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조가락 우렁찬 동편제 성지에 서다

[탐방-지리산밝은마을②] 구경꾼 아닌 여행자 되자던 다짐은...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11/12/08 [23:33]

우조가락 우렁찬 동편제 성지에 서다

[탐방-지리산밝은마을②] 구경꾼 아닌 여행자 되자던 다짐은...

최방식 기자 | 입력 : 2011/12/08 [23:33]
[지난 글에 이어] 수련장으로 들어서니 대여섯 젊은이들이 부채춤인지 탈춤인지에 푹 빠져있습니다. 넋 놓고 춤사위를 구경하는데 밝은마을 운영자인 김혜정씨가 부릅니다. 차 한 잔 들라며 방안으로 들어오랍니다. 공부를 더 방해하면 곤란하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들어가니 차향이 가득합니다.

처음 밝은마을 여행을 기획할 때만해도 수련 프로그램을 해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연유에선지 여행일이 가까워 올수록 내용이 달라졌고, 마침내 완전히 뒤바뀌고 말았습니다. 회의·교육 등 여러 일정이 빠지고 말았죠. 애초 의도했던 취지는 그렇게 형해화하고 말았습니다.

운영자 김혜정씨가 따끔한 소릴 놓치지 않습니다. “처음엔 의욕적으로 짜봤는데 바뀌고 바뀌어 여러분들이 원하는 데로 됐습니다. 여행자 맘이지, 어디 우리 맘대로 하겠습니까? 지금부터 저녁 먹을 때까지 두어 시간 구룡폭포를 구경하세요. 하늘에서 아홉 마리 용이 내려와 목욕을 한다는 곳인데 직접 한 번 보시죠.”
 
▲ 지리산밝은마을에 막 들어서니 '백일학교' 수련생들이 탈춤을 배우고 있습니다. 땅을 박차고 막 날아오르는 백조처럼 도약하는 춤사위가 곱기만 합니다.     © 최방식 기자

‘착한여행’ 취지 형해화 부끄러워

여행생협을 만들고 이른바 ‘공정하고 착한 여행’을 하자고 했는데 그 취지를 거스른 것이었습니다. 구경꾼에 머물지 않고 현지 문화와 질서, 그리고 자연생태계를 존중·보전하고 배우며, 단순한 일탈이 아니라 삶의 여정으로 여행을 하겠다는 다짐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틀의 일정과 시설이용 등의 브리핑을 받고 일행은 구룡폭포를 향했습니다. 밝은마을과 불과 5분 남짓 거리. 길을 잘못 들어 두어 번 헤매다 목적지로 가는 나들목을 가까스로 찾았습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350미터로 표기된 목적지를 향해 가볍게 발걸음을 뗍니다.

초겨울 따가운 햇볕, 동장군 보다 한 발 앞선 시원한 바람, 머리를 맑게 하는 솔 향. 쾌활한 수다와 경쾌한 걸음으로 자그마한 언덕을 넘어 나무계단을 몇 발짝 내려서는데 입이 쩍 벌어집니다. 끝없이 깊어 보이는 계곡, 초입에서 느끼지 못했던 오묘한 기후...

▲ 구룡폭포입니다. 9마리의 용이 사월초파일 지상에 내려와 여기 아름답고 신령한 곳에서 유영을 하다 천상으로 다시 오른다죠? 9개의 용소를 따라 십리 협곡이 이어지는 용호구곡(龍湖九谷)의 시작입니다.     ©최방식 기자


구릉을 넘기 전만 해도 그리 화려한 풍광이 있으리라 생각지 못했습니다. 나무 계단이 끝이 없습니다. 한발 한발 내딛기가 무서울 정도의 가파른 경사를 이십 여 분 내려왔나 봅니다. 백여 미터도 넘어 보이는 깎아지른 절벽 사이 협곡으로 거대한 용이 살아 꿈틀거립니다.

구룡계곡(용호구곡이라고도 불림)은 사월 초파일 아홉 마리의 용이 지상에 내려와 놀다 승천하는 곳이랍니다. 지리산 노고단 서북능선의 만복대에서 발원한 원천천(元川川)이 지반침식으로 땅속 깊이 꺼져 내린 이 계곡에서 굽이돌며 용의 놀이터를 만든 겁니다. 용폭수는 육모정을 지나 남원 어딘가에서 장수에서 흘러오는 요천(蓼川)과 합류해 서쪽 섬진강으로 흘러듭니다.

