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대초원, 그 한가운데서 길을 잃다

[기후변화 현장르포1] 푸른아시아 사막화저지 10년, 조림지를 찾아

최방식 | 기사입력 2013/08/30 [00:12]

몽골 대초원, 그 한가운데서 길을 잃다

[기후변화 현장르포1] 푸른아시아 사막화저지 10년, 조림지를 찾아

최방식 | 입력 : 2013/08/30 [00:12]
기후변화 저지 국제환경단체인 (사)푸른아시아(사무총장 오기출)와 고양시(시장 최성) 후원으로 지난 19일부터 엿새간 몽골의 울란바타르와 돈드고비․바양노르에서 사막화저지 숲가꾸기 현장을 돌아보고 현지 관계자를 취재했습니다. 다섯차례로 나눠 싣습니다. /기자주
 
“몽골 대초원의 삶이요? 행복하지요. 태어날 때부터 소․말과 양․염소를 기르며 유목생활을 해왔어요. 올해로 여든 셋인데, 이제 몸이 불편해 이웃 조그만 도시에 기거하지만 늘 맘은 초원에 있지요. 여름만 되면 이곳으로 달려온답니다. 자식과 손주 40여명이 여기 살고 있고, 유목생활이 더 좋으니까요. 도시의 풍요롭고 편리한 삶, 전 관심 없어요. 초원에 사는 게 몸도 맘도 더 즐거우니까요.”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서쪽으로 50여킬로미터 떨어진 초원 한 가운데서 만난 여인 젠드(83). 사막화로 몸살을 앓는 몽골 남부 돈드고비 가는 길에 우연히(사실은 무작정 게르를 찾아들어) 만난 유목민. 말․소 4백마리와 양․염소 9백여마리를 기르는 그가 들려준 이야깁니다. 그이는 초원의 풀이 줄고 키가 작아지는 게 걱정이라고 했습니다.
 
▲ 새벽녘에 도착했지만, 어찌 하나요. 여행지, 것도 이역만리에서 그냥 잘 수야 없죠. 울란바타르의 밤거리를 보며 호텔 한 귀퉁이 어둠속에 우두커니 앉아 맥주를 홀짝거렸죠.     © 최방식


유목생활을 하던 몽골인들. 그들이 초원을 벗어난다는 건 어려움에 직면한다는 뜻. 우리말에 어려움이나 중요한 순간에 직면했을 때 ‘고비’라 하는데, 유목민이 사막(몽골말로 고비)을 만났을 때와 같은 처지. 그러니 몽골인에게나 우리에게나 사막화는 큰 ‘고비’인 셈. 문명의 이기와 탐욕이 부른 참화죠. 기자가 몽골에 출몰한 것도 그 때문이고요.

초록의 대지 위에 다시 서니

처서를 사흘 앞둔 지난 20일. 몽골 대초원 한 가운데 섰습니다. 5년만에 다시 안아보는 자유. 거칠 것 없는 대지 위, 시름과 속박을 벗은 몸과 맘. 길을 잃어도 두렵지 않더이다. 발걸음을 떼는 곳이 길이니. 사방으로 뚫려 있지만 가로막힌 도시, 소진하는 생명이 늘 아팠던 곳. 탈출해보니 알겠습니다. 왜 그토록 그리워했는지. 비로소 숨이 트이고 무위자연이 모습을 드러낸 곳. 되찾은 생명은 이 초록의 대지가 내어주는 선물입니다.

‘서대문에서 콜밴을 함께 타자’던 걸 마다하고 집 주변에서 공항버스를 기다립니다. 푹푹 찌는 더위, 정류장이 한가해 그런지 사륜구동 차량 몇 대가 대신 차지하고 열기를 품어댑니다. 창문을 열고 시동을 끄면 좋으려면, 에어컨까지 켜놓아 곁에 서 있자니 숨쉬기조차 힘듭니다. 기후변화 취재 길인데, 첫걸음부터 ‘고비’를 만났네요.

▲ 5년만에 다시 찾은 울란바타르. 첫 몽골여행을 시작하며 가졌던 설렘. 동북아를 뒤덮는 황사를 막아보겠다는 당찬 녹색전사들을 동행했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최방식


사막화(기후변화) 저지 국제환경운동을 10년여 벌이고 있는 (사)푸른아시아(사무총장 오기출)와 기자는 질긴 인연을 가진 모양입니다. 2008년 몽골 숲 만들기 사업 때 동행 취재를 했고, 올 3월에도 버마(미얀마) 사업(사막화 저지)을 모색하는 현지투어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니까요.

