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 드러난 사건 '김용 무죄', 박경만 '노사무1기'에서 시민행동가로

전태수 기자 | 기사입력 2025/11/20 [10:09]

조작 드러난 사건 '김용 무죄', 박경만 '노사무1기'에서 시민행동가로

전태수 기자 | 입력 : 2025/11/20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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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원앞에서 1인시위중인 12.3 민주연대 사무처장 

 

12.3 민주연대 거리 한켠에서 한 남자가 추운 바람을 맞으며 묵묵히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그는 시민운동가도, 정당 관계자도 아니다. 스스로를 “생활정치인”이라 소개하는 교사 출신 박경만 씨다. 그는 20대부터 민주주의의 현장에서 살아왔다.

 

노무현 대통령을 만들었던 노사모 1기였고,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에서도 앞줄에서 외쳤다.

 

하지만 그는 선거가 끝나면 언제나 조용히 교단으로 돌아갔다. “정치는 직업이 아니었습니다.저는 늘 생활인으로서 제 삶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나 2024년 12월 3일, 그의 삶은 완전히 뒤집혔다.

 

그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생사가 갈린다는 사실을 그는 “몸으로 느꼈다”고 회상한다. 박 씨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20대 때부터 지켜온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날 이후 교사라는 안정된 삶으로 돌아가는 것은 제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국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민주주의를 위해 앞장서겠다는 결심이었고, 12.3 민주연대에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바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 결심 뒤에는 또 하나의 분노가 있었다. 바로 검찰의 ‘김용 조작 사건’이다. 그는 이 사건이 “검찰과 사법 시스템의 민낯을 드러낸 대표 사례”라고 말한다.

 

박 씨는 냉정하게 말했다. “김용 부원장 사건은 처음부터 조작이었습니다. 돈다발 사진은 날짜가 조작됐고, 계좌 흐름은 전혀 맞지 않았습니다.

 

검찰이 제시한 증언이라는 것도 강압적 진술 유도로 형성된 왜곡된 조서였습니다. 실체적 증거가 1도 없었습니다.” 그는 자료와 기록을 하나씩 짚으며 “이건 무죄가 아니라 무혐의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박 씨가 가장 가슴 아프다고 말한 대목은 따로 있었다. “우리는 그래도 봄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김용 부원장님에게는 아직도 그 조작수사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그분(김용)은 억울합니다.

 

반드시 무죄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서 박 씨는 ‘김용 무죄’를 외치는 1인 시위에 참여했다. 지난 겨울부터, 그리고 그 이전의 1년 동안 쉬지 않고 민주주의 현장을 지켜온 그는 이제 12.3 민주연대의 구성원으로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누군가는 그를 과격한 활동가라고 부르겠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을 “생활정치를 하는 시민”이라 부른다.

 

그러나 이제 그의 생활은 이전 같지 않다. 그는 말했다.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걸 보고 교단으로 돌아가는 건 제 양심을 배신하는 일이었습니다.

 

민주주의는 남이 대신 지켜주는 제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지켜야 하는 삶입니다.” 12.3 이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겠다는 그의 결심은 오늘도 거리에서 이어지고 있다.

 

박경만 씨의 1인 시위는 거대한 정치의 소용돌 속에서 누군가는 여전히 ‘양심’이라는 언어로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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