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마저 포기해야하는 유랑인

녹색반가사유(22) 국제해안관광단지 개발 앞둔 무의도의 운명

정미경 | 기사입력 2007/12/12 [09:35]

그리움마저 포기해야하는 유랑인

녹색반가사유(22) 국제해안관광단지 개발 앞둔 무의도의 운명

정미경 | 입력 : 2007/12/12 [09:35]
관광산업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된 개발이 가져오는 가공할 생태 파괴, 그것은 단지 끔찍스런 생태 파괴로 그치지를 않습니다. 욕심 부릴 필요도 없이 자족하는 평화로운 마을 공동체가 무너져 내려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초토화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대대손손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던 사람들은 몇몇 사람들을 제외하곤 비참한 유랑인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은 불을 보듯뻔한 일이지요. 당연히 돌아갈 고향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해서 외지인에 의해 점령된 땅은 시간이 지나면 생태적 불모지로 반드시 굴러 떨어지게 되어있어요.
 
▲ 중부 서해안에 자리 잡은 무의도의 호룡곡산에서 내려다본 그리움의 섬.   © 정미경

중부 서해안에 자리 잡은 무의도가 지금 그러한 운명에 처해있습니다. 
 
안개가 끼는 날이면 마치 춤추는 무희와 같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무의도. 그 아름다운 춤사위의 옷자락 같은 무의도가 어느 날 갑자기 지방정부에 의해 강제수용을 당하면서 독일의 호텔 리조트 체인업체인 캠핀스키 그룹 등에 개발 사업권을 통째로 넘겨주었다는 소식을 접한 순박한 지역주민들의 분노가 격노하는 파도가 되어 대륙을 들이치고 있습니다.

이름 하여 '용유마린월드 국제해양관광단지'를 만들겠다는 것이에요. 이 섬의 북쪽에 있는 용유도를 포함하여 바다와 섬 전체를 마카오보다도 큰 국제 관광단지로 조성하겠다는 것입니다.
 

▲ 무의도의 드넓은 간석지.     © 정미경

푸르른 망망대해 안에 뿌리를 내리고 고개를 내민 외로움, 그것을 그리움으로 달래는 섬들이 도박하는 거간꾼들의 천국으로 바뀐다는 것이지요.

드넓은 간석지는 여기에 녹아든 사람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워왔는데…. 에워싼 황토빛 해식애가 섬을 천혜의 보금자리로 숲을 지켜주었는데….

백령도와 대청도 그리고 덕적도를 한눈에 쓸어 담으며, 때로는 장산곶까지 작은 가슴으로 품을 수 있었는데….
 
▲  해식애 안에서 바라본 드넓은 갯벌.   © 정미경

물 빠지면 그리움에 달음질쳐 실미도의 그이를 만날 수 있게 해주었는데…. 그리하여 눈뜨면 늘 그렇게 펼쳐지는 바다가, 그것을 바라보는 이를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만들었는데….

칠흑의 바다는 별을 담고, 바람은 그것을 밤새도록 흰 밤을 보내는 이들의 가슴으로 실어 날랐던 무의도가 끔찍스럽게도 국제적인 도박의 섬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어지럽고 몽롱한 불빛 아래, 눈 흘기는 계집과 입맛을 다시는 한량들의 느끼한 눈길이 불을 번뜩일 때, 취한 바다는 서글픔에 몸을 뒤척일 것입니다. 생명의 소리는 분노와 울분 그리고 한숨으로 바뀌어 버릴 것입니다.
 
▲ 무의도 호룡곡산의 소사나무 군락지와 청미래덩굴 열매.     ©정미경

잦아드는 부동산 바람에 광기처럼 불어 닥친 주식과 펀드 열풍에 몸 달은 유한계급은 아마도 이곳을 천국처럼 그리워하겠지요. 덕분에 피착취계급은 가만히 앉아서 더 빼앗기겠지만. 
 
