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정의 꽃송이에 내려앉은 봄비

녹색 반가사유② 들어내기 보다 감추는 아름다움, 들뜸보다 차분함

정미경 | 기사입력 2007/05/02 [00:51]

절정의 꽃송이에 내려앉은 봄비

녹색 반가사유② 들어내기 보다 감추는 아름다움, 들뜸보다 차분함

정미경 | 입력 : 2007/05/02 [00:51]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화사한 봄. 엷은 빛으로 꼬물락 꼬물락 옹알이를 하는가 싶었는데, 어느 사이에 걸음마를 마치고 세상의 빛들을 숲속 가득히 모아놓았습니다.
 
새들은 짝짓기를 이미 끝냈고 꽃들까지 향과 빛깔로 곤충들을 불러 모으고 있어요. 목련꽃이 져버린지는 까마득히 오래! 그 사이에 벚꽃마저 졌습니다. 쑥과 냉이 또한 향주머니를 닫았고요.
 
▲ 봄비가 사뿐히 내려앉았습니다.     © 정미경

그리고 숲은 온통 초록빛으로 물들었으며 귀퉁이마다 철쭉은 활활 타오르고 있어요. 물 오른 수목들은 더 이상 그럴 수 없다는 듯이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행여나 방해가 될라 바람은 머물듯이 불고, 물은 고인 듯이 흐르고 있습니다. 정말이지 절정의 봄입니다.
 
▲ 나비는 물방울이 맺힌 이파리 밑에 숨죽이고 있습니다.     © 정미경

착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어수선한 기슭과 언덕은 여전히 비틀거리는 바람이 불청객처럼 왔다가 또 그렇게 달아납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까마득한 절정의 현기증이 아닐 수 없어요.
 
이 절정의 봉우리에 걸터앉았던 구름이 드디어 몸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들떠버린 세상을 가라앉히려는 구름은 고즈넉하게 봄비를 뿌리고 있어요.
 
▲ 혹 불면 꺼지버릴 것 같은 물방울이에요.    © 정미경

메말랐던 대지를 밤사이에 촉촉하게 적셔놓고 안심을 시키더니, 더 이상 치닫지 말라고 나직하게 다독거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가. 모두가 다소곳하게 몸을 웅크리는 것이.
 
새들도 둥지 속으로 들어가고 짐승들은 묵언수행에 들어갔어요. 나비는 물방울이 맺힌 이파리 밑에 숨죽이고 있습니다. 하물며 바람조차 오늘은 쉬는 날입니다.
 
▲ 잎맥의 끝 편 거치에 모인 영롱한 물방울.     © 정미경

환희의 봉우리에서 절제를 가르치는 봄비. 이 봄비가 터질 듯한 꽃잎에 사뿐하게 내려앉았습니다. 잎맥의 끝 편 거치마다 영롱한 물방울로 모였어요.
 
그 비어 있는 거품에는 자신의 존재가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로지 주변의 아름다움을 홀로그램 영상으로 담아내고 있을 뿐이지요.'나' 라는 것은 '나' 아닌 것으로 채워져있다는 것을 참으로 실감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 자신은 비워둔 채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는 물방울.     © 정미경

모두가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을 때 물방울은 그 모든 개성을 하나로 담고, 정작 자신은 비워둔 채로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어요.
 
그러므로 물방울은 세계의 본질을 담고 있는 가장 큰 그릇입니다. 혹 불면 꺼져버리는 물방울이지만 도무지 들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
 
▲ 물방울은 세계의 본질을 담고 있는 가장 큰 그릇입니다.     © 정미경

들떠있는 가슴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자아보다는 온널판의 진면모를 보라고 하는 이 들뜬 봄날에 봄비는 우리를 우울하게 만듭니다.
 
사실, 우울함은 한 옥타브를 낮추어 보라는 자연의 계시이기도 하지요. 이 깊이 있는 사색의 음조가 결국은 세계의 신비를 풀어내는 악상입니다.
 
이제는 드러내는 아름다움보다는 감추는 아름다움을, 들뜸보다는 차분함을 가져야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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