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피해자들 日전범기업 국내자산 사상 첫 매각절차 시작

정현숙 | 기사입력 2019/05/02 [10:34]

강제징용 피해자들 日전범기업 국내자산 사상 첫 매각절차 시작

정현숙 | 입력 : 2019/05/02 [10:34]

대리인단 일제 전범기업들과의 협상 의사 아직 가지고 있다"

 

2018년 30일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중 유일한 생존자인 이춘식 씨(가운데)와 피해자 유가족들이 강제징용 손해배상청구 소송 재상고심 판결을 앞두고 서울 서초구 대법원 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단은 1일 일본제철(구 신일철주금)과 후지코시의 국내 자산을 매각해달라고 각 지방법원에 신청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10월 이후 대법원에서 일본제철, 미쓰비시중공업, 후지코시 등 일본 전범기업들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하라는 확정판결이 내려진 데 따른 것이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대법원 확정판결에 근거해 압류했던 일본 기업들의 국내 자산을 매각해달라고 법원에 신청하면서다. 법원이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사상 최초로 일본 전범기업들의 국내 재산 매각이 이뤄지게 됐다.

 

일제강점기 강제노역 피해자들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한 법원 판단을 기초로 재산명시 신청과 자산 압류 등 집행절차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실제 현금화를 통한 구제가 이뤄질 수 있을지 여부가 그동안 관심사였다. 

 

오늘 일본은 아키히토 일왕이 퇴위하고 나루히토 왕세자가 새 일왕으로 즉위해 연호가 ‘레이와’ 시대로 바뀐 첫날로 대대적으로 떠들고 있는 가운데 지난 2000년 첫 강제징용 소송을 시작해 작년에 대법원에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승소 확정 판결을 받은 뒤 처음으로 이뤄진 실질적인 배상 조치로 첫걸음을 뗐다.

 

일본제철, 후지코시, 미쓰비시중공업 등 일제 강제노역 유관 기업들에 대한 집행 절차 또는 이에 대한 신청이 서울, 대전, 울산, 포항 등 전국 각지 법원에서 이뤄지면서 사상 최초로 일제 전범기업들의 우리나라 자산에 대해 강제매각절차가 시작됐다.

 

이날 대리인단은 대구지방법원 포항지원과 울산지방법원에 각각 일본제철이 소유하고 있는 주식회사 피엔알의 주식 19만4794주(9억7400만원 상당)과 후지코시가 소유하고 있는 주식회사 대성나찌유압공업 주식회사의 주식 7만6500주(7억6500만원 상당)에 대해 매각명령신청을 냈다. 이 주식들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대법원 승소로 올들어 압류가 이뤄졌다고 머니투데이가 보도했다.

 

대리인단은 아울러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해 지난 4월 24일 서울중앙지법에 재산명시신청을 제출했다. 대리인단 측은 "미쓰비시 중공업의 상표권과 특허권 등이 이미 압류된 사실이 있으나, 지적재산권 이외의 재산을 확인하기 위해 재산명시신청을 했다"고 밝혔다.

 

법원은 미쓰비시중공업에 대해 특정일까지 재산목록을 제출하라는 재산명시명령을 내리게 되고, 미쓰비시가 정당한 사유 없이 이에 따르지 않을 경우 채무불이행자명부등재 등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대리인단은 "90세를 전후로 한 생존 피해자분들의 연세를 고려할 때, 현금화를 늦출 수 있는 마지노선에 다다르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 일본 기업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 양국 정부도 분명하게 인지해야 할 것"이라며 "강제동원 가해기업을 비롯한 그 어떤 주체로부터의 의사표시도 받은 사실이 없다. 이에 한국 대법원 확정판결로부터 반 년이 지난 지금, 대리인 지원단은 더 이상 현금화 절차를 늦출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환가절차 시작 배경을 설명했다.

 

지금까지 일본 전범기업들의 압류 자산이 매각되는 등 현금화 절차가 실행된 적은 없다. 일본 기업의 자발적인 채무 이행 및 관련 협의에 대한 기대, 자산에 대한 강제 집행이 불러올 수 있는 정치적 여파에 대한 고려 등이 배경이었다.

 

그 동안 일본 정부는 환가절차 실행 여부에 대해 대단히 민감한 반응을 보여왔다. 일본 정부는 강제노역과 관련한 한국 법원의 판결, 압류 결정 등에 대해 "일본 기업에 피해가 나오면 대항조치를 취할 방침", "압류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는 것은 매우 심각하다"는 등의 논평을 잇따라 냈다. 일본 정부에서 일종의 선으로 삼았던 환가절차가 실제 실행됨에 따라 한일관계는 아무래도 경색 국면을 맞을 전망이지만 어디까지나 정당한 법집행일 따름이다.

 

또한 본격적인 집행절차에 돌입하더라도, 일본제철 쪽 반발 등을 고려하면 최종 매각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압류된 두 기업 주식은 비상장 주식이기 때문에 시가가 정해지지 않아 회계법인 등 감정기관을 통해 정확한 감정가를 결정해야 한다.

 

이 절차에만 통상 2개월 이상 소요된다. 감정 결과가 나온 다음에는 채무자가 아닌 제3자가 주식을 매각할 수 있도록 매각공고를 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일본제철 쪽이 이의신청을 제기하면 재판으로 또 다시 매각의 적법성을 따져야 할 수 있다. 일본제철은 이미 자산 압류 절차에 돌입하자마자 “일본 정부와 논의해 대응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지난 3월 일본 아소 다로 부총리는 강제집행이 현실화 될 경우 비자 발급과 송금 정지 등의 대응조치 가능성을 언급한 바 있지만 우리 정부는 아직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대리인단 관계자는 압류재산 매각 진행 절차를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에도 알렸지만 “(그에 대한) 정부 반응은 없었다”고 전했다. 

 

대리인단은 그러나 "일제 전범기업들과의 협상 의사를 아직 가지고 있다"며 가능성을 열어놨다. "오늘 매각명령신청 이후 현금화 대상이 되는 자산(주식)에 대한 감정절차 등 일련의 현금화 절차가 진행될 예정이며, 한국 법원의 매각명령서가 일본 기업들에게 송달되는 기간까지 고려할 때 위 주식이 실제 현금화될 때까지는 3개월 이상의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위 기간 동안 강제동원 가해기업들과 여전히 포괄적인 협의 의사를 가지고 있음을 밝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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