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기는 게, 아시아인끼리 멸시하고·받는

[동남아여행13]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12일째 머물러

윤경효 | 기사입력 2009/08/31 [00:15]

웃기는 게, 아시아인끼리 멸시하고·받는

[동남아여행13]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12일째 머물러

윤경효 | 입력 : 2009/08/31 [00:15]
꿈꾸는 와중에도 몸에서 보내오는 긴급신호는 감지되는 것 같다. 부글거리는 뱃속 때문에 자다 말고 일어나니 새벽 4시 45분. 새벽에 떠난다던 스코틀랜드 커플이 그새 소리도 없이 떠났다. 바로 옆 침대인데다 이층침대라 삐걱거리는 소리에 기척을 느꼈을 법도 했는데, 어떻게 전혀 몰랐을까. 헐~ 어젯밤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낸 터라 작별인사라도 하고 싶었는데, 아쉽다. 어제 함께 놀았던 여행자들이 오늘 모두 떠났다.
 
5일 동안 같은 곳에 머물면서 오고 나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니, 기분이 참 묘하다. 이럴 수밖에 없는 관계인 것을 여행자들은 본능적으로 아는 것일까? 다른 이야기는 다 해도, 서로 이름을 잘 묻지 않는다. 사실, 들어도 잘 기억나지 않고, 그저 어느 나라 사람이었다는 것만 남는다.
 
처음 여행을 시작했을 때, 가능한 만난 사람들의 이름과 이야기를 기억하려고 애를 썼지만, 여행이 거듭될수록, 그저 서로 스쳐 지나가도록 하는데 익숙해지게 된 것 같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인연을 맺을 수 없고, 그래서 그렇게 스쳐 지나가도록 둬야 하는 것이 여행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여행이 고독할수록, 내가 맺은 인연에 대한 소중함을 더 절실히 느낄 수 있고, 또 우연히 만난 소중한 인연을 잘 알아 볼 수 있으리라.
 
여행 고독할수록, 인연 소중함...
 
▲ 룸메이트들. 영국인이지만 호주에서 일하는 크리스(2층 남자), 스코틀랜드 학생커플(2층 앞 여자와 1층 오른쪽 뒤), 네덜란드인 학생 줄리앙(1층 왼쪽).    ©윤경효
인도네시아와의 인연은 계속되는 것 같다. 화요일 하루 종일 게스트하우스 거실에서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는데, 말레이계로 보이는 3명의 젊은 친구들이 들어왔다. 알고 보니, 인도네시아 반다아체에서 쓰나미 복구사업에 참여했던 인도네시아인들이다. 2~3년 동안의 활동계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여행을 왔단다.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이라 서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자정을 훌쩍 넘겨버렸다.
 
올해 30살인 케이쟈(Keiza)와 어느새 친구가 되었다. 아담하고 예쁘장한데다 조곤조곤 조심스럽게 이야기하는 케이쟈를 보고 있으니, 와르다씨의 젊은 시절이 이렇지 않았을까 연상된다. 종종 여행하다가 몇몇 여행자들과 연락처를 주고받는데, 대개는 잊히기 일쑤지만, 케이쟈와는 왠지 또 다른 만남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지난 월요일, 말레이시아에서 인도네시아인 이주노동자 인권보호를 위해 활동하고 있다는 알렉스 옹(Alex Ong)씨를 만났지만, 인도네시아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지라 전체적으로 알 수는 없었다.
 
다만,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모든 이주노동자들에 대해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과 이주노동자들이 주로 일하는 영역이 가사노동 영역이고, 이들을 고용하는 대부분의 사람은 중국계와 인도계라는 것이다.
 
서른 케이쟈와 친구 되어...
 
현재 말레이시아 전체 이주노동자 중 70%를 차지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여성은 한 달 평균 400RM~600RM(약 $114~171)을 받는 반면, 캄보디안 500RM~600RM($143~171), 필리핀 1,200RM~1,400RM($343~400)을 받는 등 차이가 있다고 한다.
 
