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창조’ 크레인, 그 맥거핀에 낚이다

성대 두 여대생 예술그룹 ‘도파’, 설치예술 ‘쿵쾅펑’展을 보고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14/03/23 [18:35]

‘파괴·창조’ 크레인, 그 맥거핀에 낚이다

성대 두 여대생 예술그룹 ‘도파’, 설치예술 ‘쿵쾅펑’展을 보고

최방식 기자 | 입력 : 2014/03/23 [18:35]

낡고 쓸모가 없어 보이는 폐가. 위험해 보이기까지 한 흉물을 파괴하는 데 동원된 크레인. 창조와 파괴의 중층적 메시지를 직감했던 관객. 그런데, 속고 말았다. 그 중장비라는 ‘맥거핀’ 때문에. 전시회 ‘쿵, 쾅, 펑’은 그러니까 재창조를 위한 파괴, 그 어림짐작을 조롱하는 유희였다.

성균관대 예술학부 학생 둘이 결성한 예술그룹 ‘도파’. 지난 19일 저녁부터 나흘간 이 대학 경영관 1층에 있는 갤러리에서 ‘쿵, 쾅, 펑’ 전시회를 연다기에 찾았다. 지난해 9월 창신동의 폐가를 무단 점거해 시도한 ‘빈집’ 전시회에 이은 두 번째 설치예술전이란다.

기자에게 전시회 소식을 알려준 건 한통의 휴대폰 문자 메시지. 일면식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전시회 한 가운데 버티고 선 크레인의 주인이란 분이 보낸 것이다. ‘파괴·창조’가 주제인데, “건설산업의 중추 역할을 하는 중장비 크레인이 조형·영상 예술작품이 됐다”는 작가의 말을 따 보냈다.

“한통의 문자 메시지에 유인돼”

그만, 딱 걸려들고 말았다. 대학 안, 경영관에서 전시회가 열린다는 게 좀 의아했지만 취지를 의심하진 않았다. 그렇게 찾은 현장. 예상대로 무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 모양세가 꼭 거미처럼 생긴 거대한 크레인. 그리고 그 주변에 작고 초라해 보이는 설치소품들.
 
▲ 성균관대 예술학부 학생 둘이 결성한 예술그룹 ‘도파’가 준비한 ‘쿵, 쾅, 펑’전.     © 최방식 기자
▲ 거대한 거미 크레인과 예술그룹 '도파' 소속 작가.     © 도파

크레인에서 눈을 떼고 나니 그제야 시야에 들어오는 영상 오락기, 비디오 모니터, 그리고 몇 장의 사진과 건설현장의 안전모. ‘트러블랜드’라 쓰인 조금은 우스꽝스런 엘이디조명 글씨 너머 낡은 1세대 거리게임기 몇 개. 딱, 초딩 저학년생들이 들락거리던 허름한 90년대 시골 게임방이다.

작가인지 관람자인지 몇이 그 사이를 오간다. 작업 테이블인지 작품인지 구분 안 되는 것도 눈에 띄고. 사진 몇 장 찍고 작가를 부르니 오락기 사이에서 서성대던 그이들이다. 물어볼 게 있다니, 전시실 밖 의자를 가리킨다. 두 명의 작가와 마주앉으며 “뭐냐”고 물으니, 제목도 없고 깨알 같은 글씨 가득한 A4용지 한 장을 대뜸 내민다.

그 자리에서 읽기가 겸연쩍어 그냥 좀 설명해달라니, 6개월 전 이야기를 꺼낸다. 창신동이라 했다. 종로6가에서 동대문을 막 지나 삼면이 야트막한 바위산으로 둘러싸여 동묘 쪽으로 트인 산자락. 거기서 지난 해 9월 14일 한 빈집을 무단으로 들어가 하루밤낮 전시회를 했단다. 주제가 ‘빈집’인데,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그 무엇’이라고 설명했다.

예술학부의 두 여학생이 ‘도파’라는 그룹을 만들고 거기서 처음 전시회를 했단다. 폐가의 공간을 활용(무단)해 서정이 사라진 사적 공간의 서사를 보여주며 근현대사의 아픔을 드러내고 싶었단다. 파국에 처한 그 공간의 현재성을, 작가와 관객이 함께 체험하고 고민하는 작업(작품)이었다고.

‘빈집’ 철거 크레인을 보고 그만...

