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옥살이 ‘버마스승’,진실의힘 인권상

언론인이자 민주활동가 우윈틴과 그가 만든 고문피해지원재단 수상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14/06/26 [16:39]

19년옥살이 ‘버마스승’,진실의힘 인권상

언론인이자 민주활동가 우윈틴과 그가 만든 고문피해지원재단 수상

최방식 기자 | 입력 : 2014/06/26 [16:39]

버마 민주화 운동에 한평생을 바친 언론인 우윈틴 선생과 그가 만든 재단이 유엔이 정한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26일)을 맞아 ‘진실의 힘’이 주는 인권상을 받는다. 지난 4월 영면한 선생은 ‘8888민중항쟁’ 당시 언론운동을 전개하다 아웅산 수치 여사와 민족민주동맹(NLD)을 결성했으며 이듬해 신군부 친위쿠데타로 수감된 뒤 19년간 감옥살이를 한 버마 사회운동의 스승이다.

(재)진실의힘은 과거 군사독재시절 중앙정보부(안기부), 보안사, 경찰 대공분실 등에 끌려가 잔인한 고문으로 허위자백과 불공정한 재판을 받아 ‘간첩’으로 몰린 피해자들 가운데 재판으로 진실을 밝힌 사람들이 모여 만든 법인이다. 그간 홍성우 인권변호사, 고 김근태 의원, 서승 재일동포간첩단사건 고문피해자(19년 수감생활) 등이 이 단체가 주는 인권상을 받았다.

26일 충무아트센터 시상식

(재)진실의힘(이사장 박동운)은 26일 오후 7시 서울에 있는 충무아트센터 컨벤션홀에서 제4회 ‘진실의 힘 인권상’을 버마민주화운동에 언론인으로 그리고 민주화 운동가로 평생을 몸바쳐온 고 우윈틴(U Win Tin) 선생과 그가 19년 감옥생활을 마치고 나와 고민피해자를 도울 취지로 2012년 설립한 ‘한타와디 우윈틴재단’에 수여한다고 밝혔다.

인권상 심사위는 공적서에서 “우윈틴 선생이 전 생애를 걸쳐 보여준 용기와 도덕적 목소리, 그리고 폭력과 압제 맞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일깨워준 그의 생애를 잊지 않을 것”이라며 “다시는 군사독재의 잔인한 폭력과 인권침해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 '진실의힘'이 주는 인권상을 받은 버마인 고 우윈틴 선생. 8888민중항쟁 때 언론운동을 하며 아웅산 추치 여사와 NLD를 결성했다는 이유로 19년 옥살이를 한 선생은 올 4월 영면했다.     © 최방식


심사위는 이어 “2015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주주의로 한걸음 나아가느냐, 다시 군부의 영향 아래 머무느냐, 그 엄중한 갈림길에 선 버마의 현실에서 선생의 올곧은 정신이 살아 민주주의와 인권의 버팀목이 될 수 있게, 우리의 작은 힘을 보태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우윈틴은 누구?=1930년 버마에서 태어난 우윈틴 선생은 2014년 4월 21일 영면하기까지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투쟁, 버마인들로부터 ‘세야’(SAYA, 큰 어른, 선생님)로 존경받는다. 양곤대학을 졸업한 뒤, 신문기자로 ‘행동하는 언론인’ 표상을 보여줬다. 1988년 ‘8888민중항쟁’ 때는 ‘언론연맹운동’ 부위원장으로 군사독재에 저항했고, 그해 9월 아웅산 수치 여사와 NLD(민족민주연맹)를 창립, 반군사독재 운동을 전개했다.

1989년 7월, 선생은 체포․구속되었고, 심각한 고문과 폭력을 당했다. 군용견 사육장에 수감돼 야만적 처우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굴복하지 않았고, 악명 높은 ‘인세인 형무소’ 정치범들과 함께 당국의 인권유린에 저항하며 인권보고서를 작성 UN에 고발하기도 했다.

‘행동하는 언론인’ 존경받아

선생은 3년 강제 노동형을 마칠 즈음 10년형을 추가 언도받았다. NLD 간부로서 대중시위를 배후조종했다는 혐의였다. 보복 수감도 그의 신념과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감옥 안에서 반독재 성명을 발표하는 등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1996년 석방을 앞두고 다시 7년형을 선고받았다. 고문실태 인권보고서를 UN에 보냈다는 이유였다.

군사독재정권은 3차례에 걸쳐 수감기간을 연장하면서 그를 19년 동안 감옥에 가뒀다. 2008년 9월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그의 노력으로 정치범 존재자체를 인정하지 않던 버마군사정권의 거짓이 들통나기도 했다. 석방된 뒤에는 수의를 입은 채 살았다. “나는 풀려났지만 남은 이가 있으니 그들을 기억해야 한다”며 “단 한명의 정치범이라도 남아 있다면, 수의를 벗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선생은 석방 뒤에도 수 천 명의 정치범 석방을 요구하고, 군사정권의 책임을 추궁했다. 고문과 감옥살이로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NLD 활동을 지속하며 청년 세대들이 지도력을 키워가도록 힘을 보탰다. 아울러 최근 정치개혁을 표방한 테인 세인 대통령에 한편 협력하지만 군부의 속셈을 경계해 원칙을 잃지 않는 노력을 해왔다.

△한타와디 우윈틴재단은?=그러면서 선생은 ‘한타와디(과거 남부버마 왕조이름) 우윈틴 재단’(이하 우윈틴 재단)을 설립했다. 감옥에서 풀려난 뒤 거주할 곳도, 입을 옷도, 모아둔 돈도 없어 오랜 친구 집 정원에 지은 작은 판잣집에 기거하며, 친구들이 십시일반 모아 준 돈으로 2012년 3월 고문피해자와 가족들을 돕는 재단을 설립했다.

재단은 2년여간 338명의 정치범과 언론인,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모두 1억1190만 차트 (한국돈 1억2천만원)를 지원했다. 출소한 정치범들의 재활을 위해 직업경력을 조사하여 회사와 연결해주는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고문후유증으로 앓는 이는 치료비를 지원했다.

출소 뒤에도 ‘수의’ 안 벗어

노환과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고문피해자들 돕기에 열성을 받치던 선생은 2014년 4월 21일, 그를 기리는 수많은 젊은 세대들에게 버마의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숙제를 남기고 영면했다. 온 생애를 민주주의와 인권에 헌신하는 모범으로 버마인들에게 삶의 지표이자 용기를 북돋우는 표상이 됐다.(NLD의 요청에 따라 국가 이름 미얀마를 버마로 표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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