거대한 동체를 띄우는 엔진소리, 랜딩기어 소음. 머리가 어지러워 잠시 눈을 감습니다. 2008년 5월 어느 날. 여기, 이 자리에서 첫 몽골여행을 시작하며 가졌던 설렘. 봄이면 동북아를 뒤덮는 황사. 막을 묘안을 찾는다며 가보자 해 동행했던,  70억 인류의 미래를 좌우할 중대사 앞 왠지 모를 부담감에 어깨가 무거웠던 기억이 어렴풋합니다.

솔롱고스라 했습니다. 아름다운 무지개의 나라. 해가 뜨는 동쪽 땅이라고도 하지요. 하여튼, 그들은 우리를 그리 부른다지요. 동북아 끝 한반도에서 유럽의 불가리아 평원까지 거대한 제국을 거느렸던 징기스칸과 손자 쿠빌라이의 후예들. 화려했던 역사를 대지와 가슴 속 깊이 간직한 유목민들. 그 땅 대초원이 메말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 길로 3시간 30분. 희미한 기억, 그리고 어렴풋한 불빛이 스치나 싶었습니다. 기체가 크게 몇 차례 흔들리더니 엔진소음이 잦아듭니다. ‘붉은 영웅’에 당도한 것입니다. 울란바타르에 다시 온 것이죠. 공항 ‘기온 차’를 느낄 겨를도 없이 세관에 붙들리고 말았습니다.
 
▲ 대초원 한 가운데 섰습니다. 다시 안아보는 자유. 거칠 것 없는 대지 위, 시름과 속박을 벗은 몸과 맘. 왜 그토록 그리워했는지. 비로소 숨이 트이고 무위자연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 최방식



푸른 유목의 땅은 메말라가고

푸른아시아(GA)가 일회용 컵 사용안하기 캠페인을 하며 만든 ‘텀블러’ 때문. 몽골지부에 주려고 100여개 가져왔는데, 오해를 산 모양입니다. 세관직원들이 여럿 달려들어 우기니 어쩔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1시간여 실랑이 끝에 통관세를 내기로 했답니다. 쉬 이해되지 않지만, 오랜 사회주의 국가였던 점을 감안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몽골과 5년 만의 재회는 그렇게 오해로 시작했습니다. 푸른아시아 현지 활동가들과 인사를 하고, 울란바타르 도심 숙박지인 ‘교쿠슈호텔’로 향합니다. 몇 해 전 느꼈던 뿌연 도심과 깡마른 대지의 기억. 생각해 보니 많이 달라진 모양입니다. 현지가 아니라 내 느낌이 그런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숙박지엔 새벽녘에 도착했지만, 그래도 어찌 하나요. 술꾼, 여행지에서 그것도 이역만리에서 그냥 잘 수야 없잖소. 맥주를 좀 달랬더니, 한국산 캔 맥주를 두개 들고 왔네요. 창백해져 가는 도심을 응시하며 어둠속 우두커니 앉아 쓴 음료를 홀짝거렸나 봅니다.

대제국의 기억, 그 뒤 수백년 큰 욕심 없이 대초원을 지키며 살아온 유목민. 근현대 산업·도시화 문명과 그 탐욕이 부른 참화를 앞서 겪어야 하는 억울함. 40여년 화석연료 사용으로 기온이 1.92도(섭씨, 지구 평균 0.74도)나 올라 호수 1천181개, 강 887개, 개울 2096개가 말라버렸고, 국토의 91%가 사막화됐다니. 날벼락 아니고 뭐겠소. 온난화 주범이 찾아와 초원에 나무를 심자 했을 때는 기가 막혔을 테지요.

▲ 초원 한가운데 여든 셋의 나이로 목축업을 하는 젠드(사진 가운데). 이웃 집 할머니(오른쪽)와 둘째 아들 넴스링.     © 최방식


피곤해도 잠이 오질 않습니다. 여행길이 늘 그렇더이다. 새 세상을 마주한 감흥. 그 앞 느릿하게 번져오는 각양각색 생각들. 새로움 앞 삶의 회고. 명상 속 선연해오는 점과 선들. 이어 폭을 넓혀 다가오는 좀 넓은 길. 치유라고 해야 할 겁니다. 도(道)라고 하기에는 좀 멋쩍고.

빈센트 반 고흐를 떠올렸습니다. 벨기에 한 탄광촌에서 선교를 포기하고 돌아와 화가가 되겠다며 내놓은 첫 작품 ‘감자 먹는 사람들’.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광부의 이웃으로 그들의 아픈 마음을 담은 어두운 그림. 반추 속에 찾은 깨달음이라고 해야겠지요.

세상과 불화, 그 뒤 얻은 깨달음

세상과 불화했던 고흐. 가난한 삶, 하늘의 별, 그리고 자신의 일그러진 모습을 그렸던 천재 화가. 어떤 이는 광기라 했고, 다른 이는 불행이라 했죠. 어쩌면 그건 어긋난 꿈, 그리고 불편한 세상 속에 버텨야 하는 존재의 어색함과 그에 대한 회한. 그의 명작 ‘별이 빛나는 밤’은 오랜 사색 끝에 얻은 ‘보리’라 할까요.

