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고기리 하얀영봉 날 비웃는다

[지리산밝은마을④] 무얼 그리 찾느냐, 어딜 그리 바삐 가느냐고...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11/12/21 [10:43]

지리산 고기리 하얀영봉 날 비웃는다

[지리산밝은마을④] 무얼 그리 찾느냐, 어딜 그리 바삐 가느냐고...

최방식 기자 | 입력 : 2011/12/21 [10:43]
<지난 글에 이어> 아침밥을 먹기 전에 1시간 명상체험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행자들 게으름에 지도 선생님이 기다리다 가버렸다고 했습니다. 몇은 밥상을 다 차려놓으니 얌체처럼 그 앞에 앉았고요. 밤새 떠들고 마시고 아침엔 지쳐 늘어지는 습성이죠. 제 얘깁니다. ㅠ.ㅠ

아침을 먹고는 마을 탐방에 나섰습니다. 행정리 등을 돌아보기로 했습니다. 김혜정씨 안내를 기억하며 가봤는데 샛길이 많아 헛갈립니다. 농부 한 분이 지나가기에 물었더니 어찌어찌 가면 된다는데 역시 모르겠습니다. 여행이란 게 원래 그런 거니, 좀 더 가보기로 했습니다.
 
▲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고 했죠? 북풍으로부터 막아줄 게 아무것도 없는 마을. 방풍림이 꼭 필요한 그 곳에 서어나무숲으로 ‘비보림’(裨補林)을 세웠습니다. ‘생명의 숲’이 2000년 꼽은 가장 아름다운 마을숲.     © 최방식 기자
▲ 서어나무숲 한 가운데서 문뜩 올려다본 하늘. 나뭇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가지뿐인 황량한 숲 속에서 우두거니 찬바람을 맞다가 우연히 찾은 아름다운 그림 한 폭. 여행자는 넋을 잃고 고개가 아프도록 우러러봤답니다.     © 최방식 기자


여행자들은 갈림길에 서면 멈칫하죠. 이쪽일지 저쪽일지 모르니까요. 물어물어 주춤주춤 가는 이도 있고 한 길로 그냥 나아가는 이도 있습니다. ‘삼천포’로 빠져 예상 밖 세상을 기대하는 마음도 없잖죠. 낯선 곳을 다니는 묘미기도 하고요. 목적지가 있는 이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순망치한 비보림 ‘서어나무숲’


몇 번을 멈칫 멈칫 가고 있는데, 멀리 두 개의 숲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왼쪽 벌판엔 앙상한 가지뿐인 숲. 오른쪽 마을엔 소나무 군락지. 여행자가 찾던 행정리(行政里)입니다. 안내판 어딘가를 보니 행정(杏亭, 은행나무 고을)이었는데 한문이 바뀌었다네요. 왜 그랬을까요?

서어나무 숲은 2000년 '제1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마을 숲 부문’ 대상을 차지한 곳이랍니다. 당시 기자가 시민사회단체 대변지 격인 한 매체에서 일을 했는데, IMF위기 극복 일자리 만들기 사회운동을 취지로 설립된 ‘생명의 숲’이 산림청과 협력해 기획했던 이벤트였죠.

허허 벌판 한 가운데 새워진 행정마을. 북쪽 끝에서 물길이 공안천과 람천으로 나뉘어 마을 양쪽을 휘돌아 남쪽으로 흐릅니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이라고 했죠? 마을을 북풍으로부터 막아줄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방풍림이 꼭 필요한 지형, 그러니까 그곳에 ‘비보림’(裨補林)을 세운 거지요. 1천년도 전에 이런 도시(마을)설계 이론체계가 완성됐다니 놀랍죠?

