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매지숙명(紅梅之宿命) 여명의 눈동자(43-2), "갑자기 웬 꽃이냐?"

이슬비 | 기사입력 2022/09/17 [10:48]

홍매지숙명(紅梅之宿命) 여명의 눈동자(43-2), "갑자기 웬 꽃이냐?"

이슬비 | 입력 : 2022/09/17 [10:48]

<지난 글에 이어서>

 

남편을 만나고 한동안은 이제 더는 미래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그저 좋았습니다. 이제는 아름다움이 다해도 사창가로 기어들어가 포주에게 매를 맞으며 손님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그저 좋았지요.”

 

…….”

 

그리고 남편이 죽었을 때도 그저 좋았습니다. 이제 나는 돈 많은 과부가 됐으니 일생을 편하게 보낼 수 있다, 더는 나를 구속하는 그 무엇도 없으니 마음껏 사치나 부리며 살아야겠다 그런 생각이었지요.”

 

서란은 빈 잔에 차를 따랐다. 쪼르륵 소리와 함께 떨어지는 찻물이 어딘지 모르게 눈물처럼 느껴져 서란은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꼭 감았다.

 

레이디 서란, 이 말을 아십니까? 사람은 사랑이 떠나고 나야 알게 된다고요. 자신이 그를 사랑했다는 것을요.”

 

.”

 

저 또한 그러하였습니다. 남편이 죽고 시간이 지나서야 제가 남편을 사랑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후회해도 이미 늦은 일이었지요. 저는 두 번 다시 남편을 보지 못할 테니까요.”

 

서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문득, 적연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도 지금 자신을 그리워하고 있을까. 한동안 데 바옌 부인과 서란 두 사람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두 사람 사이에 내려앉은 침묵으로 응접실의 공기는 마치 오래된 고분처럼 가라앉았다. 먼저 침묵을 깬 것은 데 바옌 부인이었다.

 

사랑한다는 말은 편지에 써서 말하라.”

 

데 바옌 부인이 해이안교의 시대에 집필된 육백번가합에 나오는 화가를 읊었다. 서란은 다음 구절을 읊었다.

 

시간은 돌아오지 않고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제가 지금 말씀드린 모든 것들은…….”

 

데 바옌 부인의 목소리가 은밀해졌다. 서란은 낮고 은밀해진 데 바옌 부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다루설리의 모친이며 다루가의 전대 가주인 다루명은에게도 해당되는 것입니다.”

 

다루설리의 부친은 다루명은의 정실이었던 왕완명이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왕안명이 가톨릭교도였다는 말은 들은 적이 없습니다만.”

 

“‘공식적으로는 그렇지요. ‘공식적으로는 말입니다.”

 

데 바옌 부인의 말에 서란은 앞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러고 보니 다루설리의 부친이 가톨릭교도라는 말을 듣고도 왜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어쩌면 서란 자신은 그때부터 다루설리가 자신처럼 죽을 운명이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서란은 데 바옌 부인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데 바옌 부인의 말에 의하면 다루설리의 부친은 사성귀족 중의 하나이며 공가 중에서도 가장 명문가에 속하는 이씨가의 한 지파인 성씨가의 방계 출신이었다. 그는 가톨릭을 믿는 것을 금지하는 가주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몰래 세례를 받고 가톨릭을 믿었고, 결국, 가문에서 쫓겨나 유랑을 하며 신앙생활을 이어가게 되었다.

 

그의 이름은 성문종. 그러나 가문에서 쫓겨난 뒤에는 줄곧 아우구스티노라는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세례명이었으니까요.”

 

그러던 중, 그는 다루씨가의 영지인 도부의 수도 하양성에서 잠깐 동안 기름장수를 하게 되었는데, 그때 다루씨가의 전대 가주인 다루명은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참 이상한 일이지요. 다루씨가 또한 영지 내에서 가톨릭을 믿거나 전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런 다루씨가의 가주를 사랑하게 되다니 참 얄궂은 일이지요.”

 

해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다음은요?”

 

서란은 데 바옌 부인에게 다음 이야기를 청했다. 데 바옌 부인은 차를 한 잔 마시고 나서 다시 입을 열었다.

