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바람조차 숭엄한 백두고원에...

백두의 기슭에서③ 생명살이 엄숙·고결함이 청아한 빛깔로 다소곳...

정미경 | 기사입력 2007/07/12 [11:38]

시린 바람조차 숭엄한 백두고원에...

백두의 기슭에서③ 생명살이 엄숙·고결함이 청아한 빛깔로 다소곳...

정미경 | 입력 : 2007/07/12 [11:38]
고원지대에 부는 바람은 청정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멀리서 불어오는 몽고바람, 대륙에서 몰아치는 광풍과 같이 매운바람, 기슭을 타고 내리꽂히는 보라바람 등, 가지가지의 바람들이 백두고원을 에워싸고 있어요.
 
수목한계선 보다 높은 고원지대에서 만나는 길 잃은 길손처럼 서성거리는 서릿바람은 피곤을 단박에 가시게 합니다. 느닷없이 귀청을 찢어발기는 듯한 날파람이 불어올 때면 다른 생각을 할 겨를조차 아예 없어요. 
 
 
▲ 백두고원을 에워싸고 있는 청정한 바람.     © 정미경

골짜기를 훑고 쏜살처럼 치닫다가 순간에 흩어져버리는 바람이 있는가 하면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왜바람은 멀리서 온 길손의 마음을 사정없이 흩뜨려놓기 일쑤입니다.

고원지대를 지나는 바람이 크고 작은 봉우리를 넘자마자 제각기 갈래로 흩어지면서 생기는 바람 탓인 것 같습니다.
 
한대기후 가운데서도 툰드라기후에 속하는 백두고원의 바람은 또 다른 특징을 지녔습니다. 빙하지대를 가로지르는 바람이기에 언제나 늘 습기를 머금고 있다는 것이지요. 상승기류가 만들어내는 구름 사이를 헤집고 지나가는 바람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 상승기류가 만들어내는 구름 사이를 헤집고 지나가는 바람.     © 정미경

볕뉘 앞에서 드넓은 고원지대를 둘러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실감할 정도였어요. 하물며 드넓은 광야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는개가 잠깐 내리는 가 했는데 어느 사이에 해비가 지나갑니다. 그리고는 작달비가 온종일 길을 가로막아 나섭니다. 우림 속 이끼는 너도나도 이슬을 머금는데 여념이 없을 거예요. 그렇다고 계곡이 갑자기 불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 갑자기 먹구름이 밀려오더니, 또 다른 먹구름은 그 위로 쫓기듯이 밀려갑니다.     © 정미경

빗소리 이외에는 적막하기 그지없을 정도입니다. 그것은 순식간에 채찍비로 돌변하여 더 이상 어쩌지를 못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리고 천지 호반의 주위는 햇귀가 번쩍, 그러나 전광석화와 같은 찰나에 불과할 뿐이지요.

그 사이에 너덜겅에선 돌멩이가 우르르 내리쏟아집니다. 골짜기와 그늘에 남아있는 눈은 그대로이고, 얼음 또한 그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동행한 이들이 있음에도 지독한 외로움이 온몸을 엄습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어요.
 
▲골바람과 산바람이 낮과 밤을 교대하며 구름들을 이리저리 흩뜨려놓기 일쑤입니다.     ©정미경


 갑자기 먹구름이 밀려오더니, 또 다른 먹구름은 그 위로 쫓기듯이 밀려갑니다. 그리곤 저 멀리서 번개가 번쩍거림과 동시에 거대한 우뢰가 대기를 발기발기 찢어놓습니다.

골바람과 산바람이 낮과 밤을 교대하며 구름들을 이리저리 흩뜨려놓기 망정이지 햇살과 별빛을 본다는 것이 여간해서는 차례지지를 않는다고 하더군요.

▲ 두꺼운 만년설에 내리는 는개.     © 정미경

호반주위의 만년설의 두께만 해도 평균4미터, 표토 아래엔 영구 동토층이 두텁게 깔려있으니 이곳이야 말로 별천지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시린 땅위로 솟아나는 땅별, 구름사이로 시리게 빛날 하늘별 들이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는 그런 별천지 말이에요. 
 
▲ 변화무쌍하고 희비쌍곡선이 무시로 엇갈리는 백두고원.     © 정미경

 안온하기 짝이 없다가도 무시무시한 공포가 내리누르는가 하면, 상서로운 잿빛 하늘 속에 갇혀있다는 두려움이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밀려오기도 합니다. 그리고는 이내 함성과 함께 펼쳐지는 조화의 극치가 눈앞을 가로 막습니다.

도대체가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습니다. 변화무쌍하고 희비쌍곡선이 무시로 엇갈리는 이곳에선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내맡기는 일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요.
 

▲수목한계선에 내려앉은 구름.     ©정미경


바람이 만들어 놓은 풍식구멍과 풍식버섯을 관조하면서 비로소 하찮은 인간의 바투는 행동거지가 거울처럼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부끄러움으로 말이에요.
 
날소리 보다 못한 인간의 교양이 아무런 의미도 지니지 못했음을 절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굴곡 많고 사연 많은 자연의 흐름 앞에서 몸 붙여 살아가는 백두고원의 뭇 생명체들이 숭엄한 존재로 와 닿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 백두고원에 가면 생명살이의 엄숙함과 고결함이 청아한 빛깔로 다소곳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 정미경
수목한계선 아래에 펼쳐지고 수놓아진 숲의 바다가 더욱 빛나는 것은 험악하기 이를 데 없는 조건에서도 생명을 틔우는 낮은 자리의 선구수종 덕이라는 것을 뼈가 저리도록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백두고원에 가면 생명살이의 엄숙함과 고결함이 청아한 빛깔로 다소곳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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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거리 2007/07/16 [10:50] 수정 | 삭제
  • 받고, 어쩌구하는 것이 실감이 가는군요.

    우리네 인간이 자연의 일부일진대
    그 상서러운 기운을 받아
    더욱더 마음이 넓어지는 그런 경험을
    모두가 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삘리 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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