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짜기에 서린 스산한 그리움은 그렇게...

녹색 반가사유⑤강과 바다로 갈 날을 알기에 생의 번뇌를 기쁘게...

정미경 | 기사입력 2007/05/24 [20:47]

골짜기에 서린 스산한 그리움은 그렇게...

녹색 반가사유⑤강과 바다로 갈 날을 알기에 생의 번뇌를 기쁘게...

정미경 | 입력 : 2007/05/24 [20:47]
삶은 지독한 그리움입니다. 침묵하는 적멸이 박차고 나와 고고성을 울리는 그날 이전부터 삶은 지독한 그리움으로 아리는 통증까지 마다않고 고개를 내밀며 존재라는 이름으로 서있습니다. 
 
▲삶은 지독한 그리움입니다.     ©정미경

 그리고, 삶은 끝없는 막연한 기다림으로 그렇게 흘러갑니다. 때로는 돌아갈까, 아니 그래도 한번 지독한 갈망 끝에 차례진 생이기에 기다림의 지향은 꺼질 줄을 모릅니다.

만났다 헤어지고, 그렇게 상처 밭을 떼굴떼굴 뒹굴면서도 못내 떨쳐버릴 수 없는 그리움과 기다림으로 존재의 굴레를 놓치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이 바로 생이라는 것이지요.
 
침묵하는 적멸에로 다시 돌아가고픈 마음 하나, 그리고 거기로부터 벗어나려는 몸부림 사이에서 한 생의 부침을 거듭하지만, 상처위에 덧난 아픈 상처마저 금방 잊고 마는 것이 또한 삶입니다.

▲계곡은 생의 이러한 희비쌍곡선이 교차하는 어수선한 우리들의 아슴한 마음자리입니다.     ©정미경


그리움은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존재의 본성! 기다림은 존재의 목적!

그저 흐름 속에 몸을 맡기던지, 그것을 거스르던지, 둘 중의 하나만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밖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산안개의 고향인 산골짜기, 계곡은 생의 이러한 희비쌍곡선이 교차하는 어수선한 우리들의 아슴한 마음자리입니다.

아무리 돌아가려고 발버둥을 쳐도 돌아갈 수 없는 흐름 속에서 할 수 있는 거라곤 잠시 머무를 수 있는 순간의 선택뿐. 미명의 산안개는 마음을 산산이 쪼개야만 비로소 이룰 수 있는 것,  그것도 잠시 뿐입니다. 
 

▲ 미명의 산안개는 마음을 산산이 쪼개야만 비로소 이룰 수 있는 것, 그것도 잠시 뿐입니다.     © 정미경

내달려야만 하는 운명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는 생은, 숲 그림자를 품에 안고 끝없는 그리움으로 흘러가야합니다.
 
산과 바다가 맞잡은 골 패인 주름사이를 헤집고 가야만 하는 생의 시림이 짙푸른 그리움으로, 그리고 하얀 포말로 인연을 바꾸어가면서 막연하게 흘러가야만 합니다.

봉우리로 오르려다 굴러 떨어진 업을 힘겹게 굴려가면서 말이에요. 그러므로 골짜기에 서린 그리움은 스산한 그리움입니다.

 
▲골짜기에 서린 그리움은 스산한 그리움입니다.     ©정미경


 하지만 어쩌랴! 이것이 생의 감추어진 본성일 바에…. 생의 근원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산짐승과 날짐승, 그리고 물고기조차 이곳을 벗어날 수 없으니 차라리 그것을 즐길 수밖에.
 
협곡의 벼랑을 버티고 있는 하얀 몰골의 바위마저 파르르한 긴장 속에서 그렇게 기다리고 있는 이 막연한 그리움과 기다림의 좁고 좁은 골짜기를 찔레꽃은 아픈 향기로 뒤덮고 있습니다. 너른 바다로 가는 첫 번째 길목.

그러므로 골짜기는 품에 안은 숲그림자로 물들어, 끝내 그 시림을 내칠 수가 없어요. 참으로 생은 시림, 그 자체입니다. 그리고 이 시림은 오염되지 않은 우리들 본성의 본래자리이지요.

불영 계곡과 가야산 계곡, 천성산과 금강산의 계곡 그 모두가 마찬가지입니다. 계곡은 머무르고 싶은 욕망과 등 떠미는 이별이 상존하는 생의 긴장이 묘하게 어울려 서려있는 시림의 본향입니다. 드리운 그림자에 기대어 사는 생은 존재의 본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 계곡은 머무르고 싶은 욕망과 등 떠미는 이별이 상존하는 생의 긴장이 묘하게 어울려 서려있는 시림의 본향입니다.     © 정미경
 
언젠가 강으로 들어서고 바다 어귀로 돌아갈 날을 알고 있기에 생의 번뇌는 첫 번째 윤회를 기쁘게 받아들이며 오늘도 내달리고 있습니다.

산이 바다로 바뀌고, 바다가 산으로 뒤바뀔 그날, 골짝은 틀림없이 해협으로 변해있을 것입니다.

이 막연한 기다림이 숨 막히는 그리움의 끝에 마중해 있을 그날을 꿈꾸며, 나는 숲그림자를 에돌며 시원스레 내달립니다. 운명은 그것을 내 것으로 할 때 비로소 바뀔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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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리다 2007/05/26 [18:13] 수정 | 삭제
  • 사진이 정말 아름답습니다.
    맑고 고운 글 감사히 읽습니다.
  • 평화사랑 2007/05/26 [00:12] 수정 | 삭제
  • 머물고 싶지만, 등 떠미는 숲
    그래서 계곡에 가면 시리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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