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계 딸년 주제에 감히 가주를 똑바로 쳐다봐"

[연재 무협소설] '홍매지숙명(紅梅之宿命) 피다, '꽃이 시들어도'(9-3)

이슬비 | 기사입력 2017/06/28 [10:52]

"방계 딸년 주제에 감히 가주를 똑바로 쳐다봐"

[연재 무협소설] '홍매지숙명(紅梅之宿命) 피다, '꽃이 시들어도'(9-3)

이슬비 | 입력 : 2017/06/28 [10:52]

제9장 꽃이 시들어도(9-3)

<지난 글에 이어서>

 

그이가 차를 내는 솜씨는 참으로 훌륭하더군요. 그이가 내는 차는 하나같이,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려지는 유명한 다인들의 차와 같더이다.”


…….”

 

그리고 그이는 자신에게 가장 익숙하고, 또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방법으로 저의 목숨을 노렸지요. 바로 제가 가주님께 드린 그 찻잔에 독을 넣어서 말입니다.”

일순간, 정옥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서란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어져갔다,
 
해서, 내게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이냐?”

……!”

 

이제 안 것이냐, 서란?’
 
유흔은 서란의 굳은 어깨를 바라보았다. 공포와 당혹감으로 뻣뻣이 굳은 서란의 어깨는 쉬이 숙여질 줄을 몰랐다. 정옥은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접선으로 얼굴을 반쯤 가렸다. 서란의 어깨는 더욱 뻣뻣이 굳어져만 갔다.
 
고개를 숙여라.”


…….”


고개를 숙이란 말을 듣지 못하였느냐?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어라.”


…….”


무릎을 바닥에 대고 있으란 말이다.”
 
정옥이 손가락으로 마룻바닥을 가리켰다. 그러나 서란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서란은 오히려 뻣뻣한 고개로 정옥을 노려보며, 자신이 함정에 빠진 것을 한탄하는 듯 입술을 세게 깨물고 있었다.


정옥이 두 번, 세 번 거듭 명령했지만 서란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정옥이 펼쳐 들고 있던 접선을 접어, 서란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 서란은 우당탕, 하는 소리와 함께, 마룻바닥에 넘어지며 정옥을 노려보았다.


감히 방계의 여식 주제에 가주를 똑바로 바라보느냐! 누가 그런 권리를 네게 허락하였더냐?”


이 한서란, 비록 방계의 여식이라 하나, 가주님의 양녀입니다. 그러니 저는 양녀로서 양어머니께 부탁을 하고자 하였을 따름입니다.”


부탁이라? 부탁이 아니라 협박을 하려 함이었겠지. 너는 내가 춘심을 시켜 너를 독살하려 하였다, 그리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더냐?”


……!”

서란의 얼굴이 낭패감으로 일그러졌다. 그와 반대로, 정옥의 얼굴에는 점점 승리감이 어린 미소가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감히 가주이며, 자신의 양어머니인 나를 의심하다니. 이래서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말라는 사비국 속담이 있는 것이었던가. 어찌 되었든 확실한 물증도 없이 가주를 의심하고 모함한 죄는 죽음으로 다스려도 할 말이 없는 법. 그러나 네가 나의 양녀라는 것을 감안하여, 금족령 정도로 다스리겠다. 시위들은 무얼 하느냐! 어서 이년을 처소에 가두지 않고!”
 
금족령. 유흔은 눈을 감았다. 금족령은 유력 무가를 포함한 귀족가에서 후계들을 다스리는 방법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처벌 방식이었다. 그러나 다른 가문의 후계들과는 달리, 한씨가의 후계가 금족령을 받는다는 것은, 가주의 눈 밖에 났다는 뜻이고, 가주의 눈 밖에 났다는 것은, , 한씨가 내에서는 물론이고, 한씨가 외의 모든 가문들 중에서도 그 후계를 지지하는 이들이 없어진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유흔은 정옥에게 용서를 빌지 않을 생각이었다. 또한 서란에게도 정옥에게 용서를 빌 것을 종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유흔이 서란을 정옥의 덫에서 꺼내주는 것은 오직 한씨가 밖에서야만 했다.
 
가주님.”
 
유흔은 조용히 시위들의 손에서 서란을 끌어와,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서란을 놓지 않겠다는 뜻으로 보여, 정옥은 하고 헛웃음을 지었다.
 
지금 이 아이를 키우고 있는 사람은 저입니다. 그러니 이 아이에게 금족령이 내려진다 하여도, 제가 처소에 가두는 것이 온당한 절차이지 않겠습니까. 하여, 이 아이를 제가 직접 처소에 가둘까 하는데, 허락해주실 수 있으실는지요?”
 
유흔은 더욱 더 서란을 꼭 끌어안았다. 자신을 끌어안는 유흔의 품에 안도감이 든 듯, 서란의 고개가 푹 떨구어졌다. <다음 글에 계속>

알바노동자, 여성, 정신장애인, 성소수자. 노동자와 다중소수자라는 정체성 속에서 길어올린 이야기. 해방세상이 와도 탄압받을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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