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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12.15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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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말 '코리아패싱' 정치적해악 크다
[김종철 칼럼] '용미용북용중용일' 균형외교로 한반도평화 확보해야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언어는 특정한 사회 또는 공동체의 약속이자 규범이다. 대한민국의 공식 언어는 한글이다. 그런데 2017년 봄부터 한국사회의 분열과 정치권 내부의 대립을 부추기고 있는 정체불명의 용어가 있다.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이 바로 그것이다. 두 개의 영어 단어를 합성한 이 말은 미국, 영국의 그 어떤 사전에도 나와 있지 않다. 국립국어원이 펴낸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코리아 패싱은 올라 있지 않다. 그래서 이 용어에 대한 해석은 중구난방이다. 

 

미국, 남한, 북한의 3자 관계에서 남한이 배제당한다는 뜻이라는 주장도 있고, ‘남한 건너뛰기’ 또는 남한이 ‘왕따’를 당함을 가리킨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주장이나 해석도 국어 또는 외교 분야 전문가들의 공적 검증을 통과한 적이 없다.
 
코리아 패싱이라는 말이 각광을 받게 된 결정적 계기는 19대 대선을 14일 앞둔 지난 4월 25일, JTBC와 중앙일보가 공동주최한 대선후보 TV토론회였다. 생중계 방송 도중에 바른정당 후보 유승민이 더불어민주당 후보 문재인에게 “코리아 패싱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하고 느닷없이 묻자 문재인은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잠시 그를 무시하는 듯한 눈길을 보내던 유승민은 ‘강의조’로 긴박한 한반도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트럼프가 중요한 문제를 얘기하면서 아베, 시진핑과만 통화하고, 오늘이 (북한) 인민군 창건일인데 우리한테는 황교안 권한대행에게 전화 한 번 안 해주고 이런 문제를 얘기하고 있다. 문 후보는 사드를 반대하는데 대통령이 되면 어떻게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겠느냐?” 문재인은 “미국이 그렇게 무시할 수 있도록 누가 만들었느냐”며 “오로지 미국 주장에는 추종만 하니 미국이 우리하고는 힘들게 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부끄러워 하라”고 반박했다. 

 

문재인이 코리아 패싱이라는 말을 정말 모르고 있었는지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지난해 4월 이래 한 해 동안 이 용어가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제휴한 언론사 기준으로 738건이나 사용되었고, 2017년 4월 1일부터 유승민이 TV토론에서 문재인에게 질문을 던지기 전날인 4월 24일까지 229번이나 쓰였기 때문이다(한겨레 4월 27일자 기사).
 

‘코리아 패싱’은 ‘저팬 패싱(Japan passing)’의 아류라는 것이 통설이다.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라고 자랑하던 일본은 1990년대 중반 들어 심각한 경제위기와 국제적 위상 추락 때문에 사회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침체되어 있었다. 그런 마당에 1998년에 당시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이 중국을 방문하면서 일본을 건너뛰자 ‘저팬 패싱’이라는 자조적 한탄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 말은 ‘저팬 배싱(Japan bashing- 일본 주어패기)’, ‘저팬 나싱(Japan nothing-아무것도 아닌 일본)’ 같은 파생어들을 낳았다. 그런 비생산적 용어를 흉내 낸 코리아 패싱이 2017년의 한국사회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유승민이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코리아 패싱의 뜻을 모른다는 문재인을 힐난한 이튿날인 4월 26일 중앙일보 기자 전수진은 뉴욕타임스와 파트너십을 맺은 코리아 중앙데일리에서 정치·사회뉴스를 맡고 있는 미국인 데이비드 볼로츠코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코리아 패싱’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모른다면서 “콩글리시(Konglish-한국식 엉터리 영어)가 틀림없다”고 대답했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특히 야권 정치인들과 보수언론이 ‘애용’하고 있는 코리아 패싱이 얼마나 엉터리 용어인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자. 먼저, 국제사회에서 ‘Korea’라는 말은 남한과 북한을 아울러 가리키는 말이다. 남한(대한민국)의 국호는 ‘Republic of Korea’이고,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호는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국제적 언론은 남한과 북한을 일컬을 때 반드시 ‘South Korea’ ‘North Korea’라고 명기한다. 그래서 코리아 패싱이라고 하면 영어를 쓰는 외국인들은 ‘남북한 패싱’이라고 이해하기 십상일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만 코리아 패싱이라는 말을 쓰면 그만이지 남의 나라 사람들에게 신경을 쓸 까닭이 무엇인가’라고 반문하는 정치인이나 언론인이 있다면 그야말로 반지성과 반이성의 표본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passing’이라는 말에는 ‘죽음’이라는 뜻도 있다. 따라서 코리아 패싱은 ‘한반도의 죽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주요 야당들과 보수언론이 남용하는 코리아 패싱은 생산적 효용은 전혀 없고 정치적 해악을 끼치는 말에 불과할 뿐이다.
 
