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아줌마 뭉치면 혁명 가능할듯”

[동남아일기-인도네시아④] 와다르씨와 폰티아낙 캠페인투어

윤경효 | 기사입력 2009/06/14 [02:14]

“전세계 아줌마 뭉치면 혁명 가능할듯”

[동남아일기-인도네시아④] 와다르씨와 폰티아낙 캠페인투어

윤경효 | 입력 : 2009/06/14 [02:14]
▲ 와르다 하피즈(Wardah Hafidz)씨.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사회운동가이며 도시 빈민·인권운동을 하는 UPC 창립자.     © 518기념재단
오전 11시. 메단에서 자카르타행 비행기에 올랐다. 모든 교통이 자카르타를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어서 폰티아낙행 직항은 없고 갈아타야 한단다.
 
비행기 안에서 와르다씨와 메단에서의 일과 UPC의 활동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와르다씨가 내게 묻는다. 일주일 동안 자카르타 빈민촌을 방문한 소감이 어떠냐고. 글쎄, 솔직히 겨우 일주일 둘러보고 빈곤문제에 대해서 얘기하기는 힘들고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고, 다만, 환경운동을 해서인지, 눈에 들어온 것은 수질오염과 쓰레기 처리문제가 아주 심각한 것 같다고 대답했다.
 
UPC의 환경교육 프로그램이 시작단계이기는 하지만 좀 더 적극적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말했더니, 와르다씨가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듯하다. 한국의 활동사례를 들어 쓰레기처리 문제에 대한 시민캠페인이나 분리수거 같은 정책이 진행되고 있느냐고 물으려는데, 끝까지 듣지 않고 인도네시아와 한국이 다르고, 인도네시아 빈민촌에서 환경교육은 단지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일 뿐이니, 한국사례를 단순히 적용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다소 강한 어조로 어필한다.
 
“일주일만에 소감이 어떠냐고?”
 
아마도 나의 말을 한국사례를 단순히 인도네시아에 적용시켜보라는 것으로 오해한 듯하다. 어휘선택이나 뉘앙스에서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도 있었겠지만, 한발 물러서 생각하면, 예민할 필요가 없는 대화인데, 아마도 와르다씨가 소위 잘 사는 나라 사람이 그보다 못 사는 사람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와르다씨의 세계관과 운동철학이 궁금하여 계속 이것저것 질문했는데, 인도네시아를 넘어서 세계적으로 사회정의가 구현되지 않아, 빈곤층, 특히 제3세계 국가의 빈곤층의 삶은 끔찍할 수밖에 없으며, 이는 그들의 게으름이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세계화와 자본주의라는 구조적인 힘에 의해 그런 상황에서 헤어 나올 수 없는 것이라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빈곤층의 결집을 통한 대안모색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 지도상의 폰티아낙.     ©윤경효
 
일종의 혁명이랄까? 기존의 착취 정치경제 패러다임이 모두 서구철학에서 기반한 지라 와르다씨는 평화와 공생을 기반으로 하는 동양적 패러다임을 통해서만 현재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운동방법 역시 하향식(Top-Down)이 아닌 상향식(Bottom-Up)을 추구하여,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조직하여 결집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다소 느려 보일 수 있지만 상향식만큼 단단한 사회기반이 또 있을까.
 
동양적 패러다임과 사회혁명
 
그녀와 같은 철학을 가지고 행동하는 사람이 전세계 각 나라에 1명씩이라도 있으면, 언젠가 그녀가 바라는 혁명이 이루어질 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이런 철학 때문에 아마도 나의 환경교육에 대한 의견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으리라.
 
▲ 약 2시간가량 진행된 회의는 내가 인도네시아에 온 뒤 겪은 가장 열띤 회의였다.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고 했던가. 전 세계 아줌마들이     ©윤경효

 
나 역시 그녀의 세계관과 운동철학에 동의하고 있으며, 그저 어느 정도의 활동들이 진행되고 있는지를 알고 싶었을 뿐이라고 오해를 푼다. 그녀의 명함을 보면, 직함을 ‘간사(coordinator)’라고 해 놨는데, 여기서도 그녀의 철학을 엿볼 수 있을 것 같다. 한국 같았으면 사무총장(Secretary General)’이라는 타이틀이었을 게다.
 
와르다는 인도네시아의 대표적인 사회운동가로 1987년부터 여성인권운동으로 시작하여 1997년 UPC를 설립하였으며, 이전까지 사회적으로 인식되지 않았던 도시빈민의 인권문제를 UPC활동을 통해 전면에 부각시켰다. 도시빈민은 UPC와 함께 정부의 강제철거에 투쟁하는 한편, 훈련프로그램을 통해 조직적인 대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 벽에 붙어있는 캠페인 진행 현황판. 정연하게 붙어 있는 것만 봐도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 느껴진다.     ©윤경효
와르다씨는 현재 인도네시아 전국 14개 도시의 주민조직들의 연대체인 UPLink의 네트워크 활동에 주력하고 있으며, 지난 2005년에는 인도네시아 빈민인권 및 민주화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2005년 광주518기념인권상도 수상하였다.
 