이 곳이 여느 폭포와 좀 다른 점은 물이 완만한 경사의 바위를 타고 미끄러진다는 겁니다. 거대한 바위를 타고 10여 미터를 굽이치다 깊은 용소를 만들고 다시 5미터를 굽이쳐 두 번째 용소를 휘도나 싶더니 50여미터 가파른 바위를 타고 웅장하게 흘러내립니다. 남원 제1경이라 한다니, 그 까닭을 알듯합니다.

▲ 수직으로 물이 떨어지는 여느 폭포와는 다르게 가파른 암벽을 타고 떨어지는 구룡폭포. 여기에서 '동편제'의 기교를 허용치 않는 웅장한 우조가락이 탄생했다고 합니다.     ©최방식 기자


마치 피를 토하는 듯, 한 서린 아리랑 가락이 구성졌던 영화 ‘서편제’를 문득 떠올렸습니다. 유봉이 수양딸 송화에게 소리를 가르치며 했던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이년아! 가슴을 칼로 저미는 한(恨)이 사무쳐야 소리가 나오는 뱁이여...”

“한 사무쳐야 소리 나오는 뱁이어”

섬진강을 가운데 두고 서쪽 광주·나주·담양·화순·보성에서 전승된 서편제가 있다면 동쪽 남원·순창·곡성·구례에서 이어진 동편제가 있습니다. 그 동편제 소리꾼들의 성지가 바로 이 구룡폭포라 해 궁금했는데, 와 보니 소리가 동서로 나뉜 까닭을 알겠습니다.

서편제가 슬픈 ‘계면조’ 가락의 기교를 부렸다면, 동편제는 ‘대장단’을 사용하며 기교를 부리지 않는 발성을 했다는데 바로 이 폭포소리 아래서 우렁찬 ‘우조’ 가락을 익혀 그런 것이지요. 송만갑·박초월 등 당대 명창들이 이 폭포 아래서 소리를 익혔답니다.

▲ 구릉을 넘기 전만 해도 그리 화려한 풍광이 있으리라 생각지 못했습니다. 나무 계단이 끝이 없습니다. 한발 한발 내딛기가 무서울 정도의 가파른 경사를 이십 여 분 내려왔나 봅니다. 백여 미터도 넘어 보이는 깎아지른 절벽 사이 십여리 협곡이 이어집니다.     © 최방식 기자


쏟아지는 물줄기, 그 웅장한 포효에 넋을 잃고 있는데 여행자 누군가 말했습니다. 저기 용소 앞에서 10분만 가만히 앉아 명상을 하자고. 교언영색(巧言令色)의 입을 닫고 오염된 마음을 폭포수에 닦아내 보자는 것이지요. 가슴속 묶은 때를 깨끗하게 씻어낼 것만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리 쉽지가 않습니다. 용소 앞 자그마한 전망대(거기까지만 오를 수 있음)엔 여행자들이 수십명씩 오르내리며 시끌벅적했으니까요. 그 웅장한 폭포소리 속에서도 인간의 수다는 정말 시끄럽더이다. 곧 포기하고 구룡폭을 내려와 맨 아래 현수교(흔들다리)를 건너는데 길이 두 갈래.

여행생협 탐방에 처음 왔다는 정숙희씨가 계곡 아래쪽으로 난 길을 타고 내려갑니다. 그녀와 길상사 도반이라는 김근례(여생 회계팀장)씨가 “거기 아냐, 돌아와”라며 부르는 사이 다른 여행자들은 조금 전 내려왔던 가파른 계단을 저만치 오르는 중입니다. 폭포소리에 불러도 대답이 없습니다.

▲ 구룡폭포 곁에 여행자들이 섰습니다. 저 웅대한 아름다움을 어찌 표현하겠다고들 하는지. 그래서 또 얼마나 기억속에 담아두겠다는 것인지...     © 최방식 기자


갈림길에 선 기자 즉흥심을 발동합니다. 둘레길 이정표를 보니 계곡 길은 육모정까지 3킬로미터. 1시간이면 가지 않을까 싶어 셋은 계곡 둘레길을 가고 나머지는 주차장으로 올라 차를 타고 육모정에서 만나면 어떨까 생각한 거죠. 근례씨가 몇 번의 전화통화 끝에 타협을 봤습니다.