풍수지리(도참)가 우리 사회에 정착된 건 나말여초. 애초 뿌리는 전한(前漢)이니 2천여년이 넘었네요. ‘비보’(裨補)는 쇠하고 망하는 기운을 막아준다는 말. 풍수지리가 흥했던 고려 때 ‘산천비보도감’(山川裨補都監)이라는 관청이 있었는데, 바로 기운을 보충하여 나라의 위업을 높이는 일을 맡았던 곳입니다. 그 때만해도 도읍지 중심 행정을 폈는데, 조선 후기에 들어 시골까지 이 환경행정이 고루 퍼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2백여년은 돼 보이는 노송들. 구불구불 역동적으로 뒤틀리고 늘어졌다 솟구쳐 굽은 소나무들. 곧게 뻗은 금강송과는 사뭇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동남풍을 막은 웃숲, 서풍을 막은 중간숲, 북풍을 막은 아랫숲...     © 최방식 기자
▲ 까치밥. 자연은 늘 더불어 살라고 합니다. 입술이 마르도록 공존공생을 외치면서도 탐욕을 멈추지 않는 여행자더러 제발 저 하늘처럼 하얗게 비우라고 그럽니다.     © 최방식 기자


행정리 서어나무숲은 풍수지리상 마을을 보호하려고 조성한 ‘비보림’입니다. 5백여평의 늪지에 수령 2백여년의 나무 60여 그루. 멀리서 보니 꼭 큰 고목나무 한 그루 같습니다. 한 스님이 권해 생겼다네요. 서늘한 냉기 탓에 매년 전염과 풍년이 반복될 수 있으니 북쪽에 숲을 세우라고 했다는...


홀대받는 나무, 마을 지키고


비보림에는 대게 소나무·밤나무 등의 수종이 쓰이는데 여긴 그렇지 않습니다. 서어나무는 소나무처럼 가장 흔한 수종이지만 재목이나 땔감 가치가 없어 관심을 받지 못한 나무죠. 그러니까 홀대받는 나무가 이곳에선 생명을 보호하는 비보림으로 쓰였습니다. 모든 생명은 저마다 가치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생태론에 부합하는 거죠?

동글(김근례)씨가 숲 한 귀퉁이에 만들어놓은 그네에 오릅니다. 춘향이라면서요. 그런데 영 모양이 나질 않습니다. 아무리 굴러도 높이 오르지를 않아서요. 그네가 비뚤어져 있습니다. 지켜보던 여행자, 한마디씩 합니다. “향단이네.” “월매네.” 그러다 문득 올려다본 하늘. 나뭇잎이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뿐이어서 숲 느낌이 없었는데 올려다보니 숲의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행정마을을 한바퀴 돌았습니다. 30여분을 걷다 마을 어귀로 나오는데 마침 대파를 수확하는 농민이 몇 보입니다. 동글씨 또 나섭니다. “우리가 좀 도와 드릴까요?” 민폐 끼치지 말고 그냥 가자는 수군거림이 나오던 차에 농민 한분이 손사래를 칩니다. 동글씨가 못 알아듣자 그분이 덧붙이는데, 자신들은 일당을 받고 일하는 거니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일감을 빼앗는 셈이니까요.

행정마을을 막 나오니 공안천 너머 소나무숲이 아름다운 삼산리입니다. 다리 하나, 그리고 60번 국도를 넘어 마주하고 있습니다. 2백여년은 돼 보이는 노송들. 구불구불 역동적으로 뒤틀리고 늘어졌다 다시 솟구쳐 굽은 소나무들.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금강송과는 사뭇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합니다. 마을을 싸고 소나무 숲이 여럿. 동남풍을 막은 웃숲, 서풍을 막은 중간숲, 북풍을 막은 아랫숲...

▲ 거기 높고 아늑한 고기리(고기리)에서 바라본 지리산 노고단의 하얀 영봉. 거기 그 산이 여행자더러 묻습니다. 어디를 그리 바삐 가느냐고?     © 최방식 기자

▲ 밝은마을 아침식사. 음식을 뜨기 전 농부에게, 요리자에게, 그리고 곡식을 지으신 땅·하늘·바람에게 감사기도를 드립니다.     © 최방식 기자


‘등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습니다. 반듯한 소나무를 두고, 모두들 칭찬을 하지만 곧 목재로 잘려나가고, 별 쓸모없는 것들이 남아 소중한 곳을 지킨다는 소리죠. 아무 쓸모없다는 서어나무가 최고 가치로 사용되는 행정마을 이야기가 여기서도 통용되는 셈인가요?


