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팝가수 셰릴 크로우와 ‘화장지 한 칸’

광화문단상 미언론·여론, 사회성 짙은 가수의 친환경 제안 조롱...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7/05/03 [02:17]

미팝가수 셰릴 크로우와 ‘화장지 한 칸’

광화문단상 미언론·여론, 사회성 짙은 가수의 친환경 제안 조롱...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7/05/03 [02:17]
미국의 팝가수 셰릴 크로우가 지온난화를 막기 위해 화장지를 한 칸 씩만 써야한다고 제안했다가 구설수에 올랐다는 군요. 언론과 네티즌들이 엉뚱한 제안이라고 비난해 그녀가 해명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정말 웃기는 언론과 여론이지요?

셰릴 크로우(45)는 그래미상을 9번이나 받은 인기 가수랍니다. 블루락, 컨츄리 등을 넘나드는 인기 뮤지션이며 성평등(낙태찬성), 동성애자 권익향상, 환경보전 등 사회성 있는 활동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그녀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는 게 뭔지 궁금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이유는 이랬습니다. 셰릴 크로우는 지난달 19일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지구온난화가 문제인데 화장지 낭비를 줄여야 지구가 산다”며 “어지간한 볼일은 화장지 한 칸으로 해결하자”고 주장했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또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2~3칸을 써도 좋다”며 “요즘 사람들은 화장지를 물 쓰듯 한다”고 덧붙였다는 것이었습니다.

 ‘온난화’ 막자면 '화장지 한 칸'...

 이런 그녀의 글에 네티즌들의 재미있는 덧글이 달리자 한 방송사가 이를 소개하며 ‘친환경 호소’는 왜곡되기 시작했습니다. 외신과 미국 여론은 이런 그녀의 글에 대해 “생각은 좋지만 한 칸으로 볼일을 해결하자는 건 난센스”라는 네티즌의 글과 “환경문제는 바보 같은 말장난으로 해결되지 않아”라는 환경보호론자의 일침을 소개했습니다.

▲ 그녀의 공식 홈페이지 메인 화면.     ©최방식


 이들 언론은 특히 그녀가 ‘지구온난화 방지 캠페인’의 일환으로 전미국을 순회하며 벌이고 있는 콘서트 투어에 대해 “차량과 음악 장비를 가지고 전국을 돌아다니는 것을 그만두는 게 지구온난화 예방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한 네티즌의 비아냥거림을 대서특필했습니다. “그녀가 가식적”이라는 투였죠.

결국 셰릴 크로우는 “지구온난화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관심을 갖자는 의미에서 한 농담”이라고 해명하고야 말았답니다. 한 유명 아티스트가 사회성 짙은 음악활동을 하며 들었던 생각을 자기 블로그에 올렸는데 언론과 네티즌들이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리다니, 정말 웃기는 나라, 괴상망측한 언론입니다.

블로그에 올라있는 그녀의 글을 한 번 볼까요? 휴지를 한 칸씩만 쓰자, 식사 때 냅킨을 사용하지 말자, 개인의 삶을 친환경적으로 살도록 경쟁하자는 세 가지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구온난화 방지 캠페인 콘서트 투어’를 하며 든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정말 기특한 아이디어에 참신하고 재미있는 제안이었습니다.

“산소를 발생하는 숲을 보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난 화장지 사용을 줄이는 게 그 대안 중 하나라고 봅니다. 웬만하면 1칸씩 사용하면 어떨까요? 때에 따라서는 2~3칸을 사용할 수도 있겠죠. 개인적 권한을 뺏으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한 칸으로 사용해보자는 겁니다.”

 '음식용소매'로 냅킨 대신사용을

▲ 그녀가 발표한 앨범 자켓 사진. ©최방식
“식사 때 사용하는 냅킨 낭비를 줄이는 방안도 궁리해봤습니다. 휴지가 처녀림을 망가뜨리니까요... 따라서 탈부착이 가능한 ‘음식용 소매’(다이닝 슬리브)를 옷에 달자는 겁니다. 식사시간에 냅킨을 사용하는 대신에 이를 사용하면 종이낭비를 줄일 수 있거든요. 다음에 빨아서 사용할 수도 있고요. 그뿐입니까. 머리 아플 때는 찬물에 적셔 머리를 식히는 용도로도 쓸 수 있죠.”

“또 하나 재미있는 제안이 있습니다. 이산화탄소 사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10명이 한조가 되어 가장 친환경적으로 사는 경쟁을 벌이는 것입니다. 우승자에게 어떤 상도 주고...”

셰릴은 이어 대학(고교)캠퍼스를 다니며 지구온난화 중단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는 자신의 이야기도 언급했다. 아울러 최근의 ‘버지니아텍’ 총기사건으로 마음이 무겁다는 느낌도 전했고요. 하루 전 테네시 스프링필드의 한 고교에서 한 공연도 소개했습니다. 학생들이 공연장에 지구온난화 해결을 지지하는 각종 구호를 붙여놓은 것, 스프링필드 시장의 감명적 연설, 채널1의 방송중계, 그리고 전미 7백만 학생들이 곧 시청하게 될 것을 생각해 가슴이 설렌다는 소감까지 적었습니다.