북한이 지난달 29일 밤 11시 41분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에 성공했다고 발표하자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과 일본은 크게 충격을 받았다. 한국 합동참모본부의 발표에 따르면 북한의 자강도에서 발사된 뒤 약 1000km를 날아 동해(일본해)에 떨어진 ICBM은 비행거리가 미국의 뉴욕까지 이를 수 있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었다. 

 

대통령 문재인은 30일 새벽 1시에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고 사드 4기를 추가로 배치하라고 지시했다. 합참은 같은 날 새벽 5시 45분 동해안에서 “한국군의 현무-2와 미군의 에이태킴스 지대지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유사시 적 지도부를 정밀 타격할 수 있는 한미 연합의 대응 능력을 보여줬다”고 발표했다. 문재인은 이틀 뒤인 7월 31일 5박6일 일정으로 휴가를 떠났다. 

 

그러자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에서 심각한 국가적 위기에 대통령이 휴가를 갈 수 있느냐는 비난이 쏟아져 나오면서 문제의 ‘코리아 패싱’이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왜 미국 대통령 트럼프와 당장 통화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특히 정부가 8월 2일 강력한 부동산대책을 발표한 뒤에 야 3당은 ‘안보 위기를 물 타기 하려는 꼼수’라고 비난했다. 대통령이 코리아 패싱을 자초하고 있다는 공격도 거세기 짝이 없었다.

 

북한의 ICBM 발사 성공은 심각한 사건이기는 하지만 당장에 미국과 북한, 또는 남한과 북한 사이의 전쟁을 촉발하는 동인이 되지 못할 것임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북한은 ICBM에 핵탄두를 탑재해 발사할 수 있는 기술을 아직 개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북한이 그런 수준에 이르기 전에 한국이 미국, 중국, 일본을 비롯한 당사국들과 함께 대화와 협상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최상의 방책일 것이다.
 

 

‘통미봉남(通美封南)’이라는 말이 있다. 북한이 미국과 소통하면서 남한은 봉쇄한다는 뜻이다. 1994년 여름 남한에서 북한 주석 김일성 장례식에 조문단을 보내자는 논의가 일어나자 김영삼 정부가 강하게 탄압을 가했다. 그때부터 북한 정권은 ‘통미봉남’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북한은 이 말을 김대중 정부 초기까지 사용했다.
 
‘용미용남(用美用南)’이라는 말도 있다. 북한이 미국과 남한 모두를 이용한다는 뜻이다. 역지사지로 남한은 ‘용미용북’에서 훨씬 더 나아가 ‘용미용북용중용일’의 길을 선택함으로써 지혜로운 균형외교를 통해 한반도의 평화를 확보해야 할 것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5일(현지시각) ‘역대급’이라고 볼 수 있는 대북한 경제제재 결의안(2371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그동안 북한에 우호적인 자세를 보이던 중국과 러시아도 결의안에 찬성했다. 북한이 중국에 수출하는 주요 자원인 석탄의 양을 연간 750만t(또는 4억87만 달러)로 제한했던 기존 결의안(2321호)에서 조건을 훨씬 강화해 ‘석탄 수출 전면 중단’으로 결정한 것이다. 수산물 수출도 처음으로 전면 중단 조치에 포함되었다. 

 

이번 결의안이 실행에 옮겨진다면 북한은 연간 수출액의 3분의 1인 10억 달러(1조1260억원)의 외화 수입이 줄어들어 경제에 치명상을 입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해서 북한 정권이 ICBM과 핵개발을 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미국이 전쟁을 비롯한 군사적 수단으로 체제를 위협하는 일을 그치기까지는 핵과 미사일 개발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것이 북한의 확고부동한 입장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측의 정부와 여야 정당들은 북한이 더 이상 궁지로 몰리지 않고 대화와 협상의 길로 나올 수 있도록 함께 전략을 논의해야 할 것이다. 최악의 상태를 막고 한반도의 평화를 확보하는 과업 앞에는 여와 야가 따로 있을 수 없지 않은가?

 

자유언론실천재단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ㆍ동아투위 위원장


원본 기사 보기:서울의소리


기사입력: 2017/08/11 [10:03]  최종편집: ⓒ 인터넷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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