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못, 거절할 수 없는 억겁의 유혹...

백두의 기슭에서④ 마지막 자연, 고요속 외로움으로 출렁이는

정미경 | 기사입력 2007/07/13 [20:52]

하늘못, 거절할 수 없는 억겁의 유혹...

백두의 기슭에서④ 마지막 자연, 고요속 외로움으로 출렁이는

정미경 | 입력 : 2007/07/13 [20:52]
첨벙, 몸을 날려 하나가 되고픈 하늘호수. 백두대간과 장백산맥에 즐비한 연봉의 중심에 하늘을 푸르게 담고 있는 하늘호수를 마주할 때 떠오른 스쳐지나가는 강렬한 욕망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 첨벙, 몸을 날려 하나가 되고픈 하늘호수.     © 정미경

심장이 멎을 듯이 아프게 가슴을 파고드는 천지. 칠흑 같은 깊음 속으로 은하의 강줄기를 담아내고 옥빛 창공과 떠다니는 구름을, 그리고 바람까지 품고 있는 하늘호수에 몸을 날려 가뭇없이 사라지고픈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신화속의 숨겨진 하늘호수는 그렇게 아른거리며, 도무지 거절할 수 없는 유혹을 하고 있었어요. 
 
▲ 범접할 수 없는 신비이자 빠져나올 수 없는 유혹.     © 정미경
바다의 그리움을 바람이 싣고 흩뿌려 놓은 , 막막한 억겁의 어둠 속에서 터져 나오는 그리움까지 한데 모아, 거기에 다가 하늘까지 담아놓았으니 그럴 수밖에.

범접할 수 없는 신비이자, 빠져나올 수 없는 유혹입니다. 미어져오는 그리움에 북받쳐 오는 향수가 명치끝을 또다시 저미게 합니다. 
 

▲ 심장이 멎을 듯이 아프게 가슴을 파고드는 천지.     © 정미경

 불을 뿜던 그 자리가 시린 물로 채워졌으니, 이곳은 그리움의 고향, 갈래 흩어진 영혼의 마지막 조각이 마멸된다 하더라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고향입니다.

외륜산의 그림자를 싣고 달문을 통해 비룡폭포로 몸 날리는 그 마음을 나는 알 것만 같습니다.

다공질의 현무암을 파고들다가 압록강과 두만강으로 빠져나가는 그 마음도 나는 알 것만 같습니다. 
 
▲ 머무를 수 없는 그리움의 화신으로 아무도 모르게 하늘 한가운데에 그렇게 자신을 고요하게 출렁거리고 있는 하늘못.     © 정미경

때로는 콸콸 솟는 광천수로, 또다시 펄펄 끓는 용출수로 가쁜 숨을 내쉬는 그 마음도 나는 알 것만 같습니다.

어쩔 때는 가파른 천길 벼랑으로 몸 날려 온 육신을 흩어버리는 폭포가 되는 그 마음도 나는 알 것만 같습니다.
 
머무를 수 없는 그리움! 천지는 머무를 수 없는 그리움의 화신으로 아무도 모르게 하늘 한가운데에 그렇게 자신을 고요하게 출렁거리고 있었습니다. 
 
▲ 외륜산의 그림자를 싣고 달문을 통해 비룡폭포로 몸 날리는 그 마음.     © 정미경
그리고는 소천지에 자리 잡고, 고즈넉함에 몸을 맡기는 그 마음도 나는 알 것만 같습니다. 힘겹게 올랐으니 잠시라도 나무 그림자 밑에서 쉬어야 하니까.

이끼에 내려앉은 이슬로 꽃잎에 매달렸다가 발길 닿지 않은 밀림을 지나 볕조차 갈 수 없는 지하폭포로 내려 흘러가고픈 그 마음도 나는 알 것만 같습니다.
 
대륙을 휘감고 돌아 바다로 흘러가야만 하는 운명을 거부하지 않는 그 마음이 곧 나의 마음이기에 천지와 나는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 소천지에 자리 잡고 고즈넉함에 몸을 맡기는 그 마음.     © 정미경

때문에 천지는 외로움을 좋아하는 것인지 모르겠어요. 아니, 외롭기에 그 모두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때로는 겹쌓이는 눈으로, 때로는 꽁꽁 굳어버린 빙하로, 그리고는 온몸을 풀어헤친 안개로 흩날리더라도 이곳을 떠날 수 없는 것은 단 하나, 맵찬 바람에 실려 마른 은하의 강에 가 닿아 그 외로움을 촉촉하게 적셔주었으면 하는 바람 뿐! 
 
고요속의 외로움으로 출렁거리는 천지는 16개의 연봉이 지켜주는 마지막 자연입니다. 천지는 인간에게는 마지막 자연이지만 그러나 신들에게는 첫 자연입니다. 
 
▲ 발길 닿지 않은 밀림을 지나 볕조차 갈 수 없는 지하폭포로 내려 흘러가고픈 그 마음.     © 정미경
 
포월자, 혹은 전일자로 부를 수 있는 'Holy One' 에게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몸을 담글 수 있는 하늘못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그런가. 백두고원에 들어서면 무언가 신령스럽고 거룩함이 산을 감싸고 있는 안개처럼 편만해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동시에 인간의 왜소함을 절감하기도 하지요. 돌 하나, 풀 한포기, 새들의 날개 짓, 흐르는 물조차 그 어떤 의지로 읽혀지기 때문이에요. 
 
신과 인간을 대립시켰던 저간의 오만이 낱낱이 드러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인간을 잃어버린 신의 허탈감이 백두고원을 전체를 맴돌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인간을 잃어버린 신의 허탈감이 백두고원을 전체를 맴돌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정미경

신의 허탈감이 서성거리는 곳, 그 정점에 천지가 있습니다. 나무 한그루, 아니 밀림 속에 있을 것 같은 신 앞에서 스스로를 낮출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천지는 신이 인간에게 다가서는 육화의 장과 같이 느껴지는 곳입니다. 인간의 정신을 드높은 곳으로 고양시키기 때문이지요.

어떤 기를 가득안고 오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도무지 지울 수가 없습니다. 
 

▲ 고요속의 외로움으로 출렁거리는 천지는 16개의 연봉이 지켜주는 첫 번째 자연입니다.     © 정미경

신을 멀리하고 배반한 인간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원초적인 황량함, 그리고 원초의 풍성한 야성이 그대로 살아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천지입니다.

고요속의 외로움으로 출렁거리는 천지는 16개의 연봉이 지켜주는 첫 번째 자연입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

천지, 백두산, 유혹 관련기사목록
정미경의 녹색 반가사유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