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볼만한 신문 좀 만들지...”

광화문단상 “독재 떡고물 먹고 자란 언론, 천박한 구시대버릇 여전...”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7/07/02 [01:33]

“이젠, 볼만한 신문 좀 만들지...”

광화문단상 “독재 떡고물 먹고 자란 언론, 천박한 구시대버릇 여전...”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7/07/02 [01:33]
조선일보 한부가 우리 집에 들어왔다. 아마 장인어른이 던져 놓은 모양이다. 이 신문을 안 본지가 꽤 돼서 그런지 좀 낯설다. 오래 전 지하철에서 신문을 팔 땐 어쩌다 봤던 기억이 있다. 심심하면 시렁에 던져 놓은 걸 주워 읽었던 적이 있으니까. 주말이어서 좀 한가하기도 하고 내용이 궁금하기도 해 펼쳐봤다. 읽을 게 없는 것이나 읽고 싶은 글이 눈에 띄지 않는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토요일 아침 늦잠은 꿀맛이다. 아이들이 학교 갈 때까진 좀 시끄럽지만 그 뒤엔 조용하다. 해가 중천에 떠도 방해받지 않고 낮잠을 즐길 수 있다. 한 낮이 되도록 문밖에 신문이 그대로 있으면 장인이 신문을 문 안으로 밀어 넣어준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데 교직을 정년퇴임하고 집에 계셔서 그런지 딸집이 조용하다 싶으면 한 번 씩 들여다보신다.
 
구독하는 일간지가 하나 있다. 그런데도 장인은 관리사무소에서 본 신문을 가끔 우리 집에 넣어주곤 한다. 아마 사위가 언론인이니 이것저것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셔서 그런 걸 거다. 언제나 고맙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처음인 것 같다. 평소 같으면 그냥 쓰레기통에 처박았을 텐데 늑장부려도 되는 날이어서 화장실에 들고 갔다.
 
‘조선’ 우연찮게 들췄더니 '가관'
 
▲ 디지털조선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구독권유 사이트 캡쳐화면.  

그럼 그렇지. 언제나 그랬다. 지면을 펼쳐들 때면 항상 드는 생각이다. 이런 신문이 1등 언론 어쩌고 해댔으니 한국이 이 모양 이 꼴이 아닐까? 그래서 언론계에서는 ‘안티조선’ 운동이 벌어졌었다. 옥천 같은 데선 조선일보 안보기 캠페인이 큰 효과를 발휘하기도 했다.
 
민선·민주 정부가 들어서며 분위기가 좀 바뀌었다. 이 신문이 과거 독재정권에 빌붙어 성장했기에 뒤를 돌봐주지 않는 정권이 들어선 마당에 굳이 ‘안티조선’ 운동을 벌일 것까지야 있겠냐는 지적이 나름대로 설득력을 얻었다. 그런데 이 보수 일간지는 권력의 떡고물을 먹으며 키웠던 그 힘을 지금도 그대로 발휘하고 있으니 어찌된 노릇인지 모르겠다.
 
1면 머리기사부터 사설까지 자극적이다. ‘사립대 총장 90명 정부에 반기’라는 제목에 “내신 50% 반영·기회균등할당제 재고하라”는 메시지다. 고교의 대학입시 학원화를 막기 위해 정부가 펴는 정책을 무력화하려는 사립대 총장들의 목소리를 대서특필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 신문은 그걸 부추기고 있다. 고교등급제와 본고사 부활은 이 신문의 오랜 염원이니까.
 
독설의 제목은 일사천리다. 1면 머리기사에 이어 3·4면 통면으로 관련기사(해설)을 싣고 있다. 3면 제목은 ‘일방통행 교육정책 강요에 “더 이상 못 참아”’다. 사설 제목은 ‘대통령의 입시간섭에 반기 든 사립대 총장들’이다. 4면 톱은 ‘대통령의 협박성 면박에 절망’. 강압적 입시정책과 청화대의 토론회에 교수들이 들끓고 있다는 부제도 눈에 띈다.
 
거두절미도 예나 지금이나 거침없다. 경제면 머리기사 제목은 ‘노대통령의 간섭... 확 뒤집히는 경제정책’이다. 각종 경제정책에 대통령이 사사건건 간섭해 공무원들이 좌절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내용이다. 현대파업 소식, 반FTA시위 기사도 그렇다. 경제피해, 도심교통체증을 이유로 들며 비난조의 내용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볼게 없는 건 예나 지금이나...
 
참으로 어이없다. 대통령이 경제정책을 지도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닌가. 현장 공무원이 제 맘대로 정책을 펴는 얼빠진 정부가 어디 있단 말인가? 조선에게 떡고물을 나눠줬던 독재정권은 말할 것도 없을 테고 말이다. 박정희·전두환 정권 때는 모든 게 ‘각하의 지시’로 이뤄졌을텐데...
 
