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그리고 사진 찍는 이유? 엄마가 미치도록 그리워 그런가봐요"

여주양평 문화예술인들의 삶(3) 회화·사진 예술가 홍해숙 인터뷰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22/07/21 [09:01]

"꽃을 그리고 사진 찍는 이유? 엄마가 미치도록 그리워 그런가봐요"

여주양평 문화예술인들의 삶(3) 회화·사진 예술가 홍해숙 인터뷰

최방식 기자 | 입력 : 2022/07/21 [09:01]

“제 회화와 사진 거의 대부분의 소재는 꽃입니다. 꽃을 그리고 찍을 때 가장 편하고 행복해요. 다른 건 별 관심이나 재미가 없었어요. 꽃 속에 돌아가신 엄마 얼굴이 보이거든요. 미치도록 그리워 그런가 봐요.”

 

방안 여기 저기 놓인 그림과 사진이 왜 모두 꽃이냐는 질문에 회화·사진 예술가 홍해숙(65)씨가 털어놓은 말이다. 여주 금사면 궁리 숲 속 아담한 농가.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리며 가꾼 화원(?)에서 만난 그녀의 애절한 사모곡이 눈물겹다.

 

“부모님 모두 월남했어요. 여주 중앙통(상가)에 살았는데 엄마가 어찌 꽃을 좋아했던지 함지박에 꽃을 키웠어요. 상가라 비좁고 땅도 없었거든요. 결혼하고 바빠 애들 봐주러 저희 집에 올 때도 늘 옥상에 꽃을 키웠어요. 숲 속에 집을 마련한 것이나 그림·사진에 주로 꽃을 담는 것도 그 때문이죠.”

 

▲ 여주에서 회화와 사진 예술을 하는 홍해숙 작가.  © 최방식


대지의 여신 가이아에 바치는 사모곡

 

지난 2일 시작된 평창대관령음악제 개막작이 ‘대지에’(프레데릭 르제프스키 작곡)였다. 4개의 화분을 두드려 ‘거룩한 대지, 가이아에게 자비와 행복한 삶을 기원’하는 작품. 우라노스(하늘)·폰토스(바다)·제우스 등 그리스신화 속 많은 신들의 어머니 가이아에게 바치는 찬미 음악. 홍 작가가 노래하고 싶은 사모곡이었던 셈이다.

 

작업실을 찾은 20일, 섭씨 30도를 오르내리는 더위에도 그녀의 거처는 제법 시원했다. 아담한 두 채의 집은 앙증맞은데, 허물어지는 행랑채와 외양간을 개조한 것이었다. 잔디와 꽃 가득한 정원은 자연사랑과 옛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한가득 품고 있다.

 

“새 건물을 짓겠다며 멀쩡한 건축물을 부수는 것 보면 가슴 아파요. 어머니와 아버지의 수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그 혼 그 역사를 왜 그리 못 무너뜨려 안달인지. 하나 둘 예쁘게 고쳐 사용하면 정겹고 자원도 아낄 수 있을 텐데요.”

 

6년 전 세계인을 감동시킨 ‘북극을 위한 엘레지’를 기억할 것이다. 이탈리아 피아니스트 루도비코 에이나우디가 그린피스와 공동기획, 바다 유빙 위에서 연주한 것. 빙하가 녹아내리는 굉음 뒤 조용히 흐르는 선율.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슬픔 뒤로 흐르는 자막. ‘제발, 북극을 구해주세요.’

 

취재를 마치고 집필하는 저녁시간. 자폐 변호사 이야기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드라마 속 소송 의뢰인(도로를 내며 사라질 위기에 처한 마을사람들)의 절규가 더 크게 울린다. “막 사라져 버려도 되는 그런 동네는 아니란 말입니다.” 그녀의 작품 속 꽃은 그녀의 작가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그림 역사는 지난했다. 고교를 졸업하자마자 여군 하사관에 지원했다. 신체조건 미달로 탈락했지만, 반협박(떨어뜨리면 합격할 때까지 지원하겠다) 아님 패기에 감복했는지 추가(정원 외)로 합격시켜줘 입대할 수 있었다. 군 생활은 남편을 만나게 했고, 꽃 사랑(예술)의 또 다른 계기가 됐다.

