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없이 지른 대가인 게지 뭐, 쯥”

[동남아여행-말레이시아12] 탱크탑·히잡 뒤엉킨 쿠알라룸푸르

윤경효 | 기사입력 2009/08/15 [00:49]

“생각없이 지른 대가인 게지 뭐, 쯥”

[동남아여행-말레이시아12] 탱크탑·히잡 뒤엉킨 쿠알라룸푸르

윤경효 | 입력 : 2009/08/15 [00:49]
육로로 국경을 넘어보기는 처음이다. 국제버스비가 33싱가포르달러니까, 한국 돈으로 치면 약 3만원 정도 하겠다. 저가 항공기를 이용하면 별 차이 안 나지만, 남는 게 시간인 나에게 육로 이동은 또 다른 관광거리기도 하니, 주저 없이 선택했다. 사실, 말레이시아에 일찍 도착해 봐야 서둘러 할 일도 없다-,.-;;

육로 국경통과가 처음인지라 모든 게 신기할 뿐이다. 다행히 동승한 중국계 말레이시아 아주머니가 친절하게 이것저것 알려준다. 출입국 심사과정은 비행기보다 훨씬 간편하고 빠른데다 대기시간도 길지 않으니, 참 편한 것 같다.

버스도 우리나라 우등고속버스와 비슷해 쾌적하고 좋았는데, 내가 탄 버스는 일반용이고 약 6만원 정도하는 특급 2층 버스도 있단다. 휴게소에서 잠깐 들여다보니, 휴우~ 항공기 비즈니스석 같다.

▲ Wheelers GH건물 입구(왼쪽)와 내가 사용한 개인실(오른쪽). 머릿수로 숙박료를 계산하기 때문에 나는 이 방을 사용하기 위해 30RM(8불)/박을 지불해야 했다. 영화에서 본 감옥 같다. 헐~ 저렴한 가격을 고려할 때 괜찮은 편. 금요일 저녁엔 쥔장이 공짜로 파티도 열어준다. 잠만 잘 경우에는 여행비를 절감할 수 있는 좋은 곳인 것 같다.     © 윤경효

 
육로로 이동하면 주변 경관이나 마을을 구경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뿔사... 고속도로인지라 길옆으로 보이는 것은 그저 나무들뿐이다. -,.-;; 6시간을 같은 경관만 보기란 쉽지 않지. 처음 1시간과 휴게소에 들러 밥 먹을 때 빼고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할 때까지 잠만 잤다. 헐~
 
“육로로 국경 넘기는 처음”
 
버스에 함께 탔던 말레이시아 친구의 도움으로 LRT(지하철)를 타고 돌고 돌아 차이나타운에 위치한 내 게스트하우스를 간신히 찾았다. 다음 날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내가 도착한 뿌드라야(Pudraya)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게스트하우스가 있음을 알고 나서는 어이없었지만...-,.-;;

가장 싸면서 인터넷도 된다 하여 5박을 사전 예약했는데, 인터넷 사용할 때마다 돈을 내야 하는데다, 심지어 무선인터넷은 결국 연결이 안 되어 다른 곳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방값이 1박에 4불(15RM)인데, 포함된 것은 오로지 타월뿐이니, 나처럼 물도 많이 마시고, 돌아다니기보다 인터넷을 더 많이 해야 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비싼 숙소다.

인터넷 카페를 찾아보니, LAN만 되고 1시간에 2RM이란다. USB를 이용하면 괜찮겠다 싶었는데, 젠장, USB사용이 안 된단다.-,.-;; 그나마 다행인 게, 말레이시아 스타벅스에서는 싱가포르와 달리 인터넷이 공짜란다.

노트북 들고 매일 출근하듯 들러 가장 싼 아메리카노 한 잔 시켜놓고 5~6시간씩 죽치고 앉았다. 가장 싸다고는 하지만, 7RM이나 하니, 부담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더구나 매일 5~6시간씩 카페에 앉아 있자니, 눈치도 보이고...

▲ Wheelers GH 맞은편에 위치한 Reggae GH입구(왼쪽). 게스트하우스 거실(가운데)과 내가 묵는 남녀공용 도미토리룸(오른쪽). 남녀 6명이 같이 자는 지라 잠잘 때 옷 갖춰 입고 얌전히(?) 자야하는 번거로움이 좀 있을 듯. 코골거나 이가는 룸메이트만 없다면 재미있을 듯.     © 윤경효

 
결국, 오늘 하루 종일 맘 편히 작업할 수 있는 다른 게스트하우스로 옮겼는데, 대만족이다. 도미토리(Dormitory)에 25RM/박이지만, 환하고 안락한 분위기에 아침밥, 인터넷, 물 등이 죄다 공짜다. 페낭으로 가기 전에 여기서 뒹굴며 인터넷도 하고 책도 읽고, TV도 보고, 그저 집처럼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하하.
 
“커피 한잔에 6시간, 눈치에...”
 
아직까지 말레이시아 여성단체에서는 연락이 없다. 이메일이 분실된 것인지, 아니면 너무 바빠서 답변을 못하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원래 일하는 스타일이 그런지 이제는 이해하는 것도 지쳤다.

내 경우는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고려해서 최대한 빨리 이쪽 상황을 공유해 주는 스타일인데, 나 같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하긴, 일을 '빨리 빨리'한다는 한국에서도 나는 '더 빠른' 사람이었으니, 어쩌면 이들과의 갭(gap)은 토끼와 거북이의 차이 같은 것일 지도 모르겠다.