그런데 계곡을 내려오는 내내 마음 한편이 찜찜합니다. 애초 상의한 적이 없고, 또 계곡 둘레길을 가려고 했으면 일행과 같이 가야지 남들은 다 계획대로 가는데, 뒤따르던 셋이서 여정을 즉흥적으로 바꿔 낯선 산행을 한다는 게 잘한 일인지 그렇지 않은 건지 여러 생각이 듭니다.

두길보기, 우직한 이는 어떡하나?

‘두길보기’(양다리 걸치기)가 아닌가 싶어 그렇습니다. 이쪽저쪽 지켜보다 여기가 좋을 성 싶으면 얼른 이리 옮기고, 아니다 싶으면 슬쩍 저쪽에 편승하는 얄팍한 태도. 누군가 그런 잇속을 챙기는 사이 착하고 우직하게 제 길을 가는 이들은 어떡하나요?

▲ 구룡폭포 가는 길 어디선가 쓸쩍 모습을 드러낸 지리산 노고단과 반야봉 자락. 하얗게 눈덮인 영봉이 마치 천상의 구룡에게 이정표라도 되는 것 같습니다.     © 최방식 기자


이런저런 번민도 구룡계곡의 황홀경에 어느새 흩어져 버립니다. 두 개의 병풍을 마주 세워놓은 듯, 깎아지른 절벽사이로 끝없이 이어지는 협곡. 서녘 지는 해를 바라보며 굽이치는 용의 허리를 따라 걸으니 탄식이 끝없이 터져 나옵니다. 천상낙원 어딘가를 거닐기라도 하듯.

왼쪽 오른쪽 굽이도는 좁디좁은 계곡을 수십 번 이리저리 돌고 도니 고단함조차 잊습니다. 40여분을 내려왔을까요? 풍광 좋은 데면 잠시 서 감상하고 사진 찍고 한마디 감상 내뱉고... 그런데 이게 어쩐 일입니까? 1/3밖에 못 온 겁니다. 해는 뉘엿뉘엿 저무는데, 아차 싶습니다.

젊은 시절 산에 미쳐 돌아다닐 때 배운 게 떠오릅니다. 산에서는 까불지 말라고 했는데. 조난사고의 거의 대부분이 ‘까짓 거’ 우습게 여기다 생긴다고 했는데. 30~40분 내로 계곡을 벗어나지 못하면 칠흑 같은 어둠에 갇힐 게 뻔한 데, 이거 큰일입니다. 배낭 속엔 헤드랜턴이 있는데, 즉흥적으로 오다보니 지금은 맨몸. 걱정이 앞섭니다.

▲ 첫날 여정을 마치고 밝은마을로 돌아섭니다. 정성으로 차린 음식을 고대하며. 잡곡밥에 나물, 구수한 전과 청국장까지. 저녁공양은 벌써 ‘성찬’이 되었습니다.     © 최방식 기자


앞선 둘은 풍광을 즐기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안되겠다 싶어 걸음을 재촉하자니 그제야 좀 서둡니다. 30여분을 잰걸음으로 걸었을까요. 산 위 60번 국도를 따라 우리 승합차가 내려오네요.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했지만, 계곡길이 끝나가는 듯해 안심. 10여분을 더 걸어 만나기로 한 육모정에 도착하니 제법 깜깜합니다.

셋이서만 계곡길을 간 것에 대해 다른 일행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힘들고 형편없었다”고 둘러대기로 입을 맞췄죠. 하지만 어디 그게 된답니까? 계곡 길 어땠냐는 질문이 나오자마자 “정말 좋았어요”와 “형편없었어요” 대답이 동시에 튀어나옵니다.

잡곡밥에 청국장, 저녁공양은 성찬

그렇게 일행은 첫날 여정을 마치고 밝은마을로 돌아섭니다. 김혜정님이 정성으로 차린 음식을 고대하며. 잡곡밥에 나물, 구수한 전과 청국장까지. 저녁공양은 벌써 ‘성찬’이 되었습니다. 막걸리 한 잔 생각이 간절했는데, 수련시설에서는 안된다고 해, 숙박시설에서 가질 ‘야심한 시각’을 기대하기로 하고 아쉬움을 달랬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 도배방지 이미지

밝은마을 지리산 여행생협 구룡폭포 관련기사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