보통 하위 중산층의 월 평균 수입이 3,000RM($857)임을 감안하면 필리핀 노동자의 경우 많이 받는 편인데, 이는 자국에서 직장을 구하지 못한 대학 졸업자들이 영어가정교사 겸해서 고용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보수를 받는 것이라고. 인도네시아 등 다른 나라 이주노동자들은 빈곤층으로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이 주로 온단다.
 
▲ 루나바에서 찍은 페트로나스 쌍둥이타워(Petronas Twin Tower). 한국건설업체가 지은 쌍둥이 빌딩으로 중간에 두 건물을 잇는 다리가 있는 것으로 유명한 쿠알라룸푸르의 상징이다.     © 윤경효

 
인도네시아인이 유난히 선호되는 이유는 같은 말레이어를 사용하는데다, 인건비가 싸기 때문이라고. 말레이시아에서 생활하려면 최소 800RM/월($229)이 필요하고 보통 말레이시아 사람들의 경우, 1,000RM/월($286) 정도 번다고 하니, 이주노동자들은 사실상 말레이시아의 최하 빈곤층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뿐만 아니라, 임금 미지급 및 정신, 성적 학대, 그리고 인력중개업체에 의한 인간매매(Human trafficking) 등 인권문제가 심각해서 현재, 이주노동자단체뿐만 아니라, 여성단체, 인권단체가 함께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주노동자들, 최하위 빈곤층
 
알렉스씨에 따르면, 그 동안 인도네시아 정부가 이 문제에 무관심하다가 최근에야 한번 관심을 보였다고. 인도네시아의 이슬람정당을 중심으로 ‘형제애’에 호소하여 로비하고 있지만, 성공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단다. 이미 부패한 정부가 인력중개업체의 돈에 계속 휘둘릴 지, 아니면, ‘형제들’을 제대로 보호할 마음을 갖게 될 지...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사실은 이들을 고용하는 사람들이 누구냐 하는 것이었는데, 중상류층 구성을 보면 공무원 직업을 가진 말레이계와 전문직 종사자 및 자영업을 하는 중국계 및 인도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 KL타워의 야경.     © 윤경효

 
고위 공무원 숫자는 한계가 있으니, 대부분의 중상류층이 중국계와 인도계로 채워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사실, 인구의 약 30%가 중국계와 인도계인데, 결국 이들 대부분이 중산층 이상이란 의미다.
 
말레이시아의 경제는 이미 중국계와 인도계가 장악한 것일까? 최소한 쿠알라룸푸르에서는 그렇게 보인다. 페낭도 중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이라는데, 앞으로 가게 될 ‘말레이시아’의 대도시마다 중국인들을 더 많이 보게 생겼다.
 
30% 인도·중국계 중상층 삶
 
저녁식사 하러 인근 식당에 밥 먹으러 갔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인도계 할아버지들이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냐고 묻는다. 어찌 아시느냐고 물었더니, 중국인은 코가 납작한데, 한국인이나 일본인은 안 그렇다나.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이 모두 비슷하게 생겼다고 말씀 드려도 한사코 중국인을 깎아 내린다.
 
식당 주인이 중국인인데, 할아버지들이 참 간도 크시다. 한국인들과 몇 번 함께 일해 봤다는 한 할아버지는 한국문화가 참 좋다고 입이 닳도록 칭찬하시면서 은근히 말레이계와 중국계에 대한 싫은 내색을 하신다. 말레이계는 게으르고, 중국계는 너무 돈을 밝힌다나… 돈 밝히기는 인도계도 매 일반인 것 같은데…
 
중국친구들이 경쟁자로 느껴져서 그러시죠? 하고 물으니, 슬쩍 웃으시며, 그렇기도 하단다. 헐~ 지난번 중국인 아주머니도 말레이계에 대해 약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했는데, 이 인도계 할아버지들도 말레이계에 대해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영국식민지 때가 훨씬 좋았다며, 계속 영국이 지배했었더라면 더 잘 살게 되었을 거라고 말씀하시는 할아버지들을 보는데, 갑자기 내 뒷골이 당긴다. 마치 한국에 오래 살던 외국인이 한국이 일본지배를 계속 받았더라면 더 잘 살았을 거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것처럼.
 