이게 어디 비난받을 농담입니까? 공명심에서 이런 발언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튀는 발언 한 번으로 인기를 구하는 그런 가수가 아닌 건 그녀의 캠페인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몇 달간에 걸친 ‘지구온난화 방지 캠페인’(전국투어)를 벌이고 있거든요. 4월 9일 텍사스 탈라스에서 시작해, LA, 앨라배마, 플로리다, 조지아, 버지니아, 테네시, 노스캐롤라이나, 메릴랜드, 워싱턴디시 등 주요 도시의 대학캠퍼스를 돌고 있습니다.

 ‘진지한 제안’ 비웃는 언론이라니...

 또 다른 그녀의 활동을 볼까요? 1996년 발표한 ‘셰릴 크로우’ 앨범에 실린 곡 ‘Hard To Make a Stand’는 낙태금지법, 홈리스, 핵전쟁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Love Is A Good Thing’은 총기를 판매하는 월마트(너무 쉽게 어린이 손에 들어갈 위험)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월마트를 그녀의 이 곡을 판금시켰고요.

이정도면 이해하셨겠죠? 미국 언론이 얼마나 몰상식한지를? 그리고 이를 베끼는 한국 언론 역시 얼마나 막무가내인지를? 제가 얼마 전 썼던 글의 소재 하나를 되새겨보겠습니다. 두 달 밖에 안 돼 아마 기억하길 겁니다.

여성 3인조 컨트리 보컬그룹인 딕시 칙스(Dixie Chicks)가 지난 2월 그래미상 5개 부문을 휩쓸었다는 글 기억나시죠. 영예의 ‘올해의 노래’와 ‘올해의 레코드’상을 받은 노래는 ‘Not Ready To Make Nice’(화해할 준비가 안됐어)였습니다. 부시를 조롱하는 입바른 소리 한번 했다가 된통 당한 뒤 내놓은 노래였죠. 미국의 정치와 음반권력이 어떻게 움직이는 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 그녀가 홈페이지에 달아놓은 '지구온난화 중단' 배너.    
2003년 3월. 부시 정권이 이라크 전쟁을 막 시작한 때 딕시 칙스는 런던의 한 극장에서 공연 중 “우리 대통령이 나와 같은 텍사스 출신이라는 게 수치스럽다”는 한마디로 곤욕을 치렀습니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그룹이었는데, 이 한마디로 나락으로 곤두박질 쳤습니다. 그룹원들이 살해위협을 받았고, 방송사들은 그룹의 음반을 금지시킨 것도 모자라 소각운동까지 벌였죠. 그렇게 3년의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며 만든 노래가 바로 ‘화해할 준비가 안됐어’였고, 이 노래가 마침내 그래미상을 받은 겁니다.

이왕 환경과 화장지 칸 수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마디 더 해야겠습니다. 제가 아는 한 환경운동가가 있습니다. 활동가 겸 대학 교수였습니다. 그 분은 대학에서 그 ‘화장지 한 칸’ 강의로 유명합니다. 학기 초 첫 수업에서 이 이야기를 해 제자들의 마음을 움켜쥔답니다.

 ‘지속가능 철학’ 되레 자랑해야

 바로 셰릴의 이야기와 같습니다. 산림을 보호하고 지구온난화를 예방하기 위해 화장지를 한 칸만 사용하자는 호소입니다. 예상밖의 제안이기 때문에 첫 강의를 듣는 학생들은 야유를 보내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그게 가능 하냐”는 반문에, “화장지를 한 칸만 써도 넉넉한 생태적 삶”이야기에 이르면 대부분 제자들은 고개를 끄덕인다고 했습니다.

이런 겁니다. 누구나 무작정 ‘한 칸’을 이야기하면 웃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변의 과학을 이야기하고, 건강한 이의 변과 그에 따른 뒤처리(화장지 사용)까지 말하고 나면 이해한다는 거죠. 건강한 이의 변은 적당히 굳고, 길어 항문에 묻어나지 않아 한 칸으로 뒤처리가 충분하다고 그럽니다. 이게 맞는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그의 이야기인 즉은 그렇다는 겁니다. 말이 되잖습니까?

미국의 언론들이여, 왜 멀쩡한 친환경 음악인을 바보로 만듭니까? 진보적 사고를 가진 음악인만 보면 때려잡으려는 미국의 보수 꼴통언론이 그리도 부러웠습니까? 한국의 ‘거두절미 언론’이 누구를 닮았는지를 가늠하자니 슬프기까지 합니다. 셰릴 크로우여, 왜 사과를 합니까? 당신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지구촌 이웃이 지켜보고 있으니 힘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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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미 2007/05/05 [23:10] 수정 | 삭제
  • 힘내세여. 당신의 진성성을 호도하며 몰아부치는 언론에 결코 휘둘리지 마세여.
    저는 화장지를 거의 사용하지 않아요. 거의 대부분은 적은 양의 물로 해결하고, 손수건을 많이 가지고 다니니 그럴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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