대통령이 간섭했다는 경제정책 내용을 보자. △불법사금융 피해 대책 마련 △수도권내 공장증설 엄하게 규제 △지방이전 기업 세제해택 강화 △부동산 규제 등이다. 마땅히 정책기조를 지켜야 하는 것들이다. 조선의 보도에 따르면, 공무원들이 정책을 깨려다 대통령이 막았다는 것 아닌가? 보수신문과 꼴통 공무원들이 한통속인 걸 드러낸 꼴이다. 나라꼴이 이 모양인 건 다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 디지털조선 홈페이지 캡쳐화면.     © 인터넷저널

한국 언론이 천박하다는 건 국제기사를 보면 안다. 이 신문에 국제기사가 실리는 곳은 19면. 맨 마지막에 오는 문화, 스포츠, 방송, 오피니언 앞에 배치돼있다. 지구촌의 움직임을 시시각각 알아야 독자가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터인데 국제뉴스가 ‘심심풀이 땅콩’이니 이 걸 어딨다 쓰겠는가.
 
이 신문만의 문제라고 하기엔 꼴통 한국언론의 고질병이 좀 더 심각하긴 하다. 선진국 언론들이 1면부터 주요면 대부분을 국제기사로 채우는 것과 비교하면 한국이 왜 민주화가 늦고 낡은 냉전 이데올로기 틀 안에서 신음하는 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수구보수 세력이 여전히 판을 치는 까닭도 그래서 였을 터이다.
 
이 신문은 자타가 공인하는 ‘1등 신문’이라고 자랑한다. 기자도 한 가지는 인정한다. 매출과 흑자규모에서 그렇다고 들었다. 그래서 찬찬히 살펴봤더니 광고가 전체 지면의 50% 가깝다. 이날 섹션판을 빼고 총 32면인데 광고 지면을 세어보니 16면에 육박한다. 매년 14만4천원의 구독료를 받으면서 지면 반절이 광고라니.
 
‘찌라시’라더니 광고가 50%
 
그 뿐 아니다. 이 날 내가 본 신문은 섹션까지 합쳐 78면. 지면으로만 따지다면 3백12쪽짜리 책 한권 분량. 게다가 이 신문에 끼어들어오는 삽지 광고는 또 얼마나 많은지. 본판 50%가 광고인데다 삽지 수십장이 광고이니 이 정도면 누군가 이 신문을 ‘찌라시’라 했던 게 딱 들어맞는 말 아닌가 싶다. 찌라시는 일본 말로 선전광고전단을 말한다.
 
구독료보다 더 비싼 경품 주며 신문 부수를 늘리는 이들의 속셈이 이 정도면 뻔하지 않은가? 신문사 운영비의 대부분을 광고수입으로 충당하는 것도 알만한 이는 다 아는 이야기다. 독자보단 광고주 목소리가 더 소중한 이유는 그래서다. 구독료의 대부분이 지국 운영비로 들어간다는 것도 알려진 이야기다.
 
기자는 올해만도 2, 3번이나 이 신문사의 직원(판촉)으로부터 구독을 권유받았다. 경품을 주겠다면서 애원하던 그들. 집에서도 사무실에서도 1년이면 몇 번씩 겪는 괴로움이다. 자전거, 백화점 상품권... 심지어 현금까지 들고 나타나서는 6개월만 봐달라는 것이다. 고발하기도 하고 폭로하는 이도 있는데 난 곱게 거절했었나 보다. 우리 사무실에 있는 한 분은 그들을 고발해 놓고 지금도 고생하고 있다. 사실관계를 입증해달라고 해 몇 달간 증거 보내고 조사받고 있다.
 
언론을 ‘제4의 권부’라 부른다. 시시콜콜한 연예인의 신변잡기부터 국가의 중대사까지 모든 정보가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전달되기에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공정해야 한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언론기관을 사회적 공기라고 하는 덴 광고주나 소수 기득권자의 이해보다는 국민 다수의 이익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앨런 존스톤 기자 본받아라”
 
앨런 존스톤 기자가 납치된 지 110일이 지났다. 영국의 1등 언론이라는 BBC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특파원이다. 이·팔 전투에다 정파간 싸움까지 치열해지며 서방 언론사 기자들이 모두 빠져나간 자리를 끝까지 지키고 있던 앨런 기자다. 긴박한 이곳의 소식을 지구촌에 알리기 위해서다. 이라크, 팔레스타인, 소말리아, 레바논, 그리고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외침엔 귀를 막고, 이 땅의 기득권자를 위해 낡은 매카시공세나 벌이고 있는 기자들이 본받아야 할 언론인이라는 생각에 언급해봤다. 제발 볼만한 신문 좀 만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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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거리 2007/07/04 [07:40] 수정 | 삭제
  • 50년전
    우리의 내전에 입은 상처 때문에
    우리 어른들 아직도 좃선을 놓으시지 못하고
    계신 것 같아 정말 안타깝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좋은 파헤침
  • 다시기자 2007/07/03 [22:59] 수정 | 삭제
  • 고맙다니요
    우리같은 사람이 고맙다고 해야지요
    앞으로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나 최기자님 펜입니다
  • 기자 2007/07/03 [12:56] 수정 | 삭제
  • 칭찬해주시니 고맙습니다.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죠. 새롭게 한번 경각심을 가져야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서...
  • 기자 2007/07/02 [14:41] 수정 | 삭제
  • 최방식님 속이 다 쉬원합니다
    오랫만에 기사다운 기사 읽었습니다
    조선일보는 없어져 주는 것이 대한민국에 애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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