‘간 큰’ 인도계 노인들의 험담
 
▲ <사진3> Reggae GH의 직원 수라야(Suraya). 인도네시아에서 온 그녀는 2개월이 되었으며 앞으로 5년 동안 말레이시아에서 일할 거란다. 가족을 두고 혈혈단신으로 와 게스트하우스의 침대정리와 청소를 한다. 한 달에 850RM을 받아 가족에게 보내고 나면 남는 것이 없어 빈민촌에서 겨우 밥만 먹으며 살고 있지만, 자기는 조건이 좋은 편이는 눈치다. 말레이시아에 오기 위해 중개업체에 진 빚 500RM을 떠안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빈민단체에서 일했다고 하니 반가워하며 알뜰살뜰 챙겨주는데, 코끝이 찡한다.     © 윤경효
더 얘기를 나누는 것이 거북해서 자러 가야겠다고 하며 서둘러 나왔다. 오랜만에 맛있는 볶음밥을 먹었는데, 뒤 끝이 씁쓸하다. 말레이계 나라인 말레이시아에서 말레이계는 어째서 그들보다 가난하며, 무시당하고 살고 있는 겐지… 너무 ‘유순한’ 그들은 또 이렇게 져주고 있는 건가.
 
사실, 가만 들여다보면, 말레이계를 무시하는 중국인도, 인도인도, 다른 나라 사람들로부터 참 많이 멸시당하며 지내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누군가를 멸시하는 우리도 누군가로부터 멸시 받고 있는데, 웃기는 게, 아시아인들끼리 그러고 있다는 게지…
 
우리들이 멸시하지 못하는 부류가 있는데, 그게 하필 아시아 땅에 빨대 꽂아놓고 좋은 양분 쪽쪽 빨아먹고 있는 서양인들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해 돈 벌면 서양처럼 될 수 있고, 그것은 곧 ‘힘’을 갖는 것이라고 학교에서 배웠다.(지금도 그러는 것 같지만, 그것도 아시아 전역에서…) 그 ‘힘’이 겨우 약자에 대한 ‘멸시’와 ‘빼앗기’를 의미했던 것인가.
 
솔직히, 16~17세기 서양의 동양에 대한 식민시대가 시작된 이후 짜여 진 서양 중심의 세계경제구조에서, 함께 식민지 쟁탈전에 참여했던 일본을 제외하고 나머지 나라는 결코 그들 이상의 ‘부’와 ‘권력’을 얻기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아~주 특별한 재능과 능력을 갖고 태어난 사람을 빼고 평민이 열심히 일해 중산층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상류층’은 될 수 없는 현재 우리 사회 구조처럼.
 
유순한 말레이계, 또 져주는가?
 
와르다씨에게서 어제 안부연락이 왔다. 지금 수라바야에서 며칠째 지역주민들에게 주민조직과 활동방법을 교육 중이라고 한다. 이미 짜여 진 판에서 그저 말 잘 듣는 모범생이 될 것이냐, 아니면, 그 판을 깨기 위해 노력할 것이냐, 와르다씨가 내게 묻는 듯하다.
대초원에서 유라시아 환경보고서를 띄우던 경효.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캄보디아로 1년여 장도의 동남아시아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기행문을 써온 제가 이번엔 영국 쉐필드에 왔습니다. 쉐필드대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려고요. 이젠 유학일기로 관심을 좀 끌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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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ㄴㅇㅇ 2019/07/08 [07:57] 수정 | 삭제
  • 아시아인들은 역사적으로 사이가 좋았으니 오순도순 사이좋게 지내라 뭐 이런 관점이 전제되어 있는건가요?? 아니면 역사적으로 세계사에서 약소했으니 싸우지 말고 찌질이들끼리 사이좋게 지내라 뭐 이런건가요? 코카서스들이랑 앵글로 색슨도 같은 피부를 나눴지만 피를 나눈거처럼 지내지는 않던데요?? 중세사만 봐도 답나오는데 왜 굳이 노랭이들끼리만 사이 좋으로 강요를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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