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성과는 안하무인 신다희 굴복시킨 것"

[연재소설] 홍매지숙명 피다, 제22장 폐월수화(閉月羞花)(22-2)

이슬비 | 기사입력 2018/10/14 [11:04]

"가장 큰 성과는 안하무인 신다희 굴복시킨 것"

[연재소설] 홍매지숙명 피다, 제22장 폐월수화(閉月羞花)(22-2)

이슬비 | 입력 : 2018/10/14 [11:04]

<지난 글에 이어서>

유흔의 축객령에,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서란은 다시 현재로 돌아와, 유흔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유흔.”

?”

 

나 두고 어디 가지 마.”
 
서란은 유흔의 품을 더 깊이 파고들었다. 아무리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도 유흔의 품에 안겨 있으면 다 잊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성과는 천하의 안하무인 신다희를 굴복시켰다는 데에 있었다. 신다희. 그녀가 누구이던가. 제 어머니와, 큰아버지들, 이부형제자매들을 모두 죽이고 스스로 가주의 자리에 앉은 것으로도 모자라, 자신의 정변에 반대하였다는 이유로, 친아버지마저 독살한 천하의 냉혈한이요, 누구든 조금이라도 싫은 소리를 하면 가만히 두지 못하는 살인마가 아니었던가.
 
그런 그녀가 자신의 남편을 위해 기꺼이 한씨가와의 협상에 응했을 때, 정옥은 물론, 유흔까지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동생은 어찌 그리 놀라는가? 백연을 무기로 하여 다희에게서 영토와 배상금을 얻어내자는 것은 모두 동생의 계책이 아니었는가?”
 
정옥의 말에 유흔은 그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유흔 자신마저도 다희가 이리 저자세로 나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천하의 모든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유흔이 가유로 돌아온 직후부터, 정옥과 한씨가는 백연의 처리를 두고 고심했다. 무가 가주의 남편을 오랫동안 포로로 붙잡아둔다면 부상국 내의 여론이 한씨가에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흐를 것은 불을 보듯 빤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풀어주자니 그동안 백연을 먹이고 재우며 돌봐온 값이 아까웠고, 무엇보다 이대로 아무 성과 없이 백연을 돌려보낸다면 한씨가의 체면에도 좋지 않은 일일뿐더러, 가유 백성들의 질타를 받을 것이 분명한 일이었다.
 
그냥 제 말대로 하시지요, 가주님.”
 
몇 번에 걸친 가내회의에도 끝이 나지 않자, 정옥은 유흔의 계책대로 백연의 귀고리에 달린 보석장식을 떼어내 사절단의 편에 보냈다.
 
신씨가의 가주께 문후 올리나이다. 그동안 강녕하셨는지요?”


한씨가 가주가 참으로 마음 씀이 넓은가보구나. 내 남편을 붙잡아두고 있으면서 내게 강녕을 묻다니.”


송구하옵니다.”


송구는 되었고, 그래, 그 대단한 한씨가 가주께서 내게 무엇을 보냈는지 한 번 봐야겠구나.”
 
시종 하나가 사절들에게서 건네받은 두루마리를 서안 위에 받쳐 왔다. 두루마리를 풀어본 다희의 손에는, 사파이어가 한가운데에 박힌 둥글고 작은 은원반이 들려 있었다.
 
접경지역 인근의 성 3개를 할양하고, 배상금으로 금자 2천 냥을 내놔라? 좋다, 내 그리 하지. 대신, 내 남편의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상하게 한다면 나는 할양한 성들을 되찾기 위해 전쟁을 벌일 것이다.”
 
다희가 정옥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주리라는 것은 모두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약속은 약속인 법. 정옥은 금자 2천 냥을 받고 백연을 풀어주었고, 다희는 백연이 돌아오자 접경지역 인근의 성 3개를 내주었다.
 
어찌하겠는가. 아무리 패장이라 하나, 나에게는 하나뿐인 동생이요, 정실남편인 것을. 3개가 어찌 남편보다 더 귀할 수 있겠으며, 어찌 금자 2천 냥 따위로 내 남편의 가치를 헤아릴 수 있을까. 그러니 백연이 무사히 돌아올 수만 있다면 나는 그 어떠한 것이라도 내줄 것이다.”
 

 
그리고 서란은 세상 그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가장 큰 성과를 얻을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백연이 가라고루성에 갇혀 있는 동안, 그와 서란이 친구가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가라고루성으로 돌아온 지 3일째 되던 날, 서란은 시위들과 시종들이 서넛씩 모여 수군거리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벌써 사흘째 아무것도 안 먹는다며?”


그러게. 정말 죽으려고 그러나.”


말도 마. 물도 안 먹는다는데 이미 죽기로 마음을 굳힌 거지, .”


미련한 놈. 여기서 굶어죽는다고 누가 퍽이나 칭찬 해주겠다.”


무슨 일이지?”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서란이 입을 열었다. 여태 서란이 가까이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저희들끼리 수군거리기 바쁘던 시위들과 시종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여 예를 표했다.
 
아가씨.”


굶어죽다니? 누가 말이야?”
 
시위들과 시종들에게 자세한 상황을 전해들은 서란은 누구 하나 대동하지 않고, 홀로 지하감옥을 찾았다. 지하감옥으로 이어지는 돌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지하 특유의 축축하고 습한 냄새가 코에 훅 끼쳐왔다.


서란은 옥리에게 은비녀를 건네고 백연이 갇혀 있는 옥사를 알 수 있었다. 옥사로 이어지는 길 내내 지하 감옥은 마치 대낮처럼 환했으나, 곳곳에서 밀랍과 송진, 아교가 타들어가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다음 글로 이어짐>

알바노동자, 여성, 정신장애인, 성소수자. 노동자와 다중소수자라는 정체성 속에서 길어올린 이야기. 해방세상이 와도 탄압받을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

무협연재 소설 이슬비 관련기사목록
이슬비 오컬트무협소설 연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