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없는 자유, 필요한 것은 둥지 뿐"

녹색 반가사유① 봄빛에 물든 새들의 재잘거림으로 숲 속은 싱그러워

정미경 | 기사입력 2007/04/26 [22:56]

"집 없는 자유, 필요한 것은 둥지 뿐"

녹색 반가사유① 봄빛에 물든 새들의 재잘거림으로 숲 속은 싱그러워

정미경 | 입력 : 2007/04/26 [22:56]
녹색 반가사유①
 
곤충 등과 같이 번식력이 매우 강한 생명체의 밀도를 조절하는데 있어서나,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들의 날개 역할을 하는데 있어 자연생태계에서 결정적인 몫을 하는 새들의 짝짓기가 한창입니다.

새들의 고운 지저귐이 온 숲을 뒤흔들고 있는 요즈음이에요. 봄빛에 물든 숲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재잘거림으로 숲은 그야말로 신선하기 짝이 없습니다.  
 
▲ 새들의 고운 지저귐이 온 숲을 뒤흔들고 있는 요즈음이에요.     © 정미경

하루가 다르게 산빛이 달라지는 봄날,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면서 약동하는 계절의 싱그러움에 몸을 맡기고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짝짓기가 끝난 새들은 곧 알들을 낳을 것입니다. 모든 생명체들이 그러하듯이 새 또한 2세들을 키우는데 온 정성을 기울일 것입니다.

어떤 것은 자연적으로 조성된 동굴등과 같이 안정성이 철저히 확보된 자신들만의 둥지에서 새끼들을 돌볼 것입니다. 천적으로부터 새끼들을 지키기 위한 저들의 헌신성과 용맹성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요.
 
▲ 쾌적하기 이를 데 없는 붉은머리오목눈이 둥지.     © 정미경
 
그것은 생명체가 가지는 누구에게도 양도 할 수 없는 천부적인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그 무엇으로도 방해받거나 제약을 당하지 않으려는 것 또한 본능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회성이 발달한 동물들은 역할 분담을 통해 집단적으로 이를 수행하기도 합니다.

어떤 종은 쾌적하기 이를 데 없는 집을 지어놓고, 육아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무리에게 분업을 주어, 이를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현대과학에게 영감을 주는 또 다른 종들의 기하학적인 집 구조는 언제나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들의 육아방은 밀폐되고, 철저한 소독으로 세균감염 등에 철저한 대비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단독생활을 하는 종이라 하더라도 육아만큼은 그 살뜰함이 결코 뒤지지를 않습니다.
 

▲ 방수와 방풍 그리고 살균기능까지 갖춘 까치 둥지.     © 정미경
 
물고기의 많은 종들이 암컷이 알을 낳고 수컷이 방사를 하면 그것으로 그치는데 반하여, 육서동물의 많은 종들은 일정한 기간동안 온 정성을 기울여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살펴 주는 것 또한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탁란을 통해 자식이 커가는 것을 지켜보는 새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종들의 새들은 육아를 위한 최적의 조건을 찾아내 그곳에 둥지를 틀고 갖은 정성으로 새끼들을 살펴주지요.

또, 어떤 종들은 우리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심혈을 기울여 안온한 요람을 만드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 불멸의 자국을 남기는 딱따구리류의 집짓기는 귀감중의 귀감입니다.     © 정미경
천적의 위협과 변덕스러운 날씨로부터 새끼들을 지켜내기 위하여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자연적인 재료에 자신의 몸에서 나오는 분비액으로 빈틈을 메우는 것을 멀리서 지켜본다는 것은 숭엄하기 이를 데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흔들리는 나뭇가지에 소박하게 짓지만, 그곳은 새끼들에게 있어서는 세상에 둘도 없는 안락한 보금자리이지요. 방수와 방풍 그리고 살균기능까지 갖추고서 말입니다. 항온과 항습기능 또한 두루 갖추고 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생명체들은 그러한 둥지를 항구적인 것으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대체로 육아의 기간이 끝나면 그 집은 다른 종들이 이용하도록 남겨지거나 자연으로 돌아가기 마련이거든요. 자신의 소유로 남기는 법이 없습니다.
 

▲ 새들의 둥지는 배타적인 소유도 없으며 때문에 사유화하지도 않습니다.     © 정미경
 
불멸의 자국을 남기는 딱따구리류의 집짓기는 귀감중의 귀감입니다. 죽어가는 나무줄기에 수직으로 달라붙어 부리를 짓쪼으며 구멍을 파서 둥지를 짓는 이 새들은 수많은 다른 종들의 노림수가 있어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종으로 알려져 있어요.

하늘다람쥐가 다녀가도 나무라는 법이 없으며, 청설모가 노린다한들 내어 쫓지를 않는다고 합니다. 꼭 필요한 종이 눌러 붙어 몸을 붙이면 그것으로 그만. 어떤 경우에도 내어 쫓거나 위해를 가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집은 고단한 존재가 유일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하늘아래 단하나 밖에 없는 공간입니다. 집은 어쩌면 유일하게 남은 자유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그것에 울타리를 치고 배타적인 영역으로 구별하는 가 봅니다.
 

▲새들에겐 오로지 2세를 위한 요람으로 그들을 키워내는 보금자리로, 자립할 때까지 함께 하는 둥지만이 있을 뿐이에요.  ©정미경

 
하지만, 대부분의 집은 생태적이지도 못할 뿐 아니라 주변과 어우러지지도 못합니다. 슬러지로 만든 시멘트에 악성유해물질이 뿜어져 나오는 집의 외형은 자못 공격적이에요. 권력을 뽐내는 아성으로 변하기도 하구요.

때로는 그곳이 약탈창고의 기능을 하기도 합니다. 다른 이들의 보금자리를 위협하는 기능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의 집은 자유의 영역이 될 수가 없습니다. 한낱 분점한 권력의 아성으로 변해버렸기 때문입니다.

새들에게는 집이 없습니다. 새들에게는 애오라지 어둠이 집입니다. 새들에겐 오로지 2세를 위한 요람으로 그들을 키워내는 보금자리로, 자립할 때까지 함께 하는 둥지만이 있을 뿐이에요.
 
그러한 둥지이기에 배타적인 소유도 없으며 때문에 사유화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자연생태계의 일부일 뿐입니다. 따라서 자유는 새들에겐 너무나 자연스러운 본성입니다.

 

▲ 집은 고단한 존재가 유일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하늘아래 단하나 밖에 없는 공간입니다.     © 정미경

내겐 그이만이 둥지일 뿐, 살고 있는 집 또한 내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유에 좀더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다만 아이에겐 우리가 고향으로 기억되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고향은 특정한 공간과 장소가 아니라, 언제 떠올려도 돌아가고픈 따스한 품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집 없는 내가 행복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봄빛에 물든 숲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재잘거림으로 숲은 참으로 신성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산빛이 달라지는 봄날, 새들의 지저귐을 들으면서 약동하는 계절의 싱그러움에 몸을 맡기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봄맞이입니다. 

정미경 ecoforest@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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