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과 중심인 한의학, 한방정형외과로 변질"

정상연 한의사 | 기사입력 2018/08/11 [10:57]

"내과 중심인 한의학, 한방정형외과로 변질"

정상연 한의사 | 입력 : 2018/08/11 [10:57]

한방정형외과로 변질한 한의원

한의학 근간 음양오행의 실종

취약한 보험 보장성 균형이루야

의료기기 규제 한의학 발전요원

 

 

한의학은 철저한 내과(內科) 중심 의학

 

정상연 한의사  

우리 국민은 어떠한 질환으로 한의원을 방문할까? 보통 자고 일어나니 목이 돌아가지 않는다’, ‘무거운 상자를 들다가 허리를 삐끗했다’, ‘등산을 하다가 발목을 접질렀다등의 근골격계 통증이 생길 경우이다.

 

실제로 2018년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의원을 이용하는 주요 질환으로 요통이 52.7%로 가장 높았으며, 그 다음 염좌, 오십견 및 견비통 순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현재 한의원 진료 실태를 보면 한방정형외과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그러나 한의학의 기원과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한의학은 철저한 내과(內科) 중심 의학이다. 3000년 전 한의학은 주술과 같은 무속적인 개념의 치료법을 배제하고, 자연과 몸의 이치를 탐구하여 사람을 살리는 의학을 정립하기 시작했다.

 

한의학 이론의 정수라고 말하는 음양오행(陰陽五行)은 몸의 균형을 추구하는 학문이다. 가령 소화가 되지 않을 때에 해산물이나 야채 같은 찬 음식이 문제라면 따뜻한 약재를 복용한다. 물론 술이나 독한 향신료와 같은 뜨거운 음식이 문제라면 반대로 차가운 약재를 복용하게 된다.

 

신체의 음과 양의 균형을 맞출 뿐만 아니라, 오행이라는 속성을 추가적으로 고려하면 치료의 효과는 더욱 올라간다.     

 

신체의 음과 양의 균형을 맞출 뿐만 아니라, 오행이라는 속성을 추가적으로 고려하면 치료의 효과는 더욱 올라간다. 가령 몸에 생긴 열()이 지속적으로 몸에 쌓인 바람이 해소되지 않아 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감기와 같은 차가운 기운이 들어와 면역반응으로 생긴 현상인지를 판별한다면 더 효율적으로 몸의 열을 제거할 수 있다.

 

이렇게 인체 내 음양의 조화를 추구하고, 오행의 전화(傳化)작용을 조절하는 한의학은 감기나 소화불량과 같은 가벼운 질환에서부터 심혈관계 질환, 비뇨생식계 질환 등 몸의 내부에 생기는 포괄적인 문제를 다루는 학문이다.

 

2018년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의원을 이용하는 주요 질환으로 요통이 52.7%로 가장 높았으며, 그 다음 염좌, 오십견 및 견비통 순으로 나타났다.

 

물론 근골격계 질환을 치료하는 한의학 이론과 서적도 셀 수 없이 많지만, 그 뿌리는 모두 음양과 오행에 두고 있다. 가령 허리의 요통은 거양(巨陽)의 방광경에 사기(邪氣)가 들었음을 인식했고, 손발의 저림은 풍한습(風寒濕)의 사기(邪氣)가 들었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

 

불평등한 보험체계 내과질환 현격 감소

 

그런데 오늘날 한의원은 소중한 한의학 이론이 제대로 발현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우선 한의사들이 한의학 이론을 이용해 내과질환을 처치하기를 꺼려한다. 왜냐하면 한의학이 너무나도 어렵기 때문이다.

 

 

우선 한의사들이 한의학 이론을 이용해 내과질환을 처치하기를 꺼려한다. 왜냐하면 한의학이 너무나도 어렵기 때문이다.


수재
(秀才)라는 소리를 들으며 한의과대학에 입학한 예비 한의사들의 학력을 동양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잘 쳐줘도 유치원 수준에 불과하다. 서구화된 학문일색인 우리나라의 교육과정상 자기이름을 한자로 정확히 쓰기도 버거운 사람들이 한의대에 입학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들을 모아두고 천자문부터 가르치며 한의학을 교육시키는 것이 한의대교육의 시작이다. 대학시절동안 한자와 동양철학과 같은 기초지식을 익히고 한의학을 전공하여 면허를 받는다고 치자. 하지만 동양학 차원에서 유치원 수준의 학력부터 시작한 사람이 우리 조상 중 최고의 인재들이 정립한 이론을 6년 만에 모두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리이다.