▲ 초원 한가운데서 만난 노마드의 후예들.     © 최방식


여행자에게 최고의 호사라면 게으름. 이번 여행, 그걸 피울 여유조차 없습니다. 새벽에 도착해 잠 못 이뤘던 밤. 아침을 챙겨먹고 도심을 누비고 다니느라 피로 잊을 지경. 환경부 관료를 만나고, 한국·몽골 대학생 친선 모임을 엿보고. 허겁지겁 점심 챙겨먹고 차에 앉으니 8시간 남짓 달려야 하는 남부 돈드고비(사막)로 출발한답니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 ‘안구정화’(?)가 돼 갈 즈음, 떠오르는 생각 하나. 4시간을 달려도 하늘과 초원 밖에 뵈는 게 없고, 그 사이 하나 둘 나타났다 사라지는 유목민의 게르. 그 속이 보고 싶은 겁니다. 무작정 찾아들었지요. 첫 시도는 실패. 쥔장이 안 계신다네요.

두 번째 만행(?)은 성공했습니다. 통역이 허락을 받았다며 게르 안으로 들어오랍니다. 서넛이 들어서 쥔장과 눈인사를 나누는 데, 중년의 남자가 큰 통을 하나 들고 나타납니다. 사발 서너개를 꺼내더니 막걸리 같은 걸 따라줍니다. 마유주(아이라크)입니다.

맛이 궁금했던 몽골 음식. 씁쓸합니다. 몇 차례 홀짝거리니 맛을 좀 알겠습니다. 신 맛에 인상을 찌푸리는 걸 알아차리고, 그 남자 덜 신 마유주(새로 담근)를 다시 꺼내옵니다. 안주로 말린 치즈(아롯)와 우유기름 덩이를 내밉니다.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려다보니 마유주 즐길 여유도 없습니다.

▲ 돈드고비 가는 길에 우연히 찾아든 게르 쥔장으로부터 받아든 마유주.     © 최방식


여든 셋의 젠드. 그녀는 여기서 태어나 지금까지 산다고 했습니다. 아들 둘도 여기서 목축을 하고 있고. 쉰일곱의 큰 아들은 아이 진학 때문에 인근 도시로 출타중이고, 마유주를 대접한 이는 마흔다섯 살의 작은 아들. 이웃집 할머니와 나란히 앉아 손님을 맞은 그녀. 최근 몸이 아파 인근 도시에 거처를 마련하고 겨울에만 나가 있다네요.

쌍무지개, 가이아가 전하는 희망

“젊었을 땐 초원의 풀이 30~40cm나 자라 무성했죠. 풀이 많아 타지에서 많은 이들이 찾아와 목축을 했죠. 지금처럼 나담축제가 끝나면 돌아가고요. 그런데 이젠 키도 풀의 종류도 줄었죠. 전에 없던 잡초(하르간, 사막화 지표식물로 생태계에 악영향)가 늘었고요. 공항을 새로 짓는다고 초원을 파괴해 그런 것 같다고들 합니다.” 

그녀 이야기를 들으며 마유주를 두어 잔 마셨는데, 게르 문을 나서니 취기가 느껴집니다. 개구쟁이 손자손녀들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느라 정신없는데, 둘째 아들 넴스링이 따라오랍니다. 게르 뒤편 말로 다가가더니 일곱은 돼 보이는 아들을 안장에 앉히고는 사진을 찍으라네요.
 
▲ 차창밖엔 일곱색깔 무지개 두 개가 나란히 떴습니다. 가이아의 여신이 복을 내린 것일까요? 비를 기다리는 뭇 생명에게. 희망과 평화를 안겨줍니다.     © 최방식


낯선 몽골인들 집에 무작정 들어가 음식을 대접받고 수다를 떨다 시간가는 줄도 몰랐습니다. 통역이 서둘러야 한다며 가잡니다. 사방팔방 지평선을 그리며 펼쳐진 하늘과 초원. 어딜 둘러봐도 보이는 거 하나 없는 넓고 푸른 땅 한 가운데. 길도 이정표도 없는 그 곳에서 여행자는 길을 잃었습니다. 

운전자도 헛갈렸는지, 내비게이션을 켜네요. 풀밭 위를 거침없이 달리는 차창밖엔 일곱색깔 무지개 두 개가 나란히 떴습니다. 끝없는 대지에 가이아의 여신이 복을 내린 것일까요? 비를 기다리는 뭇 생명에게. 그 뒤 반짝 약속의 징표를 보이고. 대초원 위 걸린 쌍무지개. 여행자에게 희망과 평화를 안겨줍니다. <다음 글에서 계속>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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