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마 민주화를 위한 광화문 촛불집회에 나갔습니다. 편집을 마치고 막걸리 한잔 하다말고 생각을 바꿨습니다. 집회가 있는 줄 몰랐습니다만 조금 쉬었다가 술을 한 잔 더 하기로 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섰습니다. 7시부터 시작했다고 하니 40여분 늦게 현장에 도착한 모양입니다. 1백여명 쯤 모여 있습니다. 촛불을 하나씩 손에 들고서요. 교보건물 종로 쪽 인도를 따라 모여앉아 한 뮤지션의 음악을 듣고 있습니다.
일행은 좀 늦게 도착해 미안해야 할 순간이었는데 인도를 오가는 사람이 꽤 많고 집회장이 어수선해 들통 나지는 않았습니다. 현장에 도착하니 몇몇 취재 기자들과 집회를 주관한 시민사회단체 관련자들이 아는 체를 합니다. 미안한 줄도 모르고 집회장 앞쪽에서 이 사람 저 사람과 인사하며 시시덕거렸죠.
“주제파악을 해야겠다 싶어...” 문득 주제파악을 좀 해야겠다 싶어 초불을 하나 붙여 들고 무대 앞 한 귀퉁이에 쪼그리고 앉았습니다. 주변을 돌아보니 조샤린, 조모아 등 한국에 와 살고 있는 버마인 친구들이 한 둘 보입니다. 다른 곁에는 꼬마들이 서넛 모여앉아 있습니다. 아마 엄마를 따라 나온 모양입니다. 촛불을 들고 장난을 치면서도 지루해 하지 않습니다. 귀여울 수밖에요. 사회자가 뭐라고 하는 데 마이크가 말을 듣지 않습니다. 시설이 시원찮은지, 아님 조정자가 어설퍼스 그런지 잡음에 소리가 귀에 거슬립니다. 답답했는지 아예 육성으로 진행해 봅니다만 소란스러워 집회장 분위기가 흐트러집니다. 누군가 핸드마이크를 들고 나와 그나마 조금 나아졌습니다. 그러고 보니 사회자가 많이 본 듯한 얼굴입니다. 국제민주연대에서 한번 봤던 이군요. 언젠가 그의 사무실에서 포도주를 한 잔 했는데 버마에서 온 모아, 뚜라 등이 같이했고, 그의 사무실 간사 서너명이 함께 모여 앉았습니다. 삼겹살에 포도주를 마시며 한여름 밤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죠. 연사들이 하나 둘 나와 연설을 합니다. 집회에 나가면 언제나 그렇지만 연설은 지루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집회시위 때 연설을 뺄 수는 없습니다. 행사의 핵심이기 때문이죠. 하여튼 시민단체 대표 두어 명이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한 대학교수도 무대에 섭니다. 버마 집회 때마다 한국어 솜씨를 자랑하는 NLD(민족민주동맹) 한국지부 조모아가 어느 새 ‘프리, 버마’를 외치는 군요.
촛불 든 꼬마들, 귀엽기만 집회장 주변에서는 고교생, 대학생, 그리고 시민단체 자원봉사자들이 버마 민주화를 지지하는 서명과 모금을 하는 군요. 대부분은 무대를 향해 앉아 웃고 떠드는 사이에도 이들은 부지런히 뜁니다. 이날 즉석 모금액이 50여 만 원 쯤 됐고, 서명자가 수백 명이었다고 하니 그들의 노력이 대단합니다. 한 외국인이 무대로 나섭니다. 지나가다 시위를 본 독일인인데 버마 민주화투쟁에 연대감을 표현하기 위해 한 마디 하겠다는 겁니다. 영어로 독일의 버마 지원 시위 현황을 알렸고, 사회자가 그냥 저냥 통역을 합니다. 그는 곧잘 하면서도 영어실력이 딸려 적당히 통역했다고 미안해합니다. 조금 있으니 한 시민단체 남녀 간사가 소라처럼 생긴 악기를 들고 나와 공연을 합니다. 뭔지 모르겠습니다만 환호성이 대단합니다. 음악소리도 꽤 흥미로웠고요. 이어 버마인들도 마이크를 들고 88항쟁 때 불렀다는 민중가요를 부릅니다. 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모두는 따라 불렀습니다. 집회장이 광화문이어서 지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좁은 인도에 병렬로 앉아서 집회를 하다 보니 무대와 집회 참여자 사이로 사람이 지나가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앞에 앉은 기자에겐 무대보다 지난치는 이들의 표정이 더 재밌습니다. 담배 물고 지나치다 머쓱해 하는 할아버지, 팔짱을 끼고 가다 얼른 풀고 종종걸음을 하는 연인, 재잘대며 손가락질까지 해가며 지나치는 여고생들...
이날 집회의 대미를 장식한 건 힙합스타일의 한 래퍼입니다. 가수 이름은 기억나지 않습니다만 까맣고 귀엽게 생긴 청년입니다. 한마디 한마디 던지는 게 꽤 직설적입니다. 두환이, 태우 해가며 버마 군부독재자를 규탄하는 농담도 재미있습니다. 그의 결정판은 ‘밥 딜런’이 불렀다는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을 차용한 랩음악 ‘구름만이 아는 대답을’이었습니다. “집회 뒤 피맛골 막걸리 씁쓸” 저만 그런지 모르겠습니다만 랩음악은 그 내용을 알아듣기가 꽤 힘듭니다. 한데 이 청년의 랩은 꽤 귀에 잘 들어옵니다. 밥 딜런의 귀에 익은 노래를 차용해서 그랬을 겁니다. 반전 평화를 호소하는 그 내용을 말이죠. 리듬과 가사를 자세히 모르지만 일행은 모두 일어나 촛불을 흔들며 랩을 따라했습니다. 버마의 민주화와 평화를 염원하면서요. 집회장이 파하고 우리 일행은 인근 피맛길 막걸리집에 들렀습니다. 먹다만 걸 다시 시작하려고요. 일행이래야 기자가 일하는 ‘인터넷저널’ 소속 기자 댓명이죠. 꼬치구이, 계란말이, 굴전, 연두부탕을 시켜놓고 씁쓸한 막걸리를 거하게 마셨습니다. 버마 민주화를 외치면서요. “프리 프리”, “버마, 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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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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