일제강점기 때 지은 건축물. 이후 소유자의 비극적 자살. 내막을 알길 없는 건물 공동소유. 이어진 관리인의 실성(失性). 그렇게 방치된 뒤 오랜 세월 낡고 부서진 ‘빈집’은 지난날의 영화를 잃고 형해화한 흉물. 그 곳에서 보호장비를 착용하고 깜깜한 밤 손전등을 들고 작품을 관람한 관객들은 무엇을 보고 느꼈을까.

▲ 낡아 수명이 다한 오락기와 재창조의 염원을 담은 설치미술 작품.     © 최방식 기자

▲ '쿵, 쾅, 펑'전에 설치작품으로 등장한 안전모.     © 최방식 기자


그러니까, 육중한 크레인은 빈집을 허무는 도구. 이젠 쓸모없는 건축물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새로움을 입히자는 건 분명했다. 파괴를 통한 재창조, 그거였다. 기자에게 전해진 전시회 메시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보고 느낀 그 무엇. 결론을 내리는 순간 ‘헛다리’를 절감한다.

빈집에 이은 대형 중장비. 파괴와 창조를 연상케 하지만 택도 없는 소리다. 히치콕의 마법 ‘맥거핀’에 당한 것이다. 깨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도 않았다. 드류 베리모어가 살인마와 통화하다 살해되는 영화 ‘스크림’. 주제인 줄 알고 끝까지 스토리 전개를 점쳐보지만 극 흐름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속임수.

젊은 작가들에게 한방 먹었다는 생각으로 뭔가가 끌어 오르는 걸 느꼈을 때는 이미 전시실을 나설 즈음. 돌아서려다가 그냥 나왔다. 제 눈으로 깨닫지도 못하고, 작가를 타박하려 들다니. 휴대폰 문자로부터 시작된 오해, 고민도 사색도 없어 작품을 본 관객이 문제지.

‘도파’ 그룹의 두 젊은 작가. 그들이 무대 한 가운데 설치해놓은 대형 거미 형상의 크레인. 히키콕이 자신의 영화 ‘싸이코’ 초반에 극 흐름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젊은 여인을 등장시키고 살해당하는 장면을 보여준 그거였다. 10여분 넘게 공포를 느꼈던 관객들이 극장문을 나서며 ‘뭐야’라고 했을 테니, 전시회를 마치고 나서는 내 모습 아닌가.

관객조롱 ‘파괴유희’에 얻어 맞은듯

작가가 내세운 크레인은 바로 유인책이었다. 지난해 전시회 주제였던 ‘빈집’도 그렇고. 그러니까 빈집, 파괴, 크레인, 재창조로 이어지는 관객의 착각을 유도해놓고, 작가 둘은 그런 상황을 보며 게임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빈집은 게임의 배경, 유도한 건물파괴는 게임의 내용, ‘쿵, 쾅, 펑’ 전시공간은 오락실. 관객은 게임의 소품이라고나 할까.
 
▲ '빈집' 철거 소재를 담은 낡은 게임기. '파괴 유희' 설치미술 작품.     © 최방식 기자
▲ 작업대로 오인했던 설치작품. 빈집 철거 서명대.     © 최방식 기자

허름해 보이는, 그래서 그냥 스쳤던 오락실 ‘트러블랜드’. 작가의 의도를 숨긴 작품이다. 10개의 오락기에, 빈집 전시회 의도, 폐가의 사연, 폐가의 서사, 전시회 상황, 폐가의 위험성을 알리는 철거청원 서명 등의 내용을 담았다. 좀 떨어진 곳에 작업대로 보였던 테이블은 서명대고.

빈집~파괴~재창조로 이어지는 개념 또는 연상의 미로게임. 이를 만들어놓고 그 흐름대로 이어지는 관객의 움직임을 보며, “음, 예상대로 가고 있군”이라며 쓴 웃음 짓는 작가의 유희. 빈집, 그리고 중장비와 파괴․재창조는 작가가 ‘맥거핀 효과’를 위해 설정해 놓은 소품이었던 것.

현실의 환상을 게임으로 둔갑시킨 두 작가의 ‘파괴유희’에 정신이 나간 날이다. 망상적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온갖 현실의 테두리를 건드려가며 종합미술을 추구한다는 예술집단 도파. 그들의 유희에 속지 않으려면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전시실에 들어서면서 두리번거리지 말고. 하나 더. 실험정신 가득한 도파의 진일보를 기원한다.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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