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보수 신문은 “평화 대신 이기적 동기를 앞세우는 평화운동에 염증을 느꼈다”는 그녀의 글 내용을 인용했다. 또 다른 신문은 “무고한 생명이 죽어가는 문제가 정치화하는 것에 실망을 느꼈다”고 전했다. ‘활동 중단’이라는 충격적 제목만 눈에 띌 뿐 그 이유는 아리송하다. 무고한 생명이 죽어가는 문제를 정치화한다는 게 뭐가 문제라는 건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생명이 죽어가는 데 정치쟁점화 하는 건 당연한 일 아닌가? 이기적 동기를 앞세우는 평화운동에 신물이 난다고 했다. 91년 반정부 시위가 격렬해지고 몇 건의 분신이 터지던 어느 날 조선일보에 실린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칼럼을 봤을 때 바로 그 기분이었다. ‘죽음의 굿판’ 섬뜩함 되살아... 시핸의 글 솜씨가 좀 모자랄 수도 있다. CNN 보도가 좀 미흡했을 수도 있다. 언론들은 진보사이트인 ‘데일리코스’에 원문이 실렸다며 인용했으니 내용을 잘 모르고 보도했을 리는 없다. 시핸의 편지는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와는 달리 사회운동을 매도하는 건 아니다. 그런데 보수언론의 보도는 아리송하기만 하다. 조중동은 시핸의 글 중 일부만 뽑아 섰다. 평화운동과 민주당을 매도하는 내용뿐이었다. ‘이기적 평화운동이요 평화운동을 배신하는 민주당’이 돼 버리고 만 것이다. 이 얼마나 좋은 보도거리인가? 한국인들에게도 좀 들으라고 소리를 높이고 싶었을 법 하다. 시핸이 쓴 편지는 고작 2쪽도 안 된다. 그 글을 읽으면 왜 그녀가 평화운동을 그만두는지 그 이유가 상세히 실려 있고, 글을 읽을 줄 아는 이라면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취사선택해 보도함으로써 독자를 현혹시킨 것이다. 서방언론, 그 것도 유력 미디어만을 받아쓰니 이런 문제가 생긴다. 미국의 유력 언론은 거의 다 상업언론이다. 이들은 백악관과 결탁해 껄끄러운 내용은 빼거나 유화시켜 보도한다. 미국에서 거대 상업언론이 사회적 공기라 할 만한 구석은 어디를 찾아봐도 없다. 그냥 주주들의 것일 뿐이다. 이라크 전쟁이 시작될 당시 생생한 기억이 있지 않은가? 바그다드로 진군하는 미군탱크에 카메라를 매달고 이라크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전쟁놀이를 보면서 환호성을 지른 게 바로 미국 언론이었다. 이를 중계하며 똑같은 심정을 가졌던 게 바로 우리 아니었던가? 좀 다른 이야기지만 기자실도 같은 종류의 고질병을 앓는 곳이다. 서방 유력언론을 베껴 외신란을 채우듯, 국내 뉴스도 제공자의 이야기를 거의 똑 같이 기사화하는 게 한국언론이다. 그것도 모자라 초판이 나오면 바꿔보며 빠진 걸 채워 낙종을 예방하는 게 우리 유력언론의 현주소다. 하지만 보라. 시핸 이야기를 29일 보도한 인터넷언론은 완전히 다르다. ‘프레시안’은 왜 그녀가 평화운동을 포기하려는 건지를 쉽게 알 수 있게 글을 썼다. ‘오마이뉴스’는 ‘나는 왜 반전운동 얼굴마담을 포기했나’는 제목의 기사에서 시핸이 데일리코스에 실은 편지 전문을 싣고 있다. 거두절미와 받아쓰기 언론 미국 언론이라고 해 다 나쁜 건 아니다. 시핸이 왜 평화운동을 그만두려는 지 그 내막을 소상히 밝힌 보도가 있다. 뉴욕에서 발행되는 ‘지금 민주주의를’이 그 주인공. 독립언론이다. 이튿날 새크라멘토(캘리포니아) 집으로 내려간 그녀를 전화로 연결해 인터뷰한 기사를 올렸다. 시핸은 이랬다. 부시 행정부가 내놓은 전쟁비용법안을 민주당이 철거시한을 명기 하지 않고 통과시켜 주자 실망했다. 이일로 민주당을 탈당했고, 당 내 좌파들과 언쟁도 벌였다. 2년여 활동기간 큰 병도 얻었다. 부인과 질환으로 하혈을 했고 두 번이나 대수술을 받았다. 그녀는 이렇게 쓰고 있다.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다. 돈도, 정열도 고갈됐다. 더 이상 이 정치체제 속에서 평화운동을 하지는 않겠다. 반전평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 하겠지만, 이전과 같은 식의 활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최방식(본지 편집국장) <저작권자 ⓒ 인터넷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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