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섬에 갇힌 저 소나무와 병든 관악

녹색반가사유(20) "도시화에 찌들어 문드러진 빈약한 동물원"

정미경 | 기사입력 2007/11/12 [10:36]

바위섬에 갇힌 저 소나무와 병든 관악

녹색반가사유(20) "도시화에 찌들어 문드러진 빈약한 동물원"

정미경 | 입력 : 2007/11/12 [10:36]
 드넓은 서울 분지를 남쪽에서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관악산. 이어지는 청계산이 흙산이라면 관악산은 그것과 쌍벽을 이루고 있는 돌산입니다. 가까운 산의 지형과 지질이 이토록 판이하게 다른 이유를 나는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시차를 둔 극심한 대격변에 의해 독자적으로 이루어진 것만은 충분히 유추해볼 수는 있지요. 흙산인 청계산은 임목밀도가 높아 계곡수가 넘치는가하면 석산인 관악산은 물이 없는 이 기막힌 대조! 아무리 지질학적 시간대가 달라도 그렇지 이렇게나 대조적인 데에는 다만 할 말을 잊을 수밖에.
 
▲ 드넓은 서울 분지를 남쪽에서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관악산은 돌산입니다.     © 정미경

 화강암을 기반암으로 전 사면이 가파른 형태로 되어 있는 관악산은 청계산과는 대조적으로 남성성을 빼어 닮았습니다. 산괴가 방대하고 암봉과 암릉이 줄을 이어 험준한 산새를 이루고 있어 쉽게 입산을 허락하지 않는 대단히 귀족적인 특징을 지녔다고도 할 수 있지요.

 험준한 산새는 당연히 다양한 형태의 계곡을 만들고 그에 따라 산의 변화가 무쌍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계곡수가 흐르는 담과 소는 몇안되는 절경중의 절경으로 되고 있으니 말이에요. 

 
▲ 계곡수가 흐르는 담과 소는 몇안되는 절경중의 절경입니다.     © 정미경
 
 장엄함과 험악함을 그대로 비추고 있는 계곡은 그런 점에서 관악산의 홍채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계곡수에 어린 산의 정기는 그래서 쉽게 보고 넘길 수 없는 비경중의 비경이지요. 물 마시러 온 짐승들도 넋을 잃을 정도라고 하면 지나친 과장일까. 새들이 경화수월하는 계곡위에서 지저귈 때는 아마도 신선이 따로 없을 것입니다.

 힘들게 오른 산정. 정상부의 바위산은 불꽃처럼 솟아있습니다. 솟구친 위엄은 누구의 범접도 허락하지 않는 위엄을 지녔어요.
 
▲ 힘들게 오른 산정, 정상부의 바위산은 불꽃처럼 솟아있습니다.     © 정미경

  연주대! 그곳은 구름위에 떠 있는 신기루, 물없는 무릉도원입니다. 새와 바람만이 함께 노는 절세의 낙원이지요. 탁 트인 조망은 사바세계의 옹졸함과 비루함마저 넉넉하게 안을 수 있어 무엇보다도 좋습니다.

 그 위에 뚝심 있게 버티고 서 있는 소나무. 극한상황, 바람 많고 물 없는 척박지에 오랜 세월 뿌리를 내린 한결같은 고고한 기풍의 소나무를 올려다보면 절개와 기풍에 있어 단연 으뜸이라는 찬탄을 아니 할 수가 없습니다. 
 

▲ 연주대! 그곳은 구름위에 떠 있는 신기루, 물 없는 무릉도원입니다.     © 정미경

  거친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버티고 서 있는 해송과 더불어 작렬하는 태양과 거친 바람, 겨우 구름안개 속에서 물을 구할 수밖에 없는 극단의 상황에서 저토록 오랜 세월을 견디어 온 소나무는 비로소 관악산에서 본래 면목을 확인할 수가 있지요.

 가장 낮은 곳을 지키는 해송과 더불어 가장 높은 곳을 버티고 서 있는 육송, 그런 점에서 소나무는 대륙의 초병입니다. 해송이 무리지어 자라는 반면에 산정과 마루금, 특히 단단한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육송은 외로움에 떨지 않고 의연하게 독야청청하는 바위산의 정령일지도 모릅니다. 

 
▲ 단단한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관악산의 정령, 소나무.     ©정미경

  홀로 청정하여 그이 없이는 못살겠다고 버티고 서있는 일편단심에는 다만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어요.

 낙낙장송으로 세월의 풍상과 역사의 격변을 홀로 지켜보면서 솟아있는 관악산의 소나무는 찌르는 듯 은은한 향을 누리에 퍼뜨리는 정녕 살아있는 숲의 정령일지도 모릅니다. 
 
▲ 관악산은 나출된 바위가 많아 온갖 새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새들의 낙원, 원시의 숲입니다.     ©정미경
 
 드리우는 안개, 머무는 구름, 햇살에 씻긴 잎새, 바로 그 위에 깃든 학은 살아 있는 진경산수화 바로 그것입니다.

풍화작용이 덜 진행된 관악산은 원시의 산입니다. 나출된 바위가 많아 온갖 새들이 둥지를 틀고 있는 새들의 낙원이기에 더더욱 쉽게 입산할 수 없는 원시의 숲입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텃새인 박새, 곤줄박이, 오목눈이, 붉은머리오목눈이, 멧비둘기, 청딱다구리, 동고비, 어치는 말할 것도 없고 솔개, 붉은배새매, 말똥가리, 쑥독새, 꾀꼬리가 숲 전체를 아우르고 있어 신선마저도 어려워하는 산이지요.
 

▲ 관악산의 어치.     ©정미경

 이러한 관악산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서울을 중심으로 비대해진 수도권에서 배출되는 대기오염에 역포위당한 것도 모자라 강남순환고속도로라는 칼이 들씌워지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이미 관악산의 신선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입니다.
 
학은 떠난 지 오래이며 감로수가 마른지도 오래입니다. 바람은 메케하고 새들은 사람을 경계하지를 않습니다. 조망권내의 빌딩숲은 맥을 끊어놓은 지 오래.
 
▲ 탁 트인 조망권내의 빌딩숲.     © 정미경

 그러므로 독야청청하는 소나무조차 오래된 위엄을 포기할 수밖에 없게 되었어요. 구름 대신에 황사와 스모그에 둘러싸인 관악산은 분지를 지키는 영산이 아니라, 분지위에 떠있는 외로운 섬으로 되었습니다. 덩그러니 놓여있는 바위섬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관악산을 오르는 일정은 힘들 수밖에…. 내려오는 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새들의 숫자보다도 사람의 숫자가 많은 산은 이미 산이 아닙니다.
 
▲ 도시화의 병폐를 거울처럼 보여주고 있는 관악산을 보면 문드러져 마멸해가는 저 바위처럼 마음이 아픕니다.      © 정미경

 도심 한복판에 떠 있는 외로운 바위섬, 관악산. 그 산에는 신선이 살지를 않습니다. 도시화의 병폐를 거울처럼 보여주고 있는 관악산은 그저 자연이 만든 조형물, 빈약한 동물원일 따름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아픕니다. 문드러져 마멸해가는 저 바위처럼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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