 

따라서 당장 임상에 급급한 한의사들은 한의학의 정통이론을 소하해내지 못한 체, 지난 청소년 시절 익숙하게 공부해왔던 서양과학과 유사한 분야인 근골격계 통증질환에 매달리는 것이다. 근육의 기시점과 종시점을 중요시하고, 길항근과 주동근을 분별하며, 신경포착을 해소하는 것에 중점을 두는 현대 한의학 풍조는 이렇게 생겨난다.

 

또한 정부의 보험 정책도 한의원이 근골격계 질환에 매달릴 수밖에 없게 한다. 한의진료는 보험의 보장률이 적기로 유명한데, 그나마 그 비중이 침구치료에 쏠려있어 한의원들이 침의 효과가 빠른 근골격계 질환에 집중하고 있다.

 

만약 소화불량으로 한의원에 방문하여 약을 처방받는다면 진찰료와 탕약처치료 등을 포함해 6만원 가량이 지출되는데, 이는 보험이 적용되는 양방의원과 비교했을 때 5~6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한약이 양약에 비해 갖는 유효성을 고려하더라도 압도적인 금액차로 인해 소화불량 환자는 양방의원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결국 불평등한 보험체계로 인해 한의원에서 내과질환을 다루는 기회는 현격히 줄어들게 된다.

 

또한 정부의 의료기기 규제도 한의학이 내과치료를 하는 데에 커다란 방해가 된다. 속을 들여다 봐야하는데, 그 눈을 멀게 해버릴 참이면 차라리 한의사에게 침과 뜸을 빼앗아가는 것이 낫겠다.

 

 

의료기기는 절대로 한의학 이론과 배치되는 기계가 아니다. 수천 년 전 한의사들도 모두 인체의 내부를 들여다보기 위해 전전긍긍하였다. 기술의 한계로 죽은 사람의 몸을 들여다보며 해부학을 했을 따름이다.

 

몸을 다루는 사람에게 몸의 내부를 비춰주는 기계를 서양의학의 기계라며, 한의사에게만 사용을 불허하는 복지부의 태도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양의사의 밥그릇을 지켜주는 규제 탓에 한의학은 퇴보하고, 속병을 제대로 고치지 못하는 국민은 고통 받는다.

 

한의학이 본래의 정체성을 되찾고 내과질환을 능숙하게 다루려면 우선 한의과 대학의 교육이 정상화 되어야 한다. 투명한 강의평가를 통해 자질 없는 교수진을 물갈이 하고, 교육과정을 개편하여 제대로 된 동양학과 정통 한의학 강의시간을 늘려야 한다.

 

양질의 병원 인턴과 레지던트 자리를 늘려 졸업 후에도 지속적인 교육을 제공하고, 상업성이 짙은 현재의 임상 세미나도 손봐야할 것이다. 그리고 비방(秘方)이라 하여 한의학을 밀폐시키는 학풍에서 벗어나 한의사들이 활발하게 학문 교류를 할 수 있도록 관련 학회가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정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첩약을 국가보험에서 보장하고 한의진료를 실손보험에 재편입시키는 등 한의과 보장률을 양방과 동등하게 맞추어야한다. 또한 후손들이 바라보면 실소(失笑)를 금치 못할 의료기기 규제도 하루 빨리 철회해야 할 것이다.

 

국가 헌법에서 한의학의 발전을 보장하는 중국과 한의사 전문의 제도를 시행하여 이제 막 한의진료의 걸음마를 뗀 일본. 두 이웃 나라를 보면 한의사로서 한국에 태어난 것이 한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동틀녘이 가장 어둡다고 하지 않던가? 한의학의 음과 양처럼 말이다. 한의학의 정체성이 십분발휘 되는 그 날이 어서와 그 혜택을 대한민국 국민이 두루두루 나눠 갖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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