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장 간다는 것, 배신의 축제 동참"

녹색반가사유(23) 저들 정치놀음에 들러리 서고픈 생각 없어...

정미경 | 기사입력 2007/12/18 [11:57]

"투표장 간다는 것, 배신의 축제 동참"

녹색반가사유(23) 저들 정치놀음에 들러리 서고픈 생각 없어...

정미경 | 입력 : 2007/12/18 [11:57]
 피라미드의 정점, 그 꼭짓점에 걸터앉아 현실을 개조하고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는 최대의 정치적 축제라는 대통령 선거가 바로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축제를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언사로 조롱을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른바 국가권력의 으뜸으로 부르는 대통령직, 만인지상의 자리에 누구를 앉힐 것인가라는 선거놀음은 사기와 협잡, 음모와 배신이 난무하는 저들만의 축제이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직, 그것은 한편으로는 분열과 기만 등을 자기의 본업으로 하는 정보기관을 거느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거대한 군사적 폭압기관을 거느리며, 무소불능의 인사권과 정책수단을 홀로 움켜쥐고 세상을 좌지우지하는 가부장 이데올로기가 가지는 모순의 최대 집하장입니다.
 
▲ 나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산물이자, 그것을 더욱 강화하는 대통령직을 선출하는 투표를 거부합니다.     ©정미경

  정보기관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일망형 원형감옥'의 대명사이지요. 자신의 정체는 철저히 숨기고, 남의 사생활과 사회관계를 캐내는 것을 기본 임무로 하는 비밀 정보기관은 상호적인 대인관계를 파탄시키고 그것을 독점하는 사람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하여 누구의 감시나 견제도 허용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들은 이것을 통해 사람들의 관계를 낱낱이 그리고 샅샅이 훑으며 필요할 때는 어김없이 공작에 들어갑니다.

 군사기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무장력을 통해 저들의 이익에 맞는 체제를 유지․관리하고 그것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진압하려는 수단에 다름 아닙니다. 군사기관의 모든 활동 또한 철저히 비밀에 붙여지며, 그 본성상 사람들 간의 관계를 적대적으로 구분하고, 사회문화를 철두철미 흑백논리로 재단하는 사상적 기능을 하는 역할까지 수행합니다. 기성의 체제와 제도를 옹호한다는 미명으로 극우논리의 본원지로서의 사명도 동시에 수행을 합니다.

 인사권이라는 것은 더 말할 필요가 없어요. 이것을 이용하여 저들은 통제를 위한 줄 세우기를 하게 됩니다. 원칙적으로 딴 목소리는 허용될 수 없어요. 이것으로 사람들 간의 위계질서는 고착되며 정권에 협력할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라는 선택만을 강요받게 마련입니다.

 정책수단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오로지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의 취향에 맞게 통계는 조작되고 효과는 과장됩니다. 충분한 토론과 협의 및 검증 등의 절차는 장애가 될 뿐입니다. 정책을 입안하고 법제화 하는 동기와 수단 또한 매우 즉흥적이며 어설프기 짝이 없습니다. 국민을 위한 정책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오로지 특정 계급과 특정 집단만의 이익이 있을 뿐이지요.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있어요. '한미 정보교환 협정'에 따라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미국의 정보기관에 보고를 하여야한다는 것입니다. '한미연합사'라는 올가미에 따라 군통수권이라는 것도 미국의 승인 없이는 자주적으로 행사할 수 없게끔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친미인사가 주요요직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정책수단 또한 저들의 요구를 한 치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한마디로 이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미국의 식민지 총독, 주지사와 하등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게 자주를 떠벌이던 역대 대통령이라는 자들이 그 자리에 오르면 한결같이 한미동맹을 금과옥조처럼 떠벌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직은 선망의 대상으로 되고 있습니다. 우승열패(優勝劣敗)와 승자독식(勝子獨食)의 칼자루를 움켜쥘 수 있고 또 거침없이 휘두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패배한 정적은 대오가 흩뜨려지게 되어 있으며, 그 틈을 비집고 배신은 정당성을 획득하게 됩니다. 점령군 앞에서 패자는 적장의 예우를 애걸합니다. 연민을 호소하면서 패자의 이권과 지분을 챙기기에 급급할 뿐입니다.

 나아가 경제와 문화·언론과 심지어는 종교마저도 대통령직과의 연관 속에서 급속하게 재편 되어갑니다. 사회전반에 걸쳐 권력관계가 바뀌어져가는 것이지요. 이 과정에서 일방은 타방과 선긋기를 하게 되며, 나누고 배제하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법칙으로 작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체제와 제도 아래에서 지방자치는 토호세력들의 각축전으로 전락하게 마련이지요. 서열화는 사회를 유지하는 만병통치약으로 고착됩니다.

 이렇게 하여 사회의 가부장적 문화는 절대적 가치로 내면화됩니다. 나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산물이자 그것을 더욱 강화하는 대통령직을 선출하는 투표를 그래서 거부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아무리 양성평등을 정책으로 내놓는 후보자, 혹은 정당, 아니면 여성 후보일지라도 마찬가지라고 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선거에 참여하여 그러한 문화와 체제 및 제도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공범의 길을 가고 싶지가 않습니다. 저들의 놀음에 관객으로 들러리를 설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를 않습니다!

 오직, 안으로부터 변혁시키고 밑으로부터 그것을 확산시키는 시민운동만이 유일한 희망입니다. '지금여기'로부터 대안적 삶을 만들어가는 사회운동만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서해바다에 기름을 유출한 거대기업은 저질러놓은 책임에서 빠져나갈 궁리만 하고, 대선 후보들은 너나없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을 때, 그 폐해를 최소화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주민들과 시민단체성원들만이 매서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기름띠를 걷어내고 있는 것을 보면 이 점은 너무도 명명백백합니다.

 선거참여, 내게 있어 투표권 행사는 가부장 이데올로기를 승인하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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