 

물론, 두 사람은 첫눈에 사랑에 빠졌지요. 다루명은은 아우구스티노에게 이름을 물었고, 그는 가문을 떠난 뒤로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본래의 이름을 말했습니다. 성씨가의 이름에 놀란 다루명은이 어찌해서 공가의 아들이 기름이나 팔고 있느냐 묻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가톨릭 신앙인이라는 것을 말하고 말았고요. 그만큼 그녀를 사랑하게 되어서 그녀에게 거짓을 말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

 

물론, 그녀도 그 순간만큼은 그가 가톨릭교도라는 것이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두 사람만 평생토록 그 비밀을 간직하면 된다 여기고 그를 저택으로 데려와 첩실로 삼고, 성씨가에는 따로 사람을 보내 둘의 혼인 사실을 알렸지요.”

 

그 다음은 세상의 다른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들처럼 전형적인 이야기였다. 둘은 한동안 행복했다. 그저 서로가 있어서 좋았고, 서로만을 바라보며 살았다. 하지만 아우구스티노를 질투한 다루명은의 정실 왕안명은 그를 쫓아낼 구실을 찾다 그가 가톨릭교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를 가내회의에 부치기에 이르렀다.

 

다루씨가의 영지인 도부에서도 이곳 가유에서와 마찬가지로 가톨릭교도는 발각되는 즉시 사형에 처해지는 것이 법입니다.”

 

…….”

 

하지만 아우구스티노를 사랑했던 다루명은은 그를 살리고 싶었고, 그에게 배교할 것을 권했지요.”

 

…….”

 

그러나 그는 배교를 거부하고 죽음을 선택했고요.”

 

서란은 앞에 놓인 찻잔의 주둥이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물기 어린 주둥이를 손가락으로 문지르다보니 저절로 삑삑 하는 소리가 났다.

 

저와 같은 신세였군요. 누구에게도 보호받을 수 없는.”

 

그나마 자신은 좀 나았으려나. 다섯 살 때부터 유흔에게 보호받기 시작했으니. 서란은 눈을 감았다. 데 바옌 부인이 말했다.

 

다루설리는 자신이 가주가 되자마자 몰래 가톨릭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체 가톨릭이 무엇이기에 아버지가 죽음까지 불사했는지, 어머니와 자신을 두고 죽음을 선택하게 만들었는지 알기 위해 가톨릭을 연구했고 결국은 신도가 되었습니다.”

 

……!”

 

그리고 그녀는 지금 자신의 가문을 망하게 하고 싶어 합니다. 신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이 무엇이 나쁜지, 영혼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이 나쁜지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가톨릭교도라면 덮어놓고 처형하는 자신의 가문을요.”

 

서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데 바옌 부인의 집을 나섰다. 데 바옌 부인의 이야기는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전략을 짜야 하는지를 명확히 제시해주고 있었다.

 

객잔으로 돌아가는 길에 서란은 꽃을 하나 샀다. 붉은 장미로 만든 꽃다발을 든 서란은 객잔으로 들어서자마자 유흔에게 선물이라며 손에 든 꽃다발을 내밀었다. 유흔이 갑자기 웬 꽃이냐며 곱게 눈을 흘겼다. 서란은 그런 유흔을 보며 유흔만큼 예뻐서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예쁘기는 무슨.”

 

그보다 유흔, 나 다루설리에 대해 중요한 것을 알았어.”

 

서란은 유흔과 함께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닫힌 방문 안에서 서란은 유흔에게 데 바옌 부인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서란의 이야기를 듣고 난 유흔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너는 지금 다루설리를 이용해 동북에서 너의 지분을 확보하겠다는 거지? 그래. 알겠어. 역시 우리 화야야. 이따 방계의 인물들을 불러올게. 그때 그들을 확실히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자.”

 

 

<다음 글로 이어짐>

 

알바노동자, 여성, 정신장애인, 성소수자. 노동자와 다중소수자라는 정체성 속에서 길어올린 이야기. 해방세상이 와도 탄압받을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

이슬비 오컬트무협소설 연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