자체였다.

 

 

낮에는 작열하는 태양과 모래폭풍이 기다리고 있었다. 밤에는 추위와 졸음을 참아내며 자갈밭 광야와 모래 능선을 따라 5박 7일 동안 250km를 달렸다. 쏟아지는 태양열에 종일 전신에 땀줄기가 흐르고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하중으로 터지는 발가락 물집이 늘어났다.

 

 

이쯤 되면 선수들은 그늘을 찾고, 지름길을 찾는데 온 신경이 집중된다. 배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 배낭 속 식량과 장비를 내던지기도 한다. 하지만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캠프에 들어오면 힘겹게 달려온 만큼 풍성한 만찬을 즐길 수 있다.

 

 

‘네 어깨의 짐을 쉽게 내려놓지 마라!’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인생을 살다보면 갖가지 시련과 고난의 시기를 겪게 된다. 하지만 이 어려운 시기를 잘 견뎌내면 그에 걸맞은 소중한 결실은 반드시 주어질 것이다.

 

 

# 선택의 지혜

15년 전, 주변사람들은 사막으로 떠나는 나에게 미친 짓을 한다며 비아냥거렸다. 아내마저 이해하지 못했다. 칠흑같이 어두운 사막의 밤에 주로를 이탈하게 되면 극도의 긴장 속에 길을 찾기 위해 헤매야 한다.

 

 

2005년 7월, 시각장애인 이용술씨와 함께 찾아 들어간 칠레의 아타카마 사막 252km 레이스는 지옥의 길이었다. 지구상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소금사막, 표식도 없는 갈림길에서 생존을 위해 숱한 고민에 빠져야 했다. 하지만 내가 믿고 내가 선택한 길을 갔다. 신념이 때론 진리 위에 설수도 있다.

 

 

인생의 매 순간도 선택의 문제에 직면한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문호 셰익스피어는 “무언가를 결정하기 전에 최대한 주변 사람의 말에 경청하라! 하지만 결정은 스스로 하라.”고 했다. 물론 자신의 선택이 잘못될 경우 스스로 가혹한 대가를 치러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혜로운 선택이 필요하다. 설사 그 결과가 자신의 미래를 보장해 주지 못하더라도 후회 없는 삶과 더 나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기반은 될 것이다.

 

 

# 정도를 가라

암벽에 긁혀 종아리 살점이 떨어져나가고, 자연발화로 화염에 휩싸인 호주 대륙의 산야를 뚫으며 달렸다. 2011년 5월, 세계 각국에서 출전한 23명의 최강자들과 함께 호주 엘리스스프링스에서 울룰루까지 8박 10일 동안 530km를 달렸다.

 

 

레이스가 계속될수록 부상 때문에 혹은 지름길을 찾다 길을 잃고 경기를 포기하는 선수들이 속출했다. 레이스가 종지부로 치달을수록 발바닥은 작두 위를 걷는 듯한 고통이 따랐다. 작은 돌맹이만 밟아도 찢어질 듯한 발바닥 통증이 전신으로 퍼졌다.

 

 

레이스 10일째 새벽녘, 멀리서 울룰루가 위용을 과시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껏 5백km를 넘게 달려왔지만 나는 여전히 고개를 떨군 채 주로 위에 있었다. ‘그래도 정도를 가라!’ 한계의 경계에서 몸이 흔들릴 때마다 희미한 울림이 귓전을 때렸다.

 

 

남보다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가장 불행한 사람이다. 힘들고 버거워도 나는 정도를 갔다. 그 길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당신이 우리사회의 내비게이션 입니다!’라는 주변의 격려는 나를 올곧게 살게 하는 큰 힘이 되었다.

 

 

사막과 오지에서 열리는 레이스는 올림픽 경기처럼 온 국민을 열광시키지 않는다. 대회 규모가 성대하지도 않다. 언론과 방송에서도 별반 관심이 없다. 목숨을 담보로 혼신을 다해 목에 건 묵직한 완주 메달도 올림픽 메달처럼 부와 명예가 따르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이제껏 달려온 레이스를 아직 멈추고 싶지 않다. 앞으로도 언제까지 그리고 어디까지 달려갈지 그 끝도 알 수 없다. 여전히 내 마음속에 도전과 열정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모래뿐인 황량한 사막에서도 마음먹기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건 무척 많다. 모래에서 사금을 걸러내기도 하지만 사막에는 황금보다 더 소중한 지혜가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누구든 인생을 살다보면 크게 낙담하거나 좌절을 경험한다.

 

 

사막에서 벌어지는 약육강식과 생존경쟁의 단면을 보면 사막이나 일상이나 별반 다를 바 없다. 어쩌면 문명사회가 더 치열하고 처절할지 모른다. 힘겨웠던 사막 레이스의 기억은 차츰 희미해져 가지만 그 여정에서 얻은 삶의 지혜는 나의 삶을 더 강하고 풍요롭게 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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