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임금과 성차별, 그 ‘기록되지 않은 노동’

[신간]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 13인 작가 저작, 도서출판 삶창 출판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16/03/28 [10:16]

저임금과 성차별, 그 ‘기록되지 않은 노동’

[신간]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 13인 작가 저작, 도서출판 삶창 출판

최방식 기자 | 입력 : 2016/03/28 [10:16]
▲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천대받고 혹사당하는 삶. 이름 없고 얼굴 없는 이들. 늘 그렇게 해왔으니 하찮은 게 당연한 그녀들의 노동.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이 '숨겨진 여성의 일 이야기, 기록되지 않은 노동'(도서출판 삶창)을 펴냈다.     © 인터넷저널
길을 나서면 어디서든 마주치는 살구색 복장의 아줌마. 40여년 전 47명으로 시작해 이젠 1만3천여명이나 되는 야쿠르트 판매원이다. 아이 키우며 최고의 수익을 올리던 ‘꿈의 직업’. 이젠 ‘엄마의 이름으로 어쩔 수 없이 버티는’ 고된 노동의 대명사가 됐다. 연매출 1조원 뒤에 가려진 이들 ‘개인사업자’의 육체적 고통과 차별. 30년 베테랑과 6년 신참 판매원의 이야기(이지홍씨 글 ‘나는야 야쿠르트 아줌마’)가 맨 앞에 실렸다.

아침 8시 30분 출근해 물건(발효유부터 건강식품까지 40여종)을 받아 오전 고정판매(배달업무, 보통 180~200가구)를 마치면 저녁까지 길거리에서 유동판매를 한다. 퇴직금도 4대보험도 없다. 판매액의 23%가 수수료. 못 판 물건값과 미수금도 책임져야 한다. 하루 10시간, 주 엿새 노동. 무릎·허리 질환 없는 이 없다. 겨울이면 얼굴 동상, 여름엔 햇볕 알레르기를 달고 산다. “엄마이기에, 고객이 있어 버틴다”는 말이 실감난다.

고속도로를 다니다 보면 늘 마주하는 톨게이트 부스 안 여성. 340여개 영업소에서 7천여명이 일한다. 한국도로공사 직원이 아니다. 인사와 웃음을 강요당하며 최저임금에 하루 3교대 노동을 버티는 용역업체 비정규직. 반말은 기본이고 욕설은 덤. 침 뱉는 이도 있다. 쓰레기 주는 이, 더러운 돈만 골라주는 이, 10원짜리로 내는 이. 늘 때려치우고 싶은 맘이 굴뚝같지만 그리 안 된다.(변정윤씨 글 ‘톨게이트 여성노동자의 호소’)

50만원만 모아 딸과 여행 가려고 시작한 이씨. 벌써 12년째다. 초단위로 일하며 모든 걸 기록해야 한다. 착오가 생기면 월급에서 뺀다. 100원 더 받았다고 시화호까지 찾아가 사과하고 돌려준 적도 있다. “X까네” 욕설에 “댁 아줌마한테 까라고 해”라고 응수했던 기억. 교대를 안줘 화장실도 못가는 신세에 눈물만 흘려야 했던 그녀. 하이패스(후불카드)로 동료 절반이 잘렸다.

“엄마이기에, 고객이 있어 버틴다”

일하는 여성들의 고된 이야기다. 길거리에서, 공연장에서, 병원·호텔에서, 학교·보육원·학원에서, 드라마·영화에서 흔히 마주치는 이들의 삶과 노동. 뭔 대수냐 할지 모르겠으나, 사실은 중대사다. 그들은 모두 누이이자 자매이고, 어머니이자 이웃 어른이니까. 미혼모라서, 고급 기술·지식이 없어서, 학벌이 시원찮아서, 이주자라서, 그냥 여자라서 차별받고 멸시당하는 게 가혹하다.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이하 글쓰기모임)이 ‘숨겨진 여성의 일 이야기, 기록되지 않은 노동’(도서출판 삶창, 1만3천원)을 펴냈다.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며 천대받고 혹사당하는 삶. 이름 없고 얼굴 없는 이들. 늘 그렇게 해왔으니 하찮은 게 당연한 그녀들의 노동. 그 차별이 서러워, ‘정말로?’ 반문과 한탄이 절로 나온다. 그 아픔이 가슴을 후벼 판다.

실린 글들은 여성주의 저널 ‘일다’에 3년 동안 ‘기록되지 않은 노동’이라는 문패를 달고 연재된 것이다. 길에서, 동네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만나는 여성들의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삶을 담았다. 저자 13명은 글쓰기모임 회원들. 전문적으로 글 쓰는 이들은 아니다. 일상에서 마주한 이웃(여성)과 소통하고 그들의 고된 노동을 기록해 세상에 말을 건 것이다.

△행사도우미·운동강사·대리운전자 등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여성들 이야기 △산모도우미·돌봄교사(초등학교)·보육교사·장애인활동보조인·간병인 등 여성이 전담하는 새 일거리 주인공들의 삶 △하도급공장·요양보호사·희곡작가·장애인으로 글쓰기모임 회원의 경험담 △비혼모·이주노동자·시각장애안마사 등 소수자 여성의 애환 △호텔룸메이드·급식조리원·보조출연자 등 노동권 보장을 위한 투쟁담 등 23개의 글이 실렸다.