 

▲ 홍 작가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숲 속에 마련한 작은 집.   © 최방식


“막 사라져도 되는 그런 동네는 아냐”

 

“휴가(사복)를 나와 버스 속 옆자리 취한 이를 피해 안전하다고 여긴 병사 곁에 앉은 게 시작이었어요. 대화 중 내가 부사관인게 알려지고, 연락처를 주고받았죠. 그런데 그가 버스에서 따라 내려 길가 할머니가 파는 백합 한 동이를 통째로 사줬거든요.”

 

그 남자와 결혼하며 군 생활은 그만뒀다. 약사였던 남편은 벌이가 괜찮아 후배 장학금을 주고 싶어 했다. 남편의 학교는 이름을 바꿔 사라졌고, 결국 그녀(여주여고 졸업) 학교 후배를 고른 것. 양궁선수(국가대표) 김경욱(96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이었다. 남편은 그녀의 중 고교 장학(후원)금을 댔다.

 

홍 작가는 이후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전국 최연소(20대) 봉사대원 기록도 세웠다. 낡은 집을 고치고 독거노인을 돕는 등의 활동이었다. 40대 후반까지 30여년 ‘가난한 사람 곁으로 가자’는 남편의 권유를 받아들인 것. 남편은 그사이 연극 독서 등 지역사회 문화에 큰 관심을 갖고 각종 활동을 후원했다. 2년 전 여주문화원장까지 맡았다.

 

그렇게 50줄에 접어든 그녀. 문득 자신을 위한 삶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청년시절 관심을 가졌던 미술을 다시 시작했다. 아마추어 미술가단체 ‘풍경보기’에서 그림을 배우며 수차례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미술 재능이 살아난 것이다.

 

그런 그녀의 회화전시회에 우연히 찾아온 사진전문가가 있었다. 여주대 사진과 교수. “사진을 하면 그림이 더 좋아진다”며 대학입학을 설득했다. 그녀 반응이 성에 안찼는지 남편에게 찾아가기까지 했다. 그렇게 늦깎이 대학생활이 시작됐다.

 

청년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으려고 열성을 냈다. 아침 8시부터 새벽 1시까지 공부하고 작품활동을 했다. 2년 학업을 마치자 그 교수가 대학원 입학을 권유했다. 학부 학위가 있어야 하니 편입부터 하자고 했다. 학부를 끝으로 더 이상 설득에 응하지 않자, 교수는 마지막으로 한 초급 대학 평생교육원 특수사진기법 교육을 권했다.

▲ 홍 작가의 정원.  © 최방식


수채화를 한 제게 검프린트는 한줄기 빛

 

촬영한 사진에 수채화 물감을 활용해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검프린트. 교수의 끈질기고 간절한 권유에 마지못해 시작했는데, 그녀는 곧 깨달았다고 했다. ‘아 이거다’는 생각과 함께 끝 모를 환희(희열)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그녀가 해온 회화와 그 뒤 배운 사진의 융합. 그녀 예술의 전환점이 됐다고 했다. 그리고 교수의 추천으로 여주대(모교) 평생교육원 강사를 시작했다. 매주 1회씩 3년째 수업을 하고 있다.

 

“이제야 그 교수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예술세계로 안내하려고 집요하게 권유하고 설득했다는 게 너무 고맙죠. 강단에 서보니 그 많은 학생들이 모두 내 선생이란 걸 알겠어요. 수채화를 한 제게 검프린트는 ‘빛’이에요.”

 

그녀는 회화 9번, 사진 3번의 전시회 경력을 쌓았다. 세계평화미술대전 대상, 대한민국 수채화대전 대상, 대한민국 미술대전 입선 등의 이력도 갖췄다. 한국미술협회 정책연구원, 세종사진연구소장(여주) 등의 직책도 가졌다.

 

남편과 사이에 아들 셋을 뒀다. 다들 학업을 마치고 회사원으로, 대중음악인으로, 웹툰작가로 활동을 하고 있다. 간섭하거나 강요하지 않는 교육관으로 아들들은 자유롭게 자신들의 앞날을 열어가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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