저녁 6시. 긴 비행여정을 마치고 드디어 서칼리만탄의 수도인 폰티아낙(Pontianak)에 도착했다. 위도 0°, 적도계가 지나는 곳에 위치한 폰티아낙은 저녁나절인데도 무더운 공기가 얼굴을 덮친다. 적도의 날씨는 이렇구만. 헐~
 
“적도의 무더위 이런 거구만”
 
약 50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는 폰티아낙은 인도네시아에서 제일 긴 강인 카푸아스(Kapuas, 1,143km)강 델타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중소 산업도시이다. 주로 조선업과 고무, 팜오일, 설탕 등 농업을 하고 있으며, 예전에는 보르네오섬의 금광채굴의 중심지였다 한다.
 
다른 지역과 달리 단일 종족으로 중국인이 가장 많이 살고 있단다. 그래서인지 마을 사람들이 나를 중국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중국인들이 폰티아낙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1942년~1945년 폰티아낙이 일본 식민지배에 들어갔을 때 독립운동을 두려워한 일제에 의해 2만1천여 명의 중국인들이 납치 또는 고문·학살됐다고 한다.
 
저녁 7시, UPLink(Urban Poor Linkage: 빈민주민조직간 전국네트워크)의 폰티아낙 사무실에서 신규 주민조직을 대상으로 2009년 대선 빈민후보 캠페인을 위한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약 30여명의 주민조직 관계자들이 참가하였는데, 메단과 달리 주부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고, 그들의 에너지가 만만치 않다. 아줌마의 힘은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ㅎㅎ.
 
▲ 폰티아낙에서 활동 중인 UPLink 활동가와 자원봉사자들. 표정에서 비장함이 느껴진다. 예전 한국에서 민주화운동을 했던 분들의 얼굴 모습이 떠오른다.     © 윤경효


폰티아낙의 캠페인 목표는 2만명인데, 이미 목표를 달성하고도 더 많은 사람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기존의 주민조직과 활동가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다. 사무실 벽이 사람 모집 현황판으로 가득 메워져 있다. 인구 2백만이 넘는 메단시가 불과 5천명을 모집한 데 그친 반면, 더 작은 도시인 폰티아낙이 더 많은 활동 성과와 열정을 갖고 있는 것에 와르다씨의 얼굴이 활짝 폈다.
 
“주부들 에너지 만만치 않다”
 
회의에 참석한 주민들에게 왜 이런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냐고 물었더니, 보다 나은 삶을 살고자 동참하게 되었단다. 보다 나은 삶이란 게 어떤 것이냐고 되물으니, 잠시 생각한 후, 안정된 일자리가 있고, 생산수단이 보장되고 교육과 의료서비스가 좋으면 된다고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전세계 사람들이 항상 싸우고 있는 문제이다. 내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해 본다. 한국에서 나의 일자리를 확보하고 생산수단을 보장받고, 교육과 의료서비스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혹시 나는, 이들이 바라는 그것들을 뺏고 있는 것은 아닐까?
 
▲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있는 아데는 이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1년 휴학을 했단다. 만 하루 동안 나눈 정에 떠나는 날 너무 아쉬워 다음을 기약했다.     © 윤경효
9명으로 구성된 활동가와 자원봉사자들을 보니 조직적으로 잘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특히, 데미 무어를 닮은 뜨리(Tri)를 보니, 여전사 같다는 느낌이다. UPLink의 활동가로 원래 술라웨시(Sulawesi)섬에서 활동했는데, 조직운동경험과 폰티아낙 캠페인 지원을 위해서 2개월 전에 옮겨왔단다.
 
이렇게 씩씩한 그녀도 내가 데미 무어 닮은 것 같다고 했더니, 부끄러워한다. 헐~ 영어, 바하사, 바디랭귀지, 그림까지 동원해 가며 아데(Ade)와 옹크(Onk)와 이야기 삼매경에 빠지다 보니 어느새 새벽 4시다. 한국 같았으면 술잔이 오갔을 터인데, 여기서는 그저 노래 하나면 족하다. 하긴 더운 곳에서 술까지 마시면. ㅋ 죽지 않으면 다행일지도 모를 일이다. 헐~


대초원에서 유라시아 환경보고서를 띄우던 경효.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캄보디아로 1년여 장도의 동남아시아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기행문을 써온 제가 이번엔 영국 쉐필드에 왔습니다. 쉐필드대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려고요. 이젠 유학일기로 관심을 좀 끌어볼게요. ^^*
  • 도배방지 이미지

윤경효, 동남아일기, 자카르타, 인도네시아 관련기사목록
윤경효의 영국 유학일기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