▲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이하 글쓰기모임)이 ‘숨겨진 여성의 일 이야기, 기록되지 않은 노동’(도서출판 삶창, 1만3천원)을 펴냈다. 미디어다음에 링크된 한겨레신문 보도 갈무리화면.     © 인터넷저널

“정말로?, 반문과 한탄 절로 나온다”

간병인 안상숙씨 이야기(안미선씨 글 ‘저 사람이 바로 내 삶이다’)는 무관심의 대가가 얼마나 무서운지 곱씹게 한다. 예순 하나인 그이는 초등학교를 다 못 마치고 공장에 취업했다. 스물다섯에 딸을 낳았는데 남편을 잃고 혼자 가정을 꾸려왔다. 공장노동 30년만에 간호사가 된 딸 덕에 간병인이 됐다. 하루 24시간 1주일을 일해 35만원을 받았다. 자신이 아파도 아픈 이 돌보는 걸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50여만명의 또 다른 안씨에겐 사회보험도 노동권도 없다.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는 간병인. 개인사업자니 노동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야간노동으로 우울증·공황장애에 시달리지만 관심 밖이다. 일터에 갈 때면 짐을 한보따리 싸들고 나선다. 24시간 의식주를 환자 곁에서 해결해야 하니까. 밥은 얼려서 간다. 반찬은 환자가 남긴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환자 몸을 떠받치려니 근골격계 질환을 달고 산다. 환자가 숨을 거두고, 가족들이 고생했다며 상복 입으라고 한 때를 그는 행복하게 기억한다.

한 희곡작가의 셀프인터뷰(이지홍 글 ‘나는 예술가인가, 글 쓰는 노동자인가?)는 존중받지 못하는 작가의 모멸감이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준다. 저작권 불인정, 늘 벌어지는 계약위반 그리고 갑질과의 싸움. 꿈은 늘 유명작가와 예술가를 줄타기 하지만 현실에선 생계비 마련도 어렵다. 그 자존심 상하는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무의식 속 환상을 벗어던지고 싶다. 진즉 그랬어야 했다. ‘위대한 작가’ 흉내로 짓눌려온 삶. 그 부담과 고통을 벗고 이젠 즐겁게 글을 쓰련다. 직업작가인 나를 글 쓰는 노동자인 나를 인정하기 싫어 포장하고 위장했던 것을 인정하는 거야. 내 노동의 정당한 대가로 내 삶을 지탱하는 거지. 운 좋게 예술의 경지에 오르면 더 없이 좋고...”

“진즉 그랬어야 했다. 환상을 벗고...”

한 이주노동자 나타샤 이야기(리온소연 글, ‘고려인 여성노동자의 하루’)는 허울뿐인 다문화사회의 추악한 현실을 고발한다. 그녀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코리안드림’을 좇아 안산으로 흘러들어온 6천여명의 고려인 동포 중 하나. 2천여명이 거주하는 땟골은 안산에서 월세가 가장 싼 곳. 다가구 주택을 3평 안팎의 11~15개 작은 방으로 쪼개 보증금 100만원에 25만원의 월세를 받는 곳. 스물일곱의 나타샤는 2011년 이곳에 왔다.

직업소개소장, 공장장, 팀장, 작업장으로 데려다준 차량 운전사까지 그를 성희롱한다. 그렇게 안내된 곳은 도금공장을 거쳐 염색공장. 최저임금 시급을 받으며 하루 14시간을 일한다. 일당의 20%나 되는 소개비에 교통비 장비대여비 등을 떼면 하루 5만원이 고작. 취업이 불가능한 비자를 가진 따냐에 비하면 그나마 다행. 따냐는 단속에 걸리면 두달 월급에 해당하는 2백여만원을 내야 풀려난다. 코리안드림은 이들의 몸과 마음을 이렇게 갉아먹고 있다. 수많은 나타샤와 따냐의 미래는 어떤 것일까 궁금하다.

‘나이·학력 무관, 월수 2백 보장.’ 게다가 텔레비전에도 나오지. 스타 연기자의 꿈을 품고 방송사 앞에 모이는 보조출연자들. 최저임금(4300원)에 턱없이 모자라는 시급 1800원에 몸과 마음이 부서지는 10만명의 ‘엑스트라’. ‘이 새끼 저 새끼’ 폭언에 시달린다. 화장실이 없어 아무데서나 해결해야 한다. 탈의실도 없다. 잦은 부상도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 더러운 의상으로 피부병에 걸려도 항의조차 못한다. 밥줄 끊길까 두려워서다.

그런 판을 헤집어놓은 이는 전국보조출연자노조 문계순 위원장(이지홍 글, ‘보조출연자의 노동자성을 인정받기까지’). 쉰하나에 이판에 들어왔는데, 방송사 ‘갑질’에 분통이 터져 3개월 경력의 그녀가 일을 낸 것. 동료 7명과 노조를 만들었다. ‘미친년’, ‘3개월 버티면 손에 장을 지진다’던 냉소와 비난을 이겼다. 그리고 지금까지 버텼다. 조합원은 1천7백명. 매년 용역회사와 단체협약까지 맺는다. 노조 덕에 10년 제자리걸음을 하던 일당이 7천원 올랐다. 노동자로 인정받고 산재적용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문화권력은 여전히 지독하다.

이 땅 수많은 나타샤의 미래는 어떨까?

숨겨진 여성들의 일, 그 기록되지 않은 노동. 성차별과 성희롱,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이유없이 받아야 하는 멸시와 조롱. 그 이유가 궁금해 시작된 글쓰기. 불편한 진실을 숨기는 ‘갑질 사회’. 그 ‘진상’에 아파하는 독자에게 먼저 귀 기울여 주잔다. 털어놓아도 하나도 부끄럽지 않다는 걸 알려주잔다. 밀치고 핍박하는 세상에 주눅 들 필요가 없다는 걸 깨우쳐주고. 그렇게 이, ‘바로 당신의 책’이 나왔다는 르포 작가 박수정의 추천사에 가슴이 아린다.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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