이미 작년 몽골에 있을 때부터 겪어 온 것이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가끔씩 울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긴 하다. 이게 내 개인적인 여행이니 망정이지, 만약 일이었다면... 으, 생각하기도 싫다.-,.-;;

다행히, 춘이 언니가 소개해 준 말레이시아 환경단체인 SAM(Sahabat Alam Malaysia-FoE Malaysia)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8월부터 2달 동안 페낭(Penang)에서 자원봉사하기로 했다. 한 달 전 연락했을 때는 감감 무소식이더니, 사람을 바꿔 연락하니 일주일 만에 연락이 왔다. 이번에 가면 처음 연락했던 사람하고 인사 제대로 한번 해야겠다. -.-*

단체들로부터 연락을 기다리는 동안 쿠알라룸푸르 중심가 여기저기를 둘러보러 다녔다. 교통비 아낀다고 걸어 다녔더니 발 여기저기가 다 까졌다. 싱가포르에서 새로 산 신발과 궁합이 잘 안 맞아 고생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젠장, 이게 생각 없이 지른 일에 대한 대가인 게 지. 쯥.
 
▲ 차이나타운 거리. 식민시대에 지어진 이슬람양식 건물(왼족), 자멕 모스크(Jamek Mosque)(오른쪽).     © 윤경효

 
“으, 생각하기도 싫다.-,.-;;”
 
말레이시아 1인당 GDP(U$8,140, 2008년)가 인도네시아(U$2,246/인, 2008년)보다 높아서 그런가? 자카르타 보다 대중교통도 훨씬 잘 정비되어 있고, 대기오염도 덜 심각하다.

오토바이가 상대적으로 덜 다니는 것도 있지만 자카르타의 대중버스(메트로 미니, 미크로 랫)는 다른 나라에서 오래 전에 사용하다 버린 중고차들이라 배기가스가 그대로 배출되는데 반해, 쿠알라룸푸르의 대중버스는 최신형이고 최소한 다른 나라에서 버린 차를 들여오지는 않았기 때문에, 자동차 배기가스의 오염도가 덜 심한 것 같다.

인도네시아가 말레이시아보다 인적자원뿐만 아니라 자연·문화 자원도 훨씬 풍부한데, 같은 말레이계이면서도 인도네시아가 왜 더 사회경제적으로 열악한 지 정말 안타깝고 궁금할 따름이다.

중심가라서 그런지, 이슬람양식을 반영한 고풍스런 건물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현대식 건물과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것이 쿠알라룸푸르를 훨씬 우아하게 보이게 한다. 도심 한가운데에 위치한 9ha 면적의 숲 보호구역도 인상적이다.

돌아다닌 곳이 모두 중심가라 그런지, 모든 게 그저 깨끗하고, 편리하고, '관광'지 같다. 변두리는 어떤 환경인지 알 수 없지만, 인도네시아 친구 말에 따르면 말레이시아에서는 빈곤·빈민 문제가 인도네시아만큼 심각하지 않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자카르타보다 덜 오염된 게...
 
동남아에서 잘 사는 나라 축에 속하는 말레이시아. 중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등에서 밀려오는 이주노동자의 인권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최근 인도네시아 정부로부터 강력한 항의를 받기도 한 나라.

▲ 도심 한가운데 위치한 숲 보호구역(왼쪽)과 차이나타운의 쇼핑거리(오른쪽).     © 윤경효

 
얼마 전 촉망받던 20대의 인도네시아 모델이 말레이시아의 군주제로 운영되는 한 주의 왕가로 시집갔다가 남편의 폭력과 갇혀 지내는 생활에 못 이겨 도망쳐 나온 사건으로 양 국가를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있었는데, 민주적 연방국가지만 연방 13개 주중 아직도 군주제로 운영되는 주가 있는 좀 복잡하고 다양한 정치제도가 공존하는 곳.

탱크탑을 입은 중국인 아가씨와 눈만 보이는 무슬림 여인이 뒤엉켜 돌아다니는 거리. 말레이계 50%, 중국계 24%, 인도계 7% 로 구성되어 정치 및 종교사회문화는 말레이계가, 경제는 중국 및 인도계가 장악하고 있는 이 나라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경제적으로는 윤택하고, 정치·사회·문화적으로는 훨씬 복잡한 것 같다.

그들의 상냥하고 친절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말레이시아에서 친근감이나 편안함을 못 느끼고 있다. 인도네시아 친구들에 대한 향수일 수도 있겠고, 말레이시아에 들어와 생각만큼 일이 잘 안 풀려서 그럴 수도... 아니면, 한국이 그리워서 그런가?
 
싼 식당 배나 채우러 가야지...
 
내일 오전에 인도네시아의 이주노동자 단체인 ‘이주자 돌돔(Migrant Care)’의 말레이시아 지부에서 일한다는 알렉스씨를 만나기로 했다. 말레이시아의 단체가 아니라서 나의 궁금증이 다 풀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누가 알겠는가? 예상 외 수확을 얻을 수 있을 지. 헐~

현재 시각 20:20. 6시간 동안 종일 바닥에 앉아 인터넷하고 글을 썼더니, 다리도 저리고, 배도 고프다. 새로 발견한 저렴한 식당으로 배나 채우러 가야지...
대초원에서 유라시아 환경보고서를 띄우던 경효. 인도네시아에서 시작해 말레이시아, 태국, 버마, 캄보디아로 1년여 장도의 동남아시아 자원봉사활동을 하며 기행문을 써온 제가 이번엔 영국 쉐필드에 왔습니다. 쉐필드대학 석사과정에서 공부하려고요. 이젠 유학일기로 관심을 좀 끌어볼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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