유명한 소사나무 군락지이자, 청미래덩굴과 물오리나무가 빼곡하게 들어선 숲은 개불알난과 같은 희귀식물들을 용케도 잘 지켜 왔어요. 더욱이 끈끈이주걱과 이삭귀개 등 습지보호식물이 걱정 없이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곳.

해식애 아래로 드넓게 펼쳐진 갯벌은 태고 이래로 단 한 번도 생명의 소리가 끊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숲을 한 가운데로 둘러싸고, 바다는 그렇게 갯벌을 만들어 생명의 요람을 넓혀왔던 것이지요.
 

▲ 해식애 아래로 드넓게 펼쳐진 갯벌은 태고 이래로 단 한 번도 생명의 소리가 끊어진 적이 없었던 곳.    ©정미경

내리쬐는 뜨거운 햇살, 간단없이 시린 파도, 자궁보다 부드러운 뻘흙 그리고 쉼 없는 바닷바람이 일구어낸 가이아의 자궁 말입니다.

그렇게 생명은 불상용의 대립물을 하나로 녹여 자랐던 것. 누리는 온통 푸르름 뿐, 기우는 태양 아래 흑백과 같은 숙연함을 보여 주는가 했더니, 이내 붉은 석양은 세상의 모든 빛깔, 아니 세상에 없는 빛깔을 연출하면서 날마다 미련에 아쉬워  하던 곳.
 
수평선마저 없애고 모든 것을 하나로 품어버리는 밤은 오직 하나, 생명의 숨소리만 남기고 맙니다. 그 하늘 위로 마른 은하만 무심하게 흐를 뿐! 그 아래 숨 쉬던 갖은 생명체들은 그저 기념품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풍광이 되었던 사람들은 쫓겨나 주변화 되고 이방인으로 떠돌 것이고요.
 
▲ 자궁보다 부드러운 뻘흙 그리고 쉼 없는 바닷바람이 일구어낸 가이아의 자궁.     ©정미경

겨우 몸 붙여 사는 사람들은 낯선 객손처럼 바뀔 것입니다. 봉우리에 올라 바라보는 이웃 섬 들은 정겨운 이웃이 아니라, 호객하는 경쟁자로 뒤바뀔 것입니다.

그 섬에 살던 그이는 잘 나가면 거간꾼, 어쩌면 일확천금을 챙겨, 또 다른 섬을 흥정하는 거간꾼으로 운명을 바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제 그리움마저 포기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우리의 생활을 고달프게 만들던 그 사람들이 이제는 우리의 정신마저 피폐하게 만들려하고 있습니다.
 
▲ 숲을 한 가운데로 둘러싸고, 바다는 그렇게 갯벌을 만들어 생명의 요람을 넓혀왔던 것.    ©정미경
 
섬을 없애고 호화 유람선으로 개조하는 저들은 누가 뭐라고 해도 벽안의 강도들입니다. 바야흐로, 그리움의 섬이 흐느적거리며 두리번거리는 음모의 산실로 변해 가려하고 있습니다.

그때도 바다는 그리움으로 출렁거릴까. 그때도 갯벌은 가슴을 울렁이게 하는 물씬한 자궁냄새를 풍기고 있을까. 그때도 숨어 지켜보는 해식동굴은 제 자리를 과연 지키고나 있을까. 엉켜 자라는 저 숲의 나무들은 또 어떻게 변할까. 바람 또한 물컹한 소금내음을 머금고나 있을 런지….
 
▲ 붉은 석양은 세상의 모든 빛깔, 아니 세상에 없는 빛깔을 연출하면서 날마다 미련에 아쉬워하던 곳, 무의도.     © 정미경

틀림없이 마른 은하는 흐르는 것을 포기할 터, 더 이상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도려낸 자궁과 반신불수의 몸, 누리는 그렇게 몸져 누워버릴 것입니다.

공연한 걱정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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