‘등 굽은 소나무 선산 지킨다’


행정리 동쪽 저 멀리 한눈에 들어오는 바래봉. 지리산 최고의 철쭉 명소인데 언제 봄에 한번 와야겠다고 맘먹었습니다. 경사가 완만해 최고의 봄철 산행지로 꼽힌다는데.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동편제 탯자리도 한 번 가봐야죠?

마을탐방을 마친 여행자들은 다시 높고 아늑한 마을 고기리(高基里)로 돌아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정령치 기운을 한 번 느껴보려다 발을 붙들렸습니다. 눈으로 산길이 폐쇄됐습니다. 멀리 노고단이 보이는 길 가에 서서 하얗게 눈 덮인 영봉만 바라보다 발길을 돌렸습니다.

밝은마을에 돌아오니 마을 이사장이자 백일학교장인 황선진 선생이 외지 일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신문명의 태동을 예견하며 나·가족·국가라는 낡은 틀을 대체할 새 공동체를 준비할 지도자, 밝은 선비를 양성하려고 지리산에 터를 잡았다고 개교취지를 설명했습니다.

마을을 나서며 생태화장실에 가봤습니다. 대변을 분리수거하고 겨를 뿌려 유기농 퇴비로 사용한다는 군요. 변기가 좀 독특합니다. 소변과 대변을 한 변기 안에서 분리되도록 고안한 건데 ‘조준’(?)이 쉽지 않다는 평가가 들리더군요. 문밖에는 여러 글귀가 눈길을 끕니다. ‘달린놈’, ‘없는년’, ‘당신이 사색하는 사이 기다리는 이 사색된다.’

▲ 밝은마을의 자랑거리 생태화장실입니다. 문밖에 서면 여러 글귀가 눈길을 끕니다. ‘달린놈’, ‘없는년’, ‘당신이 사색하는 사이, 기다리는 년(놈) 사색된다.’     © 최방식 기자

▲ 오는 길에 전통 남원장(5일장)에 들렀습니다. 호박말랭이, 늙은호박 등 산나물·야채를 사 바리바리 싸들고 돌아왔습니다.     © 최방식 기자


1박2일의 여행이 끝났습니다. 맛 좋은 수제비로 점심을 하고 밝은마을을 떠나왔습니다. 귀가길 남원장(5일장)에 들러보라고 해 광한루 인근에 어딘가에 차를 세웠습니다. 여행자들은 뒤늦게 가족을 생각했는지 호박말랭이, 늙은호박 등 산나물·야채를 사 바리바리 싸들고 나옵니다. 바람떡(개피떡), 볶은콩 등 상경 길에 먹을거리도 이것저것 샀습니다.

4시간여, 고속도로를 달리며 여행자들은 못 다한 수다를 떨었습니다. 이틀간의 여행평가도 거기서 그럭저럭 이뤄졌습니다. ‘좋았다’는 접대용 말고도 여러 이야기들이 나왔죠. 많은 이웃에게 권하겠다는 이, 대중적으로 권유하기엔 좀 무리라는 이까지...


귀가길 초의선사 시구 떠올라


귀경길 내내 귀가를 맴도는 시구 하나가 있었습니다. 다산(다산(茶山)의 친구였다는 초의선사가 읊은 건데요. ‘청산응소 백운망’(靑山應笑 白雲忙). 친구를 찾았다가 만나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 날이 어두워 바위 밑에서 하룻밤을 지새우며 느낀 걸 읊었다는 시죠. 청산처럼 묵묵하지 못하고 바삐 사는 자신을 흰구름에 비유하며. 무얼 그리 찾는지? 왜 그리 바쁜 건지? 집착은 또 왜? 무에 그리 아까워 비우지 못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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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자 2012/01/02 [15:31] 수정 | 삭제
  • SNS와 연동 디지털 마인드가 필요한 때죠...
  • 나무 2011/12/29 [18:15] 수정 |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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