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엔 달팽이휴가, 빈둥대자구요"

광화문단상 “극성스런 피서 딱 질색... 소박한 휴양이나 일탈”

최방식 기자 | 기사입력 2007/07/24 [17:40]

"올여름엔 달팽이휴가, 빈둥대자구요"

광화문단상 “극성스런 피서 딱 질색... 소박한 휴양이나 일탈”

최방식 기자 | 입력 : 2007/07/24 [17:40]
불볕더위와 기나긴 장마가 가끔은 짜증스런 여름입니다. 사무실에서도 방구석에서도 더 이상 버티기가 힘듭니다. 더위에도 일에도 지쳤나 봅니다. 이 쯤 되면 짐부터 싸고 싶습니다. 딱히 갈 데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산, 바다 어디든 좋죠. 내 집 아닌 곳이면 금상첨화구요. 피서라기보다는 일탈이 맞겠습니다. 휴양이면 어떻고 일탈이면 어떻습니까. 충전을 해보자 이겁니다. 소모와 낭비가 아니고요.

해운대로 가볼까요? 뱀사골이 좋다는 군요. 백담사가 제격이라고요? 방콕이나 파타야가 최고겠죠? 한데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휴가 뒷맛이 개운치 않다는 겁니다. 인파, 쓰레기, 얌체짓, 바가지상혼에 왕짜증만 씁쓸하니까요. 아님, 술에 절어 나자빠지든 지요. 욕심쟁이들의 휴가란 게 다 그렇고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하여, 올 여름에는 좀 어슬렁거려 보자 이겁니다. 바삐 사느라 몸도 맘도 지쳤는데 휴가 때만이라도 느림보 거북이나 달팽이처럼 놀아보자는 거죠. 절대 집나온 바쁜 사람들 뜸에는 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 따라 남해로, 속초로, 만리포로 가다보면 빈둥거릴 수가 없거든요. 뒤통수에 욕지거리 아님 빵빵거리기 일쑤일 테니까요.
 
해운대가 최고라고요?
 
주머니 사정 생각하면 ‘방콕’이 제격 아니겠습니까? 책꽂이 하나 가득 양서라고 모아놓으면 뭐합니까? 몇 장 읽다 그만 둔 책 제목만 달달 외우지... 올 여름엔 진득하게 읽어 보자 이겁니다. 마우스 붙들고 하루종일 놀아도 좋고요. 집안 구석구석을 뒤지는 것도 괜찮습니다. 마당 일개미도 관찰하고, 뒤뜰 나리 향에도 빠져 보자구요.‘똑딱이’ 디카라도 들고나가 작품을 만들어보세요. 예쁘면 블로그에도 올리구요.
 
▲ 느림보 선수 달팽이. 어디로 향하는 지도 모르고 무작정 달리기만 하는 우리들이 진정 배워야 할 생태계 친구랍니다.     © 별똥(Beolddong)님 카페이서

하여튼 '찐했던' 옛 휴가와 많이 다르겠지요? 바쁘다는 핑계로 못 봤던 벗들을 불러 조금 특별한 파티도 여는 겁니다. 유기농 상추와 오이로 겉절이·냉채 만들고 시골 할머니가 보내온 감자로 전도 좀 부쳐놓고 시원한 막걸리 한잔 나눠 마시는 거지요. 후식으로는 잘 익은 수박이 좋겠습니다. 아이들도 불러 모아 하루쯤 제 맘껏 놀라 하지요.
 
집 안에서 보내는 건 좀 그렇다고요? 휴양림이 생각났습니다. 국유림마다 방갈로를 싸게 운영하는 거 아시죠. 아, 울진에 구수곡이 좋겠습니다. 숲 속에 기가 막힌 휴양지가 있거든요. 코끝 찡한 금강소나무 향, 굽이쳐 푸르른 왕피천, 그리고 동해 저 가슴 속 시원한 격정의 파도를 마다할 수야 없지요.
 
초록, 노랑, 하양 여기저기 수줍게 고개를 내민 들풀을 구경해야지요. 녹아내린 하늘 하나 가득 담은 채 굽이굽이 내닫는 그 파란 물속에 맨살을 담가보는 겁니다. 유유자적한 피라미와 꺽지를 구경하는 건 보너스입니다. 졸음이 찾아오거든 맘껏 자도 됩니다. 바삐 일어날 일도 없으니까요.
 
탁 트인 섬도 괜찮습니다. 사람이 적게 사는 곳이면 더 좋지요. 초도, 매물도, 아니면 내파수도... 아마 내파수도는 어려울 겁니다. 지금은 사람이 안살 거든요. 배편도 없을 테고. 요란하게 부산떨지 말고 조용하게 섬의 친구가 되셔야 합니다. 전깃불 하나 안 보이는 원시의 하늘 아래에서 밤새워 별도 세시구요.
 
“달팽이 여행 어떨까요”
 
제 여름휴가가 궁금하다구요? 아시겠지만 다 똑같지요, 뭐. 술만 디립다 쳐마시다 죽게 고생한 게 한두번이 아니지요. 특별한게 한 둘 있긴 하네요. 작년 버마 난민촌에 일주일 다녀온 겁니다. 군부독재 정권에 쫓겨난 소수인족과 민주화운동 가족들이 모여 사는 곳이죠. 미얀마와 국경지대인 험한 정글지역입니다. 태국경찰이 출입로를 지키고 있어 난민들은 밖으로 나갈 수가 없습니다. 평생 감옥인 셈이죠.
 
태국 북부 치앙마이에서 차로 3~4시간 거리에 있습니다. 국제사회가 건네주는 생필품으로 목숨을 연명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 고교까지 있지만 책도 공책도 모자랍니다. 교사도 월급을 못 받습니다. 세상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걸 알리라고 날 그 곳으로 안내한 모양입니다. 평생 못 잊을 투어를 했죠. 난민촌 일곱 살 꼬마 리나웨이의 큰 눈망울은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 태국 북부 정글지대(미얀마와 국경지대)에 있는 버마 난민촌. 작년 휴가 때 별난 투어를 갔던 곳입니다.     © 최방식


내친 김에 하나 더 하죠. 한 10여년은 된 모양입니다. 당시 김성훈 농림장관이 취재해보라고 권해 갔습니다. 안면도에서 어선으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섬입니다. 애초 사람이 살았는데 모두 떠나 무인도가 돼 버렸습니다. 이 섬에 혼자 남아 아름다운 자연 돌멩이(구석) 방파제를 지키는 한 노인을 만나러 갔습니다.
 
아는 몇사람과 함께 섬에 들어가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아이들도 방학이어서 데리고 갔죠. 동백 군락이 우거져있고, 기암절벽은 한 폭의 그림입니다. 날이 저무니 전기불이 없어 하늘이 가깝습니다. 어른 둘은 소주 한잔씩 하고, 아이들은 별구경하다 잠이 들었죠. 술김에 잘 잤는데, 다른 이들은 그리 못한 모양입니다. 온 몸이 모기자국 천지입니다. 값비싼 대가를 치렀지만 파돗소리 말고 아무 것도 원시 적막을 깨지 않는 자연의 품에 안겼던 소중한 추억입니다. 아, 그 섬에 가고 싶습니다.
 
“이젠 제발 물흐리지 말고...”
 
올해는 뭐 좋은 계획 없냐구요? 좀 민망한 휴가일정이 하나 생겼습니다. 처가 사람들이 평생 외국 한 번 못 가봤다며 일본 여행계획을 잡아놨습니다. 본의 아니게 가이드 꽁무니를 졸졸졸 따라다니는 일본여행을 하게 생겼습니다. 전 이런 여행을 제일 싫어하는데, 그렇다고 빠질 수도 없고... 돈 비싸게 들이고 뻔한 코스 돌고... 연로하신 분들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하네요. 내참...
 
휴가 때면 고민입니다. 하지만 이제 도발적인 휴가는 그만 둘 때가 됐습니다. 전국토를 쓰레기통으로 만들겠다고 작정한 분이 아니라면 깔끔한 휴양문화가 바람직 할 것 같습니다. 돈이 너무 많아 물 쓰듯이 써야 하는 사람 아니라면 해외여행도 좀 소박하게 다니는 게 좋겠습니다. 환경을 지키는 생태기행, 여성의 삶을 재조명하는 페미니스트들의 수다여행에 끼는 것도 괜찮을 듯 싶고요.
 
올 여름만은 제발 오지 찾아 물 흐리지 말자구요. 딱히 갈 데가 없거들랑 할머니 온정이 살가운 고향 시골마을이 어떨까요. 외가, 친가 어디든지요. 비어있는 사랑방 깨끗이 청소해 며칠 놀다 오는 거지요. 들·밭 일도 좀 거들고, 시원한 도랑물에 멱도 감고요. 토종닭 백숙에 풋고추 몇 개 곁들여 보양식도 즐기시고요. 맑고 시원한 공기도 맘껏 들이키고요. 이게 바로 참살이 휴양이 아니고 뭐겠나이까.

평화를 사랑하는 최방식 기자의 길거리통신. 광장에서 쏘는 현장 보도. 그리고 가슴 따뜻한 시선과 글...
  • 도배방지 이미지

  • 애독자 2007/07/26 [11:26] 수정 | 삭제
  • 찬성합니다. 방방곡곡 몰려다니며 쓰레기 버리고 씨끄럽게 뒤집고 싸우고...
    정말 꼴불견이죠. 아님 돈 좀 있다고 골프채 들고 해외다는 것도 눈꼴시럽고...
    천박하지 않고 차분하게 휴가를 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름휴가, 달팽이휴가, 휴